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22화 (22/180)

# 22

22화.

[서브 퀘스트 ‘마사무네의 인정’을 클리어했습니다.]

- 체력 +1

[마사무네에게 아이템 제작을 의뢰할 수 있습니다.]

‘기억보다 쉬운데?’

세현은 싱긋 웃으며 마사무네에게 그동안 모아 온 재료 아이템을 모두 넘겼다.

그걸 본 마사무네의 놀란 듯 대꾸했다.

“이 많은 재료를 어디서 구한 겁니까?”

“뭐 사냥을 좀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재료의 양이 1인이 가지고 있기엔 지나치게 많기에 이런 반응도 무리가 아니었다. 세현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마사무네에게 의뢰비를 건넸다.

그녀는 찝찝한 얼굴로 돈을 받아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럼 7일 후에 대장간으로 찾아오십시오. 제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물건을 만들어 드릴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마사무네 선생!”

† † †

회색 빌딩 숲 사이에 우뚝 솟아난 나선형의 녹색 빌딩.

얼핏 보기엔 IT 대기업 사옥처럼 보이는 이곳은 팔콘 길드의 본부 ‘팔콘네스트’였다.

팔콘네스트 정상의 대회의실.

이곳에는 최은철을 포함한 10인의 임원이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인사팀장 정요셉입니다. 일전에 길드장님께서 지시하신 루키를 찾는 건에 대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신 임원 분들께 감사의…….”

가장 앞쪽에 정장 차림의 덩치 좋은 남자가 PPT로 뭔가를 발표하고 있었다.

“잡설은 됐고,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최은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인사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문서를 넘기며 부랴부랴 설명을 요약했다.

“최근 합격자 중 제일 주목받는 입주자는 백설희입니다. 아시겠지만 전직 펜싱 금메달리스트로 이번에 A급 클래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를 보던 최은철이 콧김을 푹 내쉬며 되물었다. 그 목소리엔 불쾌함이 가득했다.

“인사팀장.”

“네!”

“저랑 장난하세요?”

“뭐, 뭘 말씀입니까?”

“뭘 말씀입니까? 당신, 아주 요즘 편하게 해 주니까 꼭지가 돌았지?”

은철은 테이블에 있던 문서를 앞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세간에 인격자이자 초인으로 알려진 은철의 모습이라 믿기 힘든 성격파탄자의 모습이다.

인사팀장은 몸을 움츠리며 어깨로 그걸 받아 냈다. 저걸 피했다간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본능적으로 나온 리액션이었다.

“A급이면 여기서 보고를 할 게 아니라 붙잡아다 여기 데리고 와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죄, 죄송합니다! 이미 스카우트는 시도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하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최은철이 오른팔로 책상을 내리친 것이었다.

“정요셉 팀장, 내가 그걸 하라고 당신을 고용한 거 아니야?”

“……맞습니다.”

“돈을 처바르든, 뒤를 캐서 협박하든 어떻게든 데려와야죠. 아니면 당신 모가지를 자를까요?”

“죄송합니다! 꼭 데려오겠습니다.”

은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 메인 퀘스트도 어떻게든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

팔콘 길드는 시즌1 메인 퀘스트 <벚꽃공주의 종언>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최초 클리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2 메인 퀘스트 <아라비안나이트>의 경우는 그때와 양상이 달랐다.

메인 퀘스트의 막대한 보상을 알게 된 다른 상위권 길드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몇몇 상위권 길드가 팔콘에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한 상태다.

이미 <서큐버스 군단>, 북한의 단일 길드 <조선노동당>, 미, 중국의 대형 길드 등을 포함한 8개가 넘는 길드가 메인 퀘스트의 최종장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태였다.

여전히 팔콘 길드가 고지에 있는 건 맞지만 이 정도 차이는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

‘기어오르는 놈이 없게, 더 힘을 키워야 돼.’

은철은 앞으로 메인 퀘스트는 몽땅 독점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인재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 백설희 같은 A급 클래스는 1순위 영입 대상이었다.

“다른 보고는? 백설희 말고는 쓸 만한 인물은 없었나요?”

“그 외에 A급 이상 클래스가 나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다른 특이 사항이 있다면…….”

인사 팀장은 은철의 심기를 거스를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PPT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유튜브에 이런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이한 인재라 생각돼서 보고 드립니다.”

PPT에서 재생된 영상에는 붉은 왕관과 가면을 쓴 기괴한 차림의 사람 하나가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브레이브킹’이라 부르며 현재 9레벨이라 밝혔다.

이에 은철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인사팀장, 이런 광대놀이를 볼 만큼 내가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정요셉은 화들짝 놀라 영상을 앞으로 빨리 돌렸다. 그러자 붉은 왕관이 두 마리의 소환수와 함께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곧장 재생됐다.

소환수와 붉은 왕관의 연계 플레이는 대단한 경지의 전투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은철은 그제야 관심이 동했는지 조용히 화면을 쳐다봤다.

“오호, 저게 9레벨짜리가 부리는 소환수라고?”

“네, 뭐 사실 확인은 안 되지만 말입니다.”

“사실 확인도 안 된 인물을 저한테 보여 주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정요셉은 몸을 바짝 움츠렸다.

‘뭐 그렇다 쳐도 꽤 쓸 만해 보이는데…….’

