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15번……. 15번 객실이 어디냐아.”
세현은 ‘15’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객실을 찾아 올라탔다.
잠시 후, 15조의 담당 공무원이 통로로 걸어 나와 다시 한 번 수험생들의 명단을 체크했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기차 스피커에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제147회 아파트 입주 시험 기차, 지금부터 출발합니다. 각 조의 시험생들은 자신의 조 번호와 일치하는 게이트 앞에 내려 주시면 됩니다.>
기차는 아파트 외각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현은 창밖으로 비춰지는 거대한 아파트의 육중한 모습을 올려다봤다.
‘언제 봐도 어마어마하군.’
가로길이 20km, 추정 높이 100km.
흡사 신화 속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파트>.
총, 미사일, 심지어 핵무기까지.
어떤 물리력을 동원해도 파괴할 수 없는, 신의 창조물이라고 밖에 설명 되지 않는 공간.
각 층의 메인 던전을 100일 내로 공략하지 않으면 정상에 놓인 ‘민들레’가 전 세계로 거대 괴물의 씨앗을 내뿜는다.
인류에게 있어 아파트는 재앙 그 자체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저곳은 기회의 땅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파트는 매 순간순간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하지만 힘만 있다면, 좋은 클래스를 받기만 한다면, 출신 성분 따윈 상관없이 누구든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F급이었다는 거지.’
세현은 처절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중, 15번 객실 앞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야야. 저쪽에 저 사람. 백설희 아니야?”
“뭐……. 그 펜싱 금메달리스트?”
“저 사람이 여긴 왜 와 있데?”
“와, 실제로 보니까 겁나 예쁘긴 예쁘다.”
세현의 세 칸 앞쯤 자리에 서글서글하고 귀여운 상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말끔한 피부, 검은색 포니테일 머리를 한 강아지상의 미녀.
그녀의 이름은 백설희.
지난 올림픽의 펜싱 금메달리스트이자 수많은 CF를 찍은 유명 스포츠 스타였다.
세상 아쉬울 것 없는 그녀가 위험천만한 아파트에 입주 자격 시험을 보러 왔다?
이는 딱 떠들기 좋은 가십거리였다.
‘내 기억에 저 여자, 빚이 있었지.’
세현은 후에 디스백지니 뭐니 하는 연예 신문들의 보도를 봤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사연을 요약하자면, 그녀는 스포츠 스타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부모가 그녀의 돈을 사업에 퍼부었고, 그 과정에서 사채까지 끌어 쓰며 도리어 빚이 생긴 것이다.
설희는 가족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입주자라는 고위험, 고수익의 직업으로 전향을 시도한 것이었다.
‘뭐, 아파트에 오는 놈들 치고 사연 없는 놈 없지.’
세현의 기억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백설희는 이번 시험에 합격한 후, 클래스 복권에서 B등급에 당첨된다.
외모에서 나오는 스타성.
펜싱으로 다져진 전투 센스.
그리고 B등급이라는 준수한 클래스 등급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녀에겐 러브콜이 쇄도했고 결국 대형 길드에 입단한다.
이후 그녀는 승승장구하며 인터넷 방송 등에서 인기를 끌며 수십억의 빚을 불과 2년 만에 싹 갚는 인간 승리를 보여줬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
같이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후 F급으로 아파트 밑바닥을 전전하던 세현과 상반된 인생이었다.
세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신의 처참한 과거가 다시 한 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객실 내부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15번, 15번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15번 객실의 수험생들은 모두 내려 주세요.>
15조, 100명의 수험생이 우르르 기차를 빠져나왔다.
맞은편에서는 높이만 족히 3m는 돼 보이는 거대한 문이 모두를 맞이했다.
끼이이익-!
담당 공무원은 문을 열어젖힌 후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를 던졌다.
“이 문으로 들어가시면 시험이 시작돼요. 죽을 수도 있으니까 못 하시겠다 하시는 분 지금이라도 손드세요. 없죠? 그럼 출발하세요.”
수험생 몇 명이 앞으로 나서 안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문 너머로는 검은 공간이 펼쳐져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저기요 부, 불 좀 켜 주시면 안 됩니까?”
몇몇 수험생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공무원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설렁설렁 대꾸했다.
“여기부턴 제 소관 밖이에요. 아, 그리고 10분 내로 안 들어가시면 시험 탈락하니까 주의하세요.”
100인의 수험생들은 긴장 가득한 얼굴로 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모든 수험생이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등 뒤에서 ‘쾅!’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혔다.
Level 2. 입주 시험
“아오, 무섭잖아 이거.”
깜짝 놀란 수험생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쏟아 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15조, 시험 시작합니다.>
어둠뿐이었던 공간에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수험생들이 일제히 눈을 찡그렸다.
“아우 눈부셔, 어디야 여긴?”
잠시 후 눈이 갑작스러운 빛에 적응했을 무렵, 수험생들은 본인들이 굉장히 익숙한 장소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서울을 배경 삼아 서 있는 작은 산. 그 위로 우뚝 솟은 타워. 그 사이를 왕복하는 케이블카까지.
