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97화 (9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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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14)

“아니에요…… 제발.”

겨우 입을 열어 나온 내 목소리는 선연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불안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알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분명하게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극구 부정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이상한 소리 말아요.”

“로웨나.”

내 목 뒤로 손을 감싼 시리우스가 떨고 있는 나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그의 몸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시리우스의 품에 있을 때면 언제나 안정감을 느끼곤 했으나, 오늘은 달랐다. 나를 보호하고 있는 이 따뜻한 품이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그가 나를 꼭 껴안아주면 줄수록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 놓고 그에게 위로받을 수조차 없었다.

“괜찮아. 진정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자가 너를 건드릴 일은 더는 없을 거야.”

“당신은 몰라요.”

속에서부터 울컥 무엇인가 올라왔다. 나는 시리우스만큼은 정말로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무모한 치기를 잠재우기 위해 얼마나 거짓을 말하고, 그를 상처 입히고, 그리고 상처 입었던가.

나는 알았다. 시리우스는 나처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리들 교수가 시리우스에게 타협의 여지조차 주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아도 그가 시리우스에게 ‘용서 받지 못할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치 나를 주저 없이 고문했듯이. 참았던 눈물이 복받쳐 올라와 눈가가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울먹였다.

“리들 교수는 시리우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터진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울져 맺혔던 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시야가 흐려지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지? 도망… 도망가야 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딘가 먼 곳으로, ‘그 자’가 지배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리들 교수에게 죽거나 고문당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그자에 의해 살해된다면? 나는 그 죄책감을 어떻게 견디지? 그의 집요함에 화가 났다. 이렇게 되기까지 난 대체 뭘 했던가. 내가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다 내 탓이었다. 시리우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가 다가오는 것을 쉽게 허락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를 잔인하게 내치고 거리를 뒀어야 했다. 아무리 그가 신경 쓰여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차라리 나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정말…… 아니에요. 잘못 생각한 거에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주세요…….”

“로웨나.”

시리우스가 나지막하게 나를 한 번 더 불렀다. 나는 그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 꽉 껴안으며 시리우스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리들 교수는 레질리먼시 없이도 나를 잘 읽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표정이 변하거나, 평소와 다른 기색을 보이면 그는 집요하게 캐물어 이유를 알아내곤 했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리들 교수의 앞에서는 내 긴장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아예 이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 리들 교수와 마주한다면 나는 분명 그에게 급격한 공포감을 느낄 것이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이 모조리 들통 날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시리우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만 했다. 조용히 나를 감싸 안아주던 시리우스는,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잡더니 나를 품에서 살짝 떼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에게 시리우스가 차분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줘.”

그가 나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톰 리들 교수가 너에게 어떤 식으로 위협한 거지?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그는 뭔가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 목숨을 가지고 협박했어?”

어떤 대답이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휘저었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 나에게 시리우스가 거듭해 질문했다.

“아니면 네 주변 사람들을 가지고 협박하기라도 했나?”

“그만… 그만해요.”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시리우스가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두려워졌다.

“물어보지 마… 무서워……. 더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시리우스만큼은 몰라야 한다. 그가 아는 것이 많아진다면 그가 생존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시리우스를 리들 교수가 살려둘 리 없었다. 나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내 몸에서 다시금 떨림이 느껴졌다.

“미안해, 로웨나.”

시리우스는 내가 발작이라도 할 것처럼 거부반응을 보이자,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나를 안아주며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리우스의 품속에서도,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떠올리려고 애써 노력했다.

차라리 리들 교수에게 울면서 빌까. 하지만 그에게는 동정에 기반한 어떠한 행위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리들 교수에게 매달렸던 적이 있었고, 이는 리들 교수의 분노만 커지게 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시리우스를 살려둘 ‘필요’를 만들자. 시리우스를 살려둠으로써 리들 교수에게 어떠한 실리가 있을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시리우스의 이름을 꺼낼 때 그가 드러냈던 분노만이 되새겨질 뿐이었다.

리들 교수라면 시리우스의 일에 직접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올리비아의 아버지에게 그랬듯, 자신의 수하를 통해 시리우스를 습격하고, 그를 잔인하게 살해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리우스만이라도 도망가요.”

어두운 투명망토 아래로 그의 은회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부탁이에요.”

