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95화 (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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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12)

내뱉어낸 말에 오히려 내 숨이 꽉 막혔다. 그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내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계속 시리우스 옆에 앉아 있다가는 정말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먼저 가볼게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뱉고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등을 보이면서도 나는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을 그의 시선을 의식했다. 자꾸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다.

블랙이 다시 내 망토를 물며 가지 말라고 잡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굴면서도 시리우스가 여전하기를 바라다니.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걸까. 내가 시리우스에게 정말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두르고 있던 망토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며 나는 호그와트 성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 * *

다음 날 수업 내내 나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특히 마법의 역사 시간은 더욱이 그랬다. 나는 커스터드 빈즈 교수님 대신 교수님 뒤에 비친 칠판에 초점을 맞췄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나마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은 래번클로 몇 명뿐이었고, 같은 수업을 듣는 그리핀도르 학생 태반은 반쯤 엎드리거나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마치 틀어놓은 머글 테이프마냥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흥미도, 재미도 없었다. 도서관에서 관련 저서를 찾아서 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잊을만하면 자꾸 시리우스 생각이 났다. 그 후 시리우스와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기를 관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원래 모르는 척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거기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럼에도 자꾸 떠오르는 시리우스에 대한 생각을 억지로 거둬버릴 수는 없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내 옆에 앉은 아이작을 쳐다본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한 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정한 자세로 앉은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경쟁자를 옆에 두고 딴생각을 할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교과서에 시선을 두었다.

오늘 수업 범위는 청의 마법사 전쟁이었다. 펼쳐 둔 페이지에는 셀윈 성에서 보았던 천장화의 삽화가 있었다. 푸른 로브를 두른 마법사와 용, 켄타로우스, 유니콘, 거인이 한 데 뒤엉켜 싸우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청의 마법사 전쟁은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거인과 마법사들의 전쟁이었죠. 1350여년 당시 활동 영역이 정확하게 나뉘지 않은 거인들과 마법사들 사이 지역적 분쟁이 자주 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나는 아직도 셀윈 성에서 있었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 꿈만 같았다. 외로워 보이던 성벽과 용의 모습을 한 문지기, 구름 낀 하늘과 피 한 방울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성. 그리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역광을 등지고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던 리들 교수.

“…이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것은 당시 가장 뛰어난 전투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던 알렉산드리아 셀윈입니다. 특히 그는 9월 벌어졌던 전투에서 ……”

셀윈의 이름이 언급되자 수업을 듣고 있던 래번클로 학생들이 힐끔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빈즈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스코틀랜드 전쟁 영웅인 알렉산드리아 셀윈이 내 조상 중 하나라고 짐작했다. 나는 이제야 셀윈 성의 방어적인 형태나 위협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던 문지기, 그리고 홀에 그려져 있었던 천장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마법의 역사 책을 읽을 때는 그 마법사의 이름까지 다 외우지는 않았었다.

분명 몇백 년이나 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면서 외웠던 것 같은데. 한참을 지나 이미 옛이야기가 된 역사적 사실이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빈즈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양피지에 받아 적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를 내고 나는 아이작과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복도 쪽으로 나왔다.

“로웨나!”

그때, 필리다가 뒤에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며 나를 불렀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그대로 나에게 팔짱을 끼더니 아이작을 향해 물었다.

“나 로웨나 잠깐 빌려가도 돼?”

아이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다는 팔짱을 낀 상태에서 다소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나는 그녀와 함께 보폭을 맞춰 아이작에게서 약간 멀어졌다. 우리의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아이작의 눈치를 보더니,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서 나에게 물었다.

“곧 아이작 생일이잖아. 선물 샀어?”

“아니, 아직.”

필리다가 아이작의 생일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제의했다.

“이번 주에 같이 호그스미드라도 갈래?”

나는 그녀의 제안이 상당히 반가웠다. 안 그래도 아이작의 선물을 사는데 그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라 조금 고민하고 있었던 차였다.

“난 좋지. 근데 네가 웬일이야?”

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작의 선물을 위해 필리다가 호그스미드까지 가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이 이상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필리다는 누군가에게 생일선물을 챙겨줄 만한 성격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심지어 내 생일도 그냥 지나갔었다. 게다가 필리다는 호그스미드처럼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장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오히려 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약초를 돌보는 것이 유흥거리이자 휴식이었다.

“지난주에 아이작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버렸어.”

자그마치 풍선덩굴 씨앗으로. 필리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원산지가 아프리카라서 절대 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아이작이 아프리카 쪽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마법협력부 마법사와 연줄이 있었나 봐.”

필리다는 그런 것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선물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아무래도 래번클로 학생들 중에서 필리다가 준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아이작이 최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에게야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그녀와 주말 호그스미드 약속을 잡았다.

