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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10)
리들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손목을 옥죄듯 잡고 있던 그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마침내 그가 내 손을 놔주었다. 나는 자유로워진 한쪽 손을 내려 손등으로 흠뻑 젖은 눈가를 가렸다. 그를 보고 싶지도, 내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리들 교수의 앞에서 철저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싫었다.
나는 숨을 조금 참고 입을 열었다.
“왜 이러는 건가요?”
삐져나오는 울음을 그치려고 노력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리들 교수는 여전히 나를 내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향한 원망을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목적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 건 교수님이에요.”
나는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날… 날…….”
차마 말이 나오지 않고 단지 몸만 파르르 떨렸다. 뮬시버와 애버리가 나에게 비추었던 저급한 욕망들이 기억 속에서 들춰 올랐다. 리들 교수의 행동은 그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들처럼… 장난감으로 쓸 생각인 거죠.”
“블루로즈.”
리들 교수가 내 이름을 한 번 불렀다. 울림이 깊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희미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 따위는 신경조차 쓰고 싶지 않았다. 격해지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나는 하고자 하는 말을 모조리 뱉어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맞아요. 내 모든 것을 철저히 이용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리들 교수가 등허리를 잡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온몸에 힘이 빠진 나는 그의 손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나를 바로 앉힌 그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조금 전까지 그의 눈동자에서 일었던 열기가 사그라져 있었다.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리들 교수의 태도에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자, 리들 교수는 침대에 앉은 그대로 나를 품에 안았다. 마치 위로라도 하는 것 같은 그의 모순적인 행동에 나는 더 울분이 복받쳤다.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왜……!”
몸을 뒤틀며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리들 교수는 말없이 나를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난 당신을 증오해! 싫단 말이야!…….”
나는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리들 교수의 가슴을 밀쳐냈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에는 숨겨두었던 그에 대한 감정적 울분이 폭발하듯 속에서부터 튀어나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온갖 성질을 내며 그의 화를 돋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리들 교수는 내가 그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내며 몸을 뒤틀수록 더욱 나를 꽉 껴안았다.
결국, 지친 나는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탈진할 것 같았다. 리들 교수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렇게 말없이 안고 있었다.
내 숨소리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고통은 리들 교수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모든 종류의 고단함과 무게를 안겨 놓고, 가끔씩 나에게 위로라도 해주는 듯한 태도를 비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리들 교수가 그럴 때마다 위안을 받고 안정되는 나 자신이었다. 참았던 것이 다시 올라오듯 숨이 갑갑해졌다.
차라리 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답게 철저하게 냉혹한 태도로 일관했으면 좋겠다. 감정을 가진 사람인 척 행동하며 내 인식을 교란하지 말았으면 했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 혼란을 줄 뿐이었다. 다시금 서러워져 울고 싶은 기분을 삼키며 나는 눈꺼풀을 한 번 내리감았다가 다시 떴다.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건.”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차분하게 말했다.
“나를 제대로 복종시키기 위한 일종의 계획적인 행동인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 근처에 울렸다. 나는 힘을 주고 양손으로 리들 교수의 가슴을 밀어냈다. 내가 울음을 완전히 그친 기색을 보이자, 그는 순순히 나를 품에서 놔주었다. 그에게서 조금 멀어지면서 리들 교수의 코트 위 검은 깃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그와 눈을 마주 보았다.
“이만큼 타당한 설명은 없으니까요.”
내가 싸하게 말했다.
“차라리 철저하게 이용해요, 날. 그렇게 위로하는 척 가식적으로 굴지 말라구요. 나에게 더 한 짓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안 그래요?”
평소보다 훨씬 더 직설적인 내 말투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리들 교수가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더 화가 났다. 그는 심지어 내 공격적인 어조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의 무응답은 나에게는 이를 긍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게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일까. 나도 내가 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리들 교수에게, 내가 뭔가를 기대한다고? 그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시리우스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시리우스와의 관계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 나는 낮게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리들 교수는 내가, 시리우스와 친하게 지내면 자신의 명령에 반하는 짓을 할 것이라 여기는 걸까. 심지어 시리우스와 깊은 사이도 아닌데, 리들 교수가 그와의 관계를 이유로 나를 괴롭히는 것이 더 억울했다.
“시리우스 블랙은 그냥 저를 좋아해요. 그래서 저를 데리고 고향인 브라이턴에 데려가 주었어요. 그 이상은 없어요. 저는 그와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럴 일도 없을 테니까요.”
