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9화 (19/180)

# 19

19화.

Level 6. 영상 촬영

녹음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 세현은 팔자 좋게 돗자리를 깔고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제목은 [서큐버스 군단 / 10층 ‘오로치 3인 레이드].

1년 6개월 전에 업데이트된, 조회 수 1억 뷰를 넘은 영상이었다.

<할로~ ‘서큐버스 군단’시청자들, <서큐버스 퀸> 사카린이야!>

<안뇽! 메디아에요. 오늘도 사카린 언니와 함께 멋진 방송 보여드릴게요! 언니, 오늘은 어떤 걸 준비했나요?>

<10층 메인 던전의 보스, ‘백염의 오로치’를 너랑 나랑 둘이서 사냥할 거야.>

<히익~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니까 찍었지, 그냥 찍겠어!>

화면 너머에는 누가 봐도 미녀인 두 여성이 만담을 주고받으며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세현은 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미쳤지 미쳤어, 40레벨 두 명으로 클론 오로치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닉네임 <서큐버스 퀸>, 본명 사카린.

그녀는 상위권 랭커 중 하나로,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그녀의 길드 <서큐버스 군단>은 언제나 10인 내외의 소수였지만, 언제나 상위권 길드에 뒤지지 않는 위용을 자랑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세 번째 메인 퀘스트 <원더랜드>에서의 활약.

그녀들은 아파트 최초로 25층의 유니크 보스 ‘자바워키’를 겨우 90레벨의 입주자 10인으로 클리어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15층 이후, 팔콘 길드를 제외한 길드가 최초로 메인 던전을 클리어한 기록이자, 최소 인원으로 유니크 보스를 잡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서큐버스 군단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녀들의 전투 영상은 여러 입주자에게 영향을 줬는데, F급 시절 세현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까놓고 말해 허세현의 사카린의 광팬이자, 그녀를 롤 모델로 삼고 있었다.

비록 회귀 전에 예상치 못한 그녀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게 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지나간 과거일 뿐. 오히려 행방불명되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카린의 방송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사카린 님이야 말로 자수성가의 상징, 흙수저의 희망이지!’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건 그녀가 최은철처럼 든든한 배경이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별다른 자본이나 지원 없이, 순전히 자신의 운과 실력만을 가지고 최정상의 위치에 선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아파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최고의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장비를 맞추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즉,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최고가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카린이 다른 상위권 길드들을 제치고 랭커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던 건, 그녀의 천재적인 사업가 기질도 한몫을 했다.

‘서큐버스 군단’은 그동안 입주자들에게 없었던 혁신적인 수익모델을 제시했다.

‘사카린님이 아니면 누가 그런 미친 생각을 했겠어.’

사카린은 자신과 길드의 전투 영상을 찍은 후, 전문 영상 편집자들의 손을 거쳐 유튜브 채널에 이를 꾸준히 업데이트했다.

아파트에서 영상을 찍는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 그녀들은 새로운 콘텐츠의 시대를 알린 개척자였다.

게다가 전문 편집자를 고용한 탓에 영상 퀄리티도 압도적이고,

길드 멤버들 하나하나의 미모가 출중했기에 서큐버스 군단은 금방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영상을 올릴 때 마다 적게는 수천만, 많게는 수억의 조회수가 나왔고 뷰티, 헬스, 패션, 광고업계 등 대기업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랭킹 1위 길드는 팔콘 길드지만 길드원 1인당 평균 소득은 서큐버스 군단이 더 높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나도 이렇게, 아니 이걸 뛰어 넘는다!’

세현은 사카린의 전투 영상을 보며 계속해서 탄식을 터뜨렸다.

쉴 새 없이 백염을 내뿜는 오로치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며 데미지를 입히는 사카린의 움직임.

그건 예술이라고밖에 달리 표현이 불가능했다.

한 번의 실패가 죽음으로 직결되는 위험한 상황, 두 사람의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이 영상은 이 전까지 그녀들의 인기를 ‘얼굴빨’이라느니 ‘거품’이라느니 비하하던 놈들의 입을 단번에 막아 버렸다.

영상이 끝난 후, 세현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품속에 넣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도 이렇게 쩌는 영상을 만들어야지.”

세현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SSS급 클래스, ‘브레이브킹’의 특성 때문이었다.

앞으로 소환수가 15마리까지 늘어난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15배가 들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

이는 단순히 사냥을 넘어 추가로 수익원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장비를 맞출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폰 두 마리에게 장비를 맞춰 주는 것만으로 통장이 텅텅 빈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저레벨 아이템을 쓰기에 어떻게든 커버가 되지만, 레벨이 오르고 소환수가 늘어나면 자금난이 찾아올게 뻔했다.

때문에 세현은 하루라도 빨리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들을 찾아야 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마스터키가 알림을 전해 왔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9(으)로 올랐습니다.>

<소환수가 획득한 골드와 아이템을 회수했습니다.>

‘이런 건 참 편하네.’

