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0화 (10/180)

# 10

10화.

Level 3. 클래스 복권

수백 미터 크기의 거대한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제각기 아름다운 빛을 내뿜어 은하수를 작게 축소한 것처럼 보였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홀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플래닛트리], 지구 깊숙이 뿌리를 내려 그 양분을 아파트 전체로 전달하는 심장 같은 기관이다.

플래닛트리에 자라난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은 입주자들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클래스 복권’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플래닛트리는 아파트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중요한 존재.

그렇기에 이곳 ‘플래닛트리 홀’은 항시 ‘정원사’라 불리는 관리자 집단의 보호를 받는다.

“도오차악!”

커플러의 외침과 함께 추락하던 15조 합격생들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허어억, 죽는 줄 알았네.”

“후우우우…….”

모두가 십년감수했다는 듯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걸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커플러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여러분, 이걸 하나씩 받아 주세용.”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번쩍이는 종이를 노려봤다.

‘클래스 복권!’

클래스 복권 위에는 숫자를 적을 수 있는 8개의 칸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안에 손가락으로 1~40 사이의 각기 다른 숫자를 적어 넣으면 그것으로 자신의 클래스가 결정되는 것이다.

“당첨 번호 발표는 30분 후! 그때까지 신중히 번호를 적어 주세용~!”

합격생들은 커플러의 설명에 집중했다.

여기에 어떤 번호를 적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바뀐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입주자가 돼도 겨우 F급 클래스에 당첨되면,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

적어도 E급, 아니 D급 정도는 돼야 대기업 직원쯤 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F급 아니면 E급의 클래스를 받게 될 거고, 대부분이 아파트를 떠나가게 될 것이다.

‘제발 이번엔 F급만은…….’

세현은 F급 시절의 삶이 떠올라 입맛을 쓰게 다셨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플래닛트리 위에 달린 커다란 전광판을 바라봤다.

그 위에는 푸른 글씨로 클래스 복권의 당첨 확률과 아파트의 현재 인원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기됐다.

[이번 주 시험 합격자: 5323명]

[누적 합격자: 52만 7365명]

- 1등 (SSS급): 약 7700만분의 1 (8자리 적중)

- 2등 (SS급): 약 960만분의 1 (7자리 + 보너스 번호)

- 3등 (S급): 약 30만분의 1 (7자리 적중)

- 4등 (A급): 약 5530분의 1 (6자리 적중)

- 5등 (B급): 약 277분의 1 (5자리 적중)

- 6등 (C급): 약 31분의 1 (4자리 적중)

- 7등 (D급): 약 7분의 1 (3자리 적중)

- 8등 (E급): 약 3분의 1 (2자리 적중)

- 9등 (F급): 나머지

오늘은 ‘입주자 관리시스템’이 가동된 지 만 3년이 지난 시점이다.

아직 1, 2등 당첨자는커녕 3등 당첨자도 고작 8명밖에 없는 상태.

그리고 세현의 기억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앞으로 7년간 1~2등 당첨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당첨 확률 약 7700만분의 1.

813만분의 1로 1등이 나오는 로또 복권에 비교도 되지 않는 희박한 확률.

게다가 여러 장 살 수 있는 보통의 복권과 달리 클래스 복권은 입주 시험 합격자에게 평생에 단 한 장씩만 주어지기에 체감 당첨률은 훨씬 더 낮다.

7700만분의 1의 확률을 뚫고 SSS급에 당첨된다는 것,

그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다 못해 달까지 날아갈 확률이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1등에 당첨되면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복권 위에 번호를 거침없이 적어 나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합격생 여러분!! 지금부터 클래스 복권 발표가 있겠습니다.>

30분 후.

전광판에서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험생들은 제각기 간절한 얼굴로 전광판을 쳐다봤다.

8개로 나눠진 칸.

그 위로 무수히 많은 숫자들이 위아래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하나씩 자리를 채워 갔다.

<첫 번째 숫자는 8!>

<두 번째 숫자는…….>

“제기랄. 왜 여기서 12가 나오냐고.”

“와아! 2개다! 벌써 2개나 맞았어!”

번호가 하나씩 채워져 갈 때마다 합격생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했다.

그렇게 반복하길 8번.

