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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3)
얇게 언 호수 위의 얼음판에 발을 내디딘 것 마냥 잔뜩 긴장했으나, 호그와트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시리우스의 폭로 사건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했다. 그 와중에도 시리우스만큼은 리들 교수가 볼드모트라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그렇게 모범적이지 못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가 행동을 조심하기를 바랐으나, 시리우스는 제 생각을 굽힐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교실에 들어오는 리들 교수를 바라보며 나는 며칠 전 연구실에서 그와 대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리들 교수는, 마치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덤덤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쭉 훑어볼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그때의 감정이라곤 전혀 읽어내릴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간략하게 방어마법의 종류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군요.”
그가 단상에 서자 다소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도로 여유롭게 수업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방어 마법은 프로테고와 프로테고 듀오, 케이브 이니미컴, 살비오 헥시아, 이렇게 총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광역계 방어마법인 프로테고 토탈룸, 프로테고 막시마, 호빌리스는 물론 이를 강화하는 마법인 레펠로 이니미컴, 피안토 듀리까지 경우에 따라 다양한 방어마법이 존재합니다.”
리들 교수는 각각의 방어마법의 차이점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열거한 방어마법을 일일이 다 시연해 보이며 주문의 발동 시간이나 규모, 범위, 지속시간 등을 비교했는데, 특히 그가 설명 도중 창가 쪽으로 지팡이를 겨누어 광역계 마법인 프로테고 호빌리스를 시전하자, 학생들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창밖으로 호그와트 성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반구가 생겨나 성체를 방어하는 장관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꼭 방어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 정도의 규모로 효력을 보이는 마법을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경탄 어린 시선이 리들 교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시연이 충분하다는 듯 그가 곧 무심하게 지팡이를 휘둘러 이를 거두었다.
“제가 방금 보여주었던 프로테고 호빌리스와 같은 마법들은 대규모의 전투를 벌일 때 사용하는 고위 마법으로, O.W.L를 통과한 학생들은 추후에 실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이 이런 광역계 마법을 쓸 기회는 잘 없겠지요. 오히려 ‘프로테고’같은 기본적인 마법이 더 실용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리들 교수는 다시 학생들을 실습 대형으로 서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실습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기본적인 방어마법을 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경우, 주문을 방어할 수 있을 수준의 선명하고 견고한 방어막을 형성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하겠지요. 어느 정도 방어마법에 숙련된 학생들의 경우는 상대방이 펼치는 공격 마법에 맞춰 적절한 종류의 방어마법을 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 됩니다.”
그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실습을 방해할만한 장애물들은 다 교실 가 쪽으로 치워졌다. 리들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각자의 실습 파트너와 서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럼, 실습을 시작하도록 하죠.”
이번 학기는 온전히 실습 위주로 진행할 것이라고 그가 이미 고지한 바 있었다. 리들 교수는 학생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네 가지 방어마법을 계속 반복하여 실습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개인 교습 시간에 리들 교수가 나에게 충고했었다. 모든 마법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어마법이란 없다고. 프로테고가 가장 일반적인 방어마법으로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그것의 발동 시간이 짧고, 시전이 용이하며, 간편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의 전투에서는 상대방의 공격마법에 따라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어마법이 각기 달랐다. 그는 특히 짧은 시간에 모든 상황을 판단해 그에 적절한 방어마법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수업과 실전은 달랐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치명적인 어둠의 마법을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4학년의 커리큘럼 상 우리가 방어해야 할 공격 마법의 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정해진 패턴에 익숙해지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므로 나와 아이작과 같이 어느 정도 방어마법에 숙달된 경우는 리들 교수의 수업이 그렇게 빡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확신하건대 지금 당장 연습 없이 시험을 치르더라도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는 O를 받을 자신이 있었다. 비록 리들 교수가 나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그보다 훨씬 높다 하더라도.
실습이 시작된지 한참 지난 후에도, 아이작은 평소와는 달리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쯤 습관적으로 공방을 벌이며 나와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무엇인가 딴생각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의 태도를 고려할 때 그가 이렇게까지 수업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적은 처음이라 나는 조금 의아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내가 지팡이를 거두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질문에 아이작이 흘끗, 리들 교수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리들 교수는 안나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었다.
“리들 교수가 마법에 관한 한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연히, 능력이 있으니까 교수가 된 거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내가 대꾸했으나, 아이작은 여전히 뭔가 미심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가 공격할 차례였다. 아이작이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그의 너도밤나무 지팡이에서 파란색 빛줄기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곧 빠르게 형성된 내 방어막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로웨나. 사실 나는…….”
그가 자신의 지팡이를 거두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학기 초에 네가, 리들 교수의 ‘뭔가’를 알고 있다고 했던 게 너무 마음에 걸려.”
