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20화 (20/180)

# 20

20화.

일정 시간 내에 던전 공략에 실패하면 전 세계로 괴물의 씨앗을 날려 보내는 인류의 대재앙 아파트.

아파트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영화, 드라마의 콘텐츠 제작자들이었다.

아파트 안에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매일매일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CG를 사용해 화려한 전투를 연출하던 히어로 영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거의 사멸해 버렸다.

현재의 영화는 아파트 내부의 전투로, 영화배우는 초인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입주자들로 대체된 것이었다.

입주자들의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시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영상 편집 시장.

말 그대로 입주자들이 촬영한 영상을 보기 좋게 재편집하는 일이었다.

“에이, 영상이 뭐 다 그게 그거지. 안 그래?”

처음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전문 영상 편집자가 붙은, 잘 빠진 영상들이 보이는 성과는 남달랐다.

적게는 몇 배, 크게는 몇십 배의 금전적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데이터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자 입주자들은 너도나도 실력 있는 영상 편집자를 고용했다. 대형 길드들은 앞 다투어 전문 인력들을 쓸어 갔고, 이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물론 그런 몸값 높은 영상 편집자는 아주 극소수의 이야기였다.

“이힛, 메일 확인 좀 해 볼까나~.”

빈 콜라 캔이 수십 개나 쌓인 책상.

작은 체구의 여자가 의자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프링x스 감자 칩을 우걱우걱 먹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녀의 이름은 신지영.

햇빛을 받지 않은 창백한 피부, 동글동글한 얼굴과 잠자리 안경, 토끼가 그려진 티셔츠에 헐렁한 반바지까지.

마치 토끼 같은, 아담한 느낌을 가진 여성이었다.

지금은 입주자 영상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지영은, 얼마 전까지 교육 관련 회사에서 아동용 영상을 만들었다.

‘으……. 씨, 이젠 애들 춤추는 것만 봐도 멀미가 난다! 토가 나올 지경이라고!’

자신의 영상 편집 스킬을 맘껏 펼칠 수 없는 아동 영상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회사를 과감히 때려치웠다.

평소 액션 영화에 관심이 많았기에, 입주자들의 전투 영상을 편집하면 잘 맞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회사 밖의 세상은 그녀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우씨! 오늘도 무슨 이런 영상들만 와아~ 이 인간들 돈이 남아도나? 이 따위 영상에 돈 쓰느니 피규어나 하나 더 사라고!”

그녀에게 오는 영상 대다수가 감동도 재미도 없는 뻔한, 고만고만한 전투 영상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으~ 그냥 적당히 하나 잡아서 해야 되나.”

근 20통의 메일을 확인하던 지영은 심드렁한 얼굴로 마지막 한 통에 첨부된 영상을 클릭했다.

제목은 [레벨9 / 브레이브킹 / 시체나무 던전 솔플]이라는 심플한 문장이었다.

“어이구 허세는? 9렙이 무슨 시체나무 던전 솔플이야. 하여간 사카린이 뜨면서 애들 다 망쳐 놨다니까. 개나 소나 다 영상을 찍어 올려요!”

지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음소리를 흘렸다.

시체나무 던전의 난이도는 2층 메인 던전에 필적했고 보통 10레벨 전후의 유저 5~10인이 클리어하는 게 보통이다.

그걸 고작 10레벨짜리가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한다?

이는 채 10명도 되지 않는 S급 능력자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영은 프링X스 감자 칩을 입에 우겨넣으며 조금의 기대도 없이 영상을 클릭했다.

<흠흠! 짐은 브레이브킹이라고 한다. 현재 레벨은 8. 내가 있는 곳은 3층 썩은 숲 안쪽에 위치한 시체나무 던전 입구다!>

붉은 왕관에 콧수염이 달린 마스크를 착용한 입주자, 그는 스스로의 닉네임을 <브레이브킹>이라 밝혔다.

그의 양 옆에는 흑색과 백색의 사람 둘이 서 있으며 그들이 자신의 소환수라 밝혔다.

“으으~ 이거 완전 컨셉충이네 컨셉충. 지가 다스베이더냐? 아주 클론 부대를 끌고 다니네.”

지영은 비아냥 가득한 말과 함께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스크린 너머 펼쳐지는 전투에 그녀의 토끼 같은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뭐, 뭐야, 이게 소환수라고?”

브레이브킹의 두 소환수는 수도 없이 밀려오는 해골과 좀비들을 무참히 으깨 놓았다.

세 사람의 연계가 마치 합을 잘 맞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지영은 입을 벌린 채 서서히 영상에 빠져들었다.

특히 보스 룸의 좀비 스켈레톤과 전투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큐버스퀸 사카린의 전투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어… 이게 10레벨도 안 된 입주자의 전투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된 이후, 처음으로 지영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망설임 없이 [답장] 버튼을 눌러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꺄아~ 브레이브킹 님 보내 주신 영상 잘 봤어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해서 보여 드릴게요. 입금 계좌는 동협 35X-XXX-XXXX로 30만 원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답장을 보낸 후, 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해 콜라 2L 페트병 하나와 프링X스 감자 칩 두 캔을 책상으로 가져왔다.

