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02화 (102/115)

0102 / 0115 ----------------------------------------------

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5)

셀윈 성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고도 한참 뒤였다. 내가 성 근처로 걸어갈수록, 나와 가까운 성벽에 걸린 횃불부터 차례로 불이 붙었다. 성 앞을 지키던 용 문지기는 자연스레 문을 열어 나와 리들 교수를 들여보내 주었다. 우리는 성 내부의 건물 중 가장 큰 저택으로 향했다.

내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전체에 따스한 기운이 돌며 등이 켜졌다. 전에도 분명 경험했던 것이지만 여전히 기이하게 느껴졌다. 셀윈 성은 나를 인식하고 있었다. 상속이니, 승계니 그런 말을 아무리 해도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정작 나는 이런 것에서 성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도록.”

리들 교수가 그렇게 명령하고는 반대편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성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집요정이 리들 교수와 안면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 성에 꽤 자주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저택 입구 앞에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둡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는데, 저택의 너른 홀 바로 앞에는 2층으로 연결되는 회전형 계단이 있었다.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굽은 형태로 건축된 흰색 계단 옆에는 검은색의 철제 프레임으로 마감된 난간이 붙어 있었는데, 나는 그 새까만 색깔이 전체적으로 흰 홀의 분위기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야를 돌려 홀 중심을 살폈다. 흰 벽의 양옆에는 위협적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검과 투구, 갑옷과 같은 무기가 걸려 있었다. 저건 분명 장식용이겠지? 무기로 벽면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감각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천장에 달려있는 샹들리에에까지 시선이 닿았다. 화려하다기보다는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저절로 켜지지 않구나. 나는 괜히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하면 샹들리에 등이 켜질지 궁리했다. 켜지라고 외치면 불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웨나 아가씨, 오셨군요.”

아무런 연결 통로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집요정이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셀윈 성에서는 순간 이동이 불가능하다며? 나는 다소 당황했다.

“아…….”

이 집요정 이름이, 그때 자신을 ‘로지’라고 소개했던 것 같은데. 조금 머뭇거리다가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로지 씨.”

마치 못 들은 것을 들은 사람마냥 눈을 깜빡이던 로지의 표정이 곧 새파랗게 질렸다. 쉰 목소리로 그가 말을 더듬었다.

“아가씨, 저, 저에게 말을 높이시다니요…….”

“하지만…….”

리들 교수와 알고 있는 사이라면, 그는 엄마가 아주 어릴 적부터 여기에서 일하던 집요정이라는 의미였다.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이다. 아무리 집요정이라고 해도 함부로 하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로지는 그 자리에서 머리가 바닥에라도 닿을 기세로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주인 아가씨께서 제게 그렇게 말씀을 높이시면 저는 송구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발 저에게 말을 놓아주세요.”

그는 머리를 조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박았다. 나는 조금 놀라 이해했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그게 아니에요!”

내 대답에 로지가 고개를 휘젓더니 머리를 바닥에 찧기 시작했다. 그의 격한 반응에 내 표정이 절로 질렸다. 이대로 계속 말을 높이다간 이 집요정의 정신에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덜컥 일었다.

나는 황급히 말을 낮췄다.

“아, 아니…… 알겠어. 그러니 로지, 고개는 다시 들어주면 안 될까?”

나는 머리를 바닥에 박은 로지를 급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내가 매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주인이라고 극찬했다. 로지의 이런 모습을 보니 그가 책에서 보았던 여느 집요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땐 다소 성질이 사나운 독특한 집요정이라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의 헌신은 주인에게 한정되는 모양이었다.

“오늘 오실 줄은 몰라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가 다소 염려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식사는 하셨나요?”

“응, 했어.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다시 호그와트로 돌아갈 거니까.”

이렇게 대답하긴 했어도, 오늘 안에 호그와트에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홀 구석에 세워진 괘종시계를 살폈다. 여덟 시가 넘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플리트윅 교수님께 외출 허가를 받은 것은 오늘 하루뿐이었다. 뭐…… 나는 교수와 함께 오지 않았던가. 그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던 사이 로지가 소란스럽게 외쳤다.

“오! 역시 주인님은 명문 호그와트 출신이셨군요. 분명 슬리데린이겠죠.”

“래번클로야.”

“똑똑한 래번클로! 래번클로도 좋은 기숙사죠! 에밀리 아가씨가 래번클로였으니까요.”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는 단지 내가 셀윈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이유로 더없이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이 집요정이 나를 판별하는 기준이 오직 ‘혈통’뿐이라는 것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철저히 셀윈 가에 종속된 집요정이라서 그런 것일까. 로지의 관점은 더없이 편향되어 있었지만, 딱히 이를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리들 교수를 기다리며, 내가 조용히 물었다.

“로지는 여기서 어느 정도 일했어?”

“이제 50년쯤 되었을 거에요. 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나는 괜히 불편한 마음에 여몄던 망토를 풀었다. 아무리 봐도 50살 먹은 집요정에게 존대받는 건 묘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를 하대하고 있었으니까. 로지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풀어낸 망토를 잡아당겨 자신이 받았다.

