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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9)
나는 한참을 시리우스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그는 나에게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안정되기만을 차분하게 기다려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시리우스는 나를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리들 교수가 나에게 요구했던 계획을 떠올렸다. 나는 시리우스와 이어질 수 없고, 이어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어쩌면 그에게 희망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금 속에서부터 아릿한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시리우스가 내게 처음 고백했을 때, 내가 한동안 시달려왔던 마음속의 묵직한 걸림이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시리우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를 받아줄 것 같은 여지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 *
브라이턴까지 오는 길에 비행기와 기차에서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 먹어서 그런지 별로 배는 고프지 않았다. 우리는 브라이턴 비치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바로 런던행 버스를 탔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 서둘렀다.
버스에서 오는 내내 꾸벅꾸벅 졸다가 깼다가 하고 있는데, 어느새 나는 시리우스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탈 때에는 주로 내가 동생들을 내 어깨에 기대어 재우곤 했었다. 시리우스가 나보다 앉은키가 커서 그런지, 나는 그에게 기댄 자세가 너무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졌다.
집 근처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 때문에 날씨가 전보다 더 추워졌다. 얇은 블라우스 사이로 한기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아 조금 몸을 움츠리는 순간, 시리우스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조금 당황한 내가 거절의 말을 꺼내려는데, 그가 씩 웃더니 먼저 한마디 던졌다.
“우산 좀 사올게.”
내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시리우스는 그대로 빗길을 뚫고 근처에 있는 가게로 뛰어갔다. 이제 그는 머글 세계에 있는 것에 그렇게 큰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시리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나에게 건네준 재킷 끝을 매만졌다. 그의 체취 때문인지 마음이 절로 안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받기만 하는구나. 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맙고도 미안한 기분이 일었다.
곧 멀리서 큰 우산을 펼친 시리우스가 다가왔다. 나는 그와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우산 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와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걷다보니, 마침내 집 앞 대문앞에 도착했다. 그는 대문 앞으로 조금 튀어나온 처마 근처에 나를 세우고 조용히 나를 불렀다.
“로웨나.”
시리우스가 나와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마.”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시리우스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나는 어쩐지 그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그래도, 전…….”
“난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너와 있는 것이 좋아.
내 말을 자르고, 시리우스가 단언했다.
“너에게 잘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야.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멋대로 하는 거라고. 그러니 그걸 너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부담 가지지 마. 알겠어?”
“……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를 조용히 쳐다보던 시리우스가, 장난기 어린 어조로 씩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근데 어떻게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
그가 거만하게 던진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현관문 바로 앞에까지 나를 데려다 준 시리우스는 그대로 인사를 하고 반대편 골목으로 돌아갔다. 나는 문 앞에서 꽤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인사하자, 집 안에서부터 누군가가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미아의 얼굴이 가장 먼저 나를 발렸다.
“로웨나 언니!”
미아가 부엌 쪽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에게 달려오자, 뒤에서 루카스도 따라 일어나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빠가 요리하는 동안 부엌 테이블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웃음이 나서 두 사람을 한 번씩 안아주고는, 동생들을 따라 부엌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아빠가 살짝 뒤로 돌아보며 나에게 인사했다.
“왔어?”
“네. 저 옷 좀 갈아입고 내려와서 도와드릴게요.”
“그럴래?”
오늘 저녁은 키드니 파이구나. 나는 아빠가 늘여놓은 재료만 봐도 알았다. 나는 옆에서 샐러드를 만들어야겠다. 나는 조금 서둘러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 도착해 문을 연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안에는 리들 교수가 서 있었다.
나는 방문을 채 닫지도 못하고 입구에 서서 그가 입고 있는 얇은 진남색 코트의 끝자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리들 교수는 책장 바로 앞에 서서 내 책꽂이에 꽂혀있던 머글 책 한 권을 꺼내 읽고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마침내 리들 교수가 맞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누군가가 잡아챈 것처럼 순식간에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문 손잡이를 잡은 내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꽤 오래 외출하고 돌아온 것 같군.”
리들 교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를 다녀온 거지.”
