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01화 (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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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4)

토요일 아침, 나는 평소와는 달리 일찍 일어났다. 리들 교수와 마법부를 방문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머리를 말리며 아침 식사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그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리들 교수가 마법부로 향하는 동안 간식거리를 챙겨줄 만큼 친절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식사는 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머리를 다 말린 나는 옷을 갈아입고 옅은 푸른색의 망토를 걸쳤다. 그리고 지팡이를 망토의 주머니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일찍 일어난 내가 부산하게 나갈 준비를 하자, 자신의 책상 의자에 앉아 있던 데이지가 힐끔 나를 바라보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는 잊은 것이 없나 확인한 후 기숙사 방 문가 쪽으로 걸어갔다. 신발장 근처에서 굽이 얇은 구두를 신다가 데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어디 가는 것인지 궁금한 건가. 신발 뒤축까지 발을 집어넣으며, 내가 데이지에게 한마디 던졌다.

“나 외출해. 외출 허가받고 나가는 거야.”

“어?”

그녀는 약간 놀란 듯 내 쪽을 쳐다보았다. 기숙사 방에서 몇 개월 만에 처음 말을 걸어보는 것이니 놀랄 만도 했다. 방문 손잡이를 쥔 채로, 내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밤늦게 들어올 수도 있어.”

조금 머뭇거리던 데이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잘 다녀와.”

“나중에 보자.”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기숙사를 나와 연회장을 향했다.

4학년이 되기까지, 호그와트에서 아이작 다음으로 친했던 것은 데이지였다. 나와 관심분야는 달랐지만, 데이지는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아이작이 없었더라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아이작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녀는 스테이시 무리와 더 친해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스테이시가 드레스를 찢을 때도 데이지가 괴롭힘의 주축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마 나에 대한 별다른 악의가 없을 것이다. 무리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이 싫어서 동조한 것이겠지. 4학년 학기 초에만 해도 그녀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가. 도서관에서 스테이시 무리들이 나를 욕할 때,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준 것이 그녀임을 나는 기억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 사건 이후 데이지는 기숙사 방만 들어오면 항상 내 눈치를 봐왔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데이지가 스스로 사과의 말을 건넬 만큼 용기가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쉽사리 결단하지 못하는 내 약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너무 많은 일을 겪다 보니, 매일 같은 방을 쓰면서 마주치는 사이인데 자존심을 세우느라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상황도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내가 먼저 다가서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대연회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호그스미드로 향하면서도 생각했다. 단지 첫 시도가 어려운 것일 뿐이다. 이제 나는 적어도 데이지와는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부터는 기숙사 방에 들어갈 때마다 꾸준히 인사를 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들 교수와 만나기로 한 호그스미드 우체국을 향했다.

리들 교수는 우체국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3층 정도 높이의 우체국 건물에 도착한 나는 호그스미드의 다른 건물보다는 약간 커 보이는 아치형 문을 밀었다. 마법사 우체국에 와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광경에 넋이 나갔다. 우체국 건물 천장을 길게 가로지르는 몇 개의 횃대 위에 수많은 부엉이가 줄지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3층이 아니라, 3층 높이의 한 층이었다. 천장에 있는 부엉이의 수는 호그와트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횃대 아래에는 마법사 몇 명이 우체국 사무를 보고 있었고, 직원들도 종종걸음으로 지나다녔지만 아무도 부엉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부엉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크기가 작은 새끼 부엉이부터 날개 길이만 해도 내 키만 할 것이 분명한 거대한 부엉이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나는 검은 잉크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깃털이 새까만 부엉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리들 교수는 왜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거지? 설마 이 부엉이들을 타고 마법부에 날아가기라도 할 생각인가?

부엉이들을 관찰하며 이리저리 상상하고 있는 사이 입구 근처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리들 교수가 우체국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업 외의 시간에 그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괜히 낯선 느낌이 들어 리들 교수를 빤히 응시했다. 그의 머리카락 색깔과 흡사한 흑색 망토 때문인지 리들 교수에게서 평소보다도 더 서늘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곧 나를 발견한 리들 교수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묵례했다.

“예정보다 일찍 왔군.”

“아, 네.”

나에게 잠깐 시선을 둔다 싶었던 그는 그대로 우체국의 우측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그를 따라갔다. 부엉이들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우체국 구석에는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만한 벽난로가 세 개정도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내 가슴까지 오는 길이의 기둥 안쪽에 은빛 가루가 쌓여 있었는데, 스스로 빛을 내는 그 가루를 보며 나는 그것이 마법적인 재료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때, 옆의 벽난로에서 초록색 불꽃이 일더니 갑자기 마법사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망토를 살짝 걷어낸 그는 급한 일이 있는지 성큼성큼 걸어서 우체국 밖으로 나갔다. 이건, 설마. 나는 약간 긴장한 채 리들 교수에게 물었다.