시리우스 혼자만이라도, 리들 교수가 손댈 수 없는 먼 곳으로 도망가 숨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리들 교수가 그것에 대한 대가로 나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것만큼은 어려울 것 같은데.”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오히려 나를 품에 꽉 껴안았다. 절대 놓을 수 없다는 듯이. 나는 그것만으로 거절의 의사를 느낄 수 있었다. 설움이 몰려왔다. 왜 그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애원하듯 내가 말했다.

“그게 정말 원하는 거란 말이에요……. 날 좋아한다며. 그러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시리우스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는 조심스레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눈물이 더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품에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이대로 시리우스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많이 무서웠구나.”

그가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혼자서 그걸 어떻게 견뎠냐…… 진짜.”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시리우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그의 안타까운 어조 속에서 희미한 분기를 느꼈다. 시리우스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나를 다독여주었다.

* * *

시리우스가 호그와트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를 거절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나는 투명망토를 가진 그가 아무도 모르게 나를 뒤따라 올 것이라고 짐작했다. 알면서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약초상에서 다시 만난 필리다는 내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워플인가 와플인가 그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냐.”

나는 그녀가 구매한 관상용 식물을 내 마법 주머니 속에 같이 넣어주었다. 그녀는 결국 아이작에게 조금 무난한 식물을 선물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필리다가 워플 작가님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뭔가를 둘러댈 힘도 없었다. 그녀의 질문에 성의 없게 대답하며 우리는 호그와트 성으로 되돌아갔다.

기숙사 방에 도착한 나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긴 악몽을 꾸었다.

블랙은 나를 감싸다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저주 주문에 맞아 그대로 죽었다. 손과 발이 묶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제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 자’에게 빌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놀라서 잠을 깨고, 다시 잠들면 똑같은 꿈을 꾸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또 울었다. 나중에는 잠드는 대신 그저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내 몸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몸이 무거워 아침 식사를 거르고 싶었으나, 시리우스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아이작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괜찮다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서도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을 계속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시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겨우 안심했다.

월요일 첫 수업은 마법 수업이었다. 몸은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귓가에 열이 조금 오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동에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친구들이 말했지만 나는 억지로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조금 진행되었을까, 플리트윅 교수님이 나를 살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블루로즈 양, 괜찮나?”

나는 교수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항상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그의 수업을 경청하곤 했다. 교수님의 시선이 가장 가까이 닿는 자리의 학생이 만면에 피곤한 기색을 보인다면 강의에 열의가 생길 리 없었다. 갑자기 교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애써 총기 있는 눈빛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플리트윅 교수님과 시선을 마주했다.

“네, 괜찮…….”

그때, 아이작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먼저 말했다.

“로웨나가 열이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제가 병동에 좀 데려다줘도 될까요?”

“그래. 본즈 군이 도와주는 게 좋겠군.”

플리트윅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작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부축했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부축이 필요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작의 손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여기에 계속 앉아서 수업을 계속 들을 자신도 없었다.

병동은 마법 수업 교실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금방 병동에 도착한 아이작이 문을 열자, 이제는 익숙해진 맨드레이크 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우리의 기척을 들었는지 병동 안쪽의 방에서 폼프리 부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를 발견한 아이작이 폼프리부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폼프리 부인. 로웨나가 열이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아서요.”

폼프리 부인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이마부터 만졌다.

“어머, 정말 그렇구나. 조금 심한 것 같은데?”

그녀는 호들갑스럽게 대답하더니 내 손을 끌어 근처에 있는 병동 침상에 눕혔다. 나는 별말 없이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폼프리 부인이 이것저것 약을 준비하러 간 사이, 아이작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푸른 호숫빛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는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조심스레 물었다.

“로웨나. 요즘 많이 힘든 일이라도 있어?”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이작을 보는데 오히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호그와트를 다니는 3년 내내 나는 크게 앓는 것 없이 멀쩡하게 학교에 잘 다녔다. 그러나 4학년이 된 이후로 무엇인가 나와 관련된 안 좋은 일들이 자꾸 터지고, 아프고, 내가 조명받는 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워플 작가님이랑 호그스미드에서 만났다며? 그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니?”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했다.

