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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특전 리들 외전 일부 공개
로웨나 블루로즈
Riddle Side
김아흔
새벽녘의 짙은 어둠이 집안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초상화들조차 꾸벅 졸고 있는 깊은 밤이었다. 그리몰드 저택의 천장에 달린 등에서 흘러나온 희끄무레한 불빛이 복도를 지나가는 한 남자의 그림자를 긴 자취로 남겼다. 머리끝까지 두건을 쓴 그는 천천히 복도를 걷다가, 마침내 복도 끝에 있는 방 앞에 섰다. 굳건하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방 안에는 그와 같은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열댓 여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테이블을 따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손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열린 문을 닫은 남자는 서늘한 시선으로 참석자들을 한 번 훑었다. 자신들을 지배하는 주인의 등장에 그 자리에 앉은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 두건을 쓰지 않은 자는 펜리 그레이백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죽음을 먹는 자들 중 하나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고 있었으며, 정체를 드러내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남자, 톰 리들이 자리에 앉으며 그의 긴 망토 자락이 의자 아래로 펄럭였다. 시린 무게감이 공간 전체에 실렸다. 그들은 제 주인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기다리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포이는 오늘 참석하지 않았군.”
리들이 마침내 입을 열자, 그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오리온 블랙이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노르웨이에 있습니다. 얼마 전 녹턴 앨리에서 거래한 어둠의 마법 물품에 관한 일로 그쪽 마법부에 소환되었다고 하더군요.”
“언제 영국으로 돌아오지?”
“3일 뒤입니다.”
“그럼 ‘브로드 월’건은 그 이후로 미뤄둬. 말포이가 있어야 할 테니까.”
그의 말에 오리온 블랙이 시선을 깔며 복종이 의사를 보였다. 그 후 리들은 그간 ‘죽음을 먹는 자’들의 행적에 관한 간단한 보고를 받았다. 대부분은 공격에 참여한 이들과 그 결과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는 적절히 건너뛰며 그는 필요한 부분에 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을 요구했다. 실제로 리들이 이 모든 것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틀만 들어도 상황을 짐작하고 허점을 찾아냈다.
보고의 주제는 순수혈통 가문에 관한 것으로 옮겨졌다. 근래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순수혈통 가문의 파벌 형성에 관한 것이었다. 가문 자체가 가지는 권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내에서도 꽤 중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순수혈통 가문들은 최근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분파되어 가고 있었는데, 크게는 ‘죽음을 먹는 자’에 동조하는 가문과 그렇지 않은 가문, 그리고 중립을 지키고 있는 가문으로 나뉘어 그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들은 제 행보에 반하는 가문을 설득하거나 회유하기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직 그는 그들의 방향을 바꾸도록 종용할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쓸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을 오히려 자신의 기반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애초에 리들은 어떠한 방식을 취한들 모두를 굴복시킬 완벽한 길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자에게 뱀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치 동물의 본성을 조련하듯, 힘의 논리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고 그들을 조정하거나 세력을 약화시키는 정도로 충분했다.
오리온 블랙이 하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리들이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물었다.
“본즈 가는?”
“여전합니다.”
“위즐리나 프레웨트도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이더군.”
그가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그린그래스는 어떤가?”
“글쎄요…… 그 가문은 원체 외부와 그다지 접촉이 없는 가문이라. 순수혈통들의 모임에도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럼 이 건은 노트에게 맡기도록 하지. 얼마 전에 그린그래스가의 가주가 WWN(Wizarding Wireless Network)쪽에 관심을 보였던 것 같으니까.”
리들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일종의 라디오처럼 사용되는 채널인 WWN을 언급하며 고갯짓으로 노트를 가리켰다. 말없이 앉아있던 노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로드 볼드모트.”
순혈 가문에 관한 사항이 대충 정리되자, 오리온 블랙이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생포한 친머글주의 마법사 ‘오르테스 쿠퍼’는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차분한 어조로 리들이 말했다.
“죽이든가, 고문하든가. 되도록 눈에 띄는 방식을 택하도록 해. 마법사들이 두고두고 떠들어댈 수 있을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군.”
“네?”
