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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특전 비하인드 에피소드 일부 공개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1986년 여름, 니스
아침부터 부산하게 카페 안을 청소하던 마리안느 부인은 잠겨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열 시. 니스 근교에 있는 작은 찻집인 르 그릴온(Le Grillon)을 운영하는 그녀는 매일 9시만 되면 카페에 도착해 부산하게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곤 했다.
비교적 일찍 문을 열긴 했지만, 이 시간에 찻집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찻집 안에 얼 그레이 향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흘렀다. 카페 테이블에 앉아 홍차를 마시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카페의 창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약간 곱슬기가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특유의 햇살 때문에 이 근방의 사람들은 대부분 피부가 가무잡잡한 편에 속했는데, 그 속에서도 그녀는 창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새하얘서 그런지 눈에 확 띄었다.
시미에 타운에 낯선 영국인 부부가 이사 온 것은 며칠 전쯤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마리안느는 꽤 새된 영국 악센트의 발음에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휴양지라 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여기에 이사를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도 외국인 부부가. 마리안느가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서투른 프랑스어로 수줍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그 새댁이 그렇게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왜인지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녀는 반대편에 선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마리안느가 보고 있는 쪽을 등지고 있어서 그의 얼굴이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보기 드물게 까만 흑발의 머리카락이 인상 깊었다. 제법 키가 크고 체격이 있어 보이는 그의 남편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다루는 듯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눈길로 제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자, 그가 그녀의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더니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서로에게 흐르는 온화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리안느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 * *
“그게 뭐니, 피에르?”
마리안느는 제 아들이 쥐고 온 작은 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막 열한 살이 되는 피에르는 신나게 달려가 소파에 앉으면서 소리쳤다.
“얼마 전에 이사 온 영국인 누나가 준 과자에요.”
“얘기라도 나눴니?”
“네.”
그는 마리안느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신나게 상자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온갖 색깔의 젤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테이블 위에 흩뿌려진 색색의 젤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지나가듯 제 아들에게 물었다.
“영국 어디서 왔는지는 물어봤어?”
“런던에서요.”
피에르가 어떤 것을 먼저 먹을지 고민하면서 흘러가듯 말했다.
“제가 그 누나 동생이랑 닮아서 주는 거래요.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래요.”
그는 그중에서도 베이지 색상에 가까운 젤리 하나를 집더니 반쯤 깨물었다. 생각 없이 와그작 와그작 씹던 피에르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대로 젤리를 휴지에 그대로 뱉어냈다.
“윽. 이게 뭐야…… 후추 맛이잖아.”
“뭐? 후추 맛?”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해서 피에르가 반쯤 깨문 강낭콩 젤리의 나머지를 맛봤다. 세상에. 이런 젤리를 선물했단 말이야? 그녀는 그 새댁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괴짜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 * *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렸다. 방금 나간 손님의 찻잔을 정리하고 있던 마리안느는 고개를 들어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국인 여자였다. 어제와는 달리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올린 그녀가 마리안느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눈인사를 건넸다.
“마리안느 부인이시죠?”
“맞아요.”
“여기서 홍차를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근처의 찻집 중에서는 여기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더라구요.”
마리안느는 문가에 서 있지 말고 들어오라는 듯 그녀에게 눈짓했다. 조금 머뭇거리던 여자가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떤 종류의 홍차를 찾으시나요?”
“밀크티에 어울리는 것으로 찾고 있어요.”
그녀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조금 향이 강한 것을 추천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마리안느는 전시대에 포장된 홍차를 몇 개 짚으며 지나가듯 그녀에게 말했다.
“밀크티가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는 정말 좋죠.”
“맞아요.”
그녀가 왜인지 희미하게 웃으며 마리안느의 말에 동조했다.
“바쁘지 않으면 앉으시겠어요?”
그녀는 이 지역으로 새로 이사 온 이웃 주민에게 차 한잔 대접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여자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바 쪽 테이블에 앉았다. 종종걸음으로 바 안쪽으로 들어간 마리안느는 아쌈이나 얼 그레이가 블렌딩 된 여러 가지 홍차를 꺼내면서 밀크티 한잔을 준비했다. 곧 카페 전체에는 다즐링 향이 퍼졌다.
준비한 밀크티를 그녀에게 건네며 마리안느가 물었다.
“프랑스에는 처음이신가요?”
“네.”
마리안느는 그녀를 살폈다. 옷을 입은 차림새부터 영국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에 프랑스가 처음이라는 그녀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그럼 왜 하필 니스에 온 것일까.
마리안느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편하시다면 영어를 사용해도 좋아요.”
“그러신가요?”
약간 불명확한 발음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하던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녀는 그 이후로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마리안느는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두 사람 다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므로 둘의 대화는 이전보다 더 매끄러워졌다.
