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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7 - (1)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시리우스에게 쏠렸다. 교수님들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으나, 도리어 정신은 맑아졌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덤블도어 교수님이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그의 푸른 눈동자가 꿰뚫기라도 할 듯 시리우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있는 그대로, 여기 있는 톰 리들 교수가 볼드모트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건너편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은 제임스가 흘러내린 안경테를 들어 올리며 시리우스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쟤, 정신 나갔냐?” 제임스가 입만 뻥긋거리며 리무스에게 물었다. 그는 시리우스가 새로운 종류의 장난이라도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 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로웨나에게, 이를 폭로할 경우 가족들은 물론 본인의 목숨도 없을 거라고 협박해왔습니다.”
“블랙, 농담치고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맥고나걸 교수님의 반응도 제임스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시리우스가 조금 과도한 수준의 농담이라도 해서 교수들을 당황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당장에 그리핀도르 기숙사 점수라도 깎을 기세였다.
“농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리우스의 은회안은 시종일관 리들 교수에게 꽂혀 있었다. 시리우스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은 온전히 리들 교수에게 향해 있었지만, 리들 교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엷게 불쾌감을 표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리들 교수의 가장된 표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리들 교수가 지금 당장에라도 지팡이를 뽑아들고 시리우스에게 살인주문을 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블루로즈 양?”
양미간을 좁히던 맥고나걸 교수님이 오히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했으나, 이상하게도 정말 이것이, 일대의 위기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자 도리어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감정의 곁가지를 쳐내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그에게 리들 교수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 시리우스와 나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가? 과연 그 방법이 모든 문제에 대한 직통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걸까? 시리우스는 왜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일까?
“블랙 군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지?”
맥고나걸 교수님은 시리우스를 살짝 바라보며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교수님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시리우스와 대화 도중에 했던 말이 약간 와전된 것 같아요.”
나는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교수님들을 응시했다.
“제가 시리우스에게 한 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리들 교수님이 방어술뿐만 아니라 어둠의 마법에 까지도 식견이 넓으시다는 의미였던걸요. 말이 잘못 전달되어서 시리우스가 오해한 것 같아요.”
이 자리에서 리들 교수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는 시리우스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변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시리우스의 터무니 없는 주장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럽게 느껴졌음이 틀림없었다. 교수님들은 오히려 시리우스가 새로운 장난 거리라도 발견한 모양이라고 여기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 덤블도어 교수님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느긋하고 차분한 어조로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로웨나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죠.”
“시리우스.”
나는 애써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며 그의 팔뚝을 한 번 쳤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자신의 콧잔등을 살짝 쓸어내렸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는 곧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그대로 덤블도어 교수님의 눈과 맞닿았다.
“블루로즈 양은.”
순간,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계속 침묵하고 있었던 그가 말을 꺼내자 뭔가를 말하려던 다른 교수님들이 한꺼번에 입을 닫았다.
“집중력 마법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얼마 전에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님.”
리들 교수가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어 나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덤블도어 교수님이 나에게 레질리먼시를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황급히 리들 교수의 말에 동조했다.
“네, 폼프리 부인이 저에게 정신계 마법은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내 말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린 것 같았다. 이번 중간시험에서 나는 수석을 했다. 그간 공부를 하느라 집중력 마법을 과도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리들 교수가 이 상황에서 갑자기 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가 굳이 의심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말한 것이, 자신의 정체를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 혹은 나에게 어떤 해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그 이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태도였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 내 쪽으로 끌었다.
“어쨌든 제가 잘못 말을 전한 탓인 것 같네요.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나는 시리우스의 손목을 잡고 교수 테이블의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순순히 내 손에 이끌렸다. 모든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우리를 쫓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그대로 연회장 문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현관 홀로 나오자마자 지팡이를 꺼낸 나는 그를 세워두고 주변에 방음 마법을 걸었다. 나와 시리우스를 중심으로 불투명한 초록색 막이 살짝 생겼다가 사라졌다. 방음 마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 확인한 후, 나는 앞에 선 시리우스를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로 물었다.
“미쳤어요?”
방음 마법까지 걸었음에도, 혹여 누군가 들을까 봐 큰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나는 주먹만 쥔 채 파르르 떨며 그를 노려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내 심장은 아직도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일 수 있나, 나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급한 불을 끄고 나자 나는 그의 무책임한 결정에 화부터 났다.
“어떻게 그렇게…… 무턱대고.”