“머글 잡종 같은 치들이 겁에 질릴 만한 어떤 짓이든 허용한다. 하지만 거기에 흔적을 남겨. 우리가 한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그가 말을 이었다.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말포이와 상의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대충 블랙이 보고해야 할 것들이 끝난 듯하자, 리들이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우리를 상징하는 표식을 만들어야 할 것 같군.”
“표식이요?”
“그래.”
리들이 지팡이를 휘둘러 공중에 거대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만들어진 불꽃이 남긴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초록색 해골과 뱀의 모습을 드러냈다. 음산해 보이는 해골이 뱀을 토해내는 듯한 형상이었다.
“이런 형태였으면 좋겠는데.”
그는 앉아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개중에는 라바스탄 레스트랭이 환영 마법에 능하다는 사실을 리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 전체를 훑던 리들의 시선이 라바스탄에게 꽂혔다.
“레스트랭. 이건 네가 맡도록 하지. 되도록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라.”
알겠나? 리들의 말에 레스트랭이 순종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샤베인 악슬리.”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리들이 말했다.
“네가 오러국의 에드가 본즈에게 꼬리를 밟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급습이 있었습니다. 분명 당시 오러 국에서 출동하리라는 정보도 없었을뿐더러…….”
“그게 네 멍청한 실수를 만회하는 변명처럼 들리지는 않는군.”
리들이 차갑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던 리들은 그대로 손을 들었다. 심지어 지팡이를 쥐지도 않은 채, 그는 손짓 하나만으로 저주 주문을 시전했다.
악슬리가 뱉어내는 비명소리가 고요했던 방 안을 채웠다.
분명 무언 주문이었으나 악슬리에게 내려진 저주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그들의 지배자가 하는 행동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평소보다도 더 오랜 시간 고문 저주를 운용하면서도 그는 표정변화 하나 없었다. 어떠한 자비의 여지조차 느껴지지 않는 엄격하고 잔혹한 태도였다. 마침내 비명을 지르던 악슬리가 완전히 정신을 잃자, 한쪽 손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리들은 자신이 걸었던 저주를 해제했다.
이를 지켜보는 그 누구도 입 하나 뻥긋하지 못했다. 그의 처벌이 과도한 처사라고 말 한마디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바닥에 쓰러진 악슬리를 일으켜 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들의 주인이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기 앉은 누구라도 알았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회동에 지속적으로 참석하지는 못할 거다.”
리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모든 일에 관한 직접적인 지시사항은 블랙을 통하도록 하지. 각자 행동을 조심하도록.”
모든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리들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고요한 방 한 가운데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 * *
리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연회장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다지 쓸모있는 마법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은 앳된 어린 얼굴들이 그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의 시선에 익숙한 그는 겸손한 척 검고 짙은 눈 안에 제 감정을 자연스레 숨겼다. 그가 호그와트 교수로서 모습을 드러낸 첫날이었다.
리들은 주변인을 다루기 위해 자신의 수려한 외모를 곧잘 이용했으나, 볼드모트로서의 자신에 있어 외양적 요소가 치명적인 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을 복종시켜 저를 따르게 만들려면, 로드 볼드모트는 젊다 못해 그의 추종자들에 비해 훨씬 어려 보이기까지 하는 톰 리들이 아니라, 잔혹하고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여야 했다. 그 마법사가 심지어 베일에 가려 있다면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그들의 경외감과 공포는 더욱이 극대화될 수 있으리라. 그는 자연스럽게 제 얼굴을 감추고, 정체를 숨긴 채 어둠의 지배자로서의 볼드모트를 만들어냈다. 그건 리들의 본디 인격과 흡사하면서도 달랐다. 리들은 필요에 따라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하기도 했고, 최대한 절제하기도 했다. 이는 꽤 정교하고도 미묘한 작업이었으나, 리들은 ‘톰 리들’로서의 그에 있어 그랬듯, 자연스럽게 거짓을 가장할 줄 알았다.
그리고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가 볼드모트라는 사실을 꿈에조차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저기 서 있는 알버스 덤블도어까지도. 그는 길게 흘러내린 덤블도어 교수의 백발 끝에 시선을 두었다. 이번 학년 호그와트 성 내에서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대해 설명을 마친 덤블도어는 이제 막 리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담당으로 새로 부임한 톰 마볼로 리들 교수님입니다.”
