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젠장! 이걸 이제 알아서 뭐에 써먹어!>
진실을 알게 된 직후, 세현은 더더욱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F급의 나약한 몸뚱이를 지닌 자신은 어차피 이곳에서 죽게 된다.
이후 자신의 죽음은 최은철의 명성을 올려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니 내장이 통째로 뒤틀리는 것 같았다.
지하 공동 전체에 괴성이 메아리쳤다.
놀란 결사대원들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귀를 틀어막아야 했을 정도였다.
<네놈들 뜻대로는 절대 안 죽어 준다!>
세현은 크로노스의 낫을 내팽개치고, 오른손을 스스로의 가슴에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촤아악-! 피가 쏟아져 나왔다.
손끝으로 살덩이를 가르며 안으로 욱여넣자 그 끝에 차가운 돌덩이가 만져졌다.
그러자…….
[무슨 짓이냐!]
<어차피 뒤질 거, 다 같이 뒤지자고!>
세현은 손끝에 돌덩이, 크리스탈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가득 줬다.
그리고 전신의 마나를 끌어올려 그곳에 불어넣었다.
<끄아아아아아!>
[머…… 멈춰라 인간! 그랬다간 시간이 폭주한다! 아파트의 시스템이 망가져!]
<내 알 바냐 이 새끼야!>
콰득- 콰드드드득!
크리스탈이 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으스러졌다.
의식이 흐릿해질 정도의 고통이 몰려왔지만, 멈출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파직-!
결국, 가슴 속의 크리스탈은 그대로 쪼개져 버렸다.
그러자…….
치지지직, 치지직!
몸의 중심부에서 푸른 전기장이 뿜어져 나와 구체의 형태를 이뤘다.
그것은 크로노스로 변한 세현의 몸 전체를 감쌌다.
그렇게 20~30초가 더 지났을 무렵, 구체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세현의 거대한 몸뚱이를 집어삼켰다.
그 자리엔 커다란 크레이터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뭐야? 지금 무슨 상황이야?”
“혹시 저 새끼 자폭한 거냐?”
갑작스러운 보스의 자멸에 공대원들은 당황스럽다는 듯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떠들었다.
[축하드립니다. 허세현 님이 50층 보스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쓰러뜨렸습니다.]
[메인 퀘스트 ‘올림포스의 반역자-최종장’(이)가 종료됩니다.]
잠시 후, 50층의 클리어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공동 전체에 메아리쳤다.
† † †
“커허어어억!”
세현은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 끈적하게 젖은 상태였다.
“꾸, 꿈이었나?”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멋대로 널려 있는 빨래, 벽지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슬어 있는 원룸.
이곳은 옛날 세현이 살았던 자취방이었다.
“뭐야……. 도통 영문을 모르겠네.”
지이이잉-!
진동음에 베게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개런티S7’. 출시된 지 7~8년이나 지난 구형 모델이다.
세현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 공짜 폰으로 구입해 5년이나 사용했던 추억의 물건이다.
어째서 이게 옆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현은 일단 폰을 들어 잠금 화면을 해제했다.
“미친, 오늘 날짜가……. 2021년 8월 22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세현이 크로노스와 전투를 벌인 날짜는 ‘2028년 9월 13일’. 하지만 스마트폰은 7년 전 과거의 시간, 그것도 입주자 시험을 보기 하루 전을 정확히 표기하고 있었다.
‘혹시, 진짜로?’
그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TV를 봐도.
인터넷 기사를 봐도.
SNS를 봐도.
모든 정보는 세현에게 단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입주자가 되기 전, 7년 전으로 돌아왔다!’
판타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세현은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렸다.
‘크로노스의 크리스탈을 파괴한 게 뭔가 영향을 미친 건가?’
죽기 직전, 크로노스에게 분노해 스스로 크리스탈을 파괴하고 목숨을 끊었던 선택.
어쨌든 놈은 ‘시간의 신’이니 그것이 과거로 돌아오는 데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가장 커 보였다.
‘어쨌든 살아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게 중요해.’
세현은 현재의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정보를 모았다.
[팔콘 길드를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 길드 연합, 세계 최초 19층 공략 성공!]
[19층 공략의 영웅 최은철 길드장. 전격 인터뷰!]
[현 94레벨, 아파트 입주자 랭킹 1위, 꽃미남 최은철!]
[조선노동당 유감 표명, 초조함 드러내.]
‘구역질나는 놈.’
인터넷 기사를 뒤지던 중, 세현의 미간이 반사적으로 구겨졌다.
최은철 따위 쓰레기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것이 역겨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때부터 최은철 띄우기가 시작됐었지.’
세현에겐 불쾌하지만 언론이 이렇게 요란하게 은철을 띄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입주자’들의 탄생 후, 기존에 세계를 지배하던 ‘힘’의 개념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핵미사일, 전투기, 탱크, 함선 등등…….
