# 29
29화.
‘20레벨 찍으면 스테이크라도 좀 썰면서 배에 기름칠 좀 해 줘야지.’
지난 10일간 파밍한 아이템과 골드가 꽤 되기에, 이번 고비를 넘기면 고생한 스스로에게 반드시 선물을 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래도 저놈들 보고 있으니 배가 든든해지네.’
소환수들은 배고픔도, 피로도 느끼지 않는다. 명령만 내린다면 이 자리에서 100시간이고 1000시간이고 몬스터를 때려잡을 터.
세현은 흐뭇한 미소로 소환수들을 지켜봤다.
그때, 메시지가 들려왔다.
[#. ‘허세현’님이 괴승을 10,000명을 처치했습니다.]
“엥? 갑자기 뭔데.”
[‘괴승의 저주를 받은’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 획득 조건: 괴승 10,000명 이상 처치.
- 보상: 지능+3
“나이스! 이런 타이틀이 있었나?”
<괴승의 저주를 받은>. 이 타이틀은 전생의 세현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경험치 효율도 나쁜 괴승 10,000마리를 혼자 잡는 미친놈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세현은 기쁨에 스텝을 밟으며 막춤을 췄다. 마치 행사장 공기 인형 같은 볼품없는 춤이었지만, 지금의 기분이 어떤 지만큼은 확실히 표현됐다.
이 춤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땅이 격렬히 흔들렸다.
“아아악! 갑자기 뭐야!!”
세현은 스텝이 꼬여 엉덩이를 바닥에 힘껏 처박았다. 그러곤 눈앞에 붉은색 메시지 박스 하나가 커다랗게 떠올랐다.
[괴승들의 깊은 저주가 이 땅의 주인을 깨웁니다!]
[보스 몬스터 / ‘타락한 괴승 타쿠앙’이 등장합니다!]
“어, 어라? 보스라고?”
정면에 서 있던 거대한 절간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사이로 거대한 손이 뻗어 나오더니 땅 밖으로 천천히 뭔가의 존재가 기어 나왔다.
<나.무.아.미.타~아불!>
그 존재는 10m가 넘는 크기의 거대한 승려였다.
그의 반들반들한 머리에는 새빨간 핏줄이 불뚝거렸고, 하나뿐인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세현을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봤다.
[#. 보스 몬스터 / 타락한 괴승 타쿠앙]
- 괴승 타쿠앙, 그 누구보다도 법력이 뛰어나다 알려진 그는 구미호에게 홀려 정욕을 탐했다. 타락한 그는 이젠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가 됐다.
등급: 히든(X)
레벨: 28
생명력 / 마나: 5000 / 8000
“오, 히든 보스?”
지난 10일간 세현이 괴승 1만 명을 처치하며 받았던 저주. 그것이 이 땅에 잠들어 있던 히든 보스 ‘타쿠앙’을 소환한 모양이다.
세현은 미묘한 얼굴로 타쿠앙을 바라봤다.
분위기와 스펙으로 보건데 얼마 전 잡았던 유니크 보스 ‘누라리횬’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했다.
지금이 장비도, 레벨도 훨씬 수준이 낫긴 하지만 그때는 백설희와 음양사들의 조력이 있었다. 홀로 저놈을 잡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세현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아…….’
보스를 잡았을 때의 보상과 위험성을 양쪽에 놓고 저울질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히든 보스인데 일단 달려 봐야지. 모처럼 좋은 그림도 나올 것 같고.”
일단 액션 캠코더의 [녹화] 버튼을 눌렀다.
히든 보스의 사냥 영상, 이는 최소한 중박은 노려볼 만한 콘텐츠였다.
유튜브 채널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확실한 한 방이 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내가 너 때려잡고 스테이크에 킹크랩 세트 얹어서 같이 먹는다!”
<성.불.하.라!>
세현의 자신만만한 외침에 타쿠앙은 왼손의 염주를 들어 바닥에 힘차게 내리쳤다.
콰아앙-!
이것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
† † †
두 시간 후.
히든 보스, 괴승 타쿠앙과 세현은 여전히 전투 중이었다.
주변의 절간, 바위, 나무 등이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 박살 나 있었고, 이 살풍경한 광경은 지난 두 시간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이 치열했던 전투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갈-!!!>
괴승 타쿠앙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질렀다.
정면에 소용돌이가 몰아쳤고 그것을 블랙 폰이 정면에서 받아 냈다.
세현은 그 틈을 타 시야의 사각에서 파고들었다.
콰득-!
칠지도를 단단히 붙잡아 놈의 목덜미에 내리찍자 돌덩이 같은 피부에 금이 갔다.
세현은 몇 번이고 칠지도를 내리찍으며 조금씩, 조금씩 놈의 상처를 후벼 팠다.
<벌레 같은 노오오옴!>
분노한 타쿠앙이 왼팔을 들어 세현을 향해 염주를 휘둘렀다.
타앙-!
하지만 멀리서 빨려 들어온 화살이 놈의 팔목을 쳐 냈다. 화이트폰이 화살로 놈의 공격을 봉쇄한 것이다.
“어이쿠 이걸 어쩌나?”
세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한 번 놈의 목덜미를 후벼 팠다.
<그아아아아아!! 벌레, 벌레 같은 놈들!>
타쿠앙은 잔뜩 분노해 화이트 폰을 죽일 듯 노려봤다. 이것은 놈에게 결정적인 빈틈을 만들었다.
