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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9)
아이작이 오러국의 수사에 관한 사항을 귀띔해준 이후로 나는 리들 교수가 이전보다도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그라면 어련히 알아차렸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나에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는 거지? 왜 어떠한 지시사항도 내려주지 않는 것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으나 리들 교수를 찾아갈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는 이미 한 번 나를 거부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이 있는 날,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에 대한 사항을 아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나에게 별다른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는 점수 평가만 계속했을 뿐이었고, 결국 나는 쫓겨나듯 교실을 나와야 했다.
나에게 리들 교수를 다시 한 번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나를 피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 시험이 끝난 이후로, 나는 호그와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우연히라도 그와 만나길 바랐으나, 리들 교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대연회장에서도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가 그렇게 행동하면 할수록 나는 전전긍긍했다.
* * *
빌헬름 교수는 시험까지 다 치고 나자 따로 학생들을 호출해 발표 자료를 다시 되돌려주었다. 그는 특히 나와 시리우스의 보고서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시리우스는 능청맞게도 말만 하지 말고 점수에 잘 반영해달라고 한마디 던졌다. 빌헬름 교수님은 시리우스가 시험을 꽤 잘 친 축에 속하기 때문에 굳이 추가점수를 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도서관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던 그가 시험을 잘 쳤다니, 쉽게 믿기 어려웠다.
우리는 함께 머글 연구 교실을 나왔다. 시리우스와 수업을 듣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앞으로 학년이 다른 시리우스와 내가 같은 수업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교실을 나가면서도 나는 문득 그와 내가 앉았던 자리를 눈에 담았다.
“시험은 잘 쳤어?”
“최선을 다했죠, 뭐.”
시리우스를 보는 것은 머글 연구 마지막 수업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꾸준히 도서관에서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지나가다가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나는 시리우스 또한 O.W.L.로 바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머글 연구는 어때?”
“빌헬름 교수님이 저를 격렬히 증오하지 않는 이상 O를 주실 거에요.”
내 대답에 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 교수가 그냥 널 싫어하는 정도라면?”
내가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로는 O를 주실 수밖에 없을걸요.”
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연회장 가는 거야?”
“네. 점심시간이니까요.”
“잠깐 걷지 않을래?”
시리우스가 창밖 정원 쪽으로 고갯짓했다. 점심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그와 나는 해야 할 얘기가 있지 않았던가. 나는 시리우스가 꺼내려는 말이 어떤 종류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내 옆에 선 시리우스는 자연스럽게 나와 걸음의 보조를 맞췄다. 우리는 함께 호그와트 성을 빠져나왔다. 정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익숙한 안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돌계단을 지나 멀리 커다란 버드나무가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O.W.L 시험은 일주일도 넘게 친다면서요?”
시리우스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어. 하루에 한 과목씩 필기 시험이랑 실기 시험을 함께 보니까.”
“어때요? 잘 친 것 같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도서관에 가득 들어차 있는 5학년 학생들을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시기만큼은 의자에 붙어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당혹스럽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그에게 물었다.
“오러 할 생각도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오러 지원을 할 정도는 충분해.”
뭘 믿고 저렇게 여유로운 거야, 싶었지만 그가 평소 보여주는 실력을 보면 그것이 자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검은 호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호수 근처를 산책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대부분은 여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잔디 근처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주변에 학생들이 많이 보였지만, 우리 두 사람 다 이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제 나에게 시리우스의 가문이니 재산이니 그런 것들이 탐나 접근했다고 비방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리우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 큰 가십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뿐, 그런 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이 어떤 말을 하든 나와는 무관한 소리로 들렸다.
마침내 우리는 검은 호수 앞에 도착했다. 검푸른 호수에는 잔잔한 물결이 흘렀다. 호수 위에 비친 산은 마치 바람에 휘날리듯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호수에 비친 산에 한참 동안 시선을 꽂고 있었다.
“로웨나.”
그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평소보다도 더 낮고 진중한 목소리라 나는 다소 긴장한 상태에서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덤블도어 교수님께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어?”
