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12화 (1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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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특전 시리루트 엔딩 일부공개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Hidden Part 7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시리우스에게 쏠렸다. 교수님들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으나, 도리어 정신은 맑아졌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덤블도어 교수님이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그의 푸른 눈동자가 꿰뚫기라도 할 듯 시리우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있는 그대로, 여기 있는 톰 리들 교수가 볼드모트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건너편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은 제임스가 흘러내린 안경테를 들어 올리며 시리우스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쟤, 정신 나갔냐?” 제임스가 입만 뻥긋거리며 리무스에게 물었다. 그는 시리우스가 새로운 종류의 장난이라도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 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로웨나에게, 이를 폭로할 경우 가족들은 물론 본인의 목숨도 없을 거라고 협박해왔습니다.”

“블랙, 농담치고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맥고나걸 교수님의 반응도 제임스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시리우스가 조금 과도한 수준의 농담이라도 해서 교수들을 당황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당장에 그리핀도르 기숙사 점수라도 깎을 기세였다.

“농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리우스의 은회안은 시종일관 리들 교수에게 꽂혀 있었다. 시리우스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은 온전히 리들 교수에게 향해 있었지만, 리들 교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엷게 불쾌감을 표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리들 교수의 가장된 표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리들 교수가 지금 당장에라도 지팡이를 뽑아들고 시리우스에게 살인주문을 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연회장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깥에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연회장을 비추고 있던 등이 꺼졌다. 깜짝 놀란 일부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천장 근처에 달린 창문으로 쏠렸다. 나와 시리우스 또한 그쪽을 바라보았다. 페어리들이 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천장을 밝히고 있던 촛불에서 미미하게 흔들리던 불빛마저 사라졌다. 순식간에 연회장 전체가 어두컴컴해졌다.

“맙소사.”

슬러그혼 교수님이 낮게 신음 소리를 냈다.

“누가 저기에 페어리를 풀어놓은 거지?”

마법 능력을 가진 페어리들이 연회장 불을 끈 것 같았다. 그들은 불빛을 싫어하니까. 반짝이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다니던 페어리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시끄럽게 천장 근처에 돌았다. 아래쪽에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한 페어리 몇몇이 학생들에게 가벼운 마법을 걸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루모스로 주변을 밝히려던 일부 학생들은 그대로 지팡이를 페어리에게 빼앗겼다. 페어리 하나가 깔깔거리며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더니 어린 슬리데린 학생의 머리카락을 날개 모양으로 변신시켰다. 깜짝 놀란 그가 소리를 지르자 옆에 있던 페어리들이 웃음소리를 내며 주변을 돌았다. 그와 동시에 후플푸프 몇 명이 공중에 띄워졌다. 지팡이를 빼앗긴 학생들이 허공에서 손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래번클로 쪽 페어리들은 테이블에 길게 깔려 있던 접시를 모조리 깨고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온 연회장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골치 아프다는 듯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꾸나.”

그녀는 그대로 지팡이를 휘둘러 일단 허공에 반쯤 떠있는 후플푸프 학생을 무사히 바닥으로 착지시켰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자연스럽게 주문을 외워 연회장의 꺼진 등을 다시 켰다. 페어리들이 사납게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든 학생들의 관심은 천장을 채운 페어리 떼에 쏠렸다. 연회장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사이, 나는 시리우스를 데리고 단상을 내려갔다. 교수석 쪽에 서 있던 리들 교수가 내 쪽을 싸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꿰뚫는 듯한 그의 차가운 시선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추후에 내려질 처벌에 대한 일종의 예고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그대로 시리우스에게 저주를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에게,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

나는 말없이 연회장 홀 바깥으로 나왔다. 시리우스는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인적이 드문 복도 구석에 서서 시리우스와 마주한 순간, 나는 급격하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반쯤 분노에 차 한마디 내뱉어냈다.

“시리우스는 너무 이기적이에요.”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지만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시리우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해왔다. 마치 내 모든 노력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그는 나에게 언질도 없이 일을 쳤다. 내가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나.

“당신 제멋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죠?”

“로웨나.”

“앞으로.”

잇새 사이로 울컥 울음기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나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했다.