리들은 힘이 필요했다. 마법사로서의 우월한 마력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강대함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그는 항상 더 높은 곳에 있기를 원했으며,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이용한다면 제가 더 빠른 시간 내에 정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본연적으로 가지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은 그들은 쉬이 예측할 수조차 없는 지배적이고 강한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이해했다.
리들은 자신의 망토를 정리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리들 교수, 나와서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좋겠군요.”
시선을 돌린 덤블도어가 그에게 살짝 고갯짓했다. 리들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덤블도어의 아래에 있다는 위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리들이 다시금 호그와트에 돌아온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서는 힘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미스테리부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호그와트에 재학할 때는 당연시하게 생각해왔던 호그와트 성의 다양한 마법적 장치들이 심대한 고대 마법에 기반한 것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분명 호그와트의 창립자들은 그들의 힘 일부를 분명 성안에 숨겨놓았으리라 여겼다.
“반갑습니다. 올해부터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게 된 톰 마볼로 리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들이 조용히 묵례하며 인사했다. 학생들의 긴 박수 소리가 그를 환영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이제 어느 정도는 위계와 기반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그의 직접적이고 세부적인 지시 없이도 충분히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얼마 없는 심복 중 하나인 오리온 블랙은 그의 대행업무를 진행할 정도의 충분한 저력을 갖췄다. 그러므로 리들은 짧으면 일 년, 길면 삼 년 정도의 기간 동안 호그와트에 돌아오면 반드시 풀어보리라 생각했던 수많은 수수께끼에 손을 댈 생각이었다.
리들은 알버스 덤블도어가 굳이 호그와트에 남기를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여겼다. 리들은 그가 결코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나 선의로 호그와트를 지킨다고 보지 않았다. 분명 거기에는, 그가 갈망하는 힘과 연계되는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그리하여 리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서 호그와트에 재직하기로 결정했다. 호그와트에 교수직을 겸임함으로써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덤블도어에게 자신의 행적을 들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위기 상황에서조차도 흔들리지 않고 이를 기회를 만들 정도의 냉정한 사고방식과 결단력을 갖췄다. 자신이 볼드모트라고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하에야, 그의 신변을 위협할 것은 없었다. 리들은 길면 삼여 년이 될 수 있는 교수 생활 동안의 정교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고, 리들은 이 기회를 통해 오히려 덤블도어가 저를 신뢰하리라 여겼다. 리들이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이면, 제 발로 덤블도어의 아래에 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할 테니까.
* * *
4학년 래번클로와 슬리데린의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온 리들은 무표정하게 복도를 걸었다.
리들은 가르치는 행위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으며, 인생 전반에 있어 그것이 주가 된 적도 없었다. 물론 호그와트를 다니고 있을 때, 그와 친해지겠다는 빌미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학생들은 많았다. 리들은 친절한 태도를 취하며 그들의 단발적인 질문에 대답해주곤 했으나, 그것이 가르침, 즉 명확한 의도에 바탕하여 지도한 것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어둠의 마왕이라 불리며 자신의 세력을 어느 정도 집결시킨 후에도, 그는 따로 누군가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구심점이 되는 지배자가 가르치는 행위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리들에게 다른 모든 일이 그러했듯, 가르치는 것이 딱히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어떤 일에든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아도 기본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보이곤 했다.
“오, 리들 교수님이시군요.”
그때, 건너편 복도를 통해 걸어오던 여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스프라우트 교수님.”
리들은 단정한 태도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호감어린 눈빛을 드러내던 스프라우트 교수가 리들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적응은 잘 되고 있나요, 리들 교수님?”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그저 바쁠 뿐이군요.”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려운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포모나 스프라우트는 리들의 2년 선배였다. 그 당시 후플푸프인 스프라우트와 슬리데린인 리들은 딱히 접점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것에는 단순히 같은 학교 교수로서의 동질의식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호감과 애정에 익숙했고, 어떻게 하면 이를 제가 이용할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드러내는 강한 관심을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리들은 유용성에 관한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마음을 드러내는 여자들을 분명하게 내치지 않았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리들에게 이것저것 교수법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호그와트에 부임한 지 오 년여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많은 경력을 쌓은 사람인 것처럼 굴었으나 리들은 굳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녀의 교수법에 배울만한 점이 많다고 동조해줄 뿐이었다. 곧 리들은 자신의 연구실에 도착했고,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그녀를 지극히 예의 바른 태도로 거절했다.