은철은 혀를 날름대며 영상을 다시 한 번 돌려봤다.

“뭐 됐으니까 잘 알아봐요. 이 영상을 만든 제작자가 누군지도 캐 보고.”

“예, 옙!”

은철이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임원들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정요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작게 울먹이며 읊조렸다.

“흐으읍……. 씨발 새끼, 지가 길드장이면 다야. 나이도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새끼가. 흐으으읍…….”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 †

<승강의 방>.

수 백, 수천 대의 엘리베이터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입주자들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방. 세현은 승강의 방 근처 휴게실에 앉아 자판기 음료를 쭉쭉 들이켰다.

‘앞으로 7일 동안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세현은 전 재산과 재료를 털어 마사무네에게 장비 제작을 맡긴 상태였다. 장비가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8~10층 구간으로 올라가 레벨링을 할 생각이었다.

이후엔 ‘백염의 오로치’의 클리어 준비를 차근차근 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아이템 제작 완료까지 필요한 시간 7일,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고민이었다.

‘사람 없고, 보상 좋은 그런 퀘스트 없나…….’

한창 골똘히 생각하던 중, 세현은 손에 들린 커피 잔을 봤다. 브랜드 커피 ‘별유령’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유령이 세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세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났다.

“있다, 백귀야행!”

<백귀야행>.

이는 히든 퀘스트 <대음양사 세이메이>의 마지막 연계 퀘스트의 이름이었다.

음양사 ‘아베’ 가문의 임무를 도와 ‘퇴마사’ 타이틀을 얻고, 이를 시작으로 백귀야행의 요괴들을 퇴치하는 것이 퀘스트의 흐름이다.

타이틀도 여러 얻을 수 있고, 보상으로 액세서리와 특수 용병을 얻을 수 있는 알짜배기 퀘스트다.

단, 한 사람만 클리어할 수 있는 히든 스토리 퀘스트기에 발생 조건이 아주 까다롭다.

당시 이 퀘스트를 클리어한 입주자는 C급 클래스임에도 이 퀘스트의 보상을 통해 대형 길드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아 옛날 생각난다. 그때 나도 히든 퀘스트 찾아본다고 진~짜 뺑이 쳤지.”

F급이던 시절, 인생 역전을 노리며 히든 퀘스트를 찾겠다고 한 달이나 시간을 낭비했던 때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어졌다.

‘그건 그렇고, 백귀야행이 어떻게 진행되는 퀘스트였더라?’

세현은 당시 백귀야행을 클리어한 인물의 인터뷰를 읽어 봤기에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7일 안에 클리어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투자라고 생각하자고.’

세현은 곧장 6층으로 향했다.

Level 8. 음양사 세이메이

수십 미터 크기의 활엽수가 우거진, 빛이 잘 들지 않는 깊은 숲속.

이곳엔 뼈다귀, 녹슨 화살과 검, 이끼가 낀 갑옷 등이 제멋대로 뒹굴어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추측하게 했다.

붉은 왕관과 가면을 쓴 허세현이 이 숲속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아씨! 대체 어디 있는 건데?”

이곳은 <이매망량의 숲>.

세현은 음양사 세이메이를 찾기 위해 숲을 3시간이나 헤매고 있었다.

“쿠룩!”

숲의 그림자 속, 진흙과 뼈다귀로 빚어진 존재들이 신음 소리를 뿜으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구더기가 들끓는 썩어빠진 시체에 낡은 갑옷을 입은 망자들.

이들의 이름은 <이매망량>, 이 숲에서 죽은 자들이 원한을 품고 되살아난 악귀다.

“한가롭게 니들이랑 놀 시간이 없다!”

세현과 두 폰이 동시에 움직이며 놈들과 맞부딪혔다.

블랙 폰이 선봉에 서서 중앙을 돌파했다. 놈들의 진형을 붕괴함과 동시에 어그로가 끌렸고, 그 사이 화이트 폰이 활로 후방 지원을 했다.

세현은 화이트 폰 옆에 붙어 달려드는 놈들을 떨쳐 냈다.

창을 찌르고, 화살을 갈길 때마다 이매망량의 썩은 몸뚱이가 흙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바탕 전투를 치른 후.

“아아, 힘들어 죽겠네. 분~명 이 근처에 입구가 있었는데.”

세현은 지친 얼굴로 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마셨다.

세 시간이나 어두운 숲을 헤매며 이매망량들을 상대했으니 지치는 게 당연했다.

‘젠장. 어설프게 기억나는 게 오히려 독이네, 독이야.’

세현은 <대음양사 세이메이> 퀘스트가 이매망량의 숲에서 숨겨진 입구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만 기억했다.

문제는 그 숨겨진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는다는 거였다.

여기까지 오는 데 사용한 시간과 숲을 헤맨 시간을 합치면 도합 4시간, 그런데 아직 퀘스트는 시작도 못 했으니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매망량이 주는 경험치와 아이템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사냥을 해서 얻는 득이 있다면 이곳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숨겨진 입구를 찾는 게 낫지만, 이매망량은 그러기엔 효율이 너무 낮다.

‘딱 한 시간만 더 뒤져보고 각 안 나오면 발 빼자.’

그때, 전신이 격렬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