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12화.
죽음의 군대는 마수들이 모인 한복판으로 달려 나가 용감히 전투를 벌였다.
<전군 돌진해라!>
잠시 후, 세현의 옆에서 대기 중이던 기마병 둘이 뛰쳐나갔다.
각각 흰색, 검은색 갑옷을 입은 자들로, 창과 철퇴를 휘두르며 돌진하자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마수들의 시체만이 남았다.
<길이 열렸습니다! 폐하!! 지금 가야만 합니다!!>
주변에 서 있던 자들이 일제히 세현을 향해 외쳤다.
‘아씨……. 모르겠다.’
세현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 나가 가장 앞에 있는 마수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뭐, 뭐야!!”
엄청난 폭음과 함께 금빛 섬광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 나갔다.
세현의 시야가 다시 빛으로 물들며 머릿속으로 사념이 흘러들어왔다.
[허세현 님이 SSS급 클래스 ‘브레이브킹’을 획득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 ‘폰 소환’, ‘왕의 명령’스킬을 획득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 ‘경험의 관리자’, ‘시간의 주인’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커어어억!”
그 순간, 세현은 거칠게 기침을 토하며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왔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기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어때?”
상체를 일으키자 해골 팔의 미녀가 세현을 향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끈적하게 달싹이며 말했다.
“좀 쓸 만한 꿈을 꾸었는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쉽게 설명해 봐요.”
“그 꿈은 네가 가지게 될 SSS급 능력, <신화 클래스>의 기억을 재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 SSS급 능력이 뭐냐는…….”
볼멘소리로 말하자 해골 팔의 미녀, 헬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나 또한 두 의지의 뜻에 따라 신탁을 내릴 뿐. 네 능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요컨대, 내 능력은 스스로 알아내라 그겁니까?”
헬시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 이곳 <선택의 사원>에서 클래스를 받게 되면 담당 수녀들에게 해당 클래스의 간단한 공략법을 듣는다. 하지만 헬시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현의 입장에선 헬시안의 태도가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헬시안은 콧김을 살짝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클래스에 대한 말은 못 해 주겠지만,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군…….”
“오?”
‘조언’이라는 단어에 세현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첫째, 네 클래스의 힘은 아파트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하다. 소란에 말리기 싫다면 최대한 정체를 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헬시안은 뭔가를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흠, 이걸 주도록 하지.”
“이게 뭡니까?”
“그걸 마스터키 위에 뿌려 보아라.”
그녀가 내민 것은 HP 포션을 닮은, 붉은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였다.
세현은 못미더운 얼굴을 한 채 플라스크 꼭지를 뽑아 붉은 액체를 위로 천천히 흘렸다.
치이이익-!
그러자 연기가 뿜어지더니 붉은 액체가 팔찌 위로 스며들었다.
세현은 화들짝 놀라며 액체를 닦아냈지만, 팔찌는 금세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세현의 얼굴이 똥을 씹어 먹은 듯 구겨졌다.
“어, 뭐야 이거! 왜, 왜 빨간색으로 변하는데!”
“걱정하지 말라, 입주자여. 겉으로 보이는 색이 변한 것뿐, 네가 가진 근원의 힘과 클래스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왜 색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최대한 정체를 숨기는 게 좋을 거라고.”
“아아…….”
세현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피곤한 건 딱 질색이야.’
처음에는 괜찮아도 이 투명한 마스터키는 분명 누군가의 의심을 살 것이다.
이걸 대형 길드들이 알게 된다면?
또 SSS급의 존재를 인식한다면?
대형 길드들이 세현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언론에선 그들을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세현은 그들의 민낯을 몇 번이나 봤다.
자신들의 밥그릇과 체면을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벌이는, 조직 폭력배나 다름없는 존재들.
그들은 세현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죽이려 들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마스터키의 색을 붉은색, 즉 E급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들키지 않고 음지에서 힘을 키울 수 있다.
“그 팔찌의 색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원래대로 돌려주지.”
“아, 아니 고맙게 잘 받을게요. 나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
헬시안의 말에 세현은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마스터키의 색을 바꾸다니. 이런 게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 했는데?’
마스터키는 아파트의 주인인 두 여신들의 권능이 담긴 물건이다.
입주자가 마스터키의 색을 바꾸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녀는 아파트의 규칙을 초월할 정도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네 몸속에서 다른 존재의 힘이 느껴진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나?”
“다른 존재?”
“한 번 네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스터키의 [상태 창]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네모난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정면에 떠올랐다.
[#. 브레이브킹 / 허세현]
- 15인의 가신을 부리는 전설의 왕. 그가 가는 곳엔 승리뿐이었다 전해진다.
레벨: 1
클래스 등급: 신화(SSS)
보유 타이틀 수: 0개
HP / MP: 100 / 100
힘(10) / 민첩(10) / 지능(10) / 체력(10)
▶ 패시브 스킬
(1) 봉인된 시간의 신: 당신의 몸에는 시간의 신이 잠들어 있습니다.
