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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8)
“시리우스는 빗자루를 타고 이렇게 높게까지 날아본 적이 있어요?”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영국 대륙을 살피며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아니. 뭐 제임스 정도면,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전 정말로 처음이에요.”
유리창에서 이마 좀 떼지그래? 시리우스가 지나가듯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창가에 달라붙어 있었다. 도무지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흰 구름은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빚어서 마법으로 공중에 띄워놓은 것처럼 비행기 아래쪽에 잔뜩 깔려 있었다. 곧 비행기가 구름이 밀집된 구간을 지나가자 끝없이 길게 늘어진 흰 구름이 대륙을 가렸다. 그것조차도 너무 장관이라,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시리우스에게 말했다.
“흰 솜사탕 위에 떠 있는것 같아요.”
땅 위에서 있는 일들 따위는 모두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정도의 장관에 나는 반쯤 넋이 나갔다. 빗자루 타는 것에는 거의 소질이 없는 나는 비행수업 때에도 땅에서 6피트(2미터) 이상 떨어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빗자루 타는 법을 배울 것 같다. 마법사 사진기라도 가져올걸. 하긴, 내가 오늘 비행기를 탈 줄 상상이나 했었나. 머글 연구 시험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화려한 여정이잖아.
옆에 앉은 시리우스가 피식 웃더니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좋냐.”
나는 고개를 들어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분명 비행기를 타자고 한 것은 시리우스인데도 그는 그렇게 뚜렷한 감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륙할 때야 난다며 조금 신나한다 싶더니 곧 창밖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리우스는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죠?”
구경 안 해요? 자리 바꿔줄까요? 나는 시리우스를 재촉하며 물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이 아름다운 광경을 나 혼자만 본다는 것이 어쩐지 미안해졌다.
“나는.”
시리우스는 비행기의 팔걸이에 볼을 괸 채 나를 바라보더니, 그 상태에서 씩 웃으며 말했다.
“너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네?”
시리우스는 그렇게 한마디 툭 던졌다. 마치 애완동물의 재롱이라도 보는 것 같은 어조로 말했지만, 나는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단순히 장난을 치는 것뿐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리우스는 분명 내가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의 놀림감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다시 점잖은 척 입을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창밖으로 긴 뱀이 허물을 벗듯 늘어진 구름이 나타나자, 나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시리우스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것 좀 봐요, 시리우스.”
내가 그에게 속닥거렸다.
“저거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 같아요. 정말.”
이 비행기 안에 우리 말고 다른 마법사라도 타고 있는 거 아닐까요? 내 말에 시리우스는 웃음이 터졌다. 나는 비행 내내 창밖을 구경하면서 보냈다. 그러나 국내선이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상공을 조금 난다 싶었던 비행기에는 곧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이륙과 착륙 자체로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나는 산꼭대기에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 같은 정도의 짧은 비행이 너무 아쉬웠다.
“벌써 내려야 하는 건가요.”
“다음에 또 타면 되지 뭐.”
비행기가 뭐 그리 대수냐는 듯한 시리우스의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마 머글들 중에서도 비행기를 타는 머글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말이지.
비행기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자, 곧 사람들이 수선하게 짐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트렁크니 뭐니 제 짐을 잔뜩 챙겨온 사람들에 비해 우리 둘은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라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우리는 사우샘프턴 공항에서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기차를 타고 브라이턴까지 가야 했다. 시리우스는 그사이 머글 세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매표소로 걸어갔다. 말하지 않아도 제가 기차표를 끊어오려는 것 같았다. 나는 물가에 애를 내놓은 것 마냥 다소 불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다행히도 시리우스는 별 문제없이 발권하는 듯 보였다.
멀리서 그를 관찰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머글 소녀들이 시리우스를 보고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호그와트에서도 자주 보던 광경이라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정작 시리우스 본인은 자신을 향한 관심과 시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제 앞에서 대놓고 얼쩡거리는 머글 여자 무리를 자연스럽게 스쳐 나에게 다가온 시리우스가, 자신이 발권한 사우샘스턴 발 브라이턴 행 표를 보며 말했다.
"4번 플랫폼이야."
시리우스와 승강장에서 기다리는데, 어쩐지 리들 교수와 함께 셀윈 성으로 향했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리우스와 있으면서 조금이나마 잊었던 불안들이 다시금 마음을 옥죄었다.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짐 덩이를 얹은 듯한 기분으로 나는 기차에 올라탔다.
오래지 않아 기차가 출발했다. 거의 2시간은 걸리는 거리라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리들 교수와 함께 기차를 탔을 때에는 마치 천적의 사냥 거리 내에 있는 것 마냥 바짝 긴장해야 했지만, 시리우스가 옆에 있는 지금은 마음이 훨씬 편했다. 다시 떠올라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리들 교수의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배 안 고파?”
“그냥 그래요. 입이 심심하긴 하네요.”
트롤리에서 뭐라도 사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시리우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개구리 초콜릿 상자를 꺼냈다. 나는 저렇게 커다란 것이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가, 이내 그것이 마법 주머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기차 하면 개구리 초콜릿 아니겠어?”