* * *

그날 밤도 나는 밀린 과제를 끝내기 위해 아이작과 래번클로 기숙사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한참을 끙끙대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휴게실 근처에서 떠드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과제를 하다 말고 나는 건너편에 모여 있는 6학년 선배들의 무리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엇인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아이작에게 물었다.

“6학년 선배들 왜 저렇게 모여 있는 거야?”

아이작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못 들었구나…… 올리비아 일 때문인 것 같아.”

“올리비아가 왜?”

내가 룬 문자 해석 과제를 따라 적으며 지나가듯 물었다.

“어제 아버지가 ‘죽음을 먹는 자’로부터 공격을 받았대.”

“뭐?”

깃펜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한 번 강하게 치고 지나간 것처럼 저릿하게 현실감이 일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가 공격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은 리들 교수였다. 분명 그의 지시로 인한 것이겠지. 깃펜을 쥐고 있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꽤 위독한 상태이신가 봐. 오늘 아침에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어.”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내 생일 선물을 직접 챙겨주던 올리비아가 떠올랐다. 마음 한 켠에 묵직한 무게감과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죽음을 먹는 자’에 의해 마법사들이 살해되었다는 기사를 예언자 일보에서 간간이 접하긴 했지만, 그것이 내 주변 사람의 일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내 가족이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급격한 불안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잘 해결되어야 할 텐데.”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안타깝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떠나보내야 하는 기분을 알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어땠을까. 나는 그녀가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느꼈을 절망감이 절로 느껴졌다. 마음이 무척 아프면서도, 동시에 나는 올리비아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그녀의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에 일조한 것처럼.

나는 조용히 룬 문자 과제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결국 얼마 끝내지도 못한 채 나는 아이작에게 인사하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 * *

목요일 밤, 리들 교수의 호출에 따라 나는 그의 연구실에 향했다.

그간 항상 필요의 방에서 교습을 받아왔기 때문에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양피지 냄새가 싸하게 일었다. 연구실에서 떠도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책상 의자에 앉아 양피지 더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새삼 그를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수업 시간 아니면 연회장이나 복도에서 꼭 한, 두 번씩 마주치곤 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거의 볼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셀윈 성에 다녀온 후로 공격 마법의 개인 교습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시험공부에 전념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늘 저녁에, 래번클로 고학년 선배들이 리들 교수의 복장에 대해 떠들어댄 이유를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나 넥라인의 셔츠 위에 넥타이 없이 어두운 와인빛 정복을 입고 있었는데, 주로 무채색을 고수하던 그의 평소 차림과는 조금 달랐다. 옷에서 도는 어둡고 붉은 색감이 그의 짙은 흑발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책장 근처에 선 나는 흘러내리는 그의 머리카락 아래에 날카로운 얼굴선을 유심히 살피다가, 결국 그의 입매에까지 눈길이 닿았다.

나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술에 시선이 가곤 했다.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수업시간이든, 복도에서 마주치든 리들 교수는 전과 전혀 다를 것 없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대체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뭔가 물을 용기는 없었으므로 나도 평소와 같이 순종적인 학생인 양 굴고 있었다.

곧, 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나는 살짝 놀라서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나를 응시한다 싶던 리들 교수는 차분하게 왼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책상에 쌓여있던 양피지 중 하나가 공중에서 선회하듯 내 손에 날아왔다. 얼떨결에 긴 양피지 두루마리를 쥔 나는 겉을 살피다가 양손으로 이를 한 번 펴보았다. 양피지 위에는 빽빽이 뭔가 적혀 있었는데, 자산 상속이 어쩌니, 분할과 권한이 어쩌니 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용어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진 양피지가 바닥에 끌리지 않기를 조심하며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게 뭐죠?”

“그린 고트에서 발급한, 일종의 네 상속에 관한 증명 문서라고 할 수 있겠군.”

나는 양피지를 바로 들고 가장 첫 줄에 있는 제1항부터 찬찬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상속일, 상속절차, 증여대상에 관한 내용들이 한번 읽어서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용어들로 길게 표현되어 있었다. 한 50항쯤 읽었을까, 나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걸 다 기억해둬야 하나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내가 기억하니까.”

나는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가 뜨며 되물었다.

“교수님이요?”

“호그와트 교수진 측에서 나를 대리인으로 임명했다. 앞으로 셀윈 가의 일에 관한 대행은 내가 맡게 될 거야.”

나는 그제야 호그와트로 돌아오던 글래스고 기차역에서 그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제 사감님은 플리트윅 교수님이지 않나요?”

