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23화 (23/180)

# 23

23화.

세현은 벼락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뭐, 뭐야!”

땅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매망량들의 짓도 아니었다.

세현은 시선은 자연스레 자신이 앉았던 바위로 이동했다.

“어라? 이게 뭐…….”

그 위엔 한문인지 일본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고대어가 적혀 있었다.

세현은 무의식적으로 그 위에 마스터키가 달린 왼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스터키가 빛을 발광하며 바위와 공명하더니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음양사의 봉인’을 발견했습니다!]

쿠구구구구-!

그 직후, 커다란 돌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사이로 지하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차, 찾았다!!”

세현은 기쁨 가득한 외침을 내지르며 지하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 양쪽에서 화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솟아올라 내부를 밝혔다. 그 앞으로 어두운 지하 동굴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아오, 왜 이리 어두워…….”

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앞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일정 간격마다 푸른빛이 치솟으며 가야 할 길을 인도했다.

미로 같은 동굴을 한참을 들어갔을 때, 저 멀리 한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전통 복식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허리까지 긴 흑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절세의 미녀.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세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귀공, 이름을 밝히십시오. 봉인을 뚫고 온 것을 보니 보통의 인간은 아니실 터!”

이에 세현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누군지 물으려면 그쪽 이름부터 알려줘야지.”

“저는 아베노 세이메이, 음양사로서 신을 모시는 자입니다. 이곳에 봉인된 강력한 악귀가 깨어나는 걸 막기 위해 술식을 사용하는 중입니다.”

“나는 허세현, 입주자고 지나가다가 한 번 들어와 봤습니다.”

세현은 간단히 통성명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악귀라니, 무슨 일입니까?”

“……얘기가 길어질 수도 있소만.”

“말해 봐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자 세이메이는 천천히 사연을 읊었다.

요약하자면 음양사의 임무로 이 근방을 정찰하던 중, 깨지기 직전의 불완전한 봉인을 발견했고 이를 급하게 막았다고 한다.

현재는 이 봉인을 막느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모양이었다.

“세현 공, 실례합니다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없으신지?”

“얘기해 봐요. 좋은 일 하는데 서로 돕고 살아야지.”

“제 가문으로 돌아가 아우에게 이 일을 전해 주세요. 본가의 음양사들과 함께 온다면 이 봉인을 충분히 안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세이메이의 말이 끝나는 순간, 눈앞에 메시지 박스 하나가 출력됐다.

[#. 히든 스토리 퀘스트: 대음양사 세이메이(1/3)]

- 대음양사 세이메이를 도와 악귀를 봉인해야 합니다.

내용: 아베 가문에 찾아가 세이메이의 이야기를 전하시오.

보상: <음향오행을 아는 자> 타이틀.

지능 +3

[수락하기]

‘좋아.’

씨익 웃으며 수락하기 버튼을 누르자 박스가 사라지며 세이메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네~!”

세현은 곧장 동굴을 빠져나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원숭이처럼 뛰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이동하면 이매망량들에게 시간을 빼앗길 확률이 크기에 내린 차선책이다.

‘아베노 신사에서 가까운 서쪽 구름다리로 빠져나가면 되겠지.’

곧장 서쪽으로 30여 분을 달리자 숲의 끝자락과 반대편 암석 지대를 잇는 징검다리가 나타났다. 세현은 다리 위를 빠르게 내달려 건넜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얼빵하게 생긴 놈! 거기 잠깐 서 봐!”

걸걸한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렸다.

† † †

“으따, 오늘도 장사는 공치는 건가. 그러게 이럴 시간에 사냥하자니까 머저리들아!”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우리가 사냥해서 이 짓하는 것만큼 벌수 있어? 어! 팩트로만 말해 봐 인마!”

“아 쫌! 그만 좀 싸워라 이 새끼들아, 형님 지금 피곤하다.”

이매망량의 숲 서쪽에 위치한 징검다리 너머 바위 뒤편. 그곳엔 검은 망토에 노란 스마일 가면을 쓴 수상한 남자 4명이 대기 중이었다.

그들 중 덩치가 가장 큰 남자, 이 무리의 리더격인 표강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른 세 명을 다그쳤다.

“왜 이리 찡찡거려, 뭐 니들이 애냐? 백날 사냥하는 것보다 여기서 괜찮은 놈 하나 털어먹으면 그게 훨씬 나은 거 니들도 알잖아?”

“쳇, 뭐 얼마나 대단한 돈 번다고.”

“아 씨발, 말 좆같이 하네. 야, 싫으면 나가! 내가 언제 너더러 억지로 하라고 하디?”

“굳이 나가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들은 모두 20레벨 중후반 대의 입주자들이다.

6층에서 활동하기에는 높은 레벨이지만 이곳에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딱 한 놈만 털자, 그러니까 제발 좀 그만 찡찡대.”

강철 일행은 이 다리를 지나는 입주자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했다.

이 일대는 인적이 드물고 이곳을 드나드는 입주자의 레벨이 10레벨 중후반 수준이다. 간단히 말해 강도질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강철 일행은 스스로를 <의적 스마일단>이라 칭하며 하루에 입주자 2~3명을 털어먹었다.

그러면 하루에 못해도 근 500~10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넷이 나눠도 한 달이면 각자 2~3천만 원이다.

