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어이 형씨. 분위기를 보니 한 가닥 할 것 같은데 나랑 같이하는 건 어때?”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좋게 말하자면 우직한, 나쁘게 말하자면 날건달 같은 인상의 남자.
‘이 새끼……. 기억났다.’
세현은 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상철.
현직 사채업자로 전생에 입주 시험을 볼 때 대형 파티를 만들었던 인간이다.
그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고 매트릭스 내부의 몬스터를 독점했다.
이들 때문에 다른 수험생들이 사냥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그 당시 마상철 파티의 횡포는 고약했다.
그 당시 우여곡절 끝에 합격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기분이 더러웠다.
‘쓰레기 같은 돈벌레 놈.’
마상철이 했던 짓 중 가장 악질적인 일은 그렇게 독점으로 벌어들인 포인트를 시험생들에게 팔았던 것이다.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해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마지막엔 돈까지 뜯어내는, 지극히 사채업자다운 행동이었다.
세현 또한 합격을 위해 마상철에게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바쳐야 했다.
덕분에 그 당시에 한 달 내내 라면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치가 떨렸다.
“나는 별 생각 없으니까 다른 사람 알아보십쇼.”
“어이 형씨! 형씨, 얘기 좀 들어 보라니까.”
마상철이 애타게 불러 세웠지만 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그러곤 입가엔 비릿한 웃음을 띠우며 마스터키의 [지도]탭을 터치했다.
‘마상철, 네놈이 했던 짓 그대로 갚아 주마.’
세현은 지도에 출력된 붉은 점들을 피해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일단 정상까지 최단 시간에 이동한다.’
세현의 1차 목표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
하지만 케이블카 승차장에 가는 도중에는 오크, 고블린, 임프 등등 하급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게다가 자판기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변변한 무기도 하나 없다.
상대가 아무리 하급 몬스터라 해도 평범한 사람들이 놈들을 맨손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급한 대로 쓸 만한 걸 찾는다.’
세현은 가는 길에 박혀 있는 나무 팻말을 쑥 뽑아냈다.
땅에 박혀 있던 끝자락이 뾰족하게 날이 선 것이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인다.
세현은 끝부분의 흙을 툭툭 털어 내고,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자 저 멀리 고블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키는 작지만 철검과 나무 방패를 장착한, 나름 장비를 갖춘 개체였다.
‘한 번에 잡아야 된다.’
심호흡을 하며 놈과의 거리가 최대한으로 좁혀지길 기다렸다.
고블린과의 거리가 1m 남짓으로 좁혀진 순간.
‘지금!’
세현은 몸을 벼락같이 일으켜 팻말의 뾰족한 부분을 놈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쿠드득-!
고블린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팻말이 가슴을 관통하자 놈은 녹색 피를 토해 냈다.
“끼에에에에엑!”
세현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발꿈치에 체중을 실어 얼굴을 찍었다.
퍽! 퍽! 퍽!
“게에엑…….”
그러길 수차례, 고블린의 입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흘러나오며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고블린을 쓰러뜨려 1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즉시 마스터키가 음성을 전해 왔다. 귀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텔레파시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잘 쓸게, 고블린 양반.”
세현은 고블린의 철검과 나무 방패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위로 네모난 박스가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떴다.
[#. 검 / 고블린의 구식 철검]
- 고블린이 사용하던 구식 철검, 녹이 군데군데 슬었지만 날 부분은 아직은 쓸 만하다.
등급: 일반(F)
공격력: F+
적정 레벨: 없음
[#. 방패 / 고블린의 나무 방패]
- 고블린의 나무 방패,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느낌이다.
등급: 일반(F)
방어력: F+
적정 레벨: 없음
‘이 정도면 아쉬운 대로 쓸 만하지.’
장비를 착용한 후, 세현은 빠르게 대로변을 따라 움직였다.
고블린 4~5마리를 더 마주쳤지만, 철검과 방패를 이용해 어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세현은 이윽고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앞에 서자 눈앞에 팝업창이 출력됐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려면 1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탑승하시겠습니까? YES/NO]
YES 버튼을 터치하자 10포인트가 차감되며 케이블카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 올라타자 문이 닫히고, 케이블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현은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주변 전경을 둘러봤다.
일대의 몬스터들과 수험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작 지점 근처의 40~50명의 거대한 무리였다.
‘마상철 패거리……. 제발이니 내 앞길만 막지 마라.’
세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 케이블카가 정상에 도착했다.