조금 느슨하게 실습을 진행하고 있던 나는 그의 말에 몸이 살짝 굳었다. 혹여 주변 학생들이 우리의 대화를 들을까 봐 두려워졌다. 솔직히 아이작이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리들 교수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나와 아이작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블랙이 말한 것처럼 리들 교수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까지는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저 사람이랑 무슨 일이 있긴 한 거지?”
나는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작.”
“분명 그때 네가 그의 개인적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았어?”
굳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리들 교수와 나의 사이가 수상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아이작이었다. 그가 나와 리들 교수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던 당시, 아이작이 이를 신경 쓰고 있으리라 생각도 못 했던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도 안되는 변명을 둘러댔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바로 덤스트랭에 교환 학생으로 가버렸고,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대답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그렇지만, 교수님 본인이 계신 지금 여기에서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아. 나중에 말하자.”
그 다음은 내가 공격할 차례였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아이작 쪽으로 공격 마법을 쏘았다. 그는 방어마법을 구현하는 대신 몸을 살짝 움직여 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줄기를 피했다.
여전히 리들 교수는 우리에게서 조금 먼 곳에서 학생들을 봐주고 있었다. 그가 꽤 신경 쓰였던지 리들 교수 쪽을 한 번 더 확인한 아이작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로웨나, 우리 아버지가 오러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
그가 남들이 듣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내가 널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의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아이작은 딱히 내 태도에 수긍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시 실습을 재개했다.
* * *
아이작은 자신이 이상기류를 느끼고 있다는 점을 나에게 순순히 밝혔다. 이는 아마도 나만 준비된다면 어떤 고백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아이작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수록 나는 오히려 두려워질 뿐이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아이작 뿐일까. 사람들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일부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시리우스의 폭로는 그 자신의 평판만 추락시켰을 뿐 겉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루머에도 인식이 변할 수는 있는 법이었다. 나도 어떤 소문을 들으면, 그것이 단지 뜬소문일 뿐이라 하더라도 소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지곤 했으니까. 시리우스의 돌발 발언이 오히려 사람들의 무의식적 인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새삼 그의 무모해 보였던 정공법이, 고발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서 도서관은 어떤 때보다 붐볐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어가자, 내가 고정적으로 앉는 자리에 슬리데린 남자 선배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드나들기 좋은 바깥쪽 열람실은 이미 다 차 있는 것 같았다. 살짝 고민하던 나는 시리우스와 머글 연구 과제를 하던 테이블을 찾아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그렇듯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른 테이블에 혼자 앉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져온 변신술 책을 놓고 돌돌 말아놓은 양피지를 펴면서도 나는 계속 딴생각을 했다. 아이작이 나를 뒤흔들어놓은 이후로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가 혹여 오러인 아버지에게 리들 교수의 수상한 부분을 터놓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대로 리들 교수의 정체가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게 더 불안했다.
그 순간,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나는 다소 긴장했다. 보통 학생들은 여기까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머글 서가 근처는 인적이 드물었다. 낯설지 않은 우아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 후 벽면의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시리우스였다.
그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는데, 시리우스 또한 내가 여기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흐트러진 흑발의 머리카락 아래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내 눈길과 묘하게 얽혔다. 다소 오랫동안 나를 응시하던 시리우스가 천천히 이쪽 테이블로 다가왔다.
“본즈는 어디다가 떨궈둔 거야?”
내가 혼자 앉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시리우스는 곧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교과서를 테이블에 올리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시리우스는 항상 묵시적으로 내 반대편 자리에 앉아왔다. 왜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는 거지? 고작 자리가 약간 바뀐 것뿐인데도 우리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아이작은 친구들이랑 점술 과제하고 있을 거예요. 저는 점술 안 듣거든요.”
“진짜 무서운 게 없는 애네. 혼자 다니지 마.”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시리우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지금 제일 위험한 사람이 누군데.
시리우스는 나를 볼 때마다 꼭 아이작과 붙어 다니라고 충고했다. 리들 교수가 나에게 어떠한 위협을 가할지도 모른다면, 아이작과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은 꽤 괜찮은 방어법이었다. 나에게 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아이작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리들 교수는 적어도 나를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설명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소 무심하게 책을 펼치던 시리우스가 흘러가듯 한마디 던졌다.
“네가 그리핀도르였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무서운 소릴…….”
나는 황급히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나는 마루더즈 덕분에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충분히 들어 왔다. 기숙사 휴게실 샹들리에가 까마귀로 변해서 날아가고,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의자 다리가 앉은 그 상태에서 무너지며, 세수하려고 튼 수도꼭지에서 물 대신 초콜릿이 흘러나오는 상황은 그저 재밌게 듣고 깔깔 웃는 것으로 충분했다. 굳이 내가 이를 직접 경험해볼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기숙사를 드나들고 있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곤 했다.