기존의 군사 무기들은 입주자들의 엄청난 초능력 앞에 빛이 바래 버렸다.
어지간한 중대형급 길드 하나가 항모 전단의 전투력을 능가한다 평가될 정도였다.
힘의 중심이 최신 무기가 아닌 입주자들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게다가 입주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현대 병기에 비하자면 아주 적은 돈으로 육성할 수 있었다.
아파트는 언제나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이지만, 누구든 입주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이 말은, 안에 사람을 무작정 많이 밀어 넣을수록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아파트가 대한민국과 북한의 사이에 위치한 DMZ에 나타났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적대국인 북한에게도 절호의 기회였다는 점이다.
북한의 수많은 청년들이 강제로 아파트에 들어가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발판이 되어 그만큼 많은 입주자들이 탄생했다.
이런 상황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얻은 자원, 이것은 가난뿐이던 북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북한은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뤘고, 이건 그들을 적으로 여기던 자들에겐 공포로 다가왔다.
“이러다가 다시 또 남북전쟁 나는 거 아니야?”
“북한 놈들한테 우리가 진다고?! 너 빨갱이냐?!”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들은 이 현상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영웅을 요구했다.
최은철과 그의 길드 팔콘.
이들은 ‘한성 그룹’이라는 거대 자본과 정부를 등에 업고 빠르게 힘을 키웠다.
실제로 은철의 인성이 쓰레기나 다름없고, 악당이나 할 법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러도 한성 그룹의 뒷돈을 받은 언론은 그저 놈을 빨아 주기 바빴다.
매일 저녁 9시, 뉴스엔 바르고 잘생긴 최은철의 영웅담이 전해졌고 누구라도 팔콘 길드를 칭송했다.
물론 한 사람은 제외하고 말이다.
“저 씹새끼들, 기회만 되면 다 찢어 죽여 버린다.”
세현은 분노가 섞인 혼잣말을 읊조렸다.
당장에라도 부엌칼을 들고 팔콘 길드 건물로 뛰쳐 들어가 놈들을 회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현재의 상황을 되돌아봤다.
‘F급 입주자가 그딴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현실은 차가웠다.
내일 있을 입주자 시험이 전생과 같다면 세현은 F급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 해도 F급의 입주자가 최은철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건 한성 그룹과 팔콘 길드 전체를 상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방법이 있을 거야.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니까 이걸 이용하면 뭔가가…….’
한참을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정보가 세현의 머리를 때렸다.
‘있다! 방법이!’
그건 세현 본인이 ‘클래스 복권’에서 번호 하나씩 차이로 1등이 아닌 꼴지를 했다는 사실이다.
즉, 원래 번호에 1씩을 빼면 1등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생에 세현은 SSS급 클래스가 될 수 있다.
‘번호를 기억하길 다행이지.’
세현은 자신을 F급으로 만든 저주스러운 8자리 번호를 잊지 않았다.
아니, 잊지 못했다. 940225-1363818
9, 40, 2, 25, 13, 6, 38, 18.
그 번호는 세현의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풀어쓴 것이기 때문이었다.
“1등!”
세현은 흥분 섞인 목소리로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기세 좋게 창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존나 아름다운 날이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이 피어나는.
화창한, 진심으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세현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놓인 파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작게 읊조렸다.
“최은철, 너는 지옥에서 불타게 해 주마.”
† † †
‘입주 시험’.
이는 아파트의 창조주인 ‘두 의지’의 축복을 받은 인간, ‘입주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입주 시험은 한 달에 한 번 치러지는데, 이날은 전 세계 수십만의 인파가 근처에 몰려든다.
그리고 이들은 남한과 북한이 세운 두 개의 행정 도시, 이른바 ‘관리사무소’ 두 개 중 하나로 입장한다.
여기에 입장한 사람들은 자국민이라면 무료로, 외국인이라면 근 1000만 원가량의 돈을 내면 누구라도 행정절차를 거친 후 입주 시험을 볼 수 있다.
이는 남한과 북한, 두 나라의 중요한 자금줄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세현은 당연히 무료로 시험을 보기 위해 남한 측의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자자, 아파트에 들어가실 분들은 이 서약서에 사인을 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관리사무소의 한가운데, 담당 공무원들이 쉴 새 없이 행정절차를 처리하고 있었다.
[서약서]
아파트 입주 시험에 있어 응시생 ‘허세현’은 그 어떤 사고나 재난이 일어나도 이를 허가한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2021년 8월 23일
[작성자: 허세현 (서명)]
세현은 받아 든 서약서에 대충 서명을 휘갈기고 제출했다.
공무원은 서약서를 봉투에 쑤셔 넣으며 표찰 하나를 건넸다.
[15조 ? 수험 번호 202108231544 / 허세현]
“표찰 가슴에 패용하시고, 저쪽 가서 15번 객실 타세요.”
“네네~!”
공무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자 미래적인 디자인의 자기부상 열차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