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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2)
지배라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나를 지배해오던 것은 리들 교수였다. 그는 원한다면 내 정신에 문제가 생기든 말든 임페리우스 저주를 쓸 수도 있었다. 혹은 이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제거해버리는 방법 또한 존재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처벌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리들 교수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우리 둘 사이에 이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리들 교수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아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당신의 중요한 도구가, 망가지는 건 싫은 모양이죠?”
나는 부러 공격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도전적인 어조로 말했다. 무엇인가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치기와 흥분의 상태에서 저지른 행동에 후폭풍이 일며 뒤늦게나마 현실감각이 나를 깨웠다. 나는 방금 전 죽을 뻔했다, 그것도 내 손으로. 이 모든 것은 내가 안전하리라는 확신을 기반으로 했던 행동이 아니었다. 단지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내디딘 악에 받친 결단일 뿐이었다.
한참 후에서야, 그가 차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모하게 행동하지 마라.”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듯 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리들 교수는 나와 마주친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고요한 눈길로 말을 이었다.
“나와 거래를 하려면 적어도 목숨은 부지하고 있는 상태여야 할 테니까.”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교수님 말이 맞아요.”
나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교섭의 여지도 없을 만큼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며 분명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제 생명만큼은 온전히 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고, 저는 원하지 않는 삶을 포기할 수 있어요.”
리들 교수가 아무리 내 자유의지를 강제한다 하더라도, 내 죽음만큼은 막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굳히며 내가 단언했다.
“이건 진심이에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말 없는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 후 리들 교수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부서진 벽 쪽으로 겨누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자, 바닥에 떨어졌던 벽의 조각들이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그와 함께 해체되었던 벽이 다시금 원래 상태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조각들이 제자리를 잡으며, 마치 시간을 되돌려 감은 것처럼 벽은 원래 상태 그대로 돌아왔다.
복원 마법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부서진 것을 고치는 정도의 수선 마법과는 달리, 시전되는 규모가 광범위하고 정교한 구조의 대상에 적용되는 복원 마법은 섬세한 컨트롤과 강대한 마력이 발현의 전제조건이라고 배웠었다. 벽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매끄럽게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리들 교수는 자신의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어느 순간부터 잔뜩 얼어 붙어있던 연구실의 공기가 차분하게 풀렸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이전보다 덜해졌다. 리들 교수가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덤블도어가 곧 너를 호출할 수 있을 거다.”
갑자기 덤블도어 교수님 이야기라니. 나는 표정 변화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대로 그를 응시했다.
“나에 관해서는 함구하되,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도록 해. 개인 교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 아마 네게 레질리먼시를 쓰지는 않을 테니까.”
오클러먼시를 배울 때 리들 교수는 나에게 교수 학습 보조에 관한 서류를 내민 적이 있었다. 사실 그에게 개인 교습을 받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공식적 수업일 뿐이었다.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나.
리들 교수가 내 지팡이를 쥔 채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와의 거리가 더없이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민 내 아카시아 목 지팡이를 받아들며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우리의 거래는 성립한 건가요?”
리들 교수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방금 전까지 흐르던 격한 감정의 기류는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 어둠으로 가려진 흑안의 벽 뒤로, 무엇인가 삐져나올 것 같이 잔뜩 억눌려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침묵했다. 이윽고 입을 연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로부터 긍정의 대답을 들은 순간, 웬일인지 나는 리들 교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는 것이 더없이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를 믿을 수 있나? 나는 리들 교수의 얼굴을 살피며 진심을 알아내려고 시도했으나,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표정에서 내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그의 옷깃 근처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리들 교수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나에게 명령했다.
“아마도 다음 주에 셀윈 가의 유산 상속 문제로 마법부에 갈 일이 있을 거다. 외출 신청을 미리 해놓도록.”
부활절 휴가 때 언급했던 그 일인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 교수는 그 이상 첨언하지는 않았다.
내 도박이 통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원하는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여전히 의문이 일었다. 그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존중감이라는 것이 있을까.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수단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감정적 공감이나 일반적인 도덕관념, 윤리의식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그에게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들 교수는 완벽하게 이를 느끼는 척 가장하며 주변인들을 속여 왔고, 보통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점을 이용해 그들을 협박하고 거래해왔을 것이다.
나는 리들 교수의 목적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며, 그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럴 필요성 때문에 나를 살려 둔 것이라면, 내 목숨을 빌미로 그의 행위에 제재를 가한 순간부터, 나는 리들 교수의 목적과 필요에 따른 기준에 전혀 걸맞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럼 왜? 그간 짐작해왔던 뭔가가 희미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왜 나에게 지팡이를 겨누지 않느냐고. 왜 나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결국 이 질문을 꺼내지 못했다.
