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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13)
내가 동갑내기에 래번클로 성향의 남자애라고 아이작을 묘사해주자, 잠시 고민하던 워플 작가님이 이것저것 책을 추천해주었다. 케닐워디 위스프의 「그는 미친 듯이 날았다」나 걸리버 포크비의 「어거레이가 울었을 때, 왜 나는 죽지 않았는가」와 같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책들도 있었지만, 머글 출신인 나에게는 처음 보는 제목의 책들이 더 많았다. 그는 자신이 호그와트에 재학 중일 때 읽던 책을 위주로 골라 주면서, 그 의미까지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마법사의 시(Sonnet of a Sorcerer)’였다. 래돌퍼스 피티먼이 저술한 래번클로 출신의 마법사 유릭의 일대기였는데, 그는 얼마 전에 어느 잡지에서 이 책이 래번클로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기로 꼽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가 책을 정말 한 무더기는 추천해준 덕택에 나는 별 고민 없이 아이작의 생일 선물을 해결했다. 나는 책 한 권 한 권에 그가 강조한 의미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한꺼번에 제법 많은 책을 사서 그런지 서점 점원이 공간 확장과 경량 마법이 걸린 주머니를 사은품으로 주었다. 자그마한 주머니 안에 그 모든 책이 다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용무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서점 한가운데 잔뜩 쌓여있는 신간들이 보였다. 불현듯, 이렇게 나를 도와준 워플 작가님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는 건 어쩐지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책 같은 거 있으세요?”
“왜?”
“답례로 하나 선물해드리고 싶어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워플 작가님은 선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그것보다는, 로웨나. 내가 오랜만에 호그스미드에 왔으니.”
그는 일부러 호그스미드라는 말을 강조했다.
“내 멘티와 스리브림스틱에서 버터맥주 한 잔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고 보니 민달팽이 멘토링에서 그와 나는 호그스미드와 버터맥주로 만났었지. 그의 말장난에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남자와 단둘이 펍에 가본 적이 없었다. 호그와트에서는 암암리에, 펍에서 남녀 두 사람이 버터맥주를 마시는 것을 일종의 데이트로 여기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졸업한 워플 작가님에게는 나와 버터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이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긴 했다. 나는 명확한 대답을 못 하고 조금 머뭇거렸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중저음의 익숙한 목소리가 우리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 사이를 가로질러 들려왔다.
“오랜만이군요, 워플 작가님.”
그와 동시에 내 표정이 굳었다. 첫음절이 들려올 때부터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절도 있는 어조에는 기본적인 예의가 묻어났지만, 나에게는 그가 목소리 속에 숨긴 서늘한 냉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리들 교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그때…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고개를 돌린 워플 작가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중얼거리며 물었다.
“리들 교수님이라고 했던가요?”
“기억해 주시는군요.”
그렇게 대답한 리들 교수가 차분히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워플 작가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그는 내 팔목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살짝 끌었다. 나는 조금 당황한 채 그의 옆에 붙었다. 쌓여있는 책에 가려 워플 작가는 리들 교수가 내 팔을 잡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리들 교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 소설 속에 등장시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분이시니까요. 학생들이 수업을 기다리겠어요.”
예의를 갖춰 고아한 태도로 그의 악수를 받아준 리들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그가 덧붙였다.
“작가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것만큼 영광은 없겠지요.”
반갑게 웃고 있었지만, 워플 작가님은 이 상황에 그가 왜 나타난 것인지 다소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뭔가 용무가 있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워플 작가님이 리들 교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들 교수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진열된 책등을 살짝 쓸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자비니 여사와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만, 작가님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군요.”
“예?”
워플 작가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졌다. 나는 리들 교수의 눈치를 보며 작가님의 얼굴을 살폈다. 웃고 있었던 그의 표정에 미약하게나마 균열이 일었다.
“조만간에 그녀에게 편지를 보낼까 생각 중인데.”
그가 말했다.
“그녀는 모르고 있을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군요.”
“아.”
워플 작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리들 교수님.”
나는 리들 교수가 워플 작가의 어떤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비니 여사’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부터 작가님은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리들 교수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나는 워플 작가님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들 교수가 더없이 고상한 미소를 비추며 그에게 말했다.
“급한 일이 생기신 모양이군요.”
약간 멍하게 서 있던 워플 작가가 리들 교수와 눈을 마주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허둥대는 태도로 시계를 한 번 본다 싶었던 그는 정말 뭔가 일이 생긴 것처럼 자신의 옷깃을 서둘러 정리했다.