“플루가루로 이동하는 건가요?”

“그래.”

순간적으로 살짝 겁에 질렸다. 나는 순간이동에 거부감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순간이동을 해 본 것은, 셀윈 성에 갈 때 포트키를 이용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도 당시 내가 별다른 반감이 없었던 것은 리들 교수가 그것이 포트키라는 사실을 미리 언질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했었기 때문이었다.

“플루 네트워크를 이용해 본 적은 있겠지.”

“아뇨, 처음이에요.”

내 대답에 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잠시 간의 침묵 후, 뭔가 생각하는 듯 보였던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마법부까지는 거리가 있으니, 중간 경유지 몇 군데를 거치도록 하지.”

리들 교수는 기둥 위에 있는 플루가루를 한 스푼가량 쥐더니 그대로 벽난로에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벽난로 안에 녹색 불꽃이 내 키만큼이나 높게 일었다. 나는 혹여 그 불꽃이 나에게 닿을까 봐 뒤로 살짝 물러났다.

“재가 날릴 수 있으니, 머리끝까지 망토를 뒤집어쓰는 것이 좋을 거다.”

리들 교수가 고갯짓하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리들 교수의 명령에 나는 다소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저 안에…… 들어가라구요?”

잡아먹을 듯 타오르는 불꽃에 몸을 던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리들 교수가 무덤덤한 어투로 대꾸했다.

“팔꿈치는 몸쪽으로 당기도록. 자칫 잘못하다간 몸 일부분만 이동될 위험이 있으니까.”

“네?”

몸 일부분만 이동된다니. 들어가란 말이야, 가지 말란 말이야?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리들 교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게 두려운가, 지금 당장 저 벽난로 속으로 들어가는 게 두려운가. 다소 오랜 시간 동안 머뭇거리고 있자 그의 표정이 더 싸해졌다. 오른손으로 후드를 뒤집어쓴 나는 마음을 다잡고 벽난로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놀랍게도, 발에 닿은 초록색 불꽃은 조금도 뜨겁지 않았다. 불꽃이라기보다는 따뜻한 연기 같았다. 두 눈을 깜빡이던 나는 마침내 벽난로 안쪽으로 몸을 완전히 들이밀었다.

“목적지는 이스트 첼번이다. 발음은 분명하게 하도록 해.”

플루가루를 뿌리고 목적지를 잘못 말해 엉뚱한 곳으로 떨어졌다는 마법사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려고 헛기침을 하려다가, 이 소리를 인식하고 이상한 곳으로 이동할 것 같아서 관뒀다.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최대한 발음을 또렷하게 하려고 애쓰며 내가 입을 열었다.

“이스트 첼번.”

나는, 누군가 내 발을 잡아채서 끌고 가는 줄 알았다. 거대한 싱크대 구멍으로 그대로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면서, 몸에 꽉 맞는 파이프라인에 끼여 지하 깊은 곳까지 빠져들듯 몸이 쑥 내려갔다. 길을 따라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위로 치솟기로 했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아주 빠른 속도로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발이 어딘가에 닿은 것은 조금 후였다. 시야가 분명해지더니, 천장까지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는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서점인가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내 뒤로 금방 리들 교수가 도착했다. 쉴 틈도 없이 우리는 나온 벽난로를 통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거의 세 군데의 경유지를 지났을까, 나는 거의 탈진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단지 벽난로에서 걸어 나왔을 뿐인데도 파이프에 몸이 꽉 끼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몸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여긴 어딘가요?”

벽난로에서 막 나타난 리들 교수를 향해, 나는 반쯤 지친 말투로 겨우 한마디 물었다. 나와 같은 경로를 지나왔는데도 리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네 번째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전의 펍 같은 곳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창가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리버풀 근방쯤 온 것 같군.”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런던까지 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으니, 먼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리들 교수가 벽난로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조금 쉬다 가도록 하지.”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아직 플루가루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다. 처음인데도 꽤 장거리를 왔으니까.”

나는 망토를 벗어 잔뜩 묻은 재를 털어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이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것은 긴 지팡이를 편하게 넣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우중충한 색깔의 망토를 입고 다니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벽난로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망토가 난장판이 되다니. 새까만 망토를 두르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겠네.

내가 망토를 털어내고 있자, 리들 교수가 다소 한심한 듯 내 쪽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달라붙어 있던 재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한마디 하고 다시 망토를 몸에 둘렀다.