그가 읽고 있던 머글책을 덮었다.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내 책꽂이에서 꺼낸 그 머글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나는 손잡이에서 손을 놓고, 마른침을 한 번 삼키며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브라이턴… 고향이요.”
“브라이턴, 이라.”
원래 있던 자리에 책을 다시 꽂으며, 그가 마치 곱씹기라도 하듯 느리게 대답했다.
“거기까지 갔다 왔단 말이지.”
나는 방안에 도는 공기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싸늘하다고 생각했다. 딱딱하고 경직된 기류가 나와 리들 교수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그에게서부터 품어져 나오는 냉랭한 기운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먹만 꽉 쥐었다. 내 몸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리들 교수는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사이 나를 그대로 삼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경고했을 텐데.”
갑자기 창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열려있던 방문 또한 쾅 소리를 내며 닫히더니 저절로 잠겼다. 날 선 공기가 얼어붙은 방안을 떠돌았다. 겁에 질린 내가 겨우 한마디 내뱉어냈다.
“왜, 왜 이러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비를 맞아 살짝 젖은 내 머리카락 끝에 닿았다. 그의 눈길은 평소와 달랐다. 깊은 곳에 감추어 있던 것이 드러나듯 그의 눈동자에 선명한 감정이 비추어졌다. 리들 교수의 시선이 내 어깨에 걸쳐진 재킷에 향했다가 길게 떨어졌다. 순간 그의 눈에서 싸한 안광이 비쳐졌다가 흩어졌다.
“네 감정은 온전히 네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의 싸늘한 어조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 모든 것을 읽어내릴 것 같은 흑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가 레질리먼시를 쓰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들끓어 오르는 불안을 억누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리들 교수가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수록 심장이 뛰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지금까지.”
이윽고 내 앞에 선 그가 한쪽 손으로 내 턱을 잡아채 올렸다. 내 어깨에 걸쳐져 있었던 시리우스의 재킷이 저절로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얇은 블라우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억지로 리들 교수와 눈을 마주했다.
“시리우스 블랙과 몰래 만나고 있었나?”
그의 눈은 새까맣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잔뜩 굳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의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내 무응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나를 향하던 그의 시선에 뜨거운 분기가 스쳤다.
바로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리들 교수는, 한쪽 손으로 내 볼을 감싸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거칠게 키스했다. 깜짝 놀란 내가 악물고 있던 입을 열고 숨을 토해내는 순간, 그의 혀가 자연스럽게 내 입안에 들어왔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그의 혀는 금방 부드럽게 파고들어 입안을 휘저었다. 혀가 닿는 마디마다 열기가 일었다. 내가 몸을 비틀며 그를 밀어내려 하자, 리들 교수는 한쪽 팔로 내 손목을 꽉 잡고 오히려 자신의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서서히 리들 교수가 입을 뗐다. 헐떡이며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내 귓가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혀가 귓불을 쓸자, 다시금 호흡이 가빠지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숨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 리들 교수는 다른 한쪽 팔로 내 머리 뒷부분을 감싸고, 귓바퀴를 어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블랙에게 어디까지 허락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허리를 잡아채 제 쪽으로 당겼다. 바짝 붙은 그의 목소리에서 억누른 분노가 비집어 나왔다. 눈동자에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강한 감정이 일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은 나를, 리들 교수는 한 손만으로 그대로 받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리들 교수가 그대로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입술이 목 근처의 살결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는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끊임없이 내 목에 키스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리들 교수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그의 혀가 맨살에 닿을 때마다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겨우 숨을 삼켰다.
이윽고 고개를 든 리들 교수가 흥분을 억누르는 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가 네 몸에 손을 대기라도 했나?”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이 사람이 왜 나에게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직 리들 교수가 나를 건드렸던 생소한 감각이 잔상처럼 남아,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가쁘게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열기가 느껴지는 그의 눈이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말하기 싫다, 이건가.”
평소보다도 훨씬 가라앉은 그의 묵직한 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그의 표정에서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긴장한 내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그는 그대로 나를 자신의 쪽으로 당기더니 반대쪽에 있는 침대로 끌었다.