나와 리들 교수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 사실상 가장 가까운 교수님은 래번클로 사감인 플리트윅 교수님이었으므로, 내 권리에 대한 보호자적 대행 업무는 분명 플리트윅 교수님이 맡아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여기에 어떤 방식으로는 그의 뒷공작이 숨어있을 것이 분명하리라고 생각했다. 의문스럽다는 기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내 어조에도 리들 교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법부 근무경력이 있으니까. 플리트윅 교수는 쭉 교직에만 몸담았으니 이런 일에는 문외한이고. 상속의 대행 업무에는 내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저런 식으로 교수진들에게 설득한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여기서 이 문서에 있는 세부 조항들을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상속서를 읽는 것을 관두고 다시 양피지를 손으로 말았다. 리들 교수가 가볍게 손짓하자, 내 손에서 벗어난 양피지가 공중에서 스스로 말리며 한 손에 쥘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와 동시에 책상에서 얇은 노끈 하나가 날아와 자연스레 양피지를 둘렀다.

“그 문서는 따로 보관해 놓도록.”

셀윈 가의 승계에 관한 내 대리업무까지 맡다니. 나는 그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에 다소 놀랐다. 리들 교수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교직을 맡고 있음을 물론 나에게 개인 교습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죽음을 먹는 자들을 통솔하는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가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가 교직을 맡은 후로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일은 없었다. 그건 아마도 리들 교수의 움직임이 호그와트에 제한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은 추측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먹는 자들은 여전히 득세하고 있고, 호그와트 또한 거기에서 안전하지 못했다. 나는 어제 올리비아의 아버지가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올리비아의 아버지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남은 이유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자비로워서는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그들이 쏜 살인저주가 빗나갔고, 오러들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그가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설령 그 자리에 없었다 하더라도, 리들 교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가 갑작스레 꺼낸 말 때문인지 리들 교수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약간 달라졌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어제 올리비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부터 이를 쉽사리 머릿속에서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빌헬름 교수가 실종되었을 때보다도 나에게 더 큰 파문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리들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버지에게 가한 위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당신은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죽여버릴 수 있겠죠.”

저 유려한 얼굴로 몇 명이나 살해하고 몇 명이나 고문했을까. 내가 그에게 반항의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었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리들 교수는 나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만약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그는 충분히 나를 제거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리들 교수는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그가 잔혹한 성정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절감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다시 한 번 상기해내며 확인하려 드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침묵하던 내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가르치던 학생이라도, 올리비아의 아버지에게 그랬듯, 필요에 따라 살인 저주를 퍼부을 건가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인지 모르겠군.”

리들 교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나에게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받고 싶은 건가?”

달라질 것은 없었다. 리들 교수는 애초에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한 걸까. 이미 잘 알고 있는데.

우리 둘 사이에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명령에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내 행동이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딜 수 있을까. 속에서부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반감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애써 이를 억누르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 * *

별로 즐겁게 외출할 기분이 들지는 않았으나, 그 주 주말 나는 필리다와 함께 호그스미드에 나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든 아이작의 생일 선물을 잊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날씨가 완연하게 풀려서 그런지 호그스미드에는 여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외출을 나온 호그와트 학생들도 곳곳에 보였다. 마을 전체에 생기가 넘쳤던 덕택에 저조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필리다와 나는 호그스미드 외곽에 위치한 기차역과 우체국, 마법 기구와 도구를 파는 더비시와 뱅스를 지나 안쪽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아이작의 선물을 살 만한 가게가 없는지 하나하나 살폈다.

내 생각에 가장 괜찮은 선물은 망토였다. 필리다를 옆에 세워두고 글래드래그스 마법사 옷가게 앞에 진열된 망토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옷깃에 수놓아진 문양과 금박 장식이 아이작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조금 더 둘러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멀리 호그스 헤드 입구 앞에서 리들 교수가 보여 깜짝 놀랐다. 그는 처음 보는 마법사 몇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피하며 필리다를 끌어 반대편 골목 쪽으로 향했다. 리들 교수가 누구와 있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늘 같은 주말에 그와 마주치면서 긴장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리들 교수의 시야 내에서 벗어나기 위해 되도록 호그스 헤드에서 멀어졌다.

반대편 쪽으로 조금 더 걷자, 스크리벤샤프트의 깃펜가게 옆에 도그위드와 데스캡(Dogweed and Deathcap)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약재상이 개업한 것이 보였다. 내가 그녀를 끌고 가는 사이 골목에서 이를 발견한 필리다는 낮게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녀는 거기에 온 신경이 쏠려 내가 살짝 긴장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싶었다.

“맙소사.”

그녀는 금방이라도 가게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호그스미드에도 약초 가게가 생기다니!”