“플루가루를 타고 한 번에 마법부에 갈 수는 없나요?”

“고작 이 거리에 지치는 네가, 마법부까지 한 번에 가겠다고.”

그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중간에 경유지를 거쳐서 가는 것은 나 때문이었나. 이쯤 되니 왜 호그와트를 그렇게 런던과 먼 곳에 지어놨는지 불만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호그와트에서 플루가루를 이용해 이동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아무리 머글 열차보다 빠르다고 하더라도, 플루 네트워크만큼은 아닐 것이다. 런던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도 길었다. 그냥 플루가루로 한 번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새 학기에 호그와트에 갈 때 말이죠.”

내 갑작스러운 물음에 리들 교수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0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플루가루로 이동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그는 별로 깊게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호그와트에는 플루 네트워크가 설치된 벽난로가 얼마 없어. 보안 때문이지.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아예 막아놨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리들 교수가 덧붙였다.

“게다가, 너도 경험해봤으니 알 텐데. 너처럼 플루가루 네트워크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여러 중간 경로를 통해 호그와트까지 가야 해. 이 과정에서 목적지를 잘못 말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하긴, 설령 플루가루에 익숙한 애들이라 할지라도 종착지를 잘못 발음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왜 호그와트 열차를 통해 모든 학생들을 한 번에 이동시키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리들 교수가 다소 느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 플루 네트워크 자체가 과부하 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을 수 있겠군. 호그와트 전교생이 한 번에 이동하게 된다면 마비가 올 테니까. 설령 시간 차를 두고 이동한다 하더라도 마법사들의 경로를 추적하는 플루 네트워크 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고.”

“결국은 안전 때문이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리들 교수가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네.”

“그럼 다시 움직이도록 하지.”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망토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 * *

마법부에 도착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런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지상이라고 생각해도 믿을 만큼 너른 홀에는 검은 대리석이 깔려 있었고,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천장에는 둘둘 만 양피지를 입에 문 부엉이들이 공중에서 계속 날아다니고 있었다. 부엉이에는 흰 이름표 같은 것이 붙어있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뭐라고 적혀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홀 아래에는 정갈한 복장의 마법사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다. 자유롭고 괴짜스러운 느낌의 마법사가 많았던 다이애건 앨리나 호그스미드보다는 전반적으로 훨씬 차분한 차림새였지만, 그들은 바쁜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홀을 걸어 다녔다.

리들 교수는 여기가 익숙한 사람인 것처럼 마법사들에게 섞여 홀 가운데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거대한 크기의 불사조 동상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세상에. 불사조의 입에서는 느리게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환영인지 진짜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동상을 지나자 건너편에는 벽면 하나를 차지할만한 큰 게시판이 보였다. 그 위에는 ‘최신정책소식’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게시판에는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큰 글씨로 적힌 문장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는 리들 교수를 따라가면서도 반짝이는 글자를 읽어 내렸다. 《위험한 동물, 플루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든지 신고하세요! ─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 문장이 금방 사라지고 또 번쩍이듯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마법사 발명 장난감의 표준 특허가 새롭게 도입됩니다. ─ 마법게임 및 스포츠부》.

아이작에게 그의 고모나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건너 들을 때 마법부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엄격한 정부 행정기관 같은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신기한 부서가 많구나. 게시판에 새롭게 떠오르는 정책 소식 문구를 바라보다가, 나는 상자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던 마법사와 부딪혔다. 앞으로 넘어질 뻔한 순간, 그 마법사가 상자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재빨리 지팡이를 휘둘러 나를 바로 세웠다.

“미안해요. 마녀 아가씨.”

초록색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있던 마법사가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 또한 자신의 키 반 만한 상자를 들고 있느라고 나를 못 본 것 같았다. 꽤 무거워 보이는데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마법이 걸려 있는 상자인 듯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꾸벅하며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앞서가던 리들 교수가 뒤를 돌았다. 상자를 들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그 마법사는 곧 리들 교수를 발견한 듯했다. 그의 얼굴에 갑자기 반가운 기색이 돌았다.

“오, 리들 아닌가?”

그는 리들 교수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살짝 묵례하며, 리들 교수가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클라크 씨.”

클라크라고 불린 그는 들고 있던 상자를 바닥에 놓더니 반가운 듯 다가가 리들 교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자네가 호그와트에서 교수직을 맡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거기서도 제법 잘 가르치고 있다지?”

