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24화 (24/180)

# 24

24화.

“이건 또 뭐야!”

소용돌이가 잦아들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엔 흰색의 궁수와 검은색의 전사가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아재들, 그 인생이 불쌍해서 나도 충고하나 할게.”

붉은 왕관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가진 거 여기서 다 토해, 안 그럼 진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아하하! 이 새끼가 진짜 뭐래냐? 그럼 우리가 겁먹고 ‘아이고 한 번만 봐주세요~’ 할 줄 알았냐?”

강철 일행은 경고를 들을 생각이 없는지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이것이 진짜 불행의 시작이었다.

콰드득-!

“끄아악!”

검은 전사의 창이 의식하지도 못할 빠른 속도로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흰색 궁수가 팔과 다리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불과 20여 초, 강철과 일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대로 둔다면 이들은 과다 출혈로 죽게 될 터였다.

“하여간 개돼지도 아니고, 좋게 말하면 알아먹지를 않아요.”

붉은 왕관은 신음하고 있는 강철의 상처 부위를 발로 짓이겼다.

“뒤지기 싫음 가진 거 다 토해. 그럼 살려는 드릴게.”

그는 왼손에 생명력 포션이 들고 좌우로 작게 흔들었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 으아아악!”

강철이 입을 열려 하자 붉은 왕관은 다시 상처를 짓이기며 얼굴의 스마일 가면을 모두 뜯어냈다. 가면 아래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추한 얼굴이 실시간으로 캠코더에 녹화됐다.

“니들 뭐 치매라도 있냐? 지나가던 사람 먼저 건드린 건 니들이잖아?”

‘이 새끼…….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잔잔하게 분노가 서린 목소리. 강철은 상대가 진심의 진심을 본능으로 느꼈다.

‘적어도 대형 길드 소속이거나 랭커야. 잘못 엮이면 진짜로 뒤진다.’

눈치 하나로 세상을 살아온 강철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판단했고, 인벤토리를 열어 모든 아이템을 꺼내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얘, 얘들아. 돈이랑 아이템 다 꺼내라.”

“무슨 헛소리야?”

“씨발 다 꺼내라고! 목숨은 건져야 할 거 아니냐!”

강철의 다급한 외침에, 나머지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아이템을 부랴부랴 끄집어냈다.

“아이템들 고마워. 이거 먹고 다들 착하게 살아라.”

붉은 왕관은 아이템을 챙긴 후, 놈들에게 체력 포션을 한 병씩 건네줬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반대편으로 사라져 갔다.

표강철 일행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아베노 신사로 향하는 마차 위.

세현은 짚더미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아우, 조회수가 이게 뭐냐…….”

하지만 그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맨티스파이더와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영상. 신지영의 편집을 거치고 꽤 멋진 영상이 나왔기에 꽤 반응이 오길 기대했다.

신지영은 1년 후에야 인기를 얻게 되는 영상 편집자다.

전투의 리듬과 영상미를 이해하는 천성적인 센스와 편집 실력으로 인해 단숨에 몸값이 오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무명.

그렇더라도 영상은 충분히 훌륭했다.

‘적어도 조회수 10만은 나와 줘야지.’

현재 조회수는 1만 5천, 첫 영상이라 생각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다.

세현은 씁쓸한 얼굴로 영상에 달린 리플들을 읽어 내려갔다.

[LOLcake: ㅋㅋㅋㅋ 9레벨이 이런 영상찍는다고? 개구라 즐~]

[Billheam: 솔까 말도 안 됨, 저 소환수라고 우기는 거 다른 입주자들이 분장하고 연기하는 거 졸라 티 남.]

사람들은 대체로 허세현을 허언증 환자 취급하고 있었다.

영상에 찍힌 전투 모습 자체가 9레벨 수준이 아닌데다가, 소환수들의 움직임이 너무 기민했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쩝…….”

세현은 씁쓸한 마음으로 유튜브 계정의 메시지 함을 열었다.

벌써 그럴 리 없겠지만 영상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스폰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한 행동이었다.

“어라?”

그리고 메시지 함엔 정말로 한 통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문제는 그 대상이…….

[팔콘 <인사팀장>: 안녕하십니까, 브레이브킹 님. 저는 팔콘 길드의 인사팀장인 <정요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락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엥, 니들이 여기서 왜 나와?”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팔콘 길드에서 세현, 아니 브레이브킹에게 관심이 있으니 미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재 랭킹1위 길드인 팔콘의 제의. 보통의 입주자라면 그 어떤 제안보다 기뻐할 일이겠지만 세현은 자연스레 얼굴을 찡그렸다.

‘기분만 잡쳤네.’

순간, 자신을 죽였던 최은철의 얼굴을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졌다.

세현은 곧장 해당 아이디를 차단시켰다.

그때였다.

“자, 도착했슈!”

마차가 멈추며 살짝 흔들리더니 마부가 힘차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이건 팁이에요.”