<이번 클래스 복권 당첨 번호는 1, 5, 8, 12, 17, 24, 37, 39입니다! 2등 보너스 번호는 7입니다.>

모든 숫자가 완성됐다.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혼란 속에서 세현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전에 썼던 번호에서 각각 1을 뺀 그 번호. 자신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1등이다, SSS 클래스! 진짜 1등이라고!!’

세현은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7700만분의 1.

이제 더 이상 클래스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감정이 끓어올랐다.

잠시 후, 세현의 왼손에 클래스 복권은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내려 팔목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금세 팔찌의 형태로 변이했다.

이 팔찌의 정식 명칭은 <마스터키>.

아파트 입주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아파트에 입장하거나, 각종 시설을 이용하는 데 필요하며, 인벤토리, 지도 등 부가적인 기능을 이용할 수도 있다.

가장 신기한 마스터키의 권능은 입주자들 간에 언어 체계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

마스터키만 있다면 영어든, 중국어든, 심지어는 이름조차 모르는 나라의 언어도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내 마스터키, 색이 좀…… 이상해 보이는데?’

SSS급 마스터키는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투명했다.

다만 뭔가가 얹어져 있다는 촉감만이 그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혹시 뭔가 잘못됐나 싶어 철렁한 마음에 상태 창을 켜 봤다.

[#.입주자 / 허세현]

- 이제 막 입주 시험에 합격했다. 시작의 신전에서 클래스를 부여받아야 한다.

- 클래스 등급: SSS

“후우…….”

상태 창에 똑똑히 쓰여 있는 SSS라는 글씨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뭐, 비밀스럽고 좋네. 아무렴 칙칙한 F급의 검은색 마스터키보다야 훨씬 낫지.’

그렇게 기분 좋은 흥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야, 4000만 원. 이거 보이냐?”

고개를 돌리자 건달같이 생긴 남자, 마상철이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왼쪽 팔목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 위에는 노란색 마스터키가 씌워져 있었다.

‘뭐야, 이 인간. 고작 C급 됐다고 설치는 거야?’

세현은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이 새끼가 웃어? 너, 내 눈에 띄면 진짜 반 죽여 놓을 테니까 그리 알아라.”

상철은 세현에게 피 같은 돈 4300만 원을 뜯긴 것을 마음에 담아 둔 모양이었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C등급만 해도 당첨 확률이 1/31이다.

상철의 입장에선 허세현이 자신보다 높은 등급을 받았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세현은 괜스레 상철을 놀리고 싶어 왼손 팔목을 보이며 대꾸했다.

“C급이 누굴 죽여? 나는 SSS급이다, 이 머저리 같은 인간아.”

텅 빈 팔목을 본 마상철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SSS급은 개뿔! SSS급은 무슨 투명 마스터키라도 주냐?”

“그럼 그럼, 여기 내 마스터키 안 보이냐? 아 맞다, 이 마스터키는 인성 쓰레기 눈에는 안 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너, 조만간 찾아갈 테니 목 닦고 기다려라.”

상철은 미간을 구기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하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애초에 세현이 SSS급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허풍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깜찍하다, 깜찍해. 진짜 SSS급인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잠시 후, 전광판에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주자 여러분, 자신의 등급에 맞는 클래스를 정하는 건 튜토리얼 구간인 2층, [시작의 도시 ‘스타티움’]에서 할 수 있으니 언제든 편할 때 찾아 주세요.>

<아파트 관리인 일동은 여러분의 해피&엔조이한 아파트 라이프를 응원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천 명의 인파가 우르르 플래닛트리 홀을 빠져나갔다.

세현도 그런 인파 속에 조용히 뒤섞여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인파는 줄어들지 않았다, 홀 입구 쪽에 모인 무리가 길목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와아아! A급이다, A급이야!”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A급? 얼굴이나 한번 봐 둘까?’

원형으로 모인 군중 가운데 여자 1명과 남자 3명이 같이 서 있었다.

그중 여자 쪽은 세현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저거 백설희 아니야?’

검은 말총머리를 한, 강아지상의 귀여운 미녀.

백설희의 팔엔 A급 클래스를 의미하는 파란색 마스터키가 채워져 있었다.

그걸 본 세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잉? 전생에는 분명 B급이었는데……?’

세현의 전생에 백설희는 분명 B급 클래스에 당첨됐다.

SSS급이 된 마당에 남의 등급이 무슨 상관이겠냐 싶지만 세현의 입장에선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녀가 A급이 된 게 무슨 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변할 수 있다는 건 세현에게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미래가 변한다는 것은, 예측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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