세현은 누워 쉬는 사이, 6레벨에 획득한 <순찰> 명령을 소환수들에게 내려놓은 상태였다.

명령을 받은 폰들은 알아서 주변을 순찰하며 몬스터들을 상대했고 아이템과 골드를 회수했다. 마치 모바일 게임의 오토 모드와 비슷한 기능의 명령이었다.

물론 허세현이 직접 명령을 내리며 컨트롤하는 것에 비해 사냥 속도가 30% 수준이었지만, 이렇게 휴식을 취할 때는 이 순찰 명령은 꽤나 유용하게 쓰였다.

“슬슬 본 게임을 시작해 볼까.”

이렇게 9레벨을 달성한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돗자리를 곱게 접었다.

마스터키를 조작하자 물건 몇 개가 앞에 소환됐다.

액션 캠코더와 붉은색 왕관, 그리고 얼굴의 윗부분을 가린 반 가면이었다.

세현은 붉은 왕관과 마스크를 장착한 후, 고성능 액션 캠코더를 소환수와 자신의 몸에 각각 설치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중! 마이 네임 이스 브레이브킹!”

말을 뱉자 마스크에 설치된 음성 변조기가 목소리를 굵고 음산하게 변조시켰다. 마치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시키는 음성이었다.

세팅을 끝낸 후, 세현은 스무 걸음쯤 앞에 위치한 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100m 정도 높이에 해골이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핏빛 나무.

그 나무뿌리 아래로 허리를 숙여 기어들어 갔다.

“으짜짜~!”

그러자 안쪽에 이끼가 잔뜩 낀 낡은 철제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현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흠흠! 짐은 <브레이브킹>이라고 한다. 현재 레벨은 8. 내가 있는 곳은 3층 <썩은 숲> 안쪽에 위치한 시체나무 던전 입구다! 이곳을 공략하는 걸 지금부터 보여 주겠다.”

세현은 마치 왕이라도 된 듯 거만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소환수를 거느리는 ‘브레이브킹’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잡겠다고 나름 고심해서 만든 말투였다.

첫 촬영 장소는 <시체나무 던전>.

2층의 서쪽 끝에 위치한, 썩은 숲 지역에 랜덤한 확률로 생성되는 던전이다.

메인 던전만은 못하지만 튜토리얼 구간 던전치고 난이도가 아주 높은 편이다.

그만큼 보상도 많고 경험치도 빵빵하기에 간혹 메인 던전 입장권이 없는 입주자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문제는 던전 입구의 생성 위치가 100% 랜덤이고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것,

발견이 워낙 어려워 입주자들 사이엔 ‘시체나무 던전’의 입구를 찾는 건 미니 복권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다.

썩은 숲에서 고목나무 좀비를 잡고 있던 세현이 던전 입구를 발견했을 땐, 기쁜 마음에 막춤을 췄을 정도였다.

‘모처럼이니 영상이 잘 뽑혀야 할 텐데.’

세현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던전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나무뿌리 동굴 속, 해골로 겹겹이 쌓아올려져 만들어진 벽면과 바닥이 세현을 맞이했다.

벽면에 걸린 해골의 눈동자에는 푸른 불길이 치솟아 등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좋아, 분위기부터 먹고 들어간다! 영상 잘 뽑히겠어.’

세현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은 상태로 소환수들을 앞세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갔다.

타르르륵-!

한 10m쯤 전진했을까, 바닥에 깔려 있던 뼈 무더기가 허공으로 솟더니 스켈레톤 전사들로 변했다.

“그르윽! 그르으윽!”

놈들은 잔뜩 흥분한 듯 울음소리를 뱉으며 세현을 노려봤다.

“시끄럽다 요놈들아.”

빡-!

세현은 바닥에 널린 뼈다귀 힘차게 던져 가장 앞쪽 스켈레톤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놈은 약이 바짝 올랐는지 뼈칼을 휘두르며 곧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이쿠!”

세현은 허리를 숙여 철퇴를 능숙하게 피해 냄과 동시에 오른발로 놈의 무릎을 걷어찼다.

스켈레톤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고 그 위로 블랙 폰이 창을 내리찍어 갈비뼈를 사정없이 으깼다.

합이 잘 맞춰진 곡예를 보는 듯한 매끄러운 전투였다.

‘좋아, 이런 그림만 잘 연출하면 조회수 1~2만은 우습게 나오겠어.’

가면 안쪽, 세현의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영상 편집은 누구한테 맡겨야 되려나?’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영상은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편집 하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당연히 그렇듯 실력 있는 영상 편집자는 비싸다. 현재 통장 잔고에 여유가 없기에 적당한 몸값의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인물…….

‘아! 생각났다.’

세현은 기억 속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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