“아냐. 어제 악몽을 꿔서 그런가 봐.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폼프리 부인이 나에게 다가와 해열의 기능을 하는 물약과 함께 수면약을 건넸다. 아이작은 나에게 살짝 떨어진 곳에서 서 있었다. 수업이 있었으므로 계속 여기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겠지. 폼프리부인이 건넨 물약을 마시자마자 급격하게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서 있는 아이작의 희미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깊게 잠들었다.

* * *

다음 날까지 나는 병동에 누워 있었다.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면서도, 화요일에 있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리들 교수와 마주치면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몸이 떨리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병동에서는 시리우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내가 그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점심시간이 되자 애니마구스로 변한 시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운 블랙을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동 커튼 안쪽에서 조용히 원래의 모습으로 변한 그가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침대 커튼을 길게 펼쳤다.

“계속 병동에 있었다며?”

그가 내 침대 근처에 있는 간이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안정감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한쪽 손을 잡아주었다.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로 열이 올라 있던 내 손에 그의 시원한 체온이 닿았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폼프리 부인이 부재한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별일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리우스가 고개를 휘저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나는 그에게 거듭 되물었다.

“누가 당신을 협박하지는 않았구요?”

“그 자가 자신의 정체를 가지고 널 협박하기라도 한 거야?”

나는 그의 대답에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가늘게 뜨던 시리우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작년에 나에게 오클러먼시에 대해 물어본 거군.”

그가 말했다.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지?”

시리우스는 학기 초 머글 연구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신계 마법의 책을 잔뜩 쌓아놓고 공부하다가, 그에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나에게 계속 질문했다.

“그 자가 너에게 오클러먼시도 가르쳤어?”

“더 이상 물어보지 말아요, 시리우스.”

겁에 질린 내가 간청하듯 말했다. 시리우스가 점점 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오히려 두렵기만 했다. 내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는 조금씩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기분만 들 뿐이었다. 결국 내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그제야 시리우스는 캐묻는 것을 관두었다.

나를 안심시킬 요량인지 시리우스는 대화를 하는 내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손등을 조금씩 쓰다듬으며, 그는 이것저것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혹여 시리우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리들 교수에게 들킬까 봐 두려우면서도, 정작 시리우스가 내 시야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불안했다. 시리우스는 점심시간이 마칠 때쯤 병동을 떠났다.

* * *

다음 날 아침, 몸은 좀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수업을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비록 새벽에 또 천문학 수업이 있었지만, 오후 마지막 수업인 마법의 역사 수업까지 마치자 어떻게든 수업을 끝냈다는 생각과 함께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작과 함께 대연회장을 향했다.

오늘따라 연회장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교수 테이블 쪽에 보이는 리들 교수를 애써 모르는 척하고 아이작과 래번클로 테이블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요한이 먼저 퀴디치 이야기를 꺼냈다.

“후플푸프는 가망이 없어.”

요한은 대놓고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번 주에는 후플푸프와 슬리데린의 마지막 퀴디치 경기가 있었다. 이미 슬리데린이 다른 기숙사들과의 압도적 점수 차로 1위를 선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작년과 같이 올해에도 슬리데린이 우승컵을 가져가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걔네들이 적어도 340점 이상의 차이를 내면서 이겨야 하는데, 애초에 이길 가능성도 거의 없잖아.”

“그럼 올해도 퀴디치 우승컵은 슬리데린에게 돌아가는 건가?”

필리다가 묻자, 요한과 아이작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말이 나와 있는 경기였기 때문인지, 이번 주에 있는 퀴디치 경기에는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과의 대화에 동참하고는 있었지만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녁 식사로 나온 오트밀 포리지를 휘휘 젓다가 겨우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입맛도 별로 없었으나 꾸역꾸역 숟가락을 놀렸다. 혹여나 리들 교수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주어서는 안 된다.

한참을 접시만 쳐다보고 있다가 겨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시선 조금 멀리 래번클로 테이블 끝쪽에 앉아있는 올리비아를 향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둠을 먹는 자에게 습격을 당한 날, 올리비아는 도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 후 한동안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옆에 있는 아이작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는 괜찮으시대?”

“응. 곧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할 예정이라던데?”