* * *
그는 장기적으로는 마법부를 탈환하고 마법 세계 자체를 제 손안에 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리들이 호그와트에 온 이유에는 분명, 가능성 있는 이들을 선별하여 자신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도록 회유하고, 저를 적대할 기미가 보이는 이들을 미리 제거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리들이 호그와트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재학생들의 수준이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이었다. 어리다는 점을 감안한다하더라도 리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답이 없을 만큼 덜떨어지게 느껴졌다.
호그와트는 영국 뿐만 아니라 마법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학교였다. 이런 명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준조차도 이 정도에 불과하단 말인가. 한 분야의 타고난 천재들이 으레 그렇듯, 리들은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범인의 속에서 꾸준히 그들의 몰이해를 ‘이해하는 척’해오고 있었으나, 오히려 리들에게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수하였다면, 저주나 고문 마법을 몇 방 날려, 세상에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손수 체감시켜줄 수 있었다. 하지만 톰 리들으로서 그는,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지 파악해야만 했다. 그는 심지어, O.W.L.를 통과한 학생들 중에서도 Jinx와 Hex의 차이를 모르는 학생이 태반이라는 점에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호그와트에 교수직으로 재직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학생들을 더 우수한 마법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해진 커리큘럼 내에서 필요한 것들만 전달하면서도 학생들을 분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키우면 제법 쓸만하겠다 싶은 가능성 있는 이들을 따로 선별하긴 했으나,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접촉하지는 않았다.
더해 리들은 학생들의 과제 검사에도 그렇게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과제는 리들에게 있어 단지 평가해야 할 서류 더미에 다름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계적으로 양피지를 한 장 한 장씩 넘기던 리들의 손길이 살짝 기울어진 필기체로 적힌 양피지에 이르러 잠시 멈추었다. 어둠의 마법을 사용했을 때 이루어지는 육체의 파괴. 그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더미 속에서 이를 꺼냈다. 로웨나 블루로즈. 그는 래번클로 4학년 학생 하나를 기억했다. 항상 교실 다섯 번째 줄 쯤 자리에서 본즈와 함께 앉아 있던 여학생이었다.
제법인데. 그는 다른 이들의 것에 비해 눈에 띄게 이해도가 높은 그녀의 과제를 읽으며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둠의 마법이 영혼을 파괴한다는, 낭설인지 아닌지 모를 모호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해대는 와중에도, 그녀는 어둠의 마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실적인 부작용에 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의 근본 원리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실례까지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작 4학년이 작성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우수한 축에 속했다.
블루로즈라. 제가 들었던 순혈의 가문들 중 블루로즈는 없었다. 어딘가의 혼혈인가. 리들은 스쳐 지나가듯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양피지를 대충 훑어내려 갔다.
* * *
리들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호그와트에 숨어있는 고대마법을 알아내는 것에 시간을 쏟았다. 호그와트 성과 같이 거대한 공간에 광범위한 방어마법을 걸고, 순간이동을 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마력의 장을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호그와트 창립자들이 리들보다 훨씬 월등한 마력을 지녀서는 아닐 것이다. 서기 천 년, 호그와트 설립 시기를 전후로 유독 강력한 마법사들이 많이 나왔을 리 없었다. 리들은 그 시대에 지금보다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마법적 장치나, 강화 주문이 일반적이었으리라 추측했다. 직후 발생한 거인 전쟁이나 청의 마법사 과정을 지나면서 이러한 유물들이 소실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호그와트가 설립된 직후가 마법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라는 것이었다. 리들은 특히 11세기를 전후해 발간된 고서를 찾아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호그와트 도서관은 리들이 호그와트 재직을 결정한 다양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머글 세계에 비해 문헌류 자체가 부족한 마법 세계에서, 호그와트 도서관은 어떤 다른 곳과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양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리들은 각종 고본(古本)에서 호그와트 재학 시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양한 고대 마법이나 저주에 대해서도 새롭게 발견해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익숙한 얼굴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한 번 본 얼굴이라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가 수업 시간에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 로웨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과제를 통해서였지만, 리들은 오히려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로웨나에게 더욱 익숙해졌다.
