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6화 (16/180)

# 16

16화.

“회피.”

세현이 간단히 신호하자 블랙 폰이 몸을 틀어 피했다. 그러자 새끼들의 피가 닿은 바닥이 녹아내리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맨티스파이더의 피에는 마비 독과 강한 산이 뒤섞여 있다.

새끼들과의 전투 중, 자칫 잘못해서 피를 뒤집어썼다간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을 뿐 아니라 온몸이 굳어진다.

그러면 산 채로 거미들에게 씹어 먹히는 끔찍한 경험을 할 수 있기에 공략에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했다.

‘일단 새끼들부터 빠르게 정리한다.’

세현은 블랙 폰과 함께 새끼들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새끼들과 맨티스파이더가 공중에서 거미줄을 쏟아 붓는 양방향 공격.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저 공격은 여태 많은 초보 입주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이미 놈의 공격 패턴 따윈 눈 감아도 알 수 있는 세현이기에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새끼들을 모두 정리할 때쯤, 어미 맨티스파이더가 중앙 돌기둥 위의 구체 모양의 거미집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는 맨티스파이더를 공략할 때 필수로 거쳐야 하는 패턴이다.

‘저것 때문에 예전엔 정말 피똥 쌌지.’

튼튼한 거미집 속에 숨은 후, 알을 낳아 새끼들만을 계속 토해 내는 공격.

저걸 파훼하지 못하면 놈은 절대로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저 패턴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세현은 마스터키를 조작해 화이트 폰에게 아이템 하나를 장착시켰다.

‘이게 특제 에프킬라가 될 거다.’

그러자 흰색 폰은 화살이라고 하기엔 창에 가까운 거대한 화살을 꺼내 들었다.

이 물건의 이름은 <나선형 화살>. 관통력이 뛰어나 거대 보스를 상대할 때 유용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화살 한 발에 50만 원을 호가하기에 초보 입주자가 감히 쓸 수 있을 법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현이 가져온 나선형 화살은 특별한 부가 옵션을 추가한 ‘특제 화살’이었다.

촤아아아악-!

나선형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빠르게 날았다.

그러곤 단단히 지어진 거미집의 외벽을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거미집을 파괴하기엔 역부족이었는지 3분의 1 정도를 뚫고 들어가는데 그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마.’

그 순간, 나선형 화살이 기름처럼 흐물흐물 녹더니 불길이 화악 치솟았다.

맨티스코어의 집은 기본적으로 화염 저항이 있기에 쉽게 불에 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외벽의 이야기일 뿐, 안쪽에서부터 일어난 화염까지 완벽히 막을 순 없었다.

관통력이 강한 나선형 화살이 거미집을 강제로 비집고 들어가 안에 불을 질러 버린 것이었다.

“끼에에에엑!”

당황한 맨티스파이더가 집 밖으로 뛰쳐나와 거미줄을 타고 달렸다.

불길이 빠르게 퍼지자 놈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다.

놈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돌기둥 위에서 위태롭게 섰다.

화이트 폰이 화살 몇 발을 날리자 놈은 기둥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과감히 뛰어내렸다.

쿵-!

거대한 몸뚱이가 추락하자 방 전체가 울리며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놈이 중심을 잃고 비틀대는 사이, 세현과 블랙 폰은 그 틈을 치고 들어갔다.

세현이 좌측, 블랙 폰이 우측에서 제각기 파고들어 놈의 관절 부위에 무기를 찔러 넣었다.

“끼에에에엑!”

다리가 잘리자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사마귀 형태의 상체를 숙여 양팔의 낫을 휘둘렀다.

후웅- 후우웅-!

거대한 칼날이 공중을 가를 때마다 등골을 서늘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는 세현에게 닿지 않았다.

오히려 빈틈을 계속 노출해 블랙 폰과 화이트 폰의 공격을 허용했고, 놈의 HP는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을 드러냈다.

잠시 후,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보스 ‘맨티스파이더’를 쓰러뜨렸습니다!!>

아나운서의 음성이 보스 룸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Level 5. 천재지변

그 즉시 레벨업을 알리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6(으)로 올랐습니다.]

[왕의 명령- ‘순찰’이 추가됐습니다.]

[타이틀 ‘거미 포식자’을 획득했습니다.]

타이틀 획득 조건: 아파트 입주 후 일주일 이내, 거미 지옥 보스를 솔로 플레이로 처치.

보상: 올스탯+3

‘어라, 이런 타이틀이 있었나?’

세현은 듣도 보도 못한 타이틀을 획득한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미 사냥꾼>. 시험에 합격 후, 한 달 이내로 맨티스파이더를 솔로 플레이로 잡아내게 되면 얻을 수 있는 타이틀.

모든 스탯을 1씩이나 올려 주기에 입주자들은 이 타이틀을 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문제는 2층 메인 던전의 난이도가 한 달도 안 된 입주자가 솔플이 가능할 정도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B급 클래스 입주자가 길드의 지원을 받아야 가능한 타이틀이었다.

