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화.
“공방에서 만든 수제 생명력 포션 싸게 팝니다! 묶음으로 사면 더 싸요! 대량 구매시 할인 혜택 있습니다!”
“30레벨 대 탱커 아이템 급처합니다! 시세보다 30% 싸게 모십니다!”
아파트 외곽에 위치한 행정구역 <관리사무소>의 내부에 있는 <마켓>. 이곳은 입주자들이 자판을 차린 채 물건을 팔고 있어 흡사 재래시장을 연상시켰다.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에 소정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온라인 마켓>과 달리 물건을 눈으로 직접 보고 살 수 있기에 언제나 입주자들이 붐비는 장소다.
“보자, 사야 될 물건이…….”
세현은 스마트폰에 적어 놓은 메모를 눈으로 훑으며 오프라인 마켓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앞에 포션을 잔뜩 늘어놓은 상자판 앞에서 발을 멈췄다.
“최하급 포션 하나에 얼마입니까?”
“마나 포션은 하나에 100만, 생명력 포션은 하나에 10만입니다.”
세현은 마나 포션의 가격에 짐짓 놀라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 시기는 마나 포션이 한창 비쌀 때였지. 하여간 대형 길드 놈들이 완전 양아치가 따로 없다니까.’
현 시점에선 아파트는 19층까지 공략된 상태.
마나 포션을 구하기가 힘든 데다 대형 길드들이 사재기, 담합을 해 가격에 거품이 낀 상태다.
‘별 수 없지.’
하지만 이건 먼 미래의 얘기일 뿐, 세현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포션을 살 수밖에 없다.
“마나 7개, 생명력 60개에 1000 어때요?”
세현은 은근슬쩍 생명력 포션 30개를 얹었다.
쉽게 말해 1300만 원어치 포션을 1000만 원에 달라는 얘기.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흥정의 기본이다.
상대는 세현 같은 상대를 많이 겪어봤다는 듯 살짝 미소 섞인 얼굴로 대꾸했다.
“생명력 포션 20개로 합시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
“40개.”
“30개, 더는 안 돼요.”
“40개.”
“아니 30개 위로는 더는 안 된다고…….”
“40개!”
세현이 녹음기 마냥 40개를 반복해서 외치자, 상인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그렇게 합시다.”
마나 포션 7개, 생명력 포션 40개를 합쳐 1000만 원으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싸게 드렸으니까 다음에도 또 와 주쇼.”
“뭐, 하는 거 봐서요.”
상인이 물건을 건네자 세현은 마스터키를 가져다 댔다.
흰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시약병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포션이 모두 인벤토리에 들어간 것이었다.
‘자 보자, 이제 사야 할 게 텐트랑 식량이랑 무기…….’
세현은 남은 자본금 3300만 원을 이용해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샀다.
여러 보조 마법이 걸린 텐트, 그리고 식량을 구입하는 데 100만 원이 소모됐다. 거기다 폰이 사용할 무기에만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
남은 군자금은 1000만 원가량, 이 돈도 쓸 곳이 있었다.
‘슬슬 입장권도 구해야겠는데.’
세현은 마켓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마켓 구석에 박혀 있는 가판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았다.
푸른빛을 내뿜는 양피지 위에 2F라는 글씨가 새겨진, 흡사 영화 티켓을 연상시키는 종이였다.
세현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질문을 던졌다.
“2층 메인 던전 입장권, 이거 얼마에 파십니까?”
“다섯 장만 주세요, 제한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세현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이거 꽤 싸게 나왔는데?’
각 층의 메인 던전 입장 시 제물로 쓰이는 <입장권>.
해당 층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아주 낮은 확률로 드랍 된다.
메인 던전은 일반 던전보다 보상이 훨씬 크기에 이 입장권의 가격도 꽤 비싼 편이다.
세현이 조사한 바로는 현재 시점에서 2층 메인 던전 입장권은 한 장에 1000만 원 전후로 시세가 형성됐다. 그런데 500만 원이면 귀가 솔깃해질 가격이긴 하다.
하지만 입장권을 살 때는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이거 사용 시한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세현의 질문에 상대는 자신이 없다는 듯 머뭇거리는 얼굴로 대꾸했다.
“쩝……. 3일 정도 남았는데요.”
2층의 메인 던전 입장권은 최초 드랍 후 30일의 사용 시한이 발생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양피지는 빛을 잃고 평범한 종이 쪼가리로 돌아간다.
사용 시한이 줄어들수록 자연스레 가격은 점점 떨어진다.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판매자 입장에선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현은 이를 알고 있기에 다시 운을 띄웠다.
“쩝, 한 5일만 남았어도 샀을 텐데……. 많이 파세요.”
괜히 다른 곳으로 가는 시늉을 하자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럼 400에 드릴게요! 어떻습니까?”
그 순간 세현이 발을 멈췄다. 그러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350.”
“으음.”
“싫음 말고. 어차피 3일 만에 준비하자면 돈 드는 건 비슷한 걸.”
“아, 아흐……. 그렇게 합시다.”
상대는 아쉬운 듯 신음을 흘리며 입장권을 350이라는 헐값에 넘겨 버렸다.
3일이 지나서 입장권이 휴지조각이 되느니, 안전한 350만 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3일이면 촉박하지만 해 볼 만은 하지.’
원래 세현은 기간이 넉넉히 남은 입장권을 구입해, 천천히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2층 메인 던전의 적정 레벨은 10레벨 전후. 그것도 최소 5인 규모 파티는 돼야 안정적으로 클리어가 가능하다.
