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2화.
콰지직-!
감자 칩을 손가락으로 뭉개듯 스켈레톤의 몸이 파괴됐다. 그러자 으깨진 갈비뼈 속에서 수십 개의 녹색 돌멩이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선물이다, 이 호로자식아!”
그걸 본 모두가 놀랐다.
녹색 돌덩이의 정체는 마력을 응축시켜 만든 ‘마나 폭탄’.
제작 과정에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 하나에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무기였다.
세현은 지상으로 추락함과 동시에 한 손으로 중지를 힘껏 펼쳤고, 그와 동시에 마나 폭탄 격발기의 버튼을 힘껏 눌렀다.
딸각-!
마나 폭탄이 녹색 빛을 강렬히 뿜어냈다.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
콰아아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나며 크로노스의 모래시계와 한쪽 어깨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꺄아아악!>
놈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며 반파된 모래시계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더 이상 모래시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뭐야, 허세현이 저걸 해냈다고? F급 트롤 새끼가?”
입주자들이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자, 세현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뭐해 이것들아! 빨리 이 틈에 공격해!”
그제야 입주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공격을 나섰다.
가장 주요한 능력을 잃은 크로노스는 그저 조금 크고 체력이 많은 몬스터일 뿐이다.
놈은 필사적으로 응전했지만,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기에 공격에 별 위력은 없었다.
<이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쿠웅-!
HP가 0이 되는 순간, 놈은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걸레 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몸뚱이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그 자리에 아이템이 한 무더기 나타났다.
“좋아, 서둘러 챙기자고.”
크로노스에 가까이 붙어 있던 세현이 혀를 날름대며 서둘러 아이템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이이익! 이게 뭐야 씨발!”
세현은 소스라치듯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아이템 사이에 나체의 여성이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시, 시체인가?”
조심스레 몸뚱이를 뒤집자, 보라색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고양이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세현은 이 얼굴을 알고 있기에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카린?’
사카린, 일명 ‘서큐버스 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여성 입주자였다.
50층 공략이 막 시작 된 초기 시점, 그녀는 자신의 길드 <서큐버스 군단> 정예 멤버 10인을 이끌고 마의 50층을 공략하러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서 죽었던 거군.’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세현은 F급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겉멋 따윈 집어치운 지극히 효율적인 전투만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전투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사카린이었다.
아파트에 들어왔던 초기, 그녀의 전투 영상을 최소 20번씩은 돌려보며 공부를 했을 정도였다.
“뭐, 그건 그거고. 지금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는 아니지.”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그녀의 가슴에 박힌 작은 크리스탈로 향했다.
그러자 그 위로 팝업창 하나가 출력됐다.
[#. 액세서리 / 크로노스의 크리스탈]
-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정수. 그의 본체이자 모든 힘이 여기에 담겨 있다.
등급: 신화(SSS)
레벨 제한: 없음
▶ 추가 능력
- 시간의 신(액티브): 크로노스의 힘을 가집니다.
“오, 신화급 아이템이라?”
난생처음 보는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이런 아이템이라면 못해도 수백억에서 수천억, 아니 어쩌면 그를 훨씬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세현은 재빨리 크리스탈에 손을 가져갔다.
“미안합니다, 사카린 씨. 그래도 산 사람은 먹고살아야죠.”
콰득, 콰드드득-!
손을 잡아당기자 크리스탈이 살점과 함께 천천히 뜯어졌다.
그때, 저 멀리서 신경질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허세현, 너 지금 뭐하냐?”
“어 왔냐? 그게 쓸 만한 아이템이 있는지 좀 보려고.”
세현은 화들짝 놀라 크리스탈을 급히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 천박한 새끼. 사람이 몇이 죽어 나갔는데 지금 아이템이나 뒤지고 있는 거냐?”
“아우 왜 욕을 하고 그러냐~ 대학 동기끼리 빈정 상하게.”
너스레를 떨자, 최은철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이런 잡종 새끼, 역시 급하다고 F급 새끼를 여기에 끼워 주면 안 됐어.”
“아우 욕을 찰지게 하시…….”
최은철의 모욕적인 발언에 세현이 한마디 따지려던 중.
푸욱-!
“커허허헉!”
은철의 검이 세현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심장을 정확히 꿰뚫렸으리라.
세현은 은철의 몸을 발로 힘껏 밀어내며 반대편으로 뛰었다.
“최은철 너 이 새끼! 무슨 짓이야!!!”
그리고 분노를 담아 외쳤다.
하지만 은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주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저놈을 포위하십쇼!”
“무슨 헛소리를…….”
이를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건 세현뿐인 모양이었다.
입주자들은 순식간에 세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진을 쳤다.
최은철은 가장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세현. 여기서 곱게 죽어라. 그러면 다른 동료들과 같이 영웅 취급이라도 해 줄게.”