“뭐야, 여기 남산 아니야?”
“맞네, 남산! 저기 저거 서울N타워잖아, 케이블카도 떠 있네.”
하지만 이곳은 미묘하게 현실과 차이점이 있다.
마땅히 푸른색이어야 할 하늘이 잿빛이었고, 관광객이 가득해야 할 시간이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남산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사람들의 동요하는 모습에 세현은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나도 처음엔 저런 반응이었지.’
이곳은 이른바 <매트릭스>라 불리는 곳으로, 아파트의 시험관들이 현실을 모방해 만든 인공적인 장소였다.
잠시 후.
바닥에서 그림자 하나가 위로 벌떡 솟아나며 발랄한 소리로 외쳤다.
“쨔란!”
달마시안 강아지의 상체를 가진, 190cm는 족히 넘는 키의 존재.
그는 검은색, 흰색이 뒤섞인 정장과 중절모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달마시안의 얼룩무늬와 묘하게 어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15조의 시험을 담당할 관리자! 15번 시험관 커.플.러.라고 합니다용!★”
모든 입주자가 황당한 얼굴로 굳어 있을 때, 세현은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그쪽 더벅머리 청년, 반응 감사합니당! 그럼 지금부터 바로 시험 시작하죵.”
커플러는 세현에게 윙크를 찡긋 날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보게 될 시험은! ‘100점을 얻어라’입니당! 이 시험을 통해서 여러분은 입주자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테스트 받게 될 겁니당!”
그가 박수를 두 번 치자 공중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그것은 남산 전경을 비추는 지도였는데 위에는 붉은 점들이 무수히 많이 찍 혀있었다.
“이 빨간색은 몬스터들이 있는 위치를 표기해 줍니다! 규칙은 간단! 빨간 점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면 포인트를 얻습니당! 당연히 센 놈을 잡을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주겠죵? 앞으로 6시간 후, 그 시점에 100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수험생은 합.격.입니당!”
그때 백설희가 손을 들고 당당하게 질문을 던졌다.
“맨손으로 몬스터를 잡으라는 건가요?”
“오호호 정곡을 찌르는 지일~문! 여러분이 격투기 선수가 아닌 이상에야 무리겠죵? 그래서 제가 다 준비했답니당!”
그는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쏟아 내며 발굽으로 탁탁 소리를 냈다. 그러자 자판기와 비슷하게 생긴 철제 박스 5개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이건 ‘자판기’입니다. 이번 게임, 아니 시험에 필요한 아이템들은 모두 이걸로 살 수 있죵!”
“어……. 살수 있다뇨? 뭔가를 지불해야 되는 겁니까?”
“넵, 자판기의 무기는 포인트를 지불하면 살 수 있어용! 더 많은 포인트를 쓸수록 더 강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답니당!”
그의 머리 위에 척 보기에도 강해 보이는 금빛 무기들의 형상이 떠올랐다 연기처럼 흩어졌다. 아마도 자판기에서 얻을 수 있는 무기들을 보여 준 듯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포인트를 무기 사는 데 써 버리면 정작 합격에 필요한 100포인트를 모으기 어렵겠죵?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답니당.”
수험생들은 그제야 이번 시험의 룰이 이해 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커플러는 흡족한 듯 웃으며 손가락을 딱-소리가 나게 튕겼다.
“자, 모두 시작할 때 10포인트씩을 나눠 드릴겁니당!”
그러자 모두의 왼쪽 팔목이 빛나며 흰색 팔찌가 하나씩 솟아났다.
“그건 입주자의 필수품, <마스터키>의 모조품입니당! 엉성해 보여도 어지간한 기능들은 다 가지고 있죵! 합격하시면 진짜 마스터키를 가지게 될 거예용.”
팔찌 위에 띄워진 액정에는 [지도], [몬스터 정보], [포인트 현황], [포인트 교환]이라는 네 개의 탭이 띄워졌다.
다른 수험생들이 놀랍다는 듯 팔찌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세현은 곧장 지도 버튼을 터치해 지도를 미리 띄워 놓았다.
“그럼 앞으로 6시간 동안! 여러분들에게 여신님의 가호가 있길 빕니당.”
말을 마치는 순간, 커플러의 몸뚱이는 액체처럼 녹아내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이거 난감하네.”
사람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다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걸로 무기를 사는 건가……. 어디 보자.”
“어이 새치기하지 마쇼. 내가 먼저 왔어.”
5대의 자판기 앞에는 무기를 구매하기 위한 행렬이 늘어섰다.
순간 몰린 사람의 수가 100명 가까이 되기에 줄이 길어져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험 같이 협력해서 보실 분 구합니다! 모은 점수는 공평하게 분배할 거고요. 딱 5명까지만 받습니다!”
현장이 순식간에 과열되며 몇 분 만에 팀원을 구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게임처럼 파티 사냥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리라.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빙긋 올려 보였다.
‘팀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지. 나는 안 할 거지만.’
그리고 등을 돌려 움직이려던 찰나에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