“다시는 이러지 마요.”

“나에게도 말 할 기회를 줘.”

시리우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리들 교수는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이대로 두었으면 너는 분명 읽혔을 거야. 그러는 것보다는 먼저 이를 밝히는 것이 나아.”

시리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 없다는 거 알잖아.”

“그러다가 시리우스가 살해당하기라도 하면요?”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매를 굳힌 채 반쯤 독기에 찬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혼자 죄책감에 어떻게 견디라고 그렇게 행동해요?”

그렇게 내지르듯 말하고도 나는 급격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말로 시리우스가 나 때문에 죽기라도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평생 괴로워할지도 몰랐다. 연회장에서 나를 응시하던 리들 교수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시리우스가 정말 어떻게 될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웠다.

시리우스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대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게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왜인지 울컥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나한테 말도 없이 무모하게…….”

나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울음을 겨우 삼켰다. 나를 품 안에 가둔 시리우스가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 조금만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주면 안 될까?”

“…….”

나는 그의 품에서 겨우 감정을 내리눌렀다. 내가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순간 이렇게 안고 있다가 리들 교수에게라도 들키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그의 품에서 나왔다. 폭풍우처럼 두려움과 분노, 슬픔이 한데 뒤섞여서 몰아치고 있었으나 나는 이를 삼키려 애썼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당장의 감정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거였다.

“너에게 먼저 말했더라면, 분명히 리들 교수가 알았을 거야. 그는 레질리먼시를 할 줄 아니까. 너를 먼저 읽고 상황을 파악했을 테지. 그래서 너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 거고.”

“…….”

“로웨나. 리들 교수는 내가 자신을 볼드모트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아. 나는 절대 그가 자신의 가면을 제 손으로 벗지 않으리라고 믿어.”

아직도 내 속에서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나, 나는 시리우스의 차분한 은회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말이 일정 정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무엇인가를 결정했고, 나는 앞으로도 시리우스가 그렇게 행동할까 봐 두려웠다. 그가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결단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건 시리우스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ㅡ 나라고 다른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단지 그것의 위험요소를 충분히 고려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 것뿐이었다.

이제 두렵기만 했다. 이대로 시리우스는 또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할 것인가. 나는 그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한다. 과연 내가 이를 견딜 수 있을까? 아니. 그라면 분명, 나를 위해 어디든 기꺼이 뛰어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이 깊고 어두운 늪에 시리우스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시리우스.”

나는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려 애쓰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당신이 하는 말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나에게도 덤블도어 교수님께 말한다는 선택지는 있었어요. 하지만 위험성이 너무 커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뿐이에요.”

“로웨나, 그래도…….”

“저는 당신이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길 바라요.”

시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시리우스가 내 말에 또다시 상처 입고 슬퍼하리라는 것을 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를 거절하고 또 밀어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 또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우울해 하리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시리우스와 거리를 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명료하고 분명해야 한다. 이것은 시리우스가 내 옆에 있고 싶어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당신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요.”

그가 내 팔을 잡아채며 나를 한 번 불렀다. 나는 최대한 싸늘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손, 놔요.”

내 결연한 어조에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그대로 손의 힘을 풀었다. 나는 시리우스와 시선을 마주하며 똑바로 말했다.

“당신이 뭔가 해결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시리우스가 여기에 끼어들어 봤자 문제를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뿐이에요.”

나는 시리우스의 은회안에서 깊은 상처와 슬픔을 읽었다. 내가 거부할 때마다 그는 저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마음이 약해졌다.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 제자리걸음은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 일에 대해 뭔가 낌새를 차리게 된다면.”

내가 말했다.

“저는 시리우스를 정말로 증오하게 될지도 몰라요.”

“로웨나.”

“제 일에는 멋대로 끼어들지 마세요. 이제 화를 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아는 척도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나는 그렇게 날카롭게 한마디 던지고 뒤를 돌았다.

(...)

* * *

(...)