현재 세현의 레벨은 고작 3.
F급 시절, 10인 파티로 2층 메인 던전을 클리어하고 튜토리얼 구간을 빠져나가는 데 3개월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현은 그 이전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SSS급이면, 이 정도는 돌파해 줘야지.’
† † †
“못생긴 것들아, 잡아 봐!”
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숲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한 무리의 군중이 있었다.
얼핏 보기엔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뒤를 따라오는 것은 사람이 아닌 몬스터들이었다.
오크, 홉고블린, 오크 워리어 등 다 합치면 족히 300마리는 되는 숫자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남자, 세현은 겁에 질리기는커녕 몬스터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르크아아!”
앞쪽에 서 있던 힘 좋아 보이는 오크 몇 놈이 고블린들을 밀쳐 내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놈들이 거대한 양손검을 휘두른 그 순간, 세현이 손가락을 딱 하고 부딪혔다.
콰아악-!
“쿠에엑!”
진득한 파열음과 함께 오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가 오크 네 마리의 몸을 완전히 으깨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허세현의 소환수, 검은 전사 ‘폰’.
폰은 양팔에 붉은색 창 두 자루를 들고 그대로 몬스터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끼에에에엑!”
콰득- 콰드드득!
폰은 마치 살육 기계처럼, 몸을 팽이처럼 돌려 대며 몬스터들을 향해 두 자루의 창을 휘둘렀다.
상대의 숫자가 워낙 많기에 모든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상처가 생길 때마다 두 자루의 창이 빛을 뿜으며 상대의 피를 빨아 폰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입 꼬리를 올렸다.
‘역시 초반엔 흡혈 옵션이 답이지.’
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흡혈의 단창>.
이는 공격을 성공시킬 때마다 상대방의 피를 빨아들여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특성을 가졌다.
파티 전투를 한다면 흡혈보다는 데미지 증가 옵션이 유리하지만, 세현처럼 힐러를 대동할 수 없는 입주자에겐 이만큼 탁월한 무기가 없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1000만 원이나 들인 보람이 있지.’
거금을 들인 만큼 그 효과는 확실했다.
세현은 자신에게 43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적선해 준 마상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전투가 시작 되고 30여분이 지날 무렵, 절벽 앞에는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살아 있지 않았다.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아이템을 파밍했다.
그러던 중, 머릿속으로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들려왔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5(으)로 올랐습니다.]
▶ 지금부터 ‘폰’을 동시에 2인까지 소환할 수 있습니다.
[‘블랙 폰’의 레벨이 5(으)로 올랐습니다.]
세현은 불과 2일이라는 시간 만에 5레벨을 달성했다.
보통의 입주자가 아파트의 규칙을 익히면서 5레벨을 달성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2주 내외.
현재 레벨 업 속도는 치트키를 썼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하지만 세현을 흥분시킨 건 빠른 레벨링보다는 폰을 하나 더 소환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이런 걸 두 마리나 소환할 수 있다고?’
하나만 해도 어지간한 입주자 두셋의 몫은 거뜬해 해 내는 폰을 한 마리 더 소환한다? 생각만 해도 꿈같은 얘기였다.
세현은 기대감에 부풀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폰 소환’으로 ‘화이트 폰’을 소환합니다.]
그러자 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어나며 흰색의 실루엣 가진 여성의 육체를 가진 궁사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목구비는 달려 있지 않았지만, 특유의 실루엣만으로도 탄성이 나오는 아름다운 소환수였다.
‘똑같은 폰이 아닌데?’
세현은 의아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소환수 상태 창]을 불러왔다.
[#. 소환수 / 화이트 폰A]
- 브레이브킹 군단의 근간을 이루는 병사. 원거리 전투에 특화돼 있다.
- 등급: B(에픽)
- 레벨: 1
- HP / MP : 300 / 300
- 힘(23) / 민첩(63) / 지능(51) / 체력(20)
▶ 패시브 스킬
- 프로모션 / 진급 (모든 MP 소모): 폰의 레벨에 따라 다른 클래스로 진급이 가능해집니다. (레벨 30: 나이트 OR 비숍 / 레벨 50: 룩 / 레벨 100: 퀸)
▶ 액티브 스킬
- 전쟁의 효시 (소모 MP 30): 5분간 폰이 발사하는 원거리 공격 투사체의 속도가 2배 상승합니다. 1일 1회의 쿨 타임을 가집니다.
‘오호라, 이건 원거리 딜러라 그거냐?’
추측컨대 화이트 폰은 원거리에, 블랙 폰은 근거리에 적합한 듯 보였다.
실제 스탯 또한 블랙은 힘과 체력이, 화이트는 민첩과 지능이 압도적으로 높게 설정돼 있었다.
‘요컨대 검은 놈은 근거리 딜러나 탱커로, 흰 놈은 원거리 딜러나 서포터로 키우면 된다 그거군.’
세현은 어떻게 전투를 치를지 대강 감을 잡았다.
이후엔 바닥의 아이템을 모두 챙긴 후 근처에 쳐 놓은 텐트로 이동했다.
“후우…….”
이곳에서 캠핑을 하며 몰이사냥을 한 지 2일 하고도 20시간째, 잠이라고는 4시간을 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이대로 눕는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들 자신이 있었다.
‘자는 건 메인 던전을 공략을 끝내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세현은 양손으로 뺨을 탁탁 때리고 구석에 놓인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안에서 에너지 바 두 개를 꺼내 물과 함께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클래스를 받고 불과 3일 후, 세현은 2층 클론 던전의 공략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