리들은 열람실을 지나가며 양피지에 시선을 고정한 로웨나를 스치듯 바라보았다. 보통 저렇게 리들이 근처에 걸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책에 몰두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모든 노력이 결과로 보답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우수한 결과에는 상당한 투자가 뒷받침되는 법이다. 그녀에게로 향한 눈길을 돌리며, 리들은 로웨나의 과제의 완성도가 유독 높은 이유를 짐작했다.
그는 4학년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커리큘럼에 맞게 적당한 수준의 과제를 꾸준히 내주고 있었다. 과제를 통해 학생들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실력이 향상되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의 교수평가를 담당한 맥고나걸 교수가 과제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하는 것에 교수 평가의 중점을 두기 때문이었다. 올해 첫 부임하는 리들은 어느 정도 그녀가 정해준 가이드라인 안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로웨나는 제출한 대부분의 과제에서도 다른 이들과는 구분되는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많은 학생들이 책을 그대로 베끼거나, 동기의 것을 토씨 몇 개만 살짝 고치는 정도로 해야 할 것을 끝낸다는 사실을 리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교육자의 마음으로 이를 지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기에까지 관심을 가질 만큼 교수직에 열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로웨나는 항상 그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발상을 해내고 이를 구체화시켜 완성해왔다. 이는 그가 제법 지루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과제 검토 업무에서 그나마 흥미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리들은 가끔 쌓여있는 양피지 더미 속에서도 로웨나가 제출한 과제를 가장 먼저 뽑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슬러그혼 교수도 저 머글 출신 학생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올해 민달팽이 클럽의 신규 회원으로 들일 예정이라는 그런 이야기였던가. 리들은 점심시간에 슬러그혼 교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그녀를 지나쳤다.
* * *
교실의 단상위에 올라간 리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과 마주했다.
학생들은 다양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떤 이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어떤 이는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이 리들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어떤 학생은 그의 목소리가 좋다며 옆 학생과 들릴 만큼 요란스레 떠들어대기도 했으며, 어떤 학생은 리들의 얼굴에만 정신이 팔려있기도 했다. 교단이라는 곳은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고, 리들은 금방 한 명 한 명에 익숙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들은 지금까지 어느 자리에서든 시선을 받아왔고, 이를 당연스레 활용해왔다.
“이번 시간에는 일반적으로 어둠의 마법으로 분류되는 몇 가지 저주마법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해 배우도록 하죠.”
그가 시전한 환영 마법에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렸다. 저주 마법의 특징에 관한 설명을 이어가던 리들의 눈길이 한 쌍의 담갈색 눈동자에 닿았다. 사실 이전까지 리들은 로웨나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리들은 저를 향한 학생들의 무수한 시선 가운데에서도, 그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제든지 질문을 하기만 하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로웨나는 자신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처럼 눈을 마주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로웨나 양.”
“네?”
수업 도중에 리들이 갑작스레 그녀를 지목하자, 로웨나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저주 마법(Curse)의 일반적 특성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붉어졌다. 잠깐 입을 다문다 싶었던 그녀가 리들을 바라보며 명확하게 대답했다.
“저주는 어둠의 마법 주문들 중에서도 가장 사악하며, 강력하고, 무엇보다도 비가역적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돌이키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 마법에 당했을 경우에 남는 상흔이나 피해는 치유되지 않고 영원히 남을 수 있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주문 두 가지─살인 저주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문들이 방어 마법 혹은 반저주 마법(Counter-curse)을 통해 미리 막아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래번클로에 10점 드리도록 하죠.”
그녀의 얼굴이 해사하게 밝아지며 기쁨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기숙사 점수를 주면서도, 리들은 며칠 전 함께했던 아침 식사를 생각했다. 마법부로의 장래를 원한다고 했던가. 머글 출신이긴 하지만 마법부는 능력을 우선시하는 공기관이니만큼 들어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의 실력도 되는 것 같고.
“……어둠의 마법으로 분류되는 저주의 특징 중 하나는, 로웨나 양이 설명했다시피, 일반적인 치료 주문이나 마법약으로 그 피해를 복원할 수 없거나, 혹은 물리적 상해보다 피해 회복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잘 손보면 쓸 만할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그 쓸모를 결정짓지는 못했다. 리들은 무덤덤하게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