* * *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다가 설핏 잠에 들었다.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침이 오자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이불을 뒤집어쓴 상태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그러나 아주 선연한 현실감각이 나를 삼켰다. 억지로 샤워를 하고 교복을 껴입으면서도 나는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바로 그 앞에서 밝혔다. 이것은 악몽보다도 더한 현실이었다. 뛰쳐나갈 출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반쯤 질린 채로 나는 겨우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선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가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대로 기절해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겨우 걸어 대연회장에 도착했다. 교수 테이블에는 평소보다 느지막한 시간까지 리들 교수가 앉아 있었다. 나는 더욱이 불안해졌다.

래번클로 테이블에는 아이작이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었다. 나는 반대편에 자리 잡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야.”

전혀 좋지는 않지만. 내 인사에 고개를 든 아이작이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중얼거렸다.

“로웨나, 너 또 예언자 일보에 실렸구나.”

“예언자 일보에?”

이를 전하면서도 아이작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다. 나는 아이작이 읽고 있는 예언자 일보의 타이틀을 한 번 훔쳐보았다. 《블랙이기를 포기한 블랙과 셀윈을 받아들인 셀윈의 위험한 고발》. 예언자 일보가 자극적인 타이틀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기사 제목이 너무 의미심장했다. 나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서 예언자 일보를 건네받아 천천히 기사를 읽어내렸다. 나와 시리우스가 덤블도어 교수님 앞에서 리들 교수의 정체를 밝힌 사실이 그대로 기사화되어 있었다. 절로 내 표정이 굳었다.

“대체 이게 왜 실린 거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신문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제 슬리데린 몇 명과 인터뷰를 했대. 페어리 떼 사건 때문에.”

너도 알고 있잖아, 오그 씨가 슬러그혼 교수님의 마법약 약재로 쓰려던 페어리 떼들을 잘못 풀어놓은 거. 아이작이 덧붙였다. 나는 학생 두엇 정도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렇게 자세히 관심을 쏟지는 않았다.

“그거 때문에 어제 기자들이 왔다 갔어. 요즘 예언자 일보에서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흠집 내려고 안달이 나 있거든. 명성을 깎아내리는 사건이 생기기만 하기를 바란단 말이야. 그 와중에 너랑 블랙 얘길 들었나 봐.”

예언자 일보 기자들에게 셀윈 가의 후계와 블랙가의 탕아가 호그와트 교수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언자 일보에 실릴 만큼 일이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더욱 두려워졌다. 제발, 표정 관리를 해.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교직원 테이블에 앉아 있는 리들 교수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작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고개를 휘저을 뿐이었다.

(...)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연회장 문 앞에서 시리우스와 마주쳤다. 사실 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계속 시리우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리들 교수가 있는 자리인 데다가, 더 이상 그와 연관되는 것은 피해야했다. 쭉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 그는 내 앞에까지 와서 말을 건넸다.

“로웨나.”

“죄송한데 말 안 거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차가울 정도로 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가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할 수 있는 한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옆에 있던 아이작이 조금 놀라서 나에게 물었다.

“블랙이랑 화해한 거 아니었어?”

“전혀. 어제 시리우스 블랙이 한 짓을 보면 모르겠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나는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고 더 빨리 걸었다. 아이작은 내 날선 어조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은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연회장을 나오면서 나는 괜히 교수테이블 쪽에 앉아 있는 리들 교수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눈동자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돌려 나왔다.

* * *

나는 분명 리들 교수가 나를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심지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시간에도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수업이 끝난 후 그는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욱이 리들 교수에게 찾아가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그와 만나 담판을 지어야 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일은 커질 대로 커졌다. 나는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못하는 꼴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

* * *

(...)

* * *

시리우스는 어느 때든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개의 모습으로 내 옆을 지켰다. 내가 화를 내든 말든, 그건 그에게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맞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멍청했던 나는 그것을, 시리우스를 잃을 뻔한 상황에 닥쳐서야 깨달았다.

시리우스가 피투성이가 된 채 호그스미드에서 발견되었다.

* * *

(...)

“당신이죠.”

“뭐?”

리들교수의 양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나는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시리우스를 저렇게 만든 건 당신이잖아요.”

“왜.”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에게 와서 그 이유를 찾는 거지.”

“그럼 당신이 아닌 누가 시리우스를 공격했단 말인가요?”