조용히 속삭이던 그는, 개구리 초콜릿을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는 내가 거부의 의사를 표하기도 전에 그대로 뚜껑을 열었다. 반들반들해 보이는 개구리의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는 순간부터 입맛을 잃게 만드는 외양이었다.
그가 살짝 상자를 내 쪽으로 기울자마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 개구리 초콜릿 안…… 꺅!”
안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튀어 오르는 개구리에 내가 깜짝 놀라서 시리우스의 팔을 잡았다. 그는 내가 놀랄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유난스러운 반응에 눈을 깜빡이던 시리우스는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거의 이를 악물고 위협하듯 그에게 말했다.
“머글 눈에 띄면 어쩌려고, 진짜!”
“그게 스릴감 넘치는 거 아닌가?”
그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그대로 차창 쪽으로 팔을 뻗었다.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나는 순간 시리우스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에 흠칫 놀랐다. 그가 내 옆의 미닫이 창문을 위로 올렸더니, 초콜릿 개구리는 한 번 더 뛰어 창밖으로 도망가버렸다.
기차에서 먹을 수 있는 정상적인 머글 간식을 추천해주기 위해, 복도 가운데를 지나가는 열차승무원을 세워 머글 과자를 몇 개 샀다. 시리우스는 그중에서도 씹으면 입안에서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이 나는 사탕을 신기해했다. 이건 종코에서 팔아도 성공하겠는데? 나는 빌헬름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축구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 축구공 모양으로 포장된 초콜릿을 시리우스에게 내밀었다.
“이게 머글식 퀴디치인 축구에 사용되는 공이에요. 원래 크기는 블러저만하지만.”
“뭐? 머글들은 그렇게 무거운 걸 발로 찬단 말이야?”
시리우스가 심각하게 되물었다. 비행기가 하늘에 뜬 것을 본 뒤로, 머글에 대한 시리우스의 인식은 조금 바뀐 것 같았다. 머글들이라면 충분히 블러저를 발로 찰 수도 있겠다는 뉘앙스의 그 말에, 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크기만 블러저만하지 무게는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하긴, 퀴디치에서 사용하는 공은 전부 쇠붙이였다. 안에 공기가 든 공이라는 걸 시리우스가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내 설명을 들으며 축구공의 껍질을 벗겨내고 초콜릿을 한입 먹었다. 결국 시리우스는, 머글식이든 마법사식이든 초콜릿의 맛은 똑같은 것 같다고 최종 평을 내렸다.
마침내 도착한 브라이턴의 날씨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낀 습한 느낌마저도 비 오기 직전의 브라이턴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오히려 감회가 새로워졌다. 익숙한 역사를 지나 우리는 천천히 역 바깥으로 나왔다. 역에서부터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해변 방향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역과 바다는 그렇게 멀지 않았으므로, 걸어서 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온 시리우스가 하늘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비 올 것 같은 날씨인데.”
“비 오면 맞죠, 뭐.”
내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브라이턴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거의 구름이 잔뜩 껴 있었는데, 그러다가 비가 온다 해도 보슬비처럼 잠깐 내리다 그치곤 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비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전 감기 잘 안 걸려서 괜찮아요.”
나는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가, 시리우스를 생각한다면 우산이라도 하나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야 비 맞는 것에 그리 개의치 않지만, 시리우스는 그게 거슬릴 수도 있겠지.
시리우스가 지나가듯이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넌 한 번 감기 걸리면 앓아눕잖아.”
그 말에서 풍기는 묘한 친근함이 왜인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시리우스가 어떻게 알아요?”
“그거야…….”
뭔가 말하려던 그가 머뭇거렸다. 내가 최근에 시리우스의 앞에서 앓아누운 적이 있었나? 가장 최근에 아팠을 때가 작년 생일이었는데. 불현듯 그날 블랙과 함께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순간적으로 나는 이불 속에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기숙사 방에 그를 억지로 집어넣은 것은 물론 목욕을 함께하자고 칭얼댔었다. 그때 시리우스가 대체 어떻게 생각했을까. 혼자 처량하게 생일 축하한 것도 다 봤겠지. 그래놓고선 같이 자자고 그에게 애원하기까지 했었다. 귀 뒤쪽에까지 열이 잔뜩 올랐다. 분명 얼굴 전체가 새빨개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 시리우스에게서 살짝 떨어져 걸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자, 시리우스는 내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내 귓가가 붉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시리우스의 눈동자에서 일순 장난기가 비쳤다.
“그렇게 부끄러워? 너 얼굴 터지겠어.”
“아니에요. 그냥…… 다른 생각 했어요.”
나는 괜히 아닌 척 부정하며 다시 시리우스와 보폭을 맞추었다. 말을 돌려야겠다는 조급한 마음만 들었다.
“그래?”
그러는 사이 시리우스가 생글거리며 물었다.
“그럼 네 생일 날…….”
“그만, 그만.”
이럴 줄 알았어. 나는 그의 짓궂은 어조만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농담을 미리 봉쇄할 요량으로 나는 말을 끊어버렸다.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죠.”
“왜?”