“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심지어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워플 작가님은 허둥대며 서점에서 떠났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멍하게 서 있는데 리들 교수가 조금 싸한 표정으로 살짝 고갯짓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의미인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는 마법책과 양피지 서점 바로 옆의 인적이 드문 외전 골목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골목 안쪽을 향하는 리들 교수의 뒤를 그대로 따라갔다. 골목 깊은 곳으로 간다 싶었던 그는 구석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냉랭한 기운을 숨기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와 마주하면서도, 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온 거지?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건가?
짧은 침묵 후, 리들 교수가 차갑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이건 나에게 대놓고 반항하겠다는 의미인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반항? 아이작의 선물을 사기 위해 워플 작가님의 도움을 받은 것이 어떻게 반항이 될 수 있단 말인 거지?
리들 교수가 싸하게 말을 이었다.
“저 자와 어울리지 말라고 내가 경고했을 텐데.”
“내가 워플 작가님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이유가 뭐죠?”
민달팽이 클럽에서야,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할 시간을 워플 작가님과 보내는 것이 그의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이리라 이해했다. 하지만 호그스미드에서까지 워플 작가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규제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웅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맥도 필요한 거 아닌가요?”
“엘드레드 워플은 시대를 잘 타고나 순간의 인기를 얻은 것에 불과해. 네 인맥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자다.”
그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자기가 뭔데 그의 가치를 폄하하나.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않았는데 내가 저의 말에 불응한 것 마냥 취급한 것도 기분 나빴지만,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리들 교수가 그런 식의 기준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안다고 해서 쉽사리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인지 내 속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열분이 끓어올랐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쓸모를 가름하는 거죠? 도저히 알 수 없는 잣대네요.”
내가 싸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당신 말이나 들으라는 건가요?”
“그럼 네가 뭘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거지?”
그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
“워플이 거는 수작에 넘어가는 네가?”
수작? 나는 리들 교수가 사용한 표현에 더욱이 화가 치밀었다. 그는 나를 비꼬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보다 더한 조롱에도 견뎌왔는데 왜 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내뱉었다.
“제가 워플 작가님의 수작에 넘어가면 어떻게 할 건데요?”
나는 잠깐 말을 멈추고 그를 빤히 직시했다.
“쓸모 있는 나는 고문하고, 쓸모없는 워플 작가님은 죽여버릴 건가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무감각한 리들 교수의 대답에 나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대체 워플 작가님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리들 교수에게 거슬리는 짓을 했다는 이유란 말인가? 나는 그가 하는 말이 작가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들으라는 의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절 협박하는 거군요, 그렇죠?”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물었다.
“알겠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고문, 협박, 강요. 교수님의 방식을 제가 잠깐 잊고 있었나 봐요.”
말은 잘못했다고 했으나, 나는 전혀 뉘우침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리들 교수를 비웃었다.
내가 하는 말에 리들 교수의 눈동자에 선연한 감정이 일었다.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잡아채더니, 골목 벽 쪽으로 나를 밀었다. 나는 깜짝 놀란 상태에서 그대로 벽에 등이 부딪혔다. 그와의 거리가 숨소리가 닿을 만큼 좁아졌다.
“제대로 된 고문이 어떤 건지 알긴 하나?”
그가 낮게 가라앉은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흑안이 바로 앞에서 한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급격한 긴장감에 심장이 정신없이 뛰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굴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더는 물러설 공간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늘하게 눈을 빛내는 맹수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독기어린 표정을 잔뜩 드러내며 그를 쏘아보았지만, 나는 궁지에 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먹잇감이 된 것만 같았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최대한 싸늘하고 위협적인 표정으로 리들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둘 사이의 침묵 속에 날카로운 시선이 맞부딪혔다. 애써 자신의 분노를 집어삼키면서도, 리들 교수는 나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를 향한 강압적 충동을 억누르고 있는 그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리들 교수는 지금 당장에라도 나를 속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골목 바깥에서부터 무엇인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리들 교수는 나를 껴안기라도 하듯 자신의 품속으로 당겼다. 내가 무엇인가 생각하고 움직이기도 전이었다. 망토 속으로 내 몸을 가린 그는 동시에 허리춤에서 지팡이를 꺼내 이를 그대로 골목 바깥쪽으로 겨누었다. 이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폭음 폭탄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터뜨린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그 소리가 들린 순간 벼린 칼날처럼 우리 둘 사이에 흐르고 있던 냉랭한 분위기가 조금 흩어졌다.
새파랗게 분이 올랐던 그의 눈동자가 다시 낮게 가라앉았다. 꺼냈던 지팡이를 허리춤에 넣으며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폭탄 소리가 귀를 웅웅 울렸지만,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중에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지.”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주먹만 꽉 쥔 채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나를 응시하던 리들 교수는 그대로 뒤로 돌아 골목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충분히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막혔던 기도가 뚫린 사람처럼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벽에 기댄 채 나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리들 교수에게서 새어 나왔던 억눌린 분노가 아직도 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의 반항 어린 태도에 나 자신이 오히려 놀랐다.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간 걸까.