그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 그의 아들이 호그와트 6학년인데, 리들 교수를 잘 따르고 있다는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리들 교수는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의 수업 태도가 괜찮은 편이라고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나간 후에 국제 마법 무역 기준이 통과되었다는 걸 들었나?”

“네. 몇 개월 전부터 예언자 일보에 계속 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나마 자네가 있을 때에는 반대할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말야…… 리들 자네가 마법부를 나가자마자 프로비셔가 기다린 것처럼 바로 통과시키더군. 자그마치 XXXX급 위험동물일세! 그 빌어먹을 법안 때문에 위험한 동물 처리 위원회에는 일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어. 몇 개월 전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네…….”

그가 바닥에 놓은 상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몰랐는데 상자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안에는 지금 자그마치 살아있는 런에스푸어가 있다고. 세상에, 내가 마법부에 근무하면서 런에스푸어를 수집할 일이 생길 줄이야…….”

런에스푸어라고? 런에스푸어는 머리가 세 개가 달린 거대한 뱀이었다. 나는 당장에라도 저 상자에서 뱀이 튀어나올 것 같아 살짝 겁에 질렸다. 혹여 런에스푸어가 갑자기 상자를 뚫고 나온다 하더라도, 파셸 통크를 할 줄 아는 리들 교수라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겠지. 나는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그의 뒤에 붙었다.

내 쪽으로 잠깐 시선을 둔다 싶었던 리들 교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밀런 씨도 결국 입법에 찬성한 모양이군요.”

“그래. 하지만 결국 이건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겠지. 이 사단을 보라고.”

“위험 단계를 높이기에는 아직 구체적인 시행규칙을 만들지 못한 상태였으니까요. 감시 및 단속 체계가 잡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리들 교수가 덧붙였다.

“그래, 문제는 바로 그거야. 덜떨어진 프로비셔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친 바람에 애꿎은 잡무만 많아졌다는 말이지.”

그는 프로비셔라고 불린 사람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려고 하자, 리들 교수는 정중하되 단호한 어조로 그의 말을 끊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마법부에 온 것이 아니라서 길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그가 나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오, 미안하네.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언제 한번 연락 하게나.”

그는 다시 바닥에 놓아둔 상자를 들었다. 혹시 그가 상자를 들다가 떨어뜨릴 것 같아서 나는 괜히 리들 교수의 뒤쪽에 숨었다.

대화를 마친 리들 교수는 그대로 건너편에 있는 황금빛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앞에는 경비가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팡이 검사를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문제없이 지팡이 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쇠창살로 만들어진 문이 열 개가량 늘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나무판 위에 숫자가 붙어 있었고, 이 숫자는 순차적으로 커지거나 작아졌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거 혹시, 엘리베이터인가요?”

“그래.”

“마법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구요.”

내가 조금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는 웬만한 고층이 아닌 이상 머글 건물에도 드물게 설치되어 있었다.

“재작년인가 생겼던 것으로 기억하는군.”

그가 덧붙였다.

“물론 머글들의 것과 같은 작동원리로 움직이지는 않겠지.”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우리가 서 있던 곳 앞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부엉이 세 마리가 승강기 안에 설치된 횟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2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며 유령처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가장 가에 앉아 있던 부엉이가 날개를 한 번 푸드덕거렸다. 나는 어깨에 떨어지는 깃털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부엉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부서 간 주고받는 교신을 부엉이로 대신하니까.”

서류를 주고받는 데 부엉이를 사용한단 말야? 나는 고개를 들어 얌전히 앉아 있는 부엉이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부엉이 앞에 붙어진 것은 부서명이 적혀있는 이름표인 것 같았다. 《마법 교통부 ─ 빗자루 규제 통제소》. 이렇게 많은 부엉이들이 날아다니면 깃털이 엄청 날리지 않을까? 나는 마법부라면 어련히 해결방안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우리가 내린 곳은 2층의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였다. 위즌가모트 행정사무국과 오러 사무국, 마법사 시험 관리국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곳은 행정등록부였다. 리들 교수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부의 사무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양피지가 많이 쌓여있는 것뿐 머글 영화에서 보던 사무실과 비슷한 형태였다. 책상은 많았지만 정작 사람은 얼마 없었다. 조금 조용한 사무실을 복도를 따라 리들 교수가 안쪽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구석 자리에 30대 초중반처럼 보이는 마녀가 한 명 앉아 있었다. 짧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안경을 쓴 여자였는데, 양피지 더미 속에 묻혀있다시피 한 그녀는 깃펜으로 쉴 새 없이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다소 넓어 보이는 그녀의 책상 전체에 펼쳐진 여러 장의 양피지마다 깃펜이 혼자서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는 거였다.