나는 시리우스가 분명 그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자신이 추측하고 있는 바를 이미 다 말했을지도 모른다. 펜시브를 통해 기억을 내보였을 수도 있었다. 단지 그의 가정에 불과할지라도, 덤블도어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 그렇게 물어보았을 정도면 그의 말이 꽤 설득력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보호를 요청해.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에 불과하다는 걸 덤블도어 교수님도 알고 있을 테니까.”
“시리우스.”
“덤블도어 교수님이 반 볼드모트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에 했었지.”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굳이 일선에 나서서 싸우지 않아도 돼. 덤블도어 교수님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의 은회안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시리우스는 나에게 덤블도어의 편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악으로 대변되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항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내가 리들 교수의 비밀에 속박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를 폭로했으며, 동시에 덤블도어 교수님을 통해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길에 내가 함께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시리우스의 정의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리우스와 같은 확고한 신념과 결단력이, 저에게는 없다는 거 알잖아요.”
“그렇지 않아. 넌…….”
“저는 시리우스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마법 세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단지 저 자신과,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중요할 뿐이에요.”
나는 그렇게 한마디 던지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것이 시리우스와 나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릇된 것을 참지 못했고, 거기에서 뛰쳐나올 만큼의 용기가 있었다. 그는 내면에 굳건한 변화에의 동인과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저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택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요.”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위대한 대마법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리들 교수의 정체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극찬한들, 내가 어떻게 덤블도어 교수님을 신뢰하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는 분명 정의로운 사람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정의를 따를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타인이나 대의와 같은 명분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내 말에 시리우스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굳었다.
“네가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이해해.”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넌 적어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고 있잖아. 아닌가?”
나는 그의 은회안속에 비친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실망했을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무엇이 나쁘고 잘못된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나를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만큼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그래.”
시리우스의 입매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또 그자가 너에게 협박하기라도 한 거야?”
“아니에요. 리들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저를 건드리지 않아요.”
“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시리우스야말로 조심해서 행동해요.”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 정말 네 선택을 확신해?”
나에게는 시리우스가 소중했다. 나는 블랙이었던 그에게 내 깊은 속내까지 고백했었고,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시리우스는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그와 같은 길을 걷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저는.”
시리우스는 언제나 나에게 솔직하고, 진솔하게 대했다. 나는 그의 태도에 항상 감동하면서도, 나 자신의 위안을 위해 그의 감정을 무수하게 이용했다.
이는 얼마나 잔인했던가. 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를 옆에 두면서, 무엇인가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말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할 만한 일이 못 됐다. 나는 알았다. 시리우스는 내가 불분명한 태도를 취할수록 점점 더 나에게 진심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차분하되 확실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저는 시리우스와 함께할 생각이 없어요.”
“로웨나.”
그리고 나는 비로소 그와 내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내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종막에 그는 심지어, 내가 설령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에게 거듭 거절의 말을 꺼내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시리우스가 나를 한 번 불렀지만, 나는 애써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시리우스의 흐린 은회안에 또 블랙이 겹쳐졌다. 웬일인지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는 그를 내버려두고 먼저 호수를 떠났다.
* * *
호그와트를 떠나기 전날, 종강 총회가 열렸다.
“이번 한 해가 여러분이 만족할 만한 한해였기를 바랍니다!”
연회장 교수 테이블에 앉아있던 덤블도어 교수님이 여느 때와 같이 유쾌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 기숙사 우승컵을 수여할 시간이 되었군요. 최종 합계 점수는 4위에, 312점을 받은 래번클로, 3위에 375점을 받은 후플푸프입니다. 그리고 그리핀도르는 426점, 슬리데린은 472점을 받았군요. 이번 해의 기숙사 우승컵의 영광은 슬리데린이 얻게 되었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박수소리와 동시에 연회장의 장식이 초록색과 은빛으로 변했다.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는 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학생들은 포크로 잔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단상 앞으로 올라간 슬리데린 7학년 반장 로시에르는 뿌듯한 표정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래번클로와 후플푸프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은 반쯤 건성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건너편을 살펴보니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단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나는 혹여 시리우스와 눈을 마주칠까 봐 고개를 돌렸다.