그의 손길에 의해 나는 순식간에 침대에 등을 댄 채 눕혀졌다. 그대로 다가온 리들 교수는 무릎 한쪽으로 내 허벅지를 누른 채, 내 양 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렸다. 순식간에 나는 마치 침대 위에서 벌이라도 받는 것 같은 자세가 되었다. 리들 교수는 한 손만으로 머리 윗쪽으로 올려진 내 양 팔목을 한꺼번에 꽉 쥐었다. 나는 그가,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를 꽁꽁 묶어놓은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금 헐겁게 매여져 있던 블라우스의 리본이 몸을 뒤트는 사이 살짝 풀렸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리들 교수의 어두운 시선이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했다. 몸에서부터 더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의 반대편 손이 내 목가에 닿았다. 맨살에 그대로 닿은 그의 손길은 부드럽되 집요했다. 손이 점점 쇄골보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알 수 없는 열띤 긴장에 숨이라도 넘어갈 듯 내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무너지는 이성을 붙잡으며, 내가 겨우 한마디 했다.
“그만… 그만해요…….”
그의 손길이 흐트러진 블라우스 사이의 속살을 쓸었다. 끊임 없는 그의 자극에 나도 모르게 달뜬 신음을 내비쳤다. 그와 동시에 리들 교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입술이 목 근처와 어깨, 쇄골을 차례로 스쳐 지나가며 조금씩 아래로 향했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몸은 그의 혀가 닿을 때마다 흠칫 거리며 떨렸다.
“제발…….”
나는 거의 숨을 헐떡이며 리들 교수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신음 소리가 오히려 그를 자극한 듯, 나를 움켜쥔 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전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강한 갈망이 느껴졌다. 단지 그의 눈길이 닿을 뿐이었는데도 몸에 불이 덴 듯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고개를 든 리들 교수가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대체 내가 뭐라고 말하란 말인가. 시리우스가 나를 안아주었다고? 내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자, 늪과 같이 어두운 그의 눈동자가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나의 침묵은 그를 더 화나게 만든 것 같았다. 리들 교수는 그대로 몸을 굽혀 내 입술을 다시 한 번 덮쳤다. 그의 혀가 억지로 입안에 들어왔다. 몸을 비틀었지만, 그는 잡은 손목을 절대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나를 움켜쥐며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내 허벅지 근처에 닿은 자신의 다리에 몸의 하중을 실었다. 그는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이며 더 안쪽까지 혀를 밀어 넣었다.
일순 리들 교수가 정말 나를 어떻게 할 것 같다는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나는 그에게서 격한 감정의 표류를 느꼈다. 그는 나에게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할지도 모른다.
울컥 두려움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걸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을 겪어야 하고, 왜 참아내야 하는 걸까. 이 자는 왜 나에게 이러는 건지 몰랐다. 혼란한 의문과, 두려움과, 모든 것이 뒤섞여서 파도처럼 큰 감정이 되었다. 한 방울 맺혔던 눈물은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흘렀다. 서럽고, 화가 났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낮은 울먹임이 터져 올라왔다.
나에게서 입술을 뗀 리들 교수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리 둘 사이에 인 깊은 고요 속에서 내 울음소리가 옅게 흘렀다. 나는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애써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시리우스와 만나면 안 되는지, 말해봐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울음소리에 섞여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조차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말을 꺼내고 숨을 토해냈다. 온 마음이 엉망이 되고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그의 일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였다. 그러면 그런 목적에 맞게 나를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리들 교수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참으려고 할수록 숨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자꾸 눈물이 흘러 시야가 뿌옜다. 그의 아래에 눕혀져있는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리들 교수와 눈을 마주치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오러가 되면 되는 거잖아요. 교수님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잖아요.”
조금 흐끅거리던 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 당신이 원하는 것만 제대로 해주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나는 정말 슬프게 울었다. 시리우스로 위안받은 마음이 조각조각 깨어지는 기분이었다. 날카롭게 깨어진 조각들이 내 속에서 더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나에게 닿은 리들 교수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이 보기 싫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 작품 후기 ============================
사실 지금까지 중 초본에서 가장 많이 검열되고, 자르고, 표현이 수정된 회차입니다. 혹시나 개인지를 만들게 된다면 초본을 넣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다음 업데이트는 6일 화요일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그때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