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27화.
“해, 해냈습니다!”
“살았다!”
그리고 뒤늦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허세현은 설희에게 다가가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줬다.
“고생하셨어요.”
“헤헷, 세현 씨 덕분이죠.”
설희는 얼떨떨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고 그러는 사이 작위 수여의 지속 시간이 끝나 검은 갑옷이 증발했다.
‘작위 수여, 이거 쓸 만하네.’
세현은 신규 스킬의 위력이 썩 만족스러웠다.
작위 수여는 선택된 소환수 하나의 능력을 아군 1인에게 부여하는 모양이었다.
지속 시간도 짧고 스킬 사용 이후 해당 소환수를 잠시 쓸 수 없다는 페널티가 있지만, 전투의 중요한 순간에 필살기처럼 활용이 가능할 듯 보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잠시 후 세이메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세현 공. 두 분의 힘을 사용해 음양의 술식을 펼쳐 다시 봉인을 강화해야 합니다.”
“뭐 그럽시다.”
두 사람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의 뜻을 전했다.
세이메이는 곧장 술식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살아남은 음양사들을 동굴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했다. 그러곤 동굴 입구 앞에 서서 단검으로 손끝을 살짝 베어 낸 후, 그 피로 바닥에 두 개의 원을 그려냈다.
“두 분께서 저 원안에 각각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시면 됩니다.”
부탁에 따라 두 사람은 각각의 원 안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세이메이가 뭔가의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다른 음양사도 그를 따라 외웠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의식을 보는 듯한 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 과정에서 세현과 설희의 몸에선 각각 검은색, 흰색의 아우라가 뿜어져 한 지점에서 커다란 구체를 형성했다.
그것은 주변에 널린 요괴들의 사체를 블랙홀처럼 빨이며 작은 태풍을 만들어 냈다.
‘아, 이거 생각보다 힘 드네…….’
세현과 설희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내면에 기운을 봉인에 끌어다 쓰며 체력이 급속히 소진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20여 분이 지났을 무렵, 흑백의 구체가 모든 요괴의 시체를 빨아들였다.
점차 회전속도가 줄어들며 작아지더니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태극 문양을 가진 구슬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세이메이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감사합니다, 허세현 공, 백설희 공! 두 분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 순간, 세현의 머릿속으로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 히든 스토리 퀘스트: 대음양사 세이메이(3/3) 완료했습니다.]
[‘백귀야행 봉인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 획득 조건: 백귀야행의 대장 누라리횬의 봉인.
- 능력: 올스탯 +4
‘나이스!’
세현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주변에 보는 눈만 없다면 팬티만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올스탯 +4! 순식간에 레벨4에 해당하는 스펙이 오른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최상급 타이틀을 얻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세이메이가 걸어와 두 사람에게 각각 노란색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줬다.
“제가 직접 음양술법을 담아 넣은 부적입니다. 두 분께서 주신 은혜를 모두 갚기엔 미약하지만 부디 정성이라 생각하셔 받아 주시길…….”
세현은 그것을 받아 들고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 부적 / 대음양사 세이메이의 부적]
- 대음양사 세이메이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부적. 인벤토리에 보유한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 등급: 유니크
- 옵션: 지력+20 / 마나 회복량 +40% 증폭
‘와 미친……. 이런 게 있었어?’
부적의 옵션을 확인하는 순간, 세현은 욕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인벤토리에 두는 것만으로 지능 +20. 이 옵션만 해도 이건 충분히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거기다 마나 회복량 +40%은 마나 포션이 비싼 아파트 안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옵션이었다.
‘이거 마켓에 내다 팔면 몇천은 우습게 받겠는데.’
상상 이상의 대박이기에 세현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흥분했다.
“그리고 혹여나 힘을 필요로 하실 때면 저희 가문을 찾아와 주시지요. 세현 공께는 언제든 아베 가문의 힘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세이메이와 악수를 나눴다.
[아베 가문에서 용병 ‘음양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음양사!”
입주자들은 최대 1명의 거주자를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용병들의 능력이 미약하다는 것. 용병들은 그 대부분이 입주자로 치면 F~E급 클래스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전투 센스도 뛰어나지 않아 실제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거기에 경험치도 나눠 가져야 하기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음양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억이 맞다면 음양사는 B등급의 클래스, 확실히 전력에 보탬이 된다.
전생에 이 퀘스트를 클리어했던 입주자가 낮은 클래스 등급에도 대형 길드에 들어갈 수 있던 것 또한 음양사 덕분이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세이메이 일행은 두 사람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숲의 저편으로 다시 사라졌다.
세현과 설희, 두 사람만 자리에 남았다.
잠시 정적이 맴돌았고, 세현이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설희 씨, 오늘 신세 많이 졌어요. 꼭 은혜 갚을게요.”