“망토는 주세요, 아가씨.”

“괜찮…….”

뭔가 사양을 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로지는 제가 할 일이 생긴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내 망토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그가 이를 차분히 모아들었다. 나는 몸을 숙여 로지가 쥔 망토에서 지팡이를 꺼내며, 지나가듯 그에게 물었다.

“리들 교수님 말야.”

“톰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어떻게 너와 알고 지내는 거지?”

그가 둥글고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알렌 주인님께서 그를 데리고 온 적이 있어요. 톰이 어릴 때요.”

“뭐?”

알렌 셀윈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막연히 셀윈 성과 리들 교수의 접점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렌 셀윈이라고?

“왜 그가 리들 교수님을……”

더 물어보려던 나는, 반대편 복도 끝에서 리들 교수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두운 눈으로 나와 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을 약간 굽혀 집요정에서 질문을 하고 있었던 나는 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리들 교수가 나에게 흘러가듯 물었다.

“내 얘기를 하고 있었나 보군.”

“아…… 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딱히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로지에게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그린고트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아나?”

아무리 봐도, 로지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내가 저택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리들 교수에게 일임한다고 지시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는 척이나마 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알렌 주인님만 알고 계시죠.”

그가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리들 교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갯짓했다.

“2층으로 올라가도록 하지.”

그가 우리의 바로 앞에 있는 흰색의 홀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는 난간을 잡고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리들 교수가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새까만 망토가 물결치듯 흔들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우리, 초상화가 있던 방으로 다시 가는 건가요?”

알렌 셀윈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설령 그것이 초상화라 할지라도, 나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떠오르는 그 눈과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나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리들 교수에게 물었다.

“소환 마법을 사용해서 열쇠를 찾을 수는 없겠죠?”

“그린고트 열쇠에는 기본적으로 소환 불가 마법이 걸려있다.”

리들 교수가 소환마법과 같이 기본적인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지.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2층에 올라간 우리는 응접실과 방문 몇 개를 지나 마침내 초상화 방에 도착했다. 그때와 같이 초상화 방에는 검은 휘장이 드리워진 초상화들이 벽면을 잔뜩 채우며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들이 다 내 조상들일까. 나는 무심하게 한 번 액자들을 둘러보았다.

알렌 셀윈의 초상화를 가리고 있던 휘장을 걷자, 그때처럼 눈을 감고 있던 알렌이 서서히 눈꺼풀을 올렸다. 그의 선명한 벽안이 나와 리들 교수를 샅샅이 훑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는 알렌의 표정에는 이전과 비슷하게 싸한 기운이 돌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입매를 굳히며 침묵했다. 왜 우리가 그에게 왔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리들 교수였다.

“다시 뵙는군요, 셀윈 씨.”

여느 때와 비슷하게 무감각한 어조였다. 마치 필요한 일 처리라도 하는 것처럼 리들 교수가 감정 없이 말했다.

“에밀리의 딸이 셀윈 가의 후계자로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린 고트의 열쇠는 어디에 있습니까?”

“왜 내가 그걸 가르쳐줘야 하지?”

알렌이 기다렸다는 듯 비꼬았다.

“저런 잡종은 내 손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그에게는 표정 변화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나, 나는 리들 교수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싸하게 식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 안에서 도는 공기 자체가 서늘해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와는 달리, 리들 교수는 다소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면 대화 말고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겠군요.”

그가 가볍게 지팡이를 들어 반대편 구석에 있는 초상화를 겨누었다. 주문도 외지 않았는데 리들 교수의 지팡이에서는 파란 불빛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푸른 불꽃이 되어 겨눠진 초상화에 닿았다. 그와 함께 초상화를 뒤덮고 있던 검은 휘장이 활활 타기 시작했다. 곧 초상화에도 불길이 옮겨붙었다. 휘장에 가려 얼굴을 알 수 없는 초상화의 주인이 시린 비명을 질렀다. 방 전체를 채울 만큼 큰 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새까만 흑안은 여전히 알렌 셀윈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하나씩 제거하도록 하죠.”

“톰 리들!”

알렌이 사납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리들 교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팡이를 다른 초상화에 겨누었다. 붉은 불꽃이 사납게 액자를 삼켰다. 이번엔 조금 나이 든 여자의 새된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일었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알렌 셀윈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제가 요구한 대답은 아니군요.”

무심한 어조로 대답한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옆에 있는 초상화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서슬 파랗게 내질러지는 고음의 비명 소리와 액자를 불태우는 불꽃 소리가 섞였다. 액자는 예외 없이 붉은 불꽃에 집어삼켜 졌다. 잿더미 하나 남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그가 차분하게 물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열쇠는 어디 있습니까?”

“…….”

리들 교수는 지팡이를 들었고, 또다시 푸른 불꽃이 허공을 갈랐다.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알렌의 얼굴에는 괴로운 기색이 돌았다.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록 초상화였지만, 그 비명 소리는 생생했다. 나는 그가 내 앞에서 사람을 불태우기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손 속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말하지 않을 겁니까?”