* * *
다음 날 수업을 마치자마자 호그와트 성을 빠져나온 나는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로 향했다. 비밀의 방을 찾으러 호그와트를 그렇게 돌아다녔으나, 그리핀도르 탑에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슬리데린이 숨긴 비밀의 방이 그리핀도르 탑에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핀도르 탑 주변은 래번클로와는 달리 훨씬 더 들떠있고 생기가 돌았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 즈음이 되자 진홍색과 황금색이 교차된 넥타이를 맨 학생들이 종종걸음으로 탑 근처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재잘대면서 지나가던 몇몇 학생들이 나를 흘끔 보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낯선 기분에 그리핀도르에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릴리라도 마주쳤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탑까지 온 것은 시리우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예전 같았더라면 그리핀도르 탑까지 와서 시리우스를 기다리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친한 사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항상 전전긍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더 이상 나는 시리우스와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의 내 지위는 머글 출신이 아니라 셀윈 가의 유일한 승계자였다. 내가 시리우스와 어떤 관계가 되든 혈통을 이유로 나를 폄하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핀도르 탑 앞에 선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마친 시리우스가 기숙사 근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멀리 익숙한 네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네 명의 마루더즈 중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제임스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래번클로 영웅님!”
호그와트 성 전체가 떠나가라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저런 식으로 놀리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필리다가 호그와트 영웅이라고 장난스레 호칭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여긴 자그마치 그리핀도르 기숙사 앞이었으니까.
살짝 얼굴이 붉어지려고 하는데, 어느새 마루더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제임스가 먼저 생글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래빗 양,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교수가 아직도 너를 협박하는 건 아니지?”
제임스의 농담기 어린 말에 함께 걸어오던 피터와 리무스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찌푸린 표정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은 시리우스뿐이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괜히 그들의 농담에 동조하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충분히 안전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우리 패드풋이 지켜줄 테니까.”
리무스가 씩 웃으며 나 대신 덧붙였다. 요란스럽게 장난치는 제임스 옆에서, 시리우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웬일이야?”
“시리우스에게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마루더즈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잠깐 시리우스 데려가도 되겠죠?”
“나랑 만나는 것에 왜 쟤들 허락을 받냐?”
시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툭 내뱉었다. 그의 퉁명스러운 어조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애 데리고 가려면 부모님 허락받아야죠.”
“……진짜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시리우스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말에 대꾸했다. 그 바로 옆에 있던 제임스는 정말 숨넘어갈 정도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유독 내 농담을 좋아했다. 제임스가 마치 시리우스를 제 자식인 것 마냥 머리칼을 슥슥 헤집기 시작하자 ─심지어 시리우스가 그보다 조금 더 컸다─ 시리우스는 역겹다는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의 손을 쳐냈다. 제임스는 시리우스가 싫어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데이트 잘하고 와, 아들.”
농기 가득한 어조로 제임스가 시리우스에게 한마디 던졌다. 데이트가 아니라고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여기에 무엇인가 말을 더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그리핀도르 기숙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시리우스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진짜, 여기까지 웬일이야?”
“우리, 가야 할 곳이 있어요.”
나는 그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핀도르 탑은 다른 건물보다 특히나 움직이는 계단이 많았다. 익숙한 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균형을 잡기가 더 힘들었다. 나름 조심해서 내려가고 있다가 허공에 잘못 발을 내디딜 뻔한 것을 시리우스가 겨우 잡아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한걸음 먼저 내려갔다.
마침내 우리가 호그와트 성 1층에 도착하자, 시리우스가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되물었다.
“어디 가는 건데?”
“맥고나걸 교수님 연구실이요.”
“맥고나걸 교수는 왜?”
나는 목소리를 살짝 낮춰, 그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게 속삭였다.
“리들 교수는 이미 당신이 애니마구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뭐?”
걷고 있던 시리우스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맥고나걸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복도였다. 그는 한층 무거워진 은회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분명한 어조로 질문했다.
“어디까지?”
“어디까지라뇨?”
“그거 말고 달리 들은 건 없어?”
내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가 애니마구스 인 것 외에도,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비밀을 시리우스는 숨기고 있는 것일까.
“약점 잡힐 만한 게 또 있어요?”
아마 리들 교수라면 시리우스의 약점을 나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등록 애니마구스보다 더 큰 약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시리우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가 경고했잖아요, 리들 교수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내가 낮은 목소리로 단언했다. 시리우스에게는 리들 교수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맥고나걸 교수님의 연구실 쪽으로 고개를 까딱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맥고나걸 교수님께 가서, 당신이 애니마구스인 걸 밝히고 마법부에 이를 등록하도록 해요.”
“로웨나, 이건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시리우스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시간? 아뇨.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폭로될 수 있는 문제라구요.”
나는 마음이 급했다. 설령 리들 교수가 지금은 시리우스를 건드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 이를 꺼내 그의 목에 들이댈지 모르는 일이었다. 최대한 약점은 없애는 것이 좋았다. 솔직히 나는, 왜 시리우스가 애니마구스를 등록하지 않고 미적댐으로써 위험을 자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의 비밀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것은 지금 당장 그의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졸업도 하기 전에 아즈카반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블랙, 블루로즈.”