“결국 예상대로야.”
필리다가 조금 실망했다는 듯 중얼거리자, 옆에 앉은 아이작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뭐 이변이 있겠어?”
“가령…… 우리가 종강 총회 마지막 날에 점수를 왕창 받는 거지.”
그녀가 덧붙였다.
“호그와트에 숨겨져 있는 마법사의 돌을 지켜냈다는 이유로.”
요한이 뭔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듯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필리다는 꽤 신나는 것처럼 이야기를 꾸며내기 시작했다.
“황금 열쇠로 가득 찬 방에서 열쇠를 찾아 열면, 거대한 체스판이 있는 거야. 아이작이 체스를 둬서 이기고, 그 다음 방에 있는 퀴즈는 독수리 여왕 로웨나가 풀어버리고.”
“그럼 넌?”
“난 마법사의 돌을 지켜야지.”
“거저먹겠다 이거네.”
“너도 끼워 줄게. 넌 밤중에 나가려던 우리를 막았다는 이유로 덤블도어 교수님이 10점을 더 주실 거야.”
어쩐지 그럴듯했기 때문에, 나와 아이작은 필리다의 말에 실없이 웃었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금방 갔다. 우리는 서로 방학 동안 계획하고 있는 일을 주고받았다. 아이작은 이번 방학 때에는 꼭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나는 씩 웃으면서 나도 글래스고에 있는 셀윈 성에 초대할 거라고 말했다. 이를 듣던 필리다가 자기도 끼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내 피에 반응해 열린 셀윈 성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호박 주스를 마시며 무심결에 교수 테이블 쪽을 바라보다가 리들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꽤 오랫동안 나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어쩐지 그의 시선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곧 리들 교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혹여 다시 그가 내 쪽을 쳐다볼까 싶어 그 후에도 몇 번을 리들 교수에게 눈길을 두었지만, 그는 래번클로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종강 연회는 금방 끝났다. 사람들은 마루더즈들이 이번 연회에 아무런 장난을 치지 않고 지나간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임스는 가끔 이런 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깨를 으쓱했다.
* * *
나는 트렁크에 모든 짐을 집어넣고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보았다. 이미 데이지와 안나는 마차를 타러 간 것 같았다. 모든 짐이 정리된 텅 빈 방을 보고 있으니 정말 한 학년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1년이 좀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짐을 정리할 때까지만 해도 절대 꿈꾸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머글 출신 마녀에 불과했던 내가, 비밀의 방을 닫았다는 이유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영웅이 되었고, 나중에는 멸문될 뻔한 순수혈통의 마지막 후계라는 이유로 무수히 회자 되었다. 그리고 한 번 만나보지도 않은 조상이 몇백 년간 쌓은 막대한 재산을 피 한 방울로 승계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리들 교수가 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고과정은 결국 이렇게 그에게 귀결되었다.
리들 교수는 대체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본인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끼기라도 할까.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오러국에서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있느냐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리들 교수는 끝까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다.
기숙사 휴게실까지 나온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이작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옆에서 짐을 챙겨 나온 래번클로 후배들 몇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동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험 결과에 관해 불만을 토해내던 그들은 어느새 호그와트 교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중 한 명이 갑작스레 새로운 소식을 꺼냈다.
“들었어? 리들 교수님이 학교 그만두는 거.”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무심하게 반대편 벽난로 쪽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황급히 그들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에 서 있던 래번클로 3학년 후배 제레미가 대꾸했다.
“뭐? 그런 말도 없었잖아.”
“정말이야. 짐 정리 하시는 것 같던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갑자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자,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은 조금 놀란 듯 동시에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에 괘념치 않고 급하게 질문했다.
“리들 교수가 그만두다니?”
로저가 두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글쎄, 모르겠어요. 저도 말만 들어서…… 2층 연구실 지나가다가 짐 빼시는 걸 봤거든요.”