그는 지나치리만치 모든 것을 간단하게 구분 지었다. 쓸모와 무 쓸모, 필요와 불필요, 목적과 수단. 거기에는 어떠한 감정적 동요나 공감도 없었다. 나는 냉동고 한가운데에 있는 얼음장을 손으로 녹이려 애쓰는 기분만 들 뿐이었다. 단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이렇게 춥고 서늘한데도.
부들거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떨리는 두 손으로 깍지를 낀 채 눈가를 덮었다.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진이 빠졌다.
그때, 골목 바깥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얼굴에서 손을 떼는 순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웨나.”
나는 공중에서 갑자기 시리우스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그는 투명망토를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호숫가에서 내가 일방적인 거절을 전한 이후로 시리우스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무표정을 가장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리우스.”
리들 교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한 걸까. 근래 들어 그가 나에게 아는 척한 적은 없었다. 나는 시리우스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것도 호그스미드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는 내 앞에 시리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누군가 우리를 발견할 것이 염려되었는지 그는 머리 위로 투명 망토를 덮었다. 마주 보고 앉은 상태 그대로 우리 두 사람의 위로 망토가 드리워졌다.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워진 그를 향해,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급격히 가까워진 그를 향해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 무슨……”
“쉿.”
그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골목 근처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드풋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투명망토를 쓰고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것 아닐까.”
피터의 말에 제임스가 낄낄대며 대답했다.
“프롱스. 패드풋은 적어도 너와는 숨바꼭질하고 싶지 않을걸.”
리무스가 한심한 듯 제임스에게 조언했다. 그들은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시리우스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시리우스와 얼굴을 마주한 채 마루더즈들의 대화를 들었다. ‘패드풋’이라는 것은 시리우스의 별명인 모양이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함께 마루더즈가 멀어졌다. 시리우스는 왜 여기에 숨어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충분히 멀어졌음을 확신하자, 나는 깊은숨을 한 번 내쉬었다.
햇빛이 부분적으로 차단된 투명망토 아래에 시리우스가 보통 때보다 조금 더 어둡게 보였다. 비 오기 직전의 잿빛 하늘을 닮은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와는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망토 속에서는 바람 아래 흔들리는 촛불처럼 나와 그의 옅은 숨소리만이 아슬아슬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가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나에게만 들릴 만한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리들 교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별거 아니에요. 그냥…… 수업 이야기요.”
그렇게 둘러대면서도 나는 경직된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 리들 교수와의 대화를 들은 걸까? 만약 들었다면, 어디까지? 설령 모든 것을 다 들었다 하더라도 나는 최대한 잡아떼는 것이 옳았다.
“정말이야?”
“네, 정말이요. 그럼 제가 리들 교수님이랑 수업 얘기 말고 뭘 더 하겠어요?”
그의 입매가 약간 굳었다. 긴장감에 심장이 더 뛰는 것 같았지만 나는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를 한참 동안 응시하던 시리우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스네이프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
“네?”
세베루스? 나는 리들 교수에게서 세베루스로의 갑작스런 화제전환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드러내 보이자, 시리우스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비밀의 방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가 덧붙였다.
“항상 뭔가를 찾는 것처럼 호그와트를 헤매다녔던 그때 말야.”
“그건…… 정말 제 호기심이었어요. 호그와트에는 신기한 게 많잖아요.”
시리우스가 무엇인가 눈치챈 것일까?
나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애써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시리우스는 내 대답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투명 망토 속이라 그런지 우리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나는 내 눈동자의 자그마한 흔들림마저도 그가 읽어낼까 봐 두려워졌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을 통해 엿듣게 된 사실인데, 2층 화장실에는 뱀의 말을 해야 열리는 비밀의 방 입구가 있다고 하더군.”
그가 말을 이었다.
“넌 리들 교수와 거기에 간 적이 있지 않던가?”
시리우스가 그것도 알고 있었나?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공기가 희박할 정도로 높은 상공에서 빗자루를 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망토 속이라 산소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하려 애썼다.
“그리몰드에서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집회가 가끔 열리곤 했지. 그리고 내가 알기에 그들 중 뱀의 말을 할 줄 아는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어.”
“……무슨 소리에요, 시리우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가 겨우 한마디 했다.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를 숨기려 애쓰며 손에 힘을 꽉 주었으나 떨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난 네가 숨기고 있는 비밀에 관해서 묻고 있는 거야, 로웨나.”
시리우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리들 교수가 누구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휘저었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반응해야 하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입을 열면 목소리가 덜덜 떨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나와 눈을 마주한 채, 낮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시리우스가 물었다.
“리들 교수가…… 볼드모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