세현은 바닥으로 풀쩍 뛰어내려 그에게 금화 몇 개를 쥐어 줬다.

그는 환한 미소를 잠시 띄웠다. 그러곤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님, 무슨 일로 여길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슈.”

“네?”

“아베노 신사라면 이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음양사 집안이요. 저기 잘못 들어갔다가 송장 돼서 나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께.”

“하하, 걱정 고마워요.”

“쩝 그럼 나는 가 보겠슈.”

마부는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을 움직여 사라졌다.

세현은 싱긋 웃으며 앞에 놓인 커다란 나무문을 바라봤다.

문 위로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보라색 기운을 흘렸다.

“여기가 입구구만?”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흰색 메시지 박스가 그 위로 떠올랐다.

[#. 던전 / 아베노 신사의 환술 결계]

- 아베노 신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 결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적정 레벨: 25

[입장하기]

“던……전?”

아마도 안쪽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예측을 못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기에 세현은 어쩔 수 없이 입장하기 버튼을 눌렀다.

문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나 순식간에 세현을 집어삼켰다. 그러곤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지옥같이 변했다.

“이거 손님 접대가 판타스틱하네.”

썩어 문드러진 살과 뼈로 만들어진 동산이 펼쳐졌고, 그 사이로 피의 강이 흘렀다.

하늘을 보자 핏빛 구름이 생명체인 양 꿈틀대며 빠르게 흘렀다.

잠시 후,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아베의 땅에 발을 들인 자여, 당장 이곳을 나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드리리다.>

‘세이메이가 말한 남동생 놈 목소리인가 보구만.’

세현은 헛기침을 한 후 대꾸했다.

“세이메이 님이 보내서 왔는데, 헛짓거리 안 할 테니까 잠깐 얘기 좀 합시다.”

<건방진 녀석! 가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허공의 목소리는 노골적으로 분노를 토했다.

“아. 피곤하게 하지 말고 편하게 갑시다. 세이메이를 세이메이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하는데?”

<이런 오만방자한 놈!>

콰드드득-!

그 순간 세현의 발치에서 손이 불쑥 솟아나 발목을 잡아당겼다.

“아우! 깜짝이야.”

세현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폰을 소환시켰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타난 두 폰은 세현의 발목에 들러붙은 팔들을 걷어냈다.

<사역마를 부리다니! 네놈, 혹시 다른 가문의 음양사인 것이냐? 무슨 연유로 우리 가문의 신사를 침략한 거냐!>

“음양사 아니고. 세이메이가 보내서 왔다고 몇 번을 말하는…….”

<일어나라!>

썩은 시체 더미에서 수백 마리의 괴물이 꿈틀꿈틀 솟아났다. 1m 남짓한 키에 굽은 등, 전신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다.

놈들의 이름은 아귀, 인간의 시체를 탐하는 좀비와 비슷한 형태의 몬스터다.

“하, 대화로 하자니까아아아.”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침입자를 뜯어 버리거라!>

“끼에에에엑!!!”

아귀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높게 뛰어올랐다.

그런 기세가 무색하게 화이트 폰의 화살은 놈들을 간단히 격추했다.

화살에 꼬치가 된 아귀는 주변의 다른 아귀들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러자 놈들의 눈에 띌 정도로 조금씩 커졌다.

“피곤해 죽것네.”

세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아귀들이 서로의 시체를 먹어 치우며 점점 덩치를 불려 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20m 정도 크기의 거대한 아귀 한 마리만 남았고 그놈마저 쓰러뜨렸다.

그러자 풍경에 검은색 금이 가더니 그 사이로 흰색 빛이 새어 나왔다.

[아베노 신사의 환술 결계를 돌파했습니다.]

쩌저저적-!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공간 전체에게 깨진 유리처럼 흰색 금이 가더니 박살 나 버렸다.

[#. 히든 스토리 퀘스트: 대음양사 세이메이(1/3)를 완료했습니다.]

[‘음양오행을 아는 자’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 획득 조건: 아베 가문의 환술 결계 돌파.

- 보상: 지능 +3

‘나이스.’

타이틀 획득에 잠시 기뻐하고 있자, 그 너머에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아베노 신사의 풍경이 천천히 드러났다.

중심으로 난 돌길을 따라 걷자. 그 끝에는 음양사 차림의 미남자가 부채를 펄럭이며 세현을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동생 나리!”

세현은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손을 흔들었다.

상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놈, 어떻게 우리 가문의 결계를!>

“아, 귀 아프니까 그냥 평범하게 얘기 좀 합시다. 진짜로 당신 누나가 보내서 왔으니까.”

이 의심병 많은 놈이 다시 시비를 걸어오기 전에 재빨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렇게 되서 세이메이를 도와야 한다 이겁니다~”

“으으음…….”

세이메이의 동생, 아베노 요시히라는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귀공의 말을 믿겠소. 저를 누님에게 인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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