“저는 반대에요.”
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하자, 그가 키득거리더니 한마디 던졌다.
“아니면 내가 래번클로라던가.”
래번클로 시리우스 블랙이라고?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파란색 넥타이를 맨 시리우스가 청동 독수리 앞에서 답변을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그건 내가 그리핀도르라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얼굴에서 도는 미소를 억지로 지우며 대답했다.
“그것도 반대. 저는 평온한 휴게실을 원하거든요.”
“내가 래번클로로 가면 평화롭지 못하기라도 하나?”
시리우스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몰라서 묻느냐고 대꾸하고는 다시 양피지를 펴며 깃펜을 쥐었다.
이상하게도 시리우스가 오니 잡다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다시금 공부에 대한 열의가 샘솟았다. 어찌 됐든 나는 아직도 수석을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을 마음 한 켠에 계속 느끼고 있었으니까. 슬슬 내가 공부에 집중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시리우스가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공부 시작하기 전에 말이야.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
“뭔데요?”
나는 변신술 책의 책장을 넘기며 되물었다.
“리들 교수에게 마음이 있다는 이유로 나를 차버린 여자가 한 명 있는데.”
하마터면 쥐고 있던 깃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게 거짓말 같단 말이지. 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과제로 제출해야 할 부분도 아닌데, 나는 마치 이게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처럼 액체를 고체로 변신시킬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양피지 위에 베껴 적기 시작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글쎄요…….”
“대답하기 싫어?”
그의 어조는 일상 대화를 하듯 노곤했으나 뭔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양피지를 쳐다보고 있는 척했지만 온 신경은 시리우스에게 쏠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바로 옆에 앉은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얼굴에 절로 열이 올랐다.
“나는 궁금한데?”
귓가에 속삭이듯 그가 낮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었다.
시리우스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리들 교수를 좋아한다고 둘러댄 것은 분명 거짓말이었다.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고, 시리우스를 리들 교수로부터 지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 솔직히 털어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체 나 자신조차도 무슨 마음인지 몰라 당황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맞아요, 거짓말을 했어요. 근데…….”
왜지?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서없는 생각들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휘몰아치듯 헤매이고 있었다. 불분명하게 섞이던 사고의 일면들은 결국 명확한 하나의 접점에 닿았다.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인정함으로써 시리우스에게 어떤 희망의 소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시리우스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그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와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이. 내가 말을 멈추자, 우리 둘 사이에 옅은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는 이유조차도 시리우스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대답하기 불편해하는 기색을 바로 알아차린 듯, 그는 개의치 않고 내 말을 끊어냈다.
“뭐, 그 정도면 됐어.”
직전까지는 가벼웠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이것이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시리우스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그를 받아주지 않는 한 아마 계속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정말 이게 옳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돌렸다.
“오늘 진로 상담이 있었는데 말야.”
이렇게 화제를 전환하는 것조차 나를 위한 시리우스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장단을 맞추기 위해 나 또한 여상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것도 해줘요?”
“O.W.L을 앞둔 5학년들은 필수적으로 진로 상담을 받아야 해.”
지금쯤 제임스와 리무스가 받고 있을걸. 시리우스가 지나가듯 덧붙였다. 그래서 항상 붙어있던 마루더즈 없이 혼자서 도서관에 온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네 꿈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넌 졸업하고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저는 오러……”
시리우스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려던 나는 말을 멈추었다.
“오러?”
갑자기 내가 하던 말을 멈추자, 시리우스가 반문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장래 희망을 물으면 ‘오러’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것이 마치 내심에 두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내 본래의 꿈인 것처럼.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오러일이라고 말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쉽사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내가 겨우 말을 이었다.
“……네. 오러가 되고 싶어요.”
내가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시리우스는요?”
“별로 생각은 없었는데.”
그가 턱을 괴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시리우스는 그대로 씩 웃더니 중얼거리듯 한마디 던졌다.
“오러도 괜찮아 보이네.”
“농담하지 말구요.”
“농담 아니야.”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의 어조에는 결연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이미 목표를 정했어. 나는 볼드모트를 몰락시키기 위해 어떠한 일이든 할 거야.”
시리우스는 목소리조차 낮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마 덤블도어 교수님을 중심으로, 그들을 대항하기 위한 세력이 분명 있을걸.”
가장 첫 단계는 거기에 소속되는 것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나는 시리우스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확실히 정한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뛰쳐나올 정도의 자기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그런 굳건한 신념은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불분명한데도.