“로웨나.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가 내 어깨를 살짝 쥐었다.
“볼드모트는 레질리먼시를 할 줄 알아. 이대로 두면 어차피 넌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우리가 숨기고 있었던 걸 읽혔을 거야. 나는 그 전에 이를 공개적으로 터뜨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리들 교수가 나를 읽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계속 그 점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리들 교수는 얼마든지 나에게 진실을 내뱉도록 강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시일 내에 그는 시리우스가 이를 눈치챘다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우리 둘만 알고 있을 때에는 두 사람만 제거하면 될 문제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건 다르지.”
벽 가 근처에 달린 횃불에서 일렁이는 빛이 생기가 도는 그의 눈동자에 닿았다. 빛무리가 스쳐 지나간 시리우스의 얼굴 끝에서 짙은 음영이 새겨졌다.
“이제 넌 볼드모트의 정체를 안다는 이유로 속박당해 있을 필요가 없어. 넌 더 이상 저 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니까.”
리들 교수가 그간 나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그의 정체를 발설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알게 되면 그 비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시리우스의 말은 그런 의미였을까. 이제 나는 리들 교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우스가 일부러 내가 가지고 있는 심적 무게감을 덜어주려고 그렇게 대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너에게 말했더라면 리들 교수가 먼저 알아차렸을 테지.”
나는 입을 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대체……. 복잡한 심경으로, 내가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시리우스의 말을 누가 믿어줄 줄 알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한 거야. 오히려 그게 네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
그가 확신을 가진 어조로 단언했다.
“저 자는 쉽게 ‘톰 리들’을 버리지 못해. 꽤 오랫동안 공들여서 만들어 온 이름이거든. 고귀한 순수혈통 ‘오리온 블랙’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쉽사리 ‘죽음을 먹는 자’로 나설 수 없듯이 말이야.”
시리우스가 덧붙였다. 그는 ‘톰 리들’에 대해 꽤 자세히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는 리들 교수가 자신의 정체를 단순한 감정적 동요나 흥분을 이유로 드러낼 리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리우스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만약 완벽한 증거를 들이밀어 그가 ‘톰 리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일부러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이를 공포했다. 리들 교수가 자신의 인격을 유지할 유인이 충분히 남아있도록. 리들 교수가 ‘톰 리들’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가치 있게 생각한다면, 그는 오히려 일신의 유지를 위해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시리우스는 오히려 우리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역이용한 것이다.
“그는 슬리데린이야.”
시리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지금까지 문제없이 지켜왔던 것들을 유지하고 싶을 테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을 만들지 않으려고 할걸. 아마 한동안 호그와트에서 가장 안전한 건 너와 나라고 장담할 수 있어.”
리들 교수가 개인 교습시간에 말한 적이 있다. 압도적인 상대와 대면했을 때, 공격이라는 것은 승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고. 확실히 시리우스의 방식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리들 교수는 적어도 시리우스와 나만큼은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 두 사람의 안위가 위협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리들 교수가 될 테니까.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 단지 그가 시리우스를 제거할 시간을 조금 늦춘 것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다. 리들 교수는 이보다 두 수는 앞에 있는 사람이었다. 시리우스가 당장 터진 독을 막는 것처럼 임기응변했다고 해도, 리들 교수를 이렇게 완벽하게 적대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래도, 저한테 말도 없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알았다. 이 상황에서 시리우스가 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리들 교수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래도 그의 치기 어린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울분을 겨우 참아내며, 내가 한 번 더 말했다.
“당신은 진짜 저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다시는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이게 나에겐 가장 최선이었어, 로웨나.”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약해졌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이미 가족들의 안위에 대해서도 손을 써놨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활절 휴가 때 시리우스가 우리 집이 어딘지 알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철저함을 칭찬해야 할지, 무모함을 힐난해야 할지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나중에 마저 이야기해요.”
나는 그와의 대화를 거기에서 끊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연회장 바깥에서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억지로 그를 먼저 들여보낸 나는 조금 여유를 두고 들어갔다.
연회장은 여전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방금 일어난 사건은 그저 장난스러운 해프닝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몇몇 학생들이 힐끔거리며 내 쪽을 쳐다봤으나, 우리를 향한 관심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모르는 척 래번클로 테이블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나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 것은 필리다였다.
“시리우스 블랙, 왜 저래?”
나는 근처에 앉아 있던 이든 선배와 엘리자베스 선배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어떤 말이라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필리다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독촉했다.