몬스터를 일일이 상대하며 올라가면 족히 2시간은 걸릴 거리를 채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한 것이다.
세현은 곧장 서울N타워가 있는 정상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실제 남산 광장과는 사소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건 타워 바로 옆에 거대한 밤송이 같은 철제 조형물이 놓인 것이다.
옆의 안내문에는 <작품명: 소고기 밤송이 육회> 라는 의미 모를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세현은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기에 피식 코웃음을 쳤다.
‘이거 다시 보니 엄청 티 나게 설치돼 있네.’
곧장 서울N타워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띵동-!
[서울N타워 정상,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세현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전망대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게 어느 지점이더라아…….”
그러던 중, 발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자 밤송이 조형물이 바로 아래에 보이는 위치였다.
“여기네.”
세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린 후,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왼쪽에 놓인 터치스크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스터키의 음성과 함께 팝업창이 출력됐다.
[축하합니다! 히든 보스를 발견했습니다!!]
[#. 보스전 / 미노타우렌]
- 신화 속 미노타우르스의 후손, 엄청난 힘으로 거대한 도끼를 휘두릅니다.
등급: 유니크(C)
레벨: 3
보상: 파티원당 100포인트
▶ 공략TIP: (오늘의 요리) - 소고기 밤송이 육회.
[히든 보스를 소환하시겠습니까? YES / NO ]
‘히든 보스, 이번에도 있다.’
망설임 없이 YES 버튼을 터치하자 팝업창이 흩어지며 전망대에 음성이 울려 퍼졌다.
<히든 보스 ‘미노타우렌’이 소환됩니다.>
덜컹덜컹-!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격하게 흔들렸다.
<‘미노타우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덜컹덜컹!!
<5…….>
<4…….>
덜컹!
<2…….>
<1…….>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히든 보스전 ‘미노타우렌’ 시작합니다.>
쿵! 쿵!!
엘리베이터 문이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더니 반대편으로 힘껏 날아갔다.
세현은 몸을 오른쪽으로 날려 간발의 차로 피했다.
‘워어, 시작하기도 전에 골로 갈 뻔했네.’
고개를 들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구어어어어!”
거친 외침과 함께 소의 상체에 인간의 하체를 가진 괴수, 미노타우렌이 연기 사이에서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걸어 나왔다.
놈의 몸은 매끈한 근육이 갑옷처럼 둘러져 있었다.
세현은 고철 검과 방패를 단단히 움켜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놈한테 7명이 죽었었지……. 다시 봐도 오싹오싹하네.’
세현이 저놈을 마주한 것은 이번 처음이 아니었다.
전생에 봤던 입주 시험에서 세현은 10명 규모 파티에 소속돼 시험을 진행했다.
그 당시에 마상철의 횡포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왔고, 우연한 기회로 히든 보스 미노타우렌을 발견했었다
놈은 ‘보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통의 몬스터보다 훨씬 큰 보상을 준다.
파티원당 100포인트, 이는 놈을 잡는 것만으로도 파티원 전체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놈을 잡을 수 있을 때 해당하는 얘기였다.
전생에 허세현의 파티가 놈을 잡으려다 무려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놈은 입주 시험에 어울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스펙을 자랑했다.
하지만 오늘, 세현은 그런 미노타우렌을 홀로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수입산 쇠고기! 내가 오늘 육회를 만들어 줄게!”
“꾸어어어어어어!”
세현의 도발에 놈은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앞으로 세차게 내달렸다.
충돌 직전, 세현은 옆으로 구름과 동시에 철검을 휘둘러 놈의 허리를 베어 냈다.
하지만 살짝 피부를 긁었을 뿐, 근육 갑옷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걸론 택도 없다.’
반면, 미노타우렌의 뿔은 전망대 강화유리에 커다란 구멍을 두 개나 뚫어 버렸다.
저 뿔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 대충 상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깟 뿔, 안 맞으면 그만이지만!”
세현은 놈의 등에 철검을 몇 번 더 휘두르고 반대편으로 빠르게 빠져나가 거리를 벌렸다.
“꾸어어어어어!”
약이 바짝 오른 미노타우렌이 괴성을 내지르며 다시 뒷발을 굴렀다.
쾅-!
놈이 다시 전속력으로 돌진했고, 세현은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검과 방패를 휘둘러 놈을 귀찮게 했다.
쾅-!
쾅-!
그걸 몇 번 더 반복하자 전망대 내부가 초토화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
세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이 미리 확인했던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