“오랜만이군요, 루스 씨.”

리들 교수가 먼저 말을 걸자, 고개를 푹 숙이고 양피지에만 집중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리들 씨.”

고개를 들어서 리들 교수를 확인한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만인가요. 마법부에는 웬일이세요?”

“셀윈 가의 자산 상속 문제 때문에, 제자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습니다.”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끼고 있는 안경을 들어 올렸다. 안경 너머로 그녀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럼 이 애가 그 셀윈인가요? 바실리스크를 무찔렀다던?”

리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신기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나를 찬찬히 살폈다. 동물원 원숭이라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별다른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곧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지팡이를 들었다.

“셀윈 자산 승계라… 얼마 전에 본 것 같은데.”

어디 보자, 상속.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쌓여있던 양피지 더미에서 몇 장의 양피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양피지를 넘기며 뭔가를 하나하나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제 앞에 서 있는 마녀 본인의 이름이 정확히…… 로웨나 에밀리 블루로즈 양, 맞죠?”

“네.”

“1960년 12월 31일생 인가요?”

“네, 맞아요.”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고 깃펜으로 무엇인가 써내려갔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양피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졸업하면 마법부에 들어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떠올렸던 마법부의 일은 루스라고 불린 이 마녀가 하는 업무였다. 오러처럼 나가서 싸우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서 혼자 해야 하는 일.

리들 교수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전보다 바빠 보이는군요.”

“최근에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부장이 바뀌었거든요. 그러면서 부서 업무 관할 조정이 있어요. 저희 등록부에 마법사 인구에 관련된 일까지 떠넘기는 바람에.”

루스가 대답했다.

“게다가 토요일은 비번인 사람들만 나와서 근무하니까요. 업무 적체가 심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양피지를 들어 지팡이를 툭툭 두드렸다. 펼쳐진 양피지가 살짝 빛나더니, 문서 위에 반투명하게 마법부의 인장이 찍혔다. 그녀는 양피지를 말지 않고 그대로 리들 교수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든 리들 교수가 적혀져 있는 내용을 쓱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린 고트의 열쇠 없이 승계를 끝내는 방법은 없겠지요.”

“글쎄요, 여기에서 인정받은 건 모든 권리에 대한 부분이지, 실제적으로 재산을 수령받을 수 있는 건 그린고트니까요. 이번에 새롭게 법률이 바뀌어서, 설령 마법부에서 인증을 받아도 그린 고트 열쇠 없이는… 힘들 걸요.”

그녀가 뭔가 생각하는 듯 중얼거렸다.

“셀윈 성이라…… 얼마 전에 트레버스 가에서 새로운 성을 찾았는데, 그린고트에서 자산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그렇고 얼른 처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상속법은 정말 정신없이 바뀌니까요. 크라우치 부장이 꽤 열의가 넘치거든요. 이것저것 자꾸 법령에 손을 대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리들 교수는 그녀에게 받은 서류를 외투 안쪽에 집어넣었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와 루스는 그 후에도 뭔가 대화를 나누었다. 리들 교수는 마법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국제마법협력부에서 일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루스와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낯설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 리들 교수는 루스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 용무가 끝난 건가, 싶은 생각을 하는데,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셀윈 성으로 가야 할 것 같군.”

“네?”

“그린 고트의 열쇠는 분명 성에 있을 거다. 아마 모든 등록절차를 마쳤으니, 이제 열쇠만 찾으면 되겠지.”

갑자기 셀윈 성을 가자고? 그가 말했던 오늘 계획에 셀윈 성은 없었다. 당황했으나 내가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플루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나요?”

“셀윈 성은 순간이동조차도 불가능해. 방어를 위해 세워진 성이니까. 마법의 역사 시간에 셀윈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나?”

그가 덧붙였다.

“아마 그때처럼 글래스고로 가서 포트키를 타야 할 거다.”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셀윈 성까지 간다고? 나는 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오늘 안에 이 모든 것을 다 끝낼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 작품 후기 ============================

1. 리들 교수님 로웨나 밥은 맥이고 끌고 다니시는 건가여?????

2. 리들은 마법부에서 국제마법협력부 소속이었지만, 사실 마법부 근무당시 본 소속은 미스테리부였습니다. 미스테리부서 부서원은 자신이 거기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국제마법협력부에 일종의 위장전입을 한거죠. 근데 국제마법협력부 일도 꽤 잘 했나봅니다.

+ 이렇게 코멘트와 팬아트와 서평을 많이 받았는데 연참 가야죠. 다음 업데이트는 내일입니다. 낼모래도 연재할 수 있길 빌어주세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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