“무슨 목적이야, 대체?”
“말했잖아,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나는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오해? 그럴 리가.”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얼마전에 슬리데린인 스네이프한테 사과하고 다닐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슬리데린한테?”
완전 기행을 일삼는구나. 요한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더니, 애버리와 뮬시버 이야기까지 꺼내 가며 근래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시리우스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하나하나 들춰내기 시작했다. 블랙 가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인 성향 같은 비방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그의 고발을 학생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눈에 빤히 보였다. 조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럴만했다. 리들 교수는 그 어떤 교수들보다도 평판이 좋았다. 그는 수업에 있어 열의가 넘쳤으며, 학생들에게도 정당하게 대했다. 시리우스가 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고 말한다 한들, 그게 설득력 있게 들릴 리 없었다.
어느새 필리다와 요한은 시리우스 블랙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그런 취급을 당한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괜히 시리우스를 옹호하는 한마디를 던지려고 하는데, 아이작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로웨나.”
그는 나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많은 학생들이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가운데에서도, 아이작만큼은 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시리우스는 정말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이작의 말에 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시리우스가 정신이 나갔다고 여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시리우스를 불신하는 아이작이 이럴 때 왜 예리하게 나오는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괜히 고개를 숙여 포리지 속에 건더기를 찾는 척 무심하게 대꾸했다.
“응. 그래서 내가 방금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야기하고 왔어.”
아이작은 여전히 미심쩍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리들 교수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였다. 나는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화제를 돌렸다.
* * *
나는 시리우스가 내린 결단이 우리의 입장에서 생존 가능성을 가장 높여주는 대책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리들 교수는 어떠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의 안위가 보장될 수 있으리라는 안심보다, 시리우스에게 분노한 리들 교수가 결국 그를 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일었다.
그간 나는 시리우스가 그의 정체를 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리들 교수와의 대면을 필사적으로 회피해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지고 난 지금에 와서는, 그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도 혼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리들 교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내가 먼저 그의 연구실을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연구실 문 앞에서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워, 들어가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지난 순간들이 떠올랐다. 문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은 이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주머니 속의 지팡이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어. 스스로에게 이를 몇 번이고 상기하고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 마침내 나는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연구실에는 여느 때처럼 차갑고 시린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시야에 리들 교수가 들어왔다. 내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그는 별달리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눈을 내리깔고 팔짱을 낀 채 책장 근처에 서 있었다. 오늘 연회장에서 보았던 차림 그대로였다. 어깨에 딱 맞는 진회색의 모노톤 재킷 아래, 창백한 목가 근처에는 주름 하나 지지 않은 단정한 검은 셔츠가 목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리들 교수를 마주한 순간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감겨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변 공기가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갑자기 추워졌다. 유달리 습도가 낮게 느껴지는 방 안은 입을 열면 혀가 바짝 말라버릴 것 같이 건조했다.
나와 그 사이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이를 먼저 깨고 입을 연 것은 리들 교수였다.
“시리우스 블랙이.”
순간적으로 들려온 그의 낮은 목소리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내 정신을 잡아챘다. 리들 교수가 느리게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지난 주말부터요.”
나는 가감 없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
“…교수님이 알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시리우스를 없애버렸을 테니까요.”
내리깐 눈동자에 싸한 기운이 돌았다. 리들 교수는 여전히 내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의 눈길이 나를 샅샅이 훑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었다. 그가 끼고 있던 팔짱을 자연스럽게 풀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영특한 꾀를 쓴 거군.”
리들교수가 물었다.
“너도 동조한 건가.”
그의 어조는 마치 안부 인사를 건네듯 무덤덤했지만, 그 말 한마디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목에 겨누어졌다. 그가 하는 질문의 의도는 분명했다. 나를 시험하고 싶은 것이다.
“네. 제가 시리우스에게 그러자고 했어요.”
한치 망설임도 없는 내 대답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심흑색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빛을 흡수할 것만 같은 온전한 어둠을 나는 결연히 직시했다. 다소 오랫동안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싶었던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지금.”
그가 특유의 느리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군.”
리들 교수는 단 한걸음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내 팔뚝을 움켜쥐고 있을 때보다 더 강하게 나를 잡고 속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른 침을 삼키며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마 둘 다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에 빤히 보이는 연극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놓고 거짓말을 했고, 그는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네, 그러니 저를 처벌해주세요.”
