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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6)
흐렸던 하늘에서는 마침내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가 근처에 선 나는 유리창에 맺히는 빗방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는 리들 교수의 명령에 따라 셀윈 성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그에게 일임한다고 집요정에게 전했다. 리들 교수는 상속 및 승계에 대한 지시를 따로 내리면서, 자신이 여기에 왔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집요정의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다. 굳이 오블리비아테를 쓰지 않는 것은 앞으로도 셀윈 성에 자주 방문하게 될 거라는 의미일까. 사실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영광을 위한 도구.
엄마가 순수혈통의 마녀였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리들 교수가 그것마저도 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생각해보면 내 조건은 그가 원하는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던가.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그에게 배운다 한들 정말로 그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리들 교수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의 입지를 위협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도. 내가 언제쯤 그러한 역할로 부각될지 모르겠지만, 그가 꾸미고 있는 계획은 단기간 내에 달성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언제까지 이용당해야 할까. 어쩌면 종국에 가서는 리들 교수에게 몰락되는 것이 내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 모든 일을 끝낸 리들 교수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짧게 말했다.
“글래스고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지.”
리들 교수는 그대로 뒤를 돌아 저택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고작 호그와트의 영웅 대접도 불편하고 어색했었다. 그런데 리들 교수는 나에게 그보다 더한 역할을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용당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나는 이 모든 것에 숨이 꽉 막혔다.
* * *
포트키를 통해 글래스고 도심에 돌아오자마자 우리가 마주쳤던 것은 쏟아지는 빗줄기였다. 그는 이미 소나기를 예상했다는 듯 셀윈 성에서 가져온 우산을 폈다. 왔던 그대로 레스토랑 근처 골목에 도착한 우리는 글래스고 역 쪽으로 다시금 걸어갔다. 방수마법 없이 우산을 쓰고 걷는 리들 교수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머글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그가 목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꿔 끼는 가면이 대체 몇 개나 될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다시 퍼스행의 머글 기차에 탔다. 우리가 타는 차량에는 나와 리들교수, 그리고 앞좌석에 앉은 노인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을 지나 나와 리들 교수는 뒤쪽의 좌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글래스고행 기차를 탔을 때와 같이 나는 창가에 앉았고, 리들 교수는 복도 끝에 자리를 잡았다. 셀윈 성에서 여기로 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와 별다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그도 딱히 말을 걸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한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감돌았다.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창밖은 어두웠다. 올 때는 청명했던 시야가 훨씬 불투명했다. 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사이로 먼발치 드리운 산맥 끝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열차가 달리는 탓에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멀리서 보이는 산 하나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묻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나는 그 한마디를 겨우 꺼냈을 뿐이었다. 리들 교수는 대답 없이 책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시간이 허비되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리들 교수가 무엇인가 말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가 입을 열었다.
“꽤 능력 있는 마녀였지. 순수혈통인데도 출신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원만하게 대한다는 이유로 평판도 괜찮았고.”
리들 교수가 조금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특히 마법(Charm)에 굉장히 능했어. 섬세한 기교가 필요한 마법을 잘 구사했기 때문에, 플리트윅 교수가 그녀를 총애했지.”
리들 교수는 그 이상으로 첨언하지는 않았다. 딱히 엄마에 대해 길게 늘여놓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끝낼 수 없었다.
“당신은, 우리 엄마와 어떤 사이였죠?”
분명 알렌 셀윈─핏줄 상 내 할아버지임이 분명했지만, 그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듯, 나도 그를 별로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과 셀윈 성의 집요정은 리들 교수를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키이라가 말했던 것도 그렇고, 그와 엄마는 단순히 친구 이상의 어떤 관계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내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
“연인 사이이기라도 했나요?”
“재밌는 질문이로군.”
리들 교수가 무감각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나를 매우 싫어했어. 제 아버지만큼이나.”
“하지만, 키이라는 당신과 엄마가 곧잘 어울려 다녔다고 말했어요.”
“너에게는 어울려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 아니면 연인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밀리는 나를 향한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는 친절하게 응대했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셀윈의 본성이 튀어나오곤 했지. 남들이 보기에는 우아하고 고상한 순수혈통의 자제였으니.”
“왜 엄마는 당신을 싫어한 거죠?”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리들 교수의 대답이 간결하고 빨라서 놀랐다. 미간을 찌푸리며,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이해?”
“스스로의 선에서 납득하지 못하니 어떻게든 나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했지. 우리는 만날 때마다 정의와 악, 어둠의 마법과 같은 문제로 다퉜어.”
리들 교수는 들고 있었던 책을 외투 속으로 넣으며 차분하게 덧붙였다.
“사담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호그스미드행 열차 시간이 촉박하니까.”
나는 그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화를 해도 풀리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았다. 기교가 필요한 마법에 능한 순수혈통의 마녀. 내가 항상 그려왔던 엄마의 모습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도 거의 8년이 넘게 지났으니까. 내 머릿속에 있는 엄마는 진짜 엄마라기보다는 이제 내가 꿈꾸던 엄마의 모습에 가까웠다.