나는 이솔렛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올리비아에게 알 수 없는 지독한 죄책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그녀의 아버지를 직접 공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거 알았어? 올리비아 아버지가 친머글주의자인거. 유명 인사래.”

요한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몇 가지 떠들기 시작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는 마법세계에 퍼져있는 순혈주의와 계급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모임의 좌장 역할을 해올 정도로 친머글주의자였다. 그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공공연하게 머글 출신의 마법사나 이를 옹호하는 순혈 마법사를 공격해온 것을 공공연하게 비판해온 모양이었다. 나는 머글 출신인 나ㅡ지금은 아닐지라도ㅡ조차도 숨죽이고 있는 이런 시대에 습격을 당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내 반대편에 앉아 있던 필리다의 시선이 내 뒤를 향했다. 누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로웨나.”

조금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니, 내 바로 뒤쪽에 시리우스가 서 있었다. 지금 그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한 건가? 내가 두 눈을 깜빡이며 시리우스를 올려다보자, 그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잠깐 네 시간을 빌려도 될까?”

나는 그가 공개적인 장소인 연회장에서 나에게 말을 걸 줄 몰랐다. 주변에 앉아있던 래번클로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그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는 몇 달 동안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사이였다.

“네?”

나는 어리둥절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가 내 손을 살짝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필리다는 대놓고 흥미롭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주변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의 시선이 조금씩 나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리들 교수가 멀리서부터 나와 시리우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은 순간부터. 시리우스 또한 리들 교수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을 놓는 대신 오히려 더 꽉 붙잡았다. 리들 교수의 어두운 눈길이 나와 시리우스가 잡은 손에 쏠렸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치 리들 교수가 보란 듯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비밀이라는 건 말야.”

잡은 손에 깍지를 끼며, 시리우스가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가 알게 되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손을 놓으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시리우스는 그대로 교직원 테이블로 걸어갔다. 나는 끌려가기라도 하듯 그를 뒤따랐다. 처음엔 래번클로에 국한되었던 학생들이 시선이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을 하는 시리우스에게로 점점 쏠렸다. 학생들 사이에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시리우스는 여유롭고 우아한 걸음으로 교직원 테이블 앞에 섰다. 모든 교수님들의 시선이 모여지는 가운데, 시리우스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그대로 마주 보았다.

“덤블도어 교수님.”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시리우스가 말했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교직원 테이블 중간쯤 앉아있던 덤블도어 교수님은 호박 주스를 마시다 말고 시리우스를 찬찬히 살폈다. 시리우스의 태도에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하고 싶은 질문이 뭔가, 블랙 군?”

“톰 리들 교수의 또 다른 정체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쪽 손으로 둥그런 반달테의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덤블도어 교수님이 시리우스를 향해 되물었다.

“그 말은 내게 이상하게 들리는구나. 리들 교수의 정체라니?”

모든 교수님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있었다. 나는 긴장감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자연스럽게 리들 교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리우스가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왔음에도 그는 표정변화 하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시리우스와 리들 교수 사이에 외줄 타기를 하듯 미묘하게 흐르는 위험한 기류를 느꼈다.

“저 자가…”

마침내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의 눈을 마주하며, 분명하게 말했다.

“‘볼드모트’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건지 묻고 있는 겁니다.”

Part 6 The End.

============================ 작품 후기 ============================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요.

이제야 루트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웨나 블루로즈’의 루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확정적인 플롯은 Part 6까지이며, 이후의 흐름은 세 가지로 갈립니다. 여러분이 추측하실수 있다시피 리들루트와 시리루트, 아이작루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세 루트를 다 써보고 엔딩을 결정하겠다’하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Part 6가 끝났으므로, 저는 오늘부터 2주간 연재를 중단하고 Part 7을 써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이작까지 끝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들/시리는 끝까지 완결 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말로 업로드하겠습니다. 루트에 대한 질문이 올 때마다 쪽지로 이렇게 답변을 드렸는데, 진짜 이런 순간이 오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제가 몇 가지 결말을 쓰든, 웹 상으로서의 결말은 무조건 한 가지 엔딩으로 갑니다.

2주 후인 1월 25일 뵙겠습니다.

+ 뜰에 지난 회차들의 유령플롯(스토리 상의 후일담)올려두었습니다. 각 회차별로 궁금해하시는 것들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ron123님, 세키에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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