치솟아 오르는 불길과 함께 그의 냉랭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나는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냉엄하고도 잔혹한, 차가운 기운에 잔뜩 억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초상화가 열 점이 태워지고 나서야 알렌은 열쇠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그린 고트의 열쇠는 지하 금고에 있었다. 그 금고는 셀윈의 피가 흐르는 자에 의해서만 열리는 모양이었다. 알렌은 뭔가 길게 설명했지만, 나는 그것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리들 교수가 휘둘렀던 단호한 손짓과 비명 소리만이 내 귀에 잔상처럼 남았다.

리들 교수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셀윈의 초상화을 검은 휘장으로 가리고 방을 나왔다. 지하 금고로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잔뜩 굳어 그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머릿속이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졌다. 초상화가 태워지면 그 속에 그려진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초상화 속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자꾸 귓가에 울렸다.

망설임 없이 초상화를 겨누던 리들 교수의 손짓이 잔영이 되어 남았다. 알고 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서부터 무엇인가 터진 것처럼 극도의 현실감각이 나를 잠식했다. 마치 지금까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처럼. 살짝 손이 떨리는 것 같아서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

앞서 걸어가던 그가 흘끗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악물고 겨우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못도 없는…….”

“넌 초상화가 그 본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뭐라구요?”

“착각하지 마라. 초상화는 인격체가 아냐. 펜시브처럼, 기억과 사념체의 덩어리에 불과하지. 그 사람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했을 법한 말을 대신해주는 것뿐이다.”

그가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단지 다소 특이한 그림을 태운 것에 불과해. 그런 것에까지 일일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그의 단호한 어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충동적으로, 내가 그에게 한마디 내뱉었다.

“……당신은 아무것에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잖아요.”

“뭐?”

일일이 감정을 느끼지 말라고. 과연 여기에 무엇인가 감정적 표류를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이런 것에도 무감각한 그가 이상한 건가? 어떻게 그 비명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쭉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를 잔혹한 사람이라고 여겨왔지만…….

내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의 말대로 살아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뭔가 느끼기라도 하나요?”

리들 교수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가 첫 수업에서 용서받지 못한 저주를 가르쳤던 것을 떠올렸다. 아마도 저렇게 아무런 동요도 없이 리들 교수는 누군가를 살해해오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취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왜 이게 충격적인 거지.

나도 모르게,

그가,

조금이나마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나는 난간이 있는 중앙 홀의 긴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리들 교수는 두 걸음 정도 나를 앞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왜 저를 살려둔 거죠?”

나는 처음 그가 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기억했다. 그는 레질리먼시로 내 기억을 읽었을 테고, 내가 아무에게도 그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나에게 겁을 줄 필요도 없었다. 방금 전 그랬듯이 교묘하게 나를 살해하고, 그 흔적을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나는 머글 출신이었고, 설령 호그와트에서 내가 죽는다 해도 그렇게까지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는 나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왜 나를 살려두었을까.

리들 교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이미 설명했을 텐데.”

“당신은 정말 제가 당신을 적대할 영웅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가요?”

그는 나를 영웅으로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리들 교수는 누구보다도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마법사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졌는지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았다. 나는 소심하고, 조용하며, 사회성이라곤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고, 아직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마법 능력이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며, 재기나 용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나 자신조차 알고 있는 사실을 리들 교수가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내가 영웅이 된다고? 그건 나의 실체를 아는 그 누가 봐도 코웃음 칠만한 일이었다. 내 모든 것을 읽은 리들 교수라면 더욱이 그렇게 판단했으리라. 게다가 내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도 불분명한 가정이었다. 내가 오러가 되고, 불사조 기사단이 된다는 걸 과연 확신할 수 있나. 그를 배신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시리우스에 의해 그의 정체가 폭로된 것도 그가 나를 살려두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아마 덤블도어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폭로 당했던 것은 그의 계획하에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나를 죽이지 않은 것에 있었다. 오클러먼시니 뭐니, 내가 그 자리에서 했던 어수룩한 변명이 그에게 먹혀들었을 리도 없었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분명한 가능성을 이유로, 그에게 닥칠 위협을 방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나에게는 더없이 불가해 하게 느껴졌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교수님은 당신을 따를 어떤 마법사든 저보다 더 완벽한 대적자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의 뒤를 쫓는 학생은 수없이 많았다. 아마도 그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마법사들은 그중에서도 충분히 선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꼭 나여야 했나? 나는 대범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는 순발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심지어 나는 연기력조차 부족했다─ 항상 리들 교수에게 내 속마음을 들킬 만큼.

이런 나를 가르치는 것에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다고? 달성될지도 모호한 결과를 위해?

나는 리들 교수가 모든 것에 이해 타산적인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몇 번이고 거듭 생각해보아도, 이것 하나만큼은 비합리적이었다.

고개를 돌린 그를 내려다보며, 내가 조용히 물었다.

“왜 하필 나였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