혹시 아이작에게 필요한 약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그녀는 나를 끌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약초 가게에 아이작에게 선물로 줄 만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필리다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지만, 나는 당장 리들 교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약재상에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에는 호그와트 온실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약초들이 있었다. 일반 꽃가게처럼 몇몇 약초들은 화분에 심겨 내부에 진열되어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거나, 혹은 마법이 걸린 것 같은 투명 유리 속에 봉해져 있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상자 속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쳐나오고 싶어하는 약초는 어떤 종류일지 의문스러웠다. 종이 상자는 그렇게 단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혹여 그것이 튀어나올까 봐 필리다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저게 뭔진 몰라도 그녀라면 길들일 수 있겠지.

그녀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쉽게 구하지 못하는 희귀한 약초 몇 개를 미리 선점하며 가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침내 기괴한 이빨이 달린 튤립을 아이작의 선물이라며 내 앞에 보여주었다.

“필리다.”

내가 그녀에게 단호하게 조언했다.

“선물은 네가 좋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사주는 거야…….”

“도대체 누가 정시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튤립을 싫어한단 말이야?”

필리다가 나에게 대꾸했다.

“알람으로도 쓸 수 있단 말이야.”

“네 취향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작은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 확신해.”

나는 기숙사 방에서 시간 마다 이빨을 드러내고 유별난 소리를 낼 튤립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휘저어졌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튤립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필리다만 빼고.

“애초에 여기에서 아이작의 생일 선물을 산다는 게 별로 말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필리다를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는 필리다에게 우리가 호그스미드에 온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우리는 곧 마법책과 양피지(Tomes and Scrolls) 서점 쪽으로 향했다. 망토나 책 중 하나를 사기로 마음을 거의 결정한 상태였다. 시계의 가격을 생각할 때, 책을 사게 된다면 한 두 권이 아니라 거의 전집 정도는 고려해야 할 것 같지만.

그때, 누군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 로웨나!”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이름이 불린 방향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봄에 어울리는 상아색 망토를 두른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굽실거리는 그의 어두운 적발과 마주하자, 나는 그가 워플 작가님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여기에서 그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므로 조금 당황했다.

그는 반가운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약간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섰다. 서점에서 방금 나온 듯 그는 책을 몇 권 안고 있었다.

“호그스미드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가 짧게 덧붙였다.

“사실 여기에 올 때부터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아, 안녕하세요. 워플 작가님.”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왜 편지 답장을 하지 않니?”

워플 작가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날 나는 아이작과 신나게 답장을 썼었다. 그러나 그 이후 두 번째로 온 편지에는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첫 편지를 쓸 때 멋들어지는 문구를 만들기 위해 나와 아이작이 얼마나 머리를 맞대고 심혈을 기울였던가. 그의 편지에 답장을 쓰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과는 달리 정신력을 소모를 동반했다. 그래서인지 워플 작가로부터 두 번째 답장이 왔을 때 나는 약간 질려 버렸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쓰자, 하고 미뤄둔 것이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결국 답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릴 정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것까지는 없었다. 나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그간 학교 일 때문에 너무 바빴네요. 죄송해요.”

“누구야?”

필리다가 기웃거리며 내 귓가에 조용히 물었다.

“알프레드 워플 작가님.”

“아.”

필리다는 성의 없는 감탄사만 한 번 내뱉을 뿐이었다. 그녀는 워플 작가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심드렁하게 내 옆에 서서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지루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호그스미드에 올 일이 생겨서 편지를 한 번 더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운데.”

그가 기쁘다는 기색을 강하게 드러내며 필리다를 흘끔 바라보았다. 눈치가 빠른 필리다는 깃펜 가게에 볼 일이 있다며ㅡ필리다가?ㅡ자기 없이 편히 대화를 나누라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그녀는 다시 도그위드와 데스캡에 돌아가서 약초를 더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워플 작가님이 안경테 끝을 들어 올리며 나에게 물었다.

“서점으로 가는 거니?”

“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같이 가도 될까?”

물론이죠.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내 옆에 서며 조용히 물었다.

“네가 셀윈 가의 후계라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어. 자주 오르내리더라.”

“저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거라 그렇게 실감이 나지는 않아요.”

당연히 작가님이 이 얘기를 꺼낼 것이라 생각했다. 셀윈 가에 대해서는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해서 그런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먼저 대화의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호그와트에 관한 새 소설을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맞아. 금지된 숲에 살고 있던 어린 늑대인간이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되는 스토리야.”

그는 꽤 구체적으로 나에게 자신이 구상하는 줄거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워플 작가님은 나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민달팽이 클럽에서 그리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의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다니. 워플 작가님 자체도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가 마법 세계에서 유명인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그의 관심이 그렇게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서점에 도착했다. 내가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산다고 말했더니, 그는 자신이 책을 몇 권을 추천해주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워플 작가님의 추천도서를 아이작에게 선물하는 것도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나는 매우 반갑게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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