“이게 어디다 한눈을 팔아.”
콰드득-!
살덩이가 고기 칼에 베이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상처 난 타쿠앙의 목덜미에 블랙 폰이 일본도를 박아 베어 낸 탓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부울!>
놈이 뒷목을 잡고 발광하자 세현은 뒤로 다가가 발뒤꿈치에 칠지도를 휘둘렀다.
아킬레스건이 찢겨 나가며 타쿠앙은 중심을 잃었고, 몸을 이리저리 휘청 대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놈의 바윗덩이만 한 외눈에서 보라색 피눈물이 줄줄 새 나왔다.
그렇게 한 1~2분이 지났을까, 세현의 몸 위로 노란 섬광이 내리쬐며 메시지가 들려왔다.
[허세현 님이 히든 보스 ‘타락한 괴승 타쿠앙’를 쓰러뜨렸습니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20(으)로 올랐습니다.]
[폰을 최대 3명까지 소환 가능합니다.]
“하아……. 하아……. 잡았다.”
세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 이로 인해 온몸이 땀과 괴승의 피로 얼룩졌고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대로 쓰러져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결과는 있었다.’
일단 18이던 세현의 레벨이 단번에 20까지 올랐다.
고승을 계속 잡아 레벨을 올린다면 못해도 하루 이틀은 더 걸렸을 터, 덕분에 황금 같은 시간을 몇십 시간이나 단축했다.
시체가 슬슬 녹아내릴 때, 세현은 혀를 날름대며 놈에게 다가갔다.
“뭐가 나왔는지 좀 볼까.”
바닥에 다량의 골드와 마나 포션이 무더기로 널려 있고, 그 틈새로 뭔가가 번뜩였다.
“오, 대박!”
세현은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물건을 주워 올렸다.
[#. 악세사리 / 고승의 염주]
- 고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 15개를 엮어 만든 염주. 사리에는 그의 법력이 담겨 있다고 한다.
희귀도: 유니크
등급: 에픽(B)
착용 레벨: 25
방어력: 2티어 F-
▶ 추가 옵션
- 지능: +15
- 금강반야바라밀 (액티브 스킬 / 초당 마나 3 소모): 방어력을 5% 상승시킵니다.
- 사리 삼키기(15회 가능): 고승의 염주를 먹으면 3분간 모든 능력이 150% 상승합니다. 사리 삼키기를 사용할 때마다 지능 증가량이 1씩 낮아집니다.
“이게 여기서 나와 주다니. 역시 될 놈은 되나 보다.”
덜컥 25제 에픽급 액세서리가 완제품으로 튀어나왔다. 지금 사용할 수 없지만 레벨 대비 옵션이 준수한 아이템이다.
“이걸 잘만 쓰면 최은철 놈한테 확실히 엿을 먹일 수 있겠어.”
하지만 이 아이템의 특징은 단순히 옵션이 아니었다. 고승의 염주는 ‘사리 삼키기’라는 이름의 특수한 옵션이 달렸는데, 염주를 알약처럼 삼키면 일시적으로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기능이다.
세현의 전생에서도 <고승의 염주>는 렙제가 낮지만 사리 삼키기 때문에 보스전이나 길드 간의 전쟁에서 종종 애용되는 아이템이었다.
제작법이 알려진 이후, 매 시즌 보스전때마다 상위권 길드들이 고승의 염주를 만들기 위해 별도의 팀을 돌릴 정도였다.
그런 아이템을 지금 시점에서 얻었다는 건, 확실한 펀치 한 방이 생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할 일부터 하고.’
세현은 싱긋 웃으며 스마트폰으로 찍은 ‘타락한 괴승 타쿠앙’의 사냥 영상을 편집자 신지영에게 전송했다.
3~4일 후면, 신지영이 편집한 영상을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회당 편집 60만 원씩 하던 금액도 100만 원으로 올려 입금해 줬다.
딱히 자금에 여유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받는 만큼 열심히 하는 거니까.’
일을 마친 세현은 지친 몸을 이끌고 승강의 방으로 이동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몸의 컨디션을 끌어 올릴 계획이었다.
세현은 몇 달 후, 팔콘에게 한 방 먹이는 순간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백설희 씨! 이번 기회 놓치면 정말로 후회하실 겁니다.”
“죄송해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길드는 좀.”
“저기요! 잠시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비는 시즌1, 벚꽃국의 수도 <사쿠라신>. 그곳의 광장에서 5명의 남자가 한 여성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스토킹으로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실제로 주변에는 많은 입주자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이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하지만 아무도 남자들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했다.
그들이 아파트의 최고, 최대 세력인 ‘팔콘’ 길드의 인사팀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인사팀장 정요셉이 집요하게 백설희에게 말을 걸었다. 설희가 제안을 재차 거절하자 그는 손을 낚아채며 외치듯 물었다.
“좋습니다! 연봉 10억! 10억 어떻습니까!? 잘 좀 생각해보세요, 빚 갚으셔야죠.”
“제가 빚이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아 그게…….”
설희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요셉의 손을 쳐 냈다.
‘제발 좀 넘어와라!’
하지만 요셉은 여기서 순순히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갔다간 최은철에게 박살 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희 길드에서 백설희 양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무리 A급이라 해도 이런 계약을 해 주는 곳은 저희밖에 없을 겁니다!”
요셉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A급 클래스의 소유자라 해도 신인 입주자의 연봉 상한선은 보통 5억 내외.
팔콘 길드가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