본인이 직접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수하를 이용했을 수도 있겠지. 어떤 방법이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계속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로 발생하자, 이제 나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분노감을 터뜨렸다.

“대체 어디까지 날 괴롭힐 건가요?”

리들 교수의 입매가 드러나게 굳었다.

“왜 항상 그런 비겁한 짓을 저지르는 거죠? 차라리 저를 벌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싸해졌다.

(...)

“이게 단지 경고일 뿐인 걸 알고 있겠지.”

나를 벽에 밀쳐낸 리들 교수가 코앞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한 마디 한 마디 씹어내듯 내뱉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떨렸다. 이것이 그에 대한 공포인지, 극도의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속에서부터 거친 감정이 급류가 되어 밀려나오듯 쏟아졌다.

“알아둬라.”

그의 눈동자에 미묘하게 낮은 기운이 흘렀다. 나는 이제 그것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워졌다.

“앞으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경고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알아차렸다. 이 자와 시리우스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가 시리우스를 살려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가 말했듯 이것은 경고일 뿐이다. 그는 시리우스를 빌미로 나에게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시리우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눈물만 나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정말로.

(...)

* * *

(...)

* * *

(...)

“리들 선배가 저를 일방적으로 내쫓으신 거에요.”

키이라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눈길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제가 딱히 얘한테 불법적인 행동을 한 건 아니잖아요?”

“키이라.”

덤블도어 교수님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마법부의 불법행위를 탓하기 위해서 너를 부른 것이 아니란다.”

“그럼 뭐죠?”

“그게 죽음을 먹는 자들의 소행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만.”

덤블도어 교수님이 지팡이를 한 번 휘둘렀다. 흘러내리듯 펼쳐져 있던 양피지가 소리를 내며 스스로 감겼다. 그가 제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며 키아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호그와트에 왜 디멘터가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마법부 차원에서도 아직 밝혀진 게 없는 게 확실한 건지 묻고 싶구나.”

(...)

* * *

(...)

* * *

(...)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리들 교수에게 지팡이를 겨누지 못했다.

새까만 디멘터들이 하늘을 갈라 채웠다. 별빛조차 숨은 어두운 밤이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거대한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억눌리지 않고 그대로 방출된 힘이 그를 중심으로 돌며 거센 기류가 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장이 리들 교수의 주변에 형성되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위압감이 차갑게 주위를 잠식했다.

그의 지팡이에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마법을 품어낼 듯이 초록빛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가지고 있는 모든 기운이 폭발하듯 리들 교수에게서 위협적인 마력의 폭풍이 불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불어 오르는 바람에 흩날렸다. 새까맣다 못해 푸른끼가 도는 망토의 끝이 거세게 요동쳤다. 마침내 리들 교수가 제 힘을, 제 정체를 온전히 드러냈으나 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경악과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포에 마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고 부르는지 이제야 알았다.

리들 교수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능력은 그의 일부에 불과했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잃는다면,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그가 폭발해내는 힘에 그대로 휩쓸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리들 교수가 어느 때보다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비켜.”

그의 안광에서는 붉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강렬한 위압감을 나를 옭아맸다. 그가 손 하나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흔적도 없이 저 속에 삼켜질 것이다. 마법사로서의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확고한 예감이 나를 뒤덮었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절대적인 힘이 나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쥔 손이 덜덜 떨려왔다. 온몸이 저기에 굴복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나는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협당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나는 절대 그에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싫어요.”

리들 교수의 차가운 눈이 천천히 나를 훑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내 시야에는 리들 교수 단 한 사람만이 보였다. 냉혹한 그의 시선과 내 눈빛이 날카롭게 얽혀 들어갔다.

악문 잇새 사이로 피맛이 아릿하게 올라왔다. 내가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여길 지나가려면…”

손에서부터 흘러나온 떨림은 어느새 몸 전체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말을 하는 것인지 떨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나를 넘어뜨리고 가요.”

디멘터들이 아래로 내려오며, 주변이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저 검은 흑안에 일렁이는 것이 무엇인지 읽을 수 없었다.

리들 교수가 그대로 지팡이를 들었다.

“아바다 케다브라.”

그의 지팡이에서 초록색 불빛이 섬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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