순식간에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리들 교수는 이에 대해서 나에게 조그마한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종강 연회 때조차 그런 말은 없었다. 그저 여느 학기의 마지막처럼 우승 기숙사를 축하해주고 끝나지 않았던가.
불현듯, 연회장에서 스치듯 마주했던 리들 교수의 마지막 눈길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챙길 거 다 챙겼어?”
아이작이 어느새 기숙사 휴게실에 내려와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실 아이작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없이 호그와트를 떠난다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여러 생각들이 뒤죽박죽 흘렀다. 나는 쥐고 있던 트렁크의 손잡이를 쥐며 생각했다. 최근에 좁혀지고 있는 수사망과 관련된 건가. 대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걸까. 도망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로웨나, 이제 슬슬 가야 할 것 같은데.”
“어? 어.”
나는 아이작의 말에 황급히 대답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작이 마치 내 정신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내 등을 밀며 말했다.
“이러다가 급행열차 늦을 수도 있어. 얼른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옆에서 트렁크를 끌었다. 리들 교수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리가 반복해서 머릿속에 울렸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그럼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이 새로 부임하는 건가. 그럼 이제 그의 개인교습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그의 연구실에 불려갈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 나에게는 반가워야 할 소식이었다.
호그와트 성 입구 앞에는 세스트랄의 마차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학생들이 분주하게 자신이 든 트렁크를 짐마차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아이작과 함께 마차 앞에 도착한 나는 뒷 칸에 트렁크를 집어넣으면서도 계속 리들 교수의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가 대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나마도 의심이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어딘가 깊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흐리고 불분명해 보이는 그의 의도가 떠오를 듯 말 듯 헤매었다. 리들 교수는 계속 나에게 거리를 두어 왔다. 단지 덤블도어 교수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단호할 정도로.
“이제 올라타면 될 것 같은데.”
아이작이 마차 차량에 고갯짓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이작의 뒤를 따라 마차에 위에 올랐다.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리들 교수라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방향 정도는 지시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방학 때 무엇을 해야 할지, 5학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그가 계획한 미래는 필요 없다는 것처럼.
왜 나는 이제껏 눈치채지 못했던가. 리들 교수의 태도는 일관적이었는데도. 마치 누군가에게 한 방 맞은 것처럼,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 모든 행동들이,
내 자유를 의미하는 무언의 명령이라는 것을.
“아이작.”
“응?”
“먼저 가. 내 짐은 호그스미드 역에 맡겨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마차 문을 열었다. 무슨 소리냐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아이작에게 덧붙였다.
“나 잠깐…… 들려야 할 곳이 있어.”
“어딜?”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마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이작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나는 달리다시피 호그와트 성으로 향했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결과를 미리 예측해보고, 그에 따라 가장 합당한 방식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삶에는 수많은 합리와 불합리함이 뒤섞여 있었고, 스스로 선택하여 계산된 것은 그 일부분일 뿐이었다. 이성적으로 가장 옳은 방향으로만 나아가려고 했던 내 사고방식은 얼마나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가.
나는 호그와트 성 현관문을 지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올라가면서도 애니마구스인 토끼의 모습으로 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나중에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후회했던 그 당시의 순간들이.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2층 어둠의 마법 방어술 담당 교수 연구실 문 앞에 서서 생각했다. 항상 이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를 무수히 고민했다. 하지만 여태껏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단지 그의 명령에 따라, 오라고 하면 와야 하고, 가라고 하면 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가. 아무도 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리들 교수 본인조차도.
나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연구실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책장에 있는 책들이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책들은 하나하나 공중에 떠서 상자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책상 앞에 서서 양피지 더미를 정리하고 있는 리들 교수를 발견했다. 그의 주변에서는 양피지 몇 장이 공중에 떠 있었는데, 반대쪽으로 분류된 양피지는 자동적으로 얇게 파쇄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양피지에 집중하고 있던 리들 교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수석을 했어요.”
내가 갑자기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별로 당황한 기색조차 없었다. 나는 리들 교수와 시선을 마주한 상태 그대로 말을 이었다.