퍼스에 도착하자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역사 천장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얼얼하리만치 크게 들렸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우리는 호그스미드행 마법사들의 플랫폼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아직 호그스미드행 열차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승강장 앞에 차분히 서 있던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네가 셀윈의 유일무이한 후계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곧 그린고트의 재산 상속이 있을 거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마 셀윈 가가 공식적으로 마법부에서 맡고있는 업무도 몇 가지 하달될 거야. 지금은 휴면상태인 직책이 네게 주어질지 모르지.”
“하지만 저는 아직…….”
“맞아. 원래대로라면 너는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대리인이 이를 맡아야 하지만, 네 친족 중에서 살아 있는 마법사는 없지.”
멀리서부터 경적을 울리며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레일에 닿는 쇳소리와 거센 빗소리가 섞여 역사 안은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리들 교수에게 약간 더 다가갔다.
“그럴 경우에는 호그와트에 있는 교수 중 하나가 네 대리인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의미는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자신이 내 대리인의 역할이라도 맡겠다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윽고 호그스미드 행 완행열차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나는 조용히 리들 교수의 뒤를 따라 기차에 올라탔다.
* * *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 부활절 휴가였다. 아이작은 이번 휴가 때 학교에 남아 있기로 했으므로, 나는 필리다와 함께 킹스 크로스 행 열차를 탔다. 성적에 관심 없는 그녀는 과제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매 휴가 때마다 항상 고향에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필리다는 나에게 이번 휴가 동안 다이애건 앨리에 있는 스포어 집안의 약초상에 놀러 오라고 권유했다. 평소였다면 반가운 기색으로 이에 응했겠지만, 지금 와서는 그 말이 그렇게 흥미롭게 들리지는 않아 나는 에둘러 이를 거절했다. 리들 교수가 자신의 세력을 굳혀서 힘을 넓히고, 지금보다도 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그녀도 안정된 삶을 영위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이 한철의 지나갈 즐거움과 평안처럼 부질없게 느껴졌다.
기차는 평소보다 일찍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굳이 데리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편지로 일러두었다. 혹시 엇갈릴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어차피 우리 집과 킹스 크로스 역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나는 짐이 별로 들어있지 않은 가벼운 트렁크를 끌며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금방 우리 집 근처에 도착했다. 익숙한 역과 골목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급격하게 불안해졌다. 골목을 더 지나니 우리 집의 파란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집 앞 대문 앞에 선 나는 손이 저절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초인종을 누르면 우리 아빠와 동생들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살짝 겁에 질렸다. 혹시 이미 아빠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에 의해 살해되었고,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면 어쩌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자마자 앞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가장 시끄러운 개인 힐더였다. 벌써부터 문 앞에 다가온 힐더는 손님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 바로 대문 근처에서 짖어댔다. 나는 항상 그 소리만으로도 우리 집에 제대로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이윽고 대문이 열리고, 나는 아빠와 마주했다.
“오, 로웨나. 일찍 도착했구나.”
“아빠!”
나는 아빠를 본 순간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그냥 눈물이 났다. 이렇게 아빠가 살아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인지 몰랐다. 나는 마치 그간의 설움을 터뜨리기라도 하듯 아빠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아빠는,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빠의 품이 너무 다정해서 나는 더욱 슬프게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나는 우리 집 개들이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눈물을 닦고 그 아이들을 일일이 한 번씩 다 껴안아주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은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가움을 표해주는 것이 너무 좋아 또 눈물이 날 뻔했다.
“진저는 벌써 이렇게 큰 거예요?”
무릎을 꿇고 진저를 안아 들며 내가 물었다. 분명 호그와트로 떠날 때에는 새끼 강아지였다. 아빠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네가 안 본 지가 몇 개월인데.”
하긴 그랬다. 나는 8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다. 그사이 이만큼 자랄 만도 했다.
“무슨 일은 없었죠?”
나는 다소 걱정스러운 어조로 아빠에게 물었다.
“글쎄, 루카스와 미아가 하루걸러 하루씩 일을 친 거 빼고는 별일 없었던 것 같아.”
“동생들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되는 것을 느끼며 아빠에게 물었다. 내 트렁크를 대신 들어주며 아빠가 대답했다.
“네가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단다. 지금 나가서 놀고 있어.”
집에 들어와서도 나는 현관문 앞에 서서 아빠와 많은 얘기를 했다. 주로 미아와 루카스 이야기였는데, 아빠는 편지에는 담지 못한 모든 후일담을 잔뜩 흥분해서 털어놓으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루카스를 괴롭히던 남자아이와 대판 싸운 미아와 그 때문에 학교에 호출되었다는 아빠의 이야기나, 루카스가 학교에서 ‘가장 엉뚱한 어린이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8개월이나 지났는데도 그렇게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다가는 현관 앞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 나는 트렁크를 잡아들며 말했다.