“하……. 까고 있네 씨발,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는데?”
세현의 대꾸에 은철이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F급 입주자가 이곳을 클리어했다고 하면,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F급! F급이라 나를 죽이시겠다? 야, 그거 아냐? 나 이래 봬도 나 그 회차 클래스 복권 번호 하나씩 차이로 F급 된 사람이다? 내가 번호 하나씩만 높게 썼으면 나 SSS급이야, 니들 다 나한테 막 어, 절하고 빌고 그래야 돼 새끼들아.”
자신이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 F급 입주자라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에 헛웃음이 터졌다.
치가 떨렸다.
어렵게 아파트 입주 시험에 통과하고, 클래스 등급을 정하는 복권 하나에 번호 좀 잘못 적었다고 차별받고, 멸시당하다가 그 결말이 이렇게 죽는 거라니. 이번 활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씨발 그래, 들어와. 한 새끼는 저승길 동무로 같이 보내 줄 테니까.”
세현은 양손으로 검을 단단히 쥐었다.
공포로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를 감추기 위해 입으론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었다.
“죽여.”
“으아아아아!”
입주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세현은 상처 입은 몸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채 30초도 버티지 못했고 최은철이 날린 검에 목이 댕겅 잘려 버렸다.
‘아…….’
목이 잘려 허공으로 비행하던 중, 세현의 의식이 느려지더니 머릿속에 한 줄기 사념이 들려왔다.
[인간, 힘이 필요한가?]
‘힘! 그래, 힘 좋지! 그게 있으면 저런 새끼들도 한칼에 다 회쳐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내 힘을 사용해라.]
잠시 후, 눈앞에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그 한가운데 <크로노스의 정수>가 자신을 써 달라는 듯 번뜩이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정수…… 사용.”
세현의 잘린 목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한마디를 뱉었다.
[좋아, 인간. 내 힘을 네게 주도록 하마.]
그 즉시 세현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고 의식이 아득해졌다.
마치 따스한 물속에 잠긴 듯, 편안한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 †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모래시계! 모래시계를 노려!”
세현은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함성에 눈을 떴다.
그러자 작은 방에 자신이 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나 죽은 거 아니었나?>
“이것만 쓰러뜨리면 된다!”
“공격을 조심해!”
아래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떨궜다.
그곳에는 흰색 발등이 보였고, 인형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발등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프잖아 이것들아!>
그때마다 따끔따끔한 감각이 들었기에 세현은 발을 뒤로 당겼다가 그들을 있는 힘껏 차 버렸다.
콰아아아앙!
순간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인형들이 뒤로 날아갔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건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작은 방안에 수백 개의 인형이 자신을 둘러싸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또한 그들이 조금 전까지 세현에게 린치를 가했던 결사대원들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세현은 그제야 자신이 상황이 파악됐다.
<어……. 나 혹시, 보스 몬스터가 된 거냐?>
† † †
<죽어! 죽어 이 새끼들아!>
보스가 된 세현은 악에 받쳐 적들을 향한 공격을 쏟아 냈다.
벌써 서른이 넘는 입주자들이 세현의 낫과 발꿈치에 짓이겨졌다.
“모래시계만! 모래시계만 박살 내면 된다!”
“조금 전 보스보다 확실히 약하니까 겁먹지 마!”
<제기랄, 제기라아아아알! 왜 이렇게 약한 건데!>
하지만 보스가 된 세현의 HP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기세로 보건대 입주자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 HP가 바닥날 것이 뻔해 보였다.
최은철 하나만큼은 어떻게든 죽이고 싶었지만, 그것이 요원해지자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힘을 주려면 제대로 주라고 개자식아!>
그리고 그 분노는 세현에게 힘을 줬던 그 존재에게로 향했다.
전투가 이어지며 HP가 줄어가는 중, 힘을 줬던 존재가 세현의 외침에 대답했다.
[네가 가진 그릇이 너무 작아…… 이상의 힘을 낼 수 없다.]
<그릇? 그릇이라는 게 뭔데!>
[입주자들은…… 흔히 등급이라고 말하지. 네가 내 힘을 쓰기 전의 입주자는 훨씬 큰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내 이전 입주자가 있다고?>
[보지 않았나? 네가 크리스탈을 뽑아냈던 그 여자가 이전의 내 그릇 역할을 했지.]
‘사카린……. 사카린은 공략에 성공했던 거다!’
순간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등장했던 보스가 크로노스의 힘에 잠식된 사카린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보스 클리어에 성공했지만, 뭔가의 이유로 크로노스에게 육체를 잠식되어 스스로가 보스가 된 것이리라.
게다가 그녀는 입주자 중 S등급 클래스의 보유자다.
이 등급에 따라 힘이 강해진다면, 그동안 50층이 공략되지 않았던 것도 모두 설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