“천문학의 행성 주기에서의 규칙성을 생각하느라 꽤 고생했지만, 덕분에 처음으로 천문학에서 O를 받았어요.”
“알고 있어.”
그가 평소처럼 차분하게 대답하며 다시 양피지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에게 되물었다.
“고작 그 정도밖에 말하지 못하나요?”
그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바람이 휙 불면서 정리되고 있었던 양피지들이 다시 책상 위로 가라앉았다. 여풍 때문인지 그의 검은 셔츠 아래 진청의 넥타이 끝이 살짝 들렸다. 책상 정리를 끝낸 리들 교수는 다소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인정하지.”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꽤 잘했어. 제법이야.”
나는 어쩐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어조는 무덤덤했지만, 나는 리들 교수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는 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은 어느새 상자에 다 옮겨졌고, 마치 음식물을 삼키듯 모든 책을 집어넣은 상자는 스스로 자신을 봉했다.
분란하게 움직이던 것들이 멈추자, 다시금 우리 둘 사이에는 불안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나. 나는 말없이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급행열차 시간이 많이 늦었을 텐데.”
리들 교수는 자신의 외투를 챙기며 말했다.
“이미 마차는 떠났겠군. 호그스미드 역까지 데려다주도록 하지.”
그는 셔츠보다 어두운 톤의 린넨 재킷을 걸치고, 방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상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상자들은 구석진 곳에 차곡차곡 쌓였다. 리들 교수는 정말로 나를 배웅해 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그와 만나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강한 직감이 일었다.
“많이 생각해봤어요.”
파문 하나 없는 수면 위로 뭔가를 툭 던지듯, 불현 듯 내가 말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리들 교수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혹여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나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라도 걸었던 건 아닌가 해서요. 아니면 저에게 일종의 정신계 주문을 사용했던가. 제가 미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정신이 나갔거나.”
나는 멈추지도 않고 속에 있는 말들을 두서없이 뱉어냈다. 리들 교수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낮게 한 번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마침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이제 제가 쓸모가 없어졌다고 저주주문이라도 쏠 건가요?”
우리 둘 사이에 낮은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리들 교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격해진 감정을 토해내듯 말하고 나서야 스스로의 진심을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이를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리 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두 눈을 깜빡이며 리들 교수를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그의 근처에 다가갔다. 그는 그대로 나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는 리들 교수의 가슴께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품 안에서 처음 그가 나를 안아주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얼음장을 인 것처럼 언제나 서늘하고 차가웠던 리들 교수의 품이 따뜻하다는 것이, 나는 더없이 낯설고 기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조용히 그의 품에 안겨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저는 오러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
“불사조 기사단에도 들어가지 않겠어요.”
“상관없어.”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이 내게 그랬듯이.”
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 방식대로 당신을 바꾸려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정말 상관없나요?”
나는 그의 품에서 살짝 떨어져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리들 교수의 어둡고 깊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저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어떤 이에게 진실되지 못하게 대했다고 한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가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
그의 손이 천천히 내 볼에 닿았다. 나는 리들 교수와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분명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던 그의 흑안에, 나를 향한 짙은 감정이 비쳤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그가 자신의 감정을 오랫동안 참아오고, 숨겨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손으로 내 볼을 쥐고 내려다보던 리들 교수는 그대로 나에게 다가와,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나는 지금까지 가장 합리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나를 불명확한 미래로 끌어들이는 선택에 쉽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었다. 어떠한 선택이든, 심지어 내가 아무것도 택하지 않을 지라도, 거기에는 책임이 뒤따랐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어떠한 이성적인 사고과정을 통해 가장 합당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선택이 불러올 어떠한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에 있었다.
그대로 나를 품에 안은 리들 교수가 차분하게 내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귓가에 조금 빠른 듯한 그의 심장박동 소리가 울렸다. 나는 왜인지 그것이 더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Part 7 The End.
─ 完 ─
============================ 작품 후기 ============================
리들 루트 확정! (탕탕)
S.L.C. 회원님들, 아이작 지지자분들, 그리고 소수의 리무스 지지자(!)분들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담 회차는 후기입니다. 질문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