10~20레벨 D~E급 입주자들이 한 달 내내 사냥을 해 봐야 400만 원을 버는 게 고작이며, 거기서 포션값이니 장비 수리비를 빼고 나면 끽해 봐야 200 정도 남길까 말까 한 걸 생각하면 엄청 큰돈이다.

처음엔 단순히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저 레벨 입주자를 꿇려 놓고 협박하면 목숨을 구걸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치 개미를 짓밟는 것 같은, 일방적인 폭력의 쾌감이 있던 것이다.

1시간 정도 더 지날 무렵, 저 멀리 구름다리가 출렁이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철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새끼들아 물고기 왔다. 내가 낚아 올 테니 여기서 대기해.”

“오케이!”

네 명은 언제 싸웠냐는 듯 입을 꾹 닫고 일사불란하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잠시 후, 발소리의 주인공이 강철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저 새끼, 복장이 왜 저래?”

붉은 왕관에 반 가면을 쓴 남자.

묘하게 강철 일행과 비슷한 차림새를 한 입주자였다.

‘에라이, 뭐 복장이 대수냐.’

살짝 찝찝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오늘 첫 장사를 허탕 칠순 없다.

상철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어이 거기 얼빵하게 생긴 놈! 거기 잠깐 서 봐!”

그러자 붉은 왕관은 순순히 자리에 멈춰 강철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뭐야?”

강철은 상대의 몸 상태를 훑어봤다.

그가 입은 갑옷과 손에 들린 검은 스타터 세트였다.

‘하, 이 새끼 개털이네.’

초반 아이템치곤 쓸 만하지만 현재 강철 일행의 레벨 수준에선 별 볼 일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나마 검은 이빨이 다 빠져 당장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상대가 개털일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강철이 쓰게 입맛을 다시던 중, 상대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붉은 반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거? 탐욕의 거미 반지 아니야?’

2층, 메인 던전의 보스 맨티스파이더를 잡으면 아주 낮은 확률로 완제품이 떨어지는 레어 반지.

경험치, 골드 획득량 5% 증가라는 초반 아이템치고도 꽤 쓸 만한 옵션을 가졌다. 적게는 500만,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나가는 고가의 아이템이다.

‘피라미인 줄 알았더니 월척이 낚였네.’

강철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저기 왕관 쓰신 양반, 미안한데 우리가 요즘 사정이 좀 어렵거든?”

다른 세 명이 바위 뒤에서 걸어 나와 붉은 왕관의 주변을 원형으로 감싼 후 무기를 겨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명백한 협박의 의미였다.

“지랄, 니들 사정이랑 나랑 뭔 상관이야. 바쁘니까 꺼져.”

“아 이 친구가 입이 좀 거치네~ 일단 누군지부터 소개할 게.”

“아 그딴 거 안 궁금하다고.”

붉은 왕관은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 일행은 준비한 멘트와 함께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의적!”

“스.마.일.단!”

“이시다!”

마치 전대물 히어로의 등장 신을 보는 듯한 장면이었다.

“뭐래냐, 니들 초딩이냐? 의적 스마일단이 뭐야 쪽팔리게.”

“어쭈, 이 쇄끼가 웃어? 허세 부리기는 씨!”

이에 세현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슬슬 겁을 좀 줘야지.’

강철이 이 짓을 시작한 지 근 두 달째, 허세 부리는 놈들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알량한 능력만 믿고 자기가 슈퍼맨이라도 된 줄 알고 덤벼드는 겁 대가리 없는 놈들.

이런 놈들을 털어먹는 데는 매가 약이다.

다구리를 놔서 피떡을 만들면, 팬티에 넣어 놓은 100원짜리 까지 다 털어서 건네준다.

여태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으라챠!”

강철이 철퇴를 꺼내 바닥에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스파크가 튀며, 그 자리가 움푹 패여 버렸다. 전격 데미지 옵션이 부여된 철퇴의 위력이었다.

“어때, 이 철퇴에 전기 구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가진 걸 다 토해 내는 게 좋을 거다.”

“해 봐, 전기 구이.”

“허세 부리지 말랬지!”

강철이 상대의 말대꾸에 흥분해 철퇴를 휘둘렀다.

그 순간, 붉은 왕관이 뻗은 스타터의 검이 강철의 모닝스타를 받아 냈다.

빠직-! 하는 소리가 나며 검에 금이 가 버렸다.

“어이구 어쩌나! 무기에 금이 가 버렸네?”

무기가 망가졌으니 저항도 불가능할 터,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뭘 어째, 니들이 변상해야지.”

“으응?”

붉은 왕관은 거리를 벌린 채, 몸에 액션 캠코더를 달았다. 영상을 찍어 뭔가를 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뭐 어차피 캠코더 따위 박살 내면 되니까…….’

강철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붉은 왕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커허허헉!”

정신을 차렸을 땐, 둔탁한 뭔가가 턱을 두드려 표강철의 몸뚱이를 공중으로 붕 떠올렸다.

붉은 왕관이 아래로 파고들어 어퍼컷을 뻗은 것이었다.

“야! 이 새끼 까 버려!”

이에 놀란 동료들이 곧장 붉은 왕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가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양옆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스마일단 모두를 뒤로 밀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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