시리우스가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것처럼 묻고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날 나한테 옆에 있어 달라고 계속 졸랐던 게 생각나서?”
“저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세요?”
얄밉다. 나는 괜히 그에게 대들 듯 한마디 던졌다.
“강아지용 골든스니치를 정말 개인 것처럼 열심히 쫓아다니셨던 게 누군데.”
시리우스의 표정에 순간적이나마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약간 동요한 것이 느껴졌다.
“그거야 네가 좋아하니까, 어울려 준 거지.”
“아뇨. 시리우스는 진심으로 즐겼어요.”
그가 애써 의연한 듯 대처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메랑 던지니까 막 홀린 듯 달려가고, 어?”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나는 말을 하다가도 웃음이 터졌다. 그럼 그게 다 시리우스였단 말이야?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자 그는 다소 당황한 것 같았다. 항상 능글맞던 시리우스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니 묘한 승리감이 일었다. 두고두고 놀릴 수 있는 약점을 쥐게 된 기분이었다.
시리우스와 투닥이는 사이, 멀리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익숙했었던 흐린 바다빛과 마주하자, 어쩐지 어린 시절의 추억들과 그때 내가 가졌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홀린 듯 바다에 시선을 꽂았다.
내가 말을 끊고 잠시 침묵하자, 시리우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우리 저 바다 쪽으로 가는 거지?”
“네. 저기로 가요.”
다시 정신을 차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천천히 해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바다가 보이는 브라이턴 비치에 도착했다. 황색의 모래사장이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옅은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들어 왔다가 사그라졌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어 명의 관광객들이 해안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해변 안쪽으로 들어가자, 물기를 살짝 머금은 듯한 무거운 모래가 밟혔다. 다소 둔탁해 보이는 발자국을 뒤로 남기며 우리는 바다 쪽으로 걸었다. 비 오는 날 으레 그렇듯, 해수면은 탁하고 무거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나는 이런 바다에도 익숙했다. 우리 가족은 날씨가 조금 흐려도 종종 바닷가 근처에 나오곤 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그런 건가. 분명 반갑고 좋아야 하는데 오히려 나는 물먹은 것처럼 기분이 축 처지는 것 같았다.
내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느낀 듯 시리우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넌 어렸을 때 이런 바다를 자주 봤었겠구나.”
“네, 집이 이 근처였어요.”
나는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 모래사장 위에 섰다.
“엄마는 항상 이 자리에 자리를 깔곤 했었죠. 여기가 제일 전경이 좋거든요.”
엄마 이야기를 하자 시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 시리우스는 셀윈 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시리우스는, 그 기사를 보고 나를 브라이턴에 데려올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블랙에게 종종 돌아가신 엄마 얘기도 했었으니까.
시리우스와 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딱히 이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여기를 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래사장 위에서 바다를 구경하던 우리 가족의 일과는 엄마의 장례 후 마치 애초에 그러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때의 기억이 없는 동생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아빠와 나에게 있어서는 일상의 부분이 통째로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빠도 나도,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런던으로 이사하고 난 후로부터는 브라이턴에 올 일이 없었으니 그마저도 기억 속에 잊혀졌다.
나는 분명 바다를 보면 어릴 때의 추억 때문에 기분 전환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분은 바다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더욱 침잠되고 있었다. 짙고 어두운 바다는 왜인지 리들 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볼 때면 빛이 들지도 않은 어둡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를 상상하곤 했으니까. 금방이라도 저 바다가 나를 끌고 가 삼킬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리들 교수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물리적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에게 지배받는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고, 호그와트에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리들 교수에게 속박되어 있겠지. 나는 그의 손짓 하나하나에 움직이는 마리오네뜨처럼 출구 없는 꼭두각시질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마법 세계에서 도망가 버렸듯이, 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나를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엄마가 너무 미웠다. 여기에서 내가 모래성을 쌓고 있던 어린 시절, 자신이 셀윈 가의 딸이고, 마녀이며, 내가 유일한 후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줄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혼혈이었고, 마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리들 교수는 나를 이렇게까지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정말 묻고 싶었다. 왜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갔으며,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파도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길게 궤적을 그리며 바다 위를 나는 바다 갈매기의 모습이 보였다.
“시리우스.”
내가 나지막하게 그를 불렀다. 조용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던 시리우스가, 차분히 고개를 돌렸다.
“블랙이 보고 싶어요.”
그가 나를 빤히 응시하더니, 곧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되물었다.
“왜, 블랙이 안아줬으면 좋겠어?”
“……네.”
나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라도 기대지 않으면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리 와, 로웨나.”
시리우스가 고요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그의 근처로 걸어갔다. 시리우스는 그대로 내 손목을 잡더니 나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블랙보다는.”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더 잘 안아줄 수 있는데.”
품 안으로 그의 단단한 체격이 느껴졌다. 단지 안아주었을 뿐인데 그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블랙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따뜻하고 안온했다. 시리우스에게서 익숙한 블랙의 체취가 편안하게 흘렀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시리우스의 가슴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 그를 꽉 껴안았다. 내가 그에게 더 다가갈수록 바로 앞에서 시리우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기 때문에, 마치 내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