불사조 기사단. 리들 교수는 그런 이름의 기밀 조직이 있다고 말했다. 아마 시리우스가 고려하는 것이 그 조직이 아닐까 싶었다. 리들 교수는 내가 오러가 되면 분명 불사조 기사단에서 선 접촉이 들어올 것이라고 충고했었다. 설령 리들 교수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 시리우스의 생존을 보장한다고 해도, 나는 앞으로 무수히 시리우스를 속여야 하는 것일까. 조금 갑갑해졌다.
* * *
그 주 목요일이 아이작 생일이었다. 특별히 준비한 내 책 선물에 아이작은 감동했다. 나는 기억해뒀던 워플 작가님의 메시지와, 그에게 받았던 사인본 또한 건네주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워플 작가님과 만나 책을 추천받은 일이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워플 작가를 떠올리자, 그와의 친분을 이유로 나에게 경고를 가한 리들 교수의 싸한 눈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아이작에게 생일 선물을 줄 때까지도 그를 생각해야 한다니. 나는 고개를 뒤흔들며 그때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시간이 조금 지났으나, 리들 교수에게도 시리우스에게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시리우스의 애니마구스가 폭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리들 교수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나에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안했으나, 평온한 일상은 지속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급한 과제도, 리들 교수의 개인 교습도 없는 밤이었다. 선물 받은 김에 그의 책을 함께 읽자는 아이작의 제의에 따라, 나는 휴게실에 느긋하게 앉았다. 저학년의 몇몇 학생들이 거의 눕다시피 소파에 기대 곱스톤 게임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평온한 일상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정도라니.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책에 시선을 두었다. 걸리버 포크비의 「어거레이가 울었을 때, 왜 나는 죽지 않았는가」. 워플 작가가 추천해준 책이었다. 나는 첫 장부터 한 줄 한 줄 책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검은색 깃털을 가진 마법 생물인 어거레이의 울음소리가 왜 죽음을 예고하는 상징이 되었는지, 제법 흥미로운 문체로 설명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몰입해서 읽었을 법한 내용인데, 왜인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요즘 들어 나는 어떤 것에도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리들 교수 때문이었다.
“이번 주에 같이 호그스미드에 가지 않을래?”
아이작이 갑자기 꺼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생일 선물에 대해 답례도 할 겸.”
“너도 선물 줬는걸, 뭐.”
나는 그가 선물한 회중시계를 주머니 속에서 살짝 내보이며 웃었다. 항상 내가 그의 시계를 소지하고 다닌다는 것을 아는 아이작이 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나, 이번 주말은 안 돼. 셀윈 성에 가거든.”
“셀윈 성은 왜?”
“셀윈 가 승계 일 때문에.”
아이작이 래번클로 휴게실의 소파에 기대며 지나가듯 물었다.
“혼자 가는 건 아니겠지?”
“응.”
“누구랑 가는데?”
사실을 말해도 될까.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아이작이 리들 교수를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상황에서 그와 함께 셀윈 성을 간다는 것이 수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를 한 번 흘끗거리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추측해낸 듯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랑 가?”
“……어떻게 알았어?”
“너에게 보호자가 없으니까.”
나는 아이작이 아무리 마법사 법률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더라도, 상속자가 미성년자이며 동시에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재학 중인 학교의 교수가 권리의 대행을 맡게 된다는 부분까지 알고 있으리라 예상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약간 놀랐다. 그러나 이를 숨기며 나는 굳이 그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이작이 미심쩍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리들 교수의 이름까지 들먹이지는 않았으나, 이를 추측해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갑자기 이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해졌다.
“여튼, 호그스미드는 다음 주에 가도록 하자.”
괜히 말을 돌리며 내가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스리 브룸스틱스에 호그와트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맥주가 출시되었다잖아. 그거 한 번 먹어보고 싶어.”
“좋아.”
아이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에 먼저 들어가 보겠다며 그에게 인사했다. 휴게실에서 나와 기숙사 방으로 통하는 회전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사실 책의 내용도, 아이작의 말도 나에게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시리우스에게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자 내 온 신경은 단 하나의 의문점으로 귀결되었다.
왜 리들 교수는 나에게 어떠한 처벌도 가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근래 들어 나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든 문제였다. 나는 리들 교수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에 지팡이를 겨눈 그 날 그가 드러낸 선명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건 대체 무엇이었나. 요즘도 침대에 누우면 그가 내 방에서 했던 키스가 떠올랐다. 그건 이전의 강압적인 입맞춤과도 달랐다. 대체 왜.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행동의 의미가 끼워 맞춰지지 못하고 조각조각 흩어졌다. 이를 아무리 모으려고 애써 보아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큰 그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한 번 휘휘 뒤흔들고는 기숙사 방문을 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가 혼자 아무리 고민해봐도 쉽사리 해결점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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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cocake님, 생일축하드려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