“2층에 짐 좀 놓고 내려올게요.”
“오, 그러렴. 나는 저녁 식사를 마저 준비해야겠구나.”
에그 타르트가 탔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빠는 그제야 오븐에 넣어두었던 요리들이 기억났는지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희미하게 웃고는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트렁크에 있는 짐부터 먼저 정리했다. 그래 봤자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다. 옷 몇 점과 책이 전부였다. 가져왔던 교과서를 책상 위에 얹다가, 나는 엄마 사진이 꽂혀 있는 액자를 발견했다. 항상 그냥 올려놓고 있어서 평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액자였다. 나는 손으로 액자를 들어 뚫어지듯 엄마의 얼굴을 살피다가,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전등을 켜고 책상 의자에 앉은 나는 가장 아래쪽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를 꺼냈다. 내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는 종이상자였다. 나는 아빠가 생일 선물로 준 팬던트나, 머글 학교의 첫 친구에게서 받았던 편지, 내 첫 자전거 열쇠와 몇 장의 사진을 순서대로 꺼냈다. 가장 아래에 엄마의 사진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사진이 얼마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사진을 찍는 것을 많이 싫어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딱히 궁금했던 적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는 그저 처음부터 엄마고 어른이었지, 나와 같이 어린 시절을 겪은 에밀리 블루로즈라는 어떤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떠올려 보면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도 지금의 나와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사진을 넘겼다. 그러다가 한 장의 사진에 손이 멈추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내 책상 위 액자에 몇 년간 올려두었던 사진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로 보이는 엄마 옆에 호그와트 교복을 입은 리들 교수가 있었다.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던 사진이었음에도, 나는 이 사진에 익숙함을 느꼈다. 그럴 만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사진을 모조리 액자에 넣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으니까. 리들 교수와 엄마가 머글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는 말인가.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깥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
미아였다. 나는 미아가 너무 많이 커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사이, 루카스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미아와 경쟁이라도 하듯 나에게 따라와 안겼다.
“보고 싶었어!”
“내가 먼저 안길 거야!”
미아를 안던 나는 루카스가 억지로 그사이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조금 더 팔을 벌려 두 사람을 함께 안아주었다. 약간 더 자랐을 뿐 동생들은 여전했다.
“아빠 말 잘 듣고 있었어?”
“당연하지! 아빠가 하라는 숙제도 벌써 다했는걸.”
루카스가 먼저 대답을 하자, 미아 또한 아빠가 시킨 것 중에서 뭘 했는지 머리를 굴리면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침에 양치질을 3분 동안 했다고 대답해주었다.
“좋아. 그럼 당연히 선물을 받아야겠지.”
나는 가방에서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찾아 동생들에게 건네주었다. 중코의 장난감 가게에 있는 여러 가지 마법 용품 중에 머글인 동생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잘 없었다. 개구리 초콜릿이라도 주려고 했지만, 어린 동생들이 카드를 학교에 들고 가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다. 이것 말고도 참 재밌는 장난감들이 많은데. 나는 동생들에게 그것들을 다 선물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동생들의 학교생활을 듣다 보니 시간 가는지 몰랐다. 곧 아빠가 부엌으로 불렀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부엌에서 저녁을 먹었다. 동생 둘이 서로 내 옆에 앉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결국 나는 루카스와 미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중앙에 앉았다. 평소라면 이런 것 가지고 싸우느냐고 꾸중을 할 법했지만 그 날만큼은 별말 없이 동생들이 원하는 대로 두었다. 그런 것으로 혼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들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아빠, 요리사 다 됐네요.”
내가 온다고 꽤 신경 써서 구운 듯한 요크셔 푸딩을 한입 맛보며 내가 말했다. 갖가지 샐러드와 로스트 비프을 곁들인 모양새가 호그와트에서 먹던 것보다 더 정성이 느껴졌다.
“요즘은 주말마다 요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였단다.”
“아빠, 언니 온다고 이렇게 많이 한 거야. 평소에는 스튜와 피쉬 앤 칩스가 끝인걸!”
미아가 옆에서 끼어들어서 조잘댔다. 근처에 서 있던 아빠는 그만하라는 듯 미아의 입을 장난스럽게 한 번 틀어막고는, 올리브 파슬리소스를 곁들인 구운 닭고기 접시를 테이블에 올렸다.
건너편 자리에 앉으며, 아빠가 지나가듯 물었다.
“그건 그렇고 학교생활은 어떠니?”
어린 동생들이 있는 자리라 나는 마법에 대한 부분은 걸러서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아빠가 듣기 좋도록 새로 사귄 친구들이나 중간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 위주로 말을 꺼냈다.
동생들에게 내 학교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지루한지 입을 벌려 하품을 하던 미아와 루카스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눈치를 보더니 