그러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기지개를 크게 켰다.

“좋아, 내 편집 능력을 100%, 아니 150% 발휘해야지!”

지영은 거장이 돼 있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빠르게 움직였다.

Level 7. 대장장이 마사무네

아파트의 3층의 어두운 밤, 일본풍 성의 넓은 내부를 수많은 횃불이 비추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허세현은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대치 중이었다.

일본풍 장수 갑옷을 입고 창을 휘둘러 대는 동양풍의 좀비 병사들 <우완>.

놈들은 빠른 체력 재생력과 민첩한 움직임으로 동 레벨 몬스터들에 비해 상대가 까다로운 편이었다.

쉽게 말해 레벨링 효율이 떨어지는 몬스터로, 보통의 입주자라면 놈들을 사냥감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세현에게는 그런 제약 따윈 별 의미가 없었다.

“나랑 블랙 폰이 앞으로, 화이트 폰이 후방에서 지원한다.”

세현이 두 마리 폰에게 왕의 명령을 내렸다.

우완들은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지만 세현과 두 소환수를 맞추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콰드득-!

놈들에게 빈틈이 생기면 두 소환수가 이를 치고 들어가 몸을 인정사정없이 찢어 버렸다.

그렇게 10분여가 지날 무렵, 바닥에는 우완의 시체와 아이템만이 남아 있었다.

[반복 퀘스트: 고성의 악령들 ? 우완 퇴치(200/200)를 완료했습니다.]

들려오는 메시지에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퀘스트 스크롤을 양팔로 북북 찢어 버렸다. 그러자 경험치와 골드가 상승하며 다시 하나의 메시지가 추가로 들려왔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13(으)로 올랐습니다.]

‘벌써 13렙이라, 미쳤네 미쳤어.’

튜토리얼 구간을 벗어난 지 꼭 2주가 되는 시점, 세현은 너무 쉽게 13레벨을 달성했다.

입주자들이 10레벨을 달성하는 데 평균적으로 2개월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다.

과거의 세현이라면 이런 그림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터. 충만감이 온몸에 가득해졌다.

“후우……. 잠깐만 쉬자.”

쉴 새 없이 달렸던 세현이 소환수들을 순찰 모드로 돌린 뒤, 잠시 숨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 속도면 시즌2 메인 퀘스트 클리어 전에 20층에 도착할 수도 있겠는데?”

<메인 퀘스트>.

이것은 아파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게임에서 NPC에게 퀘스트를 받을 수 있듯, 아파트 내부에선 거주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퀘스트를 의뢰받을 수 있다.

그중 메인 퀘스트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이를 최초로 클리어한 길드에게 압도적인 보상과 명예를 약속해 준다.

전용 타이틀, 그리고 희귀한 아이템과 재료.

해당 시즌의 거주자들은 최초 클리어 입주자들을 영웅 취급하며 여러 가지 추가 혜택을 준다.

이렇듯 최초 클리어에는 막대한 보상이 걸려 있기에 상위권 길드들은 메인 퀘스트에 항상 목숨을 걸고 있다.

메인 퀘스트에 관한 희귀 정보는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기도 하며 이를 전문으로 하는 입주자들이 있을 정도다.

“뭐, 시즌2 클리어는 솔직히 말도 안 되고, 팔콘에 고춧가루라도 뿌릴 수 있으면 대박인데.”

세현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팔콘 길드와 최은철에게 빅엿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SSS 클래스라 해도, 현재 20층에 도달했으며 수백 명에 달하는 길드 전체를 상대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팔콘이 아니라 다른 길드가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만드는 게 제일 현실적이야.’

아직 힘은 부족하지만 세현에겐 아파트의 50층까지의 대략적인 공략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팔콘 길드가 아닌 다른 길드가 시즌2를 먼저 클리어하게 해 엿을 먹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면 팔콘 길드의 성장은 더뎌질 것이고 세현의 복수 또한 쉬워질 터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일단 최대한 빨리 시즌1을 뚫는 게 우선이다.’

세현이 있는 곳은 일본을 모티브로 제작된 3~10층의 시즌1 구간. 이곳에선 메인 퀘스트인 <벚꽃공주의 종언>이 진행된다.

요괴왕 오로치에게 벚꽃 왕국이 멸망할 거라는 신탁을 받은 벚꽃공주. 그녀를 도와 삼신기를 모으고 오로치를 제거해 왕국의 멸망을 막는다는 스토리 흐름을 가졌다.

시즌1의 최종 보스인 오로치는 상대방의 마나를 순식간에 증발시키는 ‘백염’이라 불리는 화염을 내뱉는다.

이 백염에 노출되는 순간, 마나 포션을 들이켜지 않으면 스킬을 사용이 불가능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하다.

이런 무지막지한 놈을 두 번의 시도 만에 쓰러뜨린 것은 최은철의 팔콘 길드였다.

오로치가 쓰러진 후, 벚꽃국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팔콘 길드는 거주자들에게 영웅으로, 입주자들 사이에선 명실상부 1위 길드로 거듭났다.

다른 길드들은 난이도가 하향된 시즌1 퀘스트를 울며 겨자 먹기로 클리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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