“헤헷. 진짜요? 그럼 지금 바로 갚으세요.”
“엥, 뭘로요?”
“맛있는 거 사 주세요.”
“으으음.”
설희는 해바라기 같이 웃으며 대답하자 허세현의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곤란한 얼굴을 해보였다.
“저랑 밥 먹는 거, 싫으세요?”
“그게 아니라 저한테 누가 밥 먹자고 하는 게 처음이라……. 혹시 뭐 다단계 같은 데 데리고 가려는 건 아니죠?”
세현 민망한 듯 뺨을 긁적였고 설희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하핫, 뭐에요 그게~ 세현 씨 농담도 잘 하시네.”
“어라, 농담 아닌디요…….”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승강의 방으로 이동했다.
† † †
온 사방이 체스 판처럼 만들어진 거대한 홀.
이곳은 아파트의 1층에 위치한, 관리자들만 출입 가능한 숨겨진 장소였다.
중심부에 놓인 수백 개의 테이블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고 관리자들이 그걸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오늘이 3개월에 한 번씩 있는 <관리자 총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2번째 메인 스토리는…….”
“히든 퀘스트를 깬 놈이 나왔다고 하던데?”
“그쪽 인간들은 아이템 욕심은 없나?”
관리자 총회는 아파트의 모든 관리자가 한데 모여 아파트 운영에 대해 논의하는 날이다.
이중, 관리자들 보다 한 직급이 높은 관리장급들이 모인 테이블은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헬시안, 이번에 SSS급 클래스가 나왔다지. 그놈은 좀 어때? 특별한 능력이랄 게 있나?”
“아파트의 규율을 알지 않나? 말해 줄 수 없네.”
“아 참 빡빡하게 구네,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 봐~.”
“시스템의 규율을 지켜야 하네.”
해골 팔의 미녀, 헬시안은 쏟아지는 질문에도 침묵을 지켰다. 이는 다른 관리인들이 허세현에게 관여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관리자가 보면 야박하다 할지 몰라도 아파트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관리인의 본연의 임무. 그녀는 이를 충실하게 이행할 뿐이었다.
“에휴, 알려 주기 싫으면 말아. 뭐 어쩔 수 없지.”
헬시안에게 이야기를 더 캐물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자 관리인들은 대화 주제를 바꿔 버렸다.
“그건 그렇고, 20층은 뚫리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넉넉히 잡아 8개월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이~ 그걸로 되겠어? 나는 1년은 걸린다고 봐.”
“S~A급 입주자가 실력들이 좋아서 예상보다 빨리 뚫리는 경우가 발생하잖아요? 그리고 신화급도 나왔으니…….”
“나는 민들레 씨앗이 못해도 세 번은 더 날아갈 거라고 봐. 솔직히 그래야 ‘시드메이커’들도 할 일이 있지, 안 그래?”
최상층을 100일 내로 공략하지 못하면 아파트 정상의 ‘민들레’라 불리는 구조물이 전 세계로 괴물의 씨앗을 토해 낸다.
이를 만드는 것은 10인 내외로 구성된 괴수 전담 관리인, 이른바 ‘시드메이커’들.
그들이 씨앗에 실을 레이드 괴수를 만드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민들레 씨앗이 100일 단위로 날아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그래, 시간이 있어야 작품을 만들지! 이번 괴물은 말이지, 기똥찬 걸 만들 거라고! 두 의지께서 좋아할 만한 엄~청난 걸 말이야!”
“그 엄청난 게 뭔데?”
“흠, 아직 생각 중이다!”
“그놈의 생각은 언제까지 하는 건데?”
“시끄러! 원래 예술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관리장들이 한창 담소를 나누던 중.
홀의 앞쪽에 놓인 거대한 단상에서 흑색과 백색, 두 개의 빛이 일렁였다.
그것은 마치 사람과 같은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관리인들이 웅성대더니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향해 일제히 절을 했다.
“두 의지시여!”
잠시 후, 두 개의 빛에서 중성적인 느낌의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흐음~ 이번에 신화급 입주자가 탄생했다지?>>
“네……. 그것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관리장 헬시안이 대답하려던 찰나, 가볍고 경박한 느낌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렇습니다용! 제 담당 입주자였습죵!★”
관리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흰색 검은색이 뒤섞인 정장을 입은, 달마시안 인간 ‘커플러’가 손을 들고 있었다.
“두 의지시여!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용!”
그는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밝은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커플러! 무례하다!!!”
헬시안이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커플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는 음양사들과 퀘스트를 진행을…….”
“어느 안전이라고 건방지게!!!”
총회에서 두 의지에게 말을 하는 건 암묵적으로 관리장급들이 해 오던 일이다. 헬시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