나를 바라보는 리들 교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가족들이 살아있는 한 당신의 말을 따를 거에요. 그러니 이런 식으로의 협박은 필요 없어요.”
“뭐?”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난 알아요. 당신이 여기에 온 건 우리 가족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경고 아닌가요?”
리들 교수가 부활절 휴가 기간 동안 우리 집에 찾아온 저의는 확실했다. 그는 내 가족들을 빌미로 항상 협박해왔다. 자신이 우리 집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온 것은 네 상속 문제 때문이었다.”
“상속? 셀윈 가를 말하는 건가요?”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맞아. 마법부에 널 데려가려고 했었지. 하지만 시간을 보니…….”
그는 오른팔에 찬 그의 마법사 시계를 살짝 쳐다보았다. 이미 해가 진 시간이었다.
“…오늘은 힘들겠군.”
“그래서.”
나는 눈을 내리깔며 리들 교수에게 물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당신의 일정을 망친 것에 대한 처벌인 건가요.”
그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것을 내 멋대로 판단해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차라리 레질리먼시를 쓰지 그랬나요? 아, 당신의 도구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처벌하겠다고 마음먹은 건가요?”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리들 교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확실히 내 행동에서 기인한 것 같군.”
“뭐라구요?”
“내가 다소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감정적?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현이 리들 교수에게 가당키나 한가? 게다가, 마치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듯한 그런 뉘앙스가 더 이상했다. 내가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이거였나. 나는 정말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저랑 장난치자는 건가요?”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감정적이 되면 아무에게나 그렇게…….”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숨만 내쉬었다. 그냥,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손속에 있는 것들은 내 지배 하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리들 교수가 차분히 대답했다.
“통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나머지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군.”
나는 그의 변명이 더 어이없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지 말라고 비꼬고 싶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와 다른 것이었다.
“그럼 당신은 통제할 수 없는 사람에게 키스하나요?”
말해 놓고도 스스로가 놀랐다. 내뱉고 나서야 나는 내 말의 무게를 알아차렸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반쯤 의식이 나간 것이 분명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 둘 사이에 엷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가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항상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그의 흑안이 어쩐지 차분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오른손을 든 리들 교수가 가만히 내 뺨을 감싸 쥐었다. 나는 어둡게 가라앉은 그의 눈길이 내 입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들 교수는 그대로 내 곁에 다가와 나에게 입을 맞췄다.
나는 다시 가까워진 리들 교수와의 거리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나와 입술이 맞닿은 상태에서 그는 혀끝으로 내 입술 마디마디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대로 입을 벌린 그가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동시에 살짝 깨물었다. 저릿하는 느낌이 들면서 내 몸에 더운 기운이 올라왔다. 한쪽 손으로 내 뒷덜미를 감싼 리들 교수는 마침내 내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내 혀를 감싸듯 원으로 돌려가며 깊게 들어온 그의 혀가 입천장을 살짝 건드리며 입안 곳곳을 농밀하게 헤집었다. 부드러웠으나 이전보다 더욱 짙고 깊게 느껴지는 입맞춤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온몸에 힘이 빠졌다. 배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느낌이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저항 하나 없이 그에게 끌려갔다.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다가올 때 그랬듯 차분하게 떨어졌다. 나는 멍한 눈으로 리들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고, 그제야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겠지.”
리들 교수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조금 오래 응시하던 그는 그대로 내 뺨에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혼란스럽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의 옷자락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셀윈 가 승계에 관한 일은 호그와트에 가서 처리하면 될 것 같군. 급할 건 없으니까.”
리들 교수는 침대 근처에 서서 앉은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더 묻고 싶은 거라도 있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내가 궁금한 것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뭔가 더 물어본다는 이유로 리들 교수를 이 방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휘저었다.
내 쪽을 꽤 오랫동안 바라본다 싶었던 그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이동을 사용한 듯, 그가 있었던 자리에 금빛의 가루가 휘돌다가 공중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치 안개처럼 리들 교수가 떠난 이후에도 나는 계속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나와 그 사이에 오고 간 시끄러운 고성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니, 리들 교수가 내 방에 어떠한 종류의 방음 마법이나 탐지 불가 마법을 걸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고 애썼지만, 그와 닿았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열기가 이를 방해했다. 리들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무엇인가 알아차린 것처럼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