(2) 경험의 관리자: [경험치 획득량 x 현재 소환수 숫자] 만큼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해 ‘경험의 관리자’에 보관합니다. ‘경험의 관리자’로 얻은 경험치는 소환수에게만 분배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저장 경험치 (0)
(3) 왕의 군대: 당신은 왕의 군대를 다룰 수 있습니다. 다룰 수 있는 소환수의 최대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폰: 8명 / 나이트: 2명 / 비숍: 2명 / 룩: 2명 / 퀸: 1명
▶ 액티브 스킬
(1) 폰 소환 (현재 MP의 20% 소모): 기본 기물인 폰을 소환합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소환 가능한 폰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 현재 소환 가능 폰 숫자: (1명)
#. 5레벨에 2명, 20레벨에 3명. 이후 10레벨마다 1명씩 증가합니다.
(2) 왕의 명령 (소모 MP 없음): 소환물에게 왕의 명령을 내립니다. 레벨이 오르면 보다 다양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 가능한 명령 - <공격> / <방어>
스크롤을 내려 상태 창을 확인하던 중, 세현은 이마가 한순간 구겨졌다.
첫 번째 패시브 스킬 ‘봉인된 시간의 신’ 때문이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크로노스>를 말하는 것 같은데.’
세현의 얼굴을 본 헬시안이 사정을 대충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역시,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나 보군.”
“뭐, 그렇죠…….”
“부디 그걸 조심하길, 지금은 힘이 약해진 것 같지만 그 존재는 점차 힘을 되찾을 것이야.”
세현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제기랄, 이거 몸에 시한폭탄이라도 심어져 있는 기분이네.’
순간, 본인이 크로노스가 되어 입주자들과 싸웠던 때가 떠올랐다. 놈이 힘을 되찾는다면 아마도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이거 뭐 대책은 없습니까?”
헬시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세현이 답답한 마음에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허세현 님, 이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잠시 후, 세현을 이곳에 인도했던 수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제기랄.”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방에 혼자 남은 헬시안은 잔잔한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 말도 없이 남의 방에 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오홍홍. 눈치가 빠르시네용. 역시 헬시안 님이셩.”
그러자 방구석의 그림자에서 붉은 점 두 개가 번뜩이며 대꾸했다.
“용무를 밝히십시오, 커플러.”
“제가 담당 조원 중에 수상~한 기운을 가진 놈이 있어서 궁금했거든용.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어용! <신화>급 능력자라닝!”
“커플러. 관리자가 입주자에게 관여하는 게 두 의지의 뜻에 위배된다는 건 알고 있겠죠?”
“오홍홍홍홍 그런가용? 하지만 말이죠…….”
웃음소리와 함께 그림자에서 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정장을 차려입은 달마시안 인간, 커플러였다.
그는 귀를 파닥거리며 비아냥 가득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조금 전, 헬시안 님이 마스터키의 색을 바꾼 것도 두 의지의 뜻은 아니었잖아용?”
“건방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헬시안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뻗자 손바닥에서 금빛 거미줄이 뿜어져 커플러의 몸을 옭아맸다.
“오홍홍호호홍!”
거미줄이 커플러의 몸을 점점 조이며 온몸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커플러는 웃음소리를 쏟아 냈고, 거미줄을 쥔 팔을 크게 휘둘렀다.
콰드드득득-!
금빛 거미줄이 단번에 그의 허리를 끊어 버렸다.
바닥에 내장과 살점이 후두둑 떨어지며 피가 흩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금새 연기로 변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조만간 관리자 총회에서 뵙죵 헬시안 님.>
커플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서서히 사라져 갔다.
헬시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분한 듯 읊조렸다.
“커플러…….”
† † †
“후우, 이제 좀 살만하네.”
아파트 2층.
‘스타티움’에서 도보로 1시간여 떨어진 숲의 한가운데,
세현이 앉은 자리엔 에너지 바의 포장 봉지가 잔뜩 널려 있다.
이는 시험 시작 전, 합격과 동시에 초반부터 달리기 위해 미리 챙겨 둔 것이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기에, 이 싸구려 에너지 바가 꿀맛 같이 느껴졌다.
에너지 바를 먹어 치운 후, 세현은 마스터키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단 상자부터 까고 시작해야지.”
일단 마스터키의 [인벤토리]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게임의 아이템 창을 꼭 닮은 네모 격자무늬의 인터페이스가 출력됐다.
세현은 왼쪽 위에 있는 금색 박스 아이콘 [프리미엄 스타터팩]을 터치한 후 [사용] 버튼을 눌렀다.
[‘프리미엄 스타터팩’을 사용합니다.]
그러자 금색 아이콘이 빛을 뿜더니 사라졌고, 인벤토리에 다시 4개의 아이템이 떠올랐다.
‘좋아 뭐가 드랍됐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