나는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에메랄드빛이 도는 초록색 망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맥고나걸 교수님이었다. 잔머리 하나 남김없이 깔끔하게 머리카락을 틀어올린 그녀는 깐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매서운 눈동자를 빛내며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거기서 뭐 하고 있니?”
나는 교수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시리우스보다 먼저 선수를 치듯 맥고나걸 교수님께 말했다.
“시리우스가 교수님을 뵐 일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리들 교수의 정체를 폭로하며, 시리우스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를 운운했던 것이 바로 어제였다. 맥고나걸 교수님은 미심쩍은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나와 시리우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나와 시리우스가 함께 그녀의 연구실 앞까지 찾아온 것이 무엇인가 수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맥고나걸 교수님을 우리를 무작정 추궁하기부터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와 같은 엄밀한 목소리로 그녀가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블랙?”
“아…….”
시리우스는 맥고나걸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자신의 애니마구스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지만, 시리우스가 꺼낸 말은 조금 핀트가 달랐다.
“요즘 수업시간에 배우고 있는 애니마구스에 대해 질문 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이 애니마구스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애니마구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렇긴 하지.”
맥고나걸 교수님은 얇은 안경테의 연결 부위를 오른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애니마구스인 상태인 사람을 원 상태로 강제로 변화시키는 마법은 존재하지만, 그 반대는 없으니까. 애니마구스는 변신술과 다른 개인의 능력이라는 점은 알고들 있지 않니?”
애니마구스가 주문의 영창을 통해 발현되는 변신술과는 구분된다는 것은 변신술 수업 시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주문의 사용 없이 순전한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애니마구스로 변하는 것이라면, 타인의 의지가 여기에 개입되어 강제적으로 변신시킬 수 없다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맞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마법사가 애니마구스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주문도 없단 말이야? 나는 다소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어떤 방법으로도 알아낼 수 없어요? 그럼 마법부에서는 어떻게 애니마구스인 걸 판단하죠?”
“애니마구스 자체가 혼자 시도하기에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이 마법은 규격화된 교과과정에 따라 실제 애니마구스인 인스트럭터(Instructor)의 지도 하에 수련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애니마구스를 터득하면 합법적인 등록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거지.”
“그럼 혼자 터득하는 경우는요?”
“글쎄, 애니마구스를 혼자 터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애니마구스라는 건 순수하게 재능의 문제는 아니란다. 오랜 인내의 시간, 그리고 교정이 필요한 기술에 가깝거든.”
나는 시리우스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맥고나걸 교수님도 모르시는 게 있다고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체 시리우스는 애니마구스를 어떻게 혼자 익힌 거지? 시리우스의 인내심은 다른 마법사들을 압도할 정도인가?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의지마법에도 그렇게 능한 것을 보면, 마법적 재능이 넘쳐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걸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니?”
“저와 로웨나가 애니마구스에 관심이 많거든요. 이 문제로 다투다가 맥고나걸 교수님께 여쭤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안에 해결하고 싶어서요. 시리우스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아무리 봐도 임기응변에 능한 것 같았다. 시리우스의 변명이 맥고나걸 교수님께는 꽤 설득력 있게 들렸던 것인지 그녀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통금 시간 전에 기숙사에 들어가도록 하렴.”
그렇게 한마디 건넨 맥고나걸 교수님은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녀가 문을 닫는 것을 보자마자, 시리우스는 그대로 내 팔을 잡고 살짝 자신의 쪽으로 끌더니 작게 속삭였다.
“맥고나걸 교수님 반응 봤지? 누가 호그와트 5학년이 애니마구스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겠어? 그 자가 내가 애니마구스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내가 변신하는 장면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는 한 전혀 증거가 될만한 게 없을걸.”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내가 블랙으로 변신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시리우스.”
나는 조금 애원하는 듯한 어조로 그를 한 번 불렀다. 내가 보기에 이를 계속 비밀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 위험성이 컸다. 시리우스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날 걱정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갑자기 내가 애니마구스를 할 줄 안다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는걸.”
그가 씩 웃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로웨나, 너무 염려하지 마. 난 아직 학생에 불과해. 들킨다 하더라도 아즈카반까지 가지는 않아.”
되려 능력 있는 마법사라고 격찬받지 않을까? 시리우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으나, 나는 그것이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이유로 그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내가 시리우스에게 제 인생에 대한 선택을 강요할 수 있겠나. 그가 원하는 방향도 아닌데. 합법적 애니마구스가 된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도 중대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 한마디 더했다.
“그러면 6학년 애니마구스 개인 수업을 듣도록 할게.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한 안전장치가 될까?”
나는 그에게 미안해져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일부러 저 때문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시리우스의 입장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인생에 관한 판단은 온전히 스스로 내리는 것이 당연했다. 합법적 애니마구스가 되지 못한 이유도, 친구와 관련된 것이라 설명하지 않았던가. 단지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그가 원치 않는 길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이상 시리우스를 재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