나는 고개를 들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공기가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시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이것이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제재를 가할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저주나 고문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은 내 가족들에게 무엇인가 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시리우스가 내 가족들의 안위를 보장했지만, 그라면 충분히 내 가족들을 탐색해낼지도 몰랐다.
한참 후,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검은 개가 죽음의 징조라는 것을 알고 있나?”
뭐? 나는 그가 갑자기 꺼낸 말에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려 애썼다. 검은 개라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며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나는 드러나지 않게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부러 인상을 쓰며 그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죠?”
“모르고 있었나?”
“……물론, 알고 있어요.”
그와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는, 아무도 없는 숲 속 깊은 곳의 진득한 늪에 발을 내디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둠은 밀도를 더하고 있었지만, 나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입매 끝에서부터 불안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더없이 분명한 패를 가진 자가 그러하듯, 리들 교수가 여유롭게 말했다.
“그럼 시리우스 블랙이 불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미 알겠군.”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얼굴 전체에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리들 교수는 교활하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이것 말고도 어떤 약점을 쥐고 있는 걸까. 애초에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에게 덤비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알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시리우스를 파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지 않았던가. 나는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아릿하게 잇새를 그러물었다. 스스로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리우스를 건드리지 마요.”
나는 리들 교수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내뱉었다. 내 말 한마디에 그의 눈동자가 더 깊게 가라앉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분명 그 눈에는 뜨거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폭발해버릴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몸 전체의 피가 더 빠르게 도는 것처럼 맥박이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건드렸다간.”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교복 망토 아래 지팡이를 아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이대로 죽어버리겠어요.”
“뭐?”
나는 리들 교수와 눈을 마주친 채,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나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에 겨누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주문을 외웠다.
“엑스펄소.”
“엑스펠리아르무스!”
리들 교수는 그 어떤 때보다 빠른 움직임으로 지팡이를 꺼내 내 쪽으로 무장해제 주문을 외쳤다. 내 머리에 겨누어져 있던 지팡이 끝에서 마법이 발현된 것과 거의 동시였다. 리들 교수가 뿜어낸 압도적 마력제어에 그대로 내 지팡이가 그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지팡이 끝에서 나온 빛줄기는 아슬아슬하게 관자놀이를 빗나가 그대로 연구실 벽 쪽에 난사되었다. 커다란 타격음이 울리며 연구실 구석이 그대로 폭발했다. 깔끔했던 연구실 벽 한쪽에 회백빛의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어스름한 먼지가 살짝 걷히자, 벽 한가운데에 반구형의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 보였다.
그의 무장해제 마법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아마 저 마법은 그대로 내 머리를 관통했을 것이다. 뇌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났을지도 모르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으나, 나는 애써 마음을 부여잡고 주먹을 꽉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흩어진 먼지 속에 리들 교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지금까지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감정이 선연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리들 교수의 저런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톰 리들 교수는,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그가 딱딱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눈동자에 비추었던 감정은 다시금 사그라들었으나,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굳어있었다.
“당신이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나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도발하듯 말했다.
“소중한 걸 가지고 협박하는 거.”
굳이 나 자신을 죽이는 것에 지팡이까지 필요하지 않았다. 폼프리 부인은 내 정신이 마법적인 타격에 약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내 정신을 망침으로써 결국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할 정신계 주문을 나는 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시전할 수 있었다. 리들 교수도 아마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와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물었다.
“정말 나를 잃길 바래요?”
============================ 작품 후기 ============================
1. 예정했던 것보다 일찍 왔습니다. 연중 기간에도 코멘 달아주고 쪽지 보내주신 독자님들 감사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_^
2. 팬아트 주신 바키야님, 첼리핀스님, LupinusViolet님, 르벨님, 한숨자리님, 빵야빵ㅇㅑ님, 사탕공장님, 큰별하나님, alejandros님, 트누님, 65님, 예휜님, 쟝쟝걸님, 부엉부엉부엉님, 라니베세르님, chococake님, 신데렐라 콤플렉스님, 연이a님, 선인장 마오님, 슨아님 감사합니다. 글이 안 써진다 싶으면 팬아트 모아둔 폴더 구경하면서 마음을 환기 시킨답니다^_^ 공지사항에 한꺼번에 다 정리했어요. 앱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3. 알류시나님, 오징어땅콩1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
4. 사실 로웨나의 마지막 대사는 “바라요”가 맞춤법에 맞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체를 고려할 때 저렇게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바래요”로 표현했답니다.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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