세현이 겪었던 전생에서도 <거미 사냥꾼> 타이틀은 획득한 사람이 500명이 안 넘을 정도로 희귀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2층 메인 던전을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클리어했고, ‘거미 포식자’라는 처음 보는 타이틀을 얻었다.

‘일주일 클리어라. 이런 미친 조건이 붙었으니 여태 획득한 놈이 없지.’

‘거미 포식자’ 타이틀은 그 획득 난이도에 걸맞은 성능을 자랑했다.

올스탯 +3, 간단히 말해 레벨 3에 해당하는 스탯을 순식간에 올려 줬다.

미쳤다라는 말밖에 달리 할 수 없었다.

이런 수준의 타이틀이 있다는 건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실제로 획득한 건 처음이었다.

세현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시체가 녹기 전에 재료나 파밍하자.’

먼저 생명력 물약을 담았던 빈 플라스크를 꺼냈다. 그러곤 놈의 관절에 칼을 쑤셔 상처를 낸 후, 위에 플라스크를 가져다 댔다.

녹색 피가 쏟아지며 안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플라스크 하나를 다 채울 때쯤, 시체가 녹으며 바닥에 아이템과 골드를 남겼다.

“이 정도면 한동안 충분히 쓰겠지.”

맨티스파이더의 피는 마비독과 산성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무기에 발라 사용하면 적을 공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위층에 가면 몬스터들의 면역력이 올라가 통하지 않지만, 10층 이하에서는 이것만큼 유용한 게 또 없었다.

실제로 마켓에선 맨티스파이더의 피가 한 병에 150만 원 내외에 시세가 형설될 정도였다.

세현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플라스크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며칠 밤을 새우다 시피하며 달린 2F 메인 던전 공략.

그 결과가 예상보다 좋았기에 피로가 가득해도 기분은 날아갈 듯 좋았다.

‘시체에선 뭐 좀 더 안 나오나?’

시체가 완전히 녹은 후, 그 자리에 아이템 몇 개와 골드 파편들이 드랍됐다.

그걸 뒤지던 도중, 붉은색 반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와씨!”

순간 놀란 탓에 세현은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지금 나와 주다니!’

조심스레 반지를 주워 들자 위로 작은 네모 박스가 출력됐다.

[#. 악세서리 / 탐욕의 거미 반지]

- 탐욕스러운 거미, 맨티스파이더의 탐욕이 결정화된 반지.

희귀도: 레어(D)

방어력: 1티어 / F

착용 레벨: 13

▶ 추가 옵션

- 욕망의 거미줄 (패시브 스킬): 획득하는 골드와 경험치가 5% 증가합니다.

몬스터를 잡았을 때 드랍 되는 것의 99% 이상은 재료 아이템이다. 이걸 모아 제련이나 합성 등으로 완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완제품 반지가 떨어졌다. 그것도 레어 등급의 렙제 13짜리 반지가 말이다.

당장 사용할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 이건 복권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세현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쾅댔다.

‘경험치 뻥튀기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안 그래도 세현은 미친 듯 레벨링을 해야 되는 입장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것만큼 반가운 아이템은 또 없었다.

<탐욕의 거미 반지>는 원래 맨티스파이더를 최초로 잡은 파티에게 100% 확률로 드랍된다.

하지만 클론 던전에서 드랍될 확률은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낮다.

돈 주고 구한다면 못해도 500~1000만 원은 지불해야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다.

‘아파트를 만든 놈들이 내가 전부 씹어 먹는 걸 보고 싶은 모양이야.’

세현은 탐욕의 거미 반지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 † †

2층 메인 던전의 제단 앞.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굴에 흉터가 나 있는, 척 보기에도 건달 같은 느낌의 남자가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 이 씨부럴 새낀 언제쯤 나오는 거야!!”

그의 이름은 마상철.

최근 블루울프 길드에 3군 길드원 자격으로 들어간 그는, 피 같은 돈 4300만 원을 갈취한 철천지원수 허세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철의 교육 담당이자 블루울프 3군의 대장인 헨리슨.

그가 허세현을 지정한 위치까지 어떻게든 데려오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반박했지만…….

“오오~ 미스터 상철, 그건 알아서 해야지. 당신 사채업 했다고 하지 않았나? 당연히 그 정도 수완은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라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상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양키 새끼들 싸가지는……. 내가 자리만 잡으면 그 새끼도 언젠간 족쳐 주마.’

그렇게 투덜거리던 중, 여신의 제단 앞에 허세현이 나타났다. 마상철은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좋아, 이런 일 원투 데이 해 본 것도 아니고 까짓 거 가 보자, 씨바.”

상철은 혀를 날름대며 던전을 빠져나가던 허세현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 3m쯤까지 거리를 좁혔을 때, 세현이 몸을 휙 틈과 동시에 신경질적으로 검을 내밀었다.

“아 왜 또! 아저씨 나한테 볼일 있어?”

“워워, 진정해 진정해. 이번엔 시비 털려는 게 아니니까 그 칼 내려놓고 얘기하자고.”

마상철이 양팔과 고개를 격하게 좌우로 젓자, 세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검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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