“런던에서 왔다면서요?”
“맞아요. 아드님께 들으신 건가요?”
“네. 꽤 재밌는…… 선물을 주셨더라구요.”
마리안느가 어제 피에르가 맛봤던 후추맛 젤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여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드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런던에서는 꽤 인기가 있어요. 드셔 보셨나요?”
“네.”
그녀의 대답에 여자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맛이었어요?”
“후추 맛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선방했다고 봐요. 구토맛이나 귀지맛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마리안느는 이 여자가 자기에게 농담을 거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구토 맛 젤리라니. 애초에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라도 한가? 그녀는 런던 사람들이 꽤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런던이라니, 꽤 멀리서 오셨네요.”
“바다가 있는 곳이 보고 싶어서요. 제가 해변 근처에서 자라서… 여기가 너무 친근하고 좋네요.”
그녀는 살짝 말을 멈추고는 눈을 내리깔며 밀크티를 한 잔 마셨다.
“여기는 지중해가 보여서 그런지 제가 살았던 곳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 들긴 해요.”
마리안느는 아주 드물게 여기까지 찾아오는 낯선 이들이 불운한 과거나 밝히기 싫은 비밀 하나쯤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딱히 이를 알고 싶어 한 적도 없었다. 사정 하나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 그녀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유별 날 만한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리안느는 이 여자에 대해서는 흥미와 호기심이 동하는 것이었다. 어디를 봐도 멀쩡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여기까지 이사를 온 이유가 무엇일까.
============================ 작품 후기 ============================
- 비하인드 스토리에 관한 김90의 이야기 ;)
저는 리들로웨나의 가장 궁극적은 끝은, 리들이 결국 로웨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었을 때,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겠지요. 로웨나도 리들도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제가 본편 완결을 시리 로웨나가 아니라 리들 로웨나를 이어준 것은 그 점이 너무 안타까워서이기도 했어요.
시리 로웨나는 어쩌면 정말로 완성된 사랑의 형태일지 모릅니다. 두 사람은 버려야 할 것이 없어요. 가지고 있는 것을 모조리 쥐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리들 로웨나는 아닙니다. 리들에게도 로웨나에게도,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베어내고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건 함께한다는 행복 이면의 고통일 것 같아요.
완결 직후의 이야기에 대해 제가 말을 아꼈던 것은 여러분이 로웨나와 리들을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게 보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두 사람이 거쳐가야 할 가시밭길이 너무 잘 보였거든요. (암울) 시리와 로웨나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 외부적인 장애를 함께 해쳐나간다면, 리들과 로웨나는 서로 함께하기 위해서 ‘내면의 고통’을 무수히 겪어나가야 할 거에요. 리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을 부정하고, 바꿔야 할 테고 로웨나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리들을 향한 자신의 애정과 신뢰가 흔들리는 경험을 계속 하게 될겁니다. 싸우기도 엄청 싸울거구요.
저는 ‘변화’라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자신의 본질마저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은요. 그 과정도 아주 힘겨울 거구요. 왜 어중간하게 여기에서 끝 맺냐, 무슨 완결이 이러느냐는 비난을 감수하고도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완결을 지어버렸던 것은 두 사람이 그런 괴로움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시겠죠, 결국은 이렇게 다 극복하고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겠지 뭐^_^! 개인지 외전을 이걸로 공개할 예정은 없어서, 이 이야기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비하인드 썰이 이렇게나마 밝혀지게 됐네요^^; (사실 개인지 작업 후 이 회차는 삭제될 수도 있어요!)
- 저기서 끊으니 무엇인가 스릴러 추리처럼 느껴지지만ㅎㅎ 내용은 달달 평온이에요.
-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개인지의 모든 외전들은 온전히 독자 주의적 결말, 사심가득 에피소드가 될 거에요. 시리 루트 엔딩은 시리 루트 지지자로서의 제가 독자 입장에서 쓰는 엔딩에 가깝다고밖에 말씀드릴 게 없네요ㅎㅎ 이정도로면 충분히 힌트가 되었을까요?
- 개인지 외전(2)는 블로그를 통해 공개합니다.(전체공개니 서이 신청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 외전의 차분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호그와트 하이틴 로맨스라 같이 올리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리들 질투’외전이에요...후...ㅋㅋㅋㅋ
- 사실 이것저것 생각해 둔 비하인드 외전 시놉은 더 있습니다. 그래서 더 괜찮은 걸 완성하면 이건 블로그 서로이웃 공개로 돌리고 다른 게 실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 시놉을 글로 옮길 시간이 있을까...?
- 개인지에 관련된 공지는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구매 의사와 상관없이 여기까지 애정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책에 관한 모든 사항은 블로그를 통해서만 공개됩니다. 개인지 작업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이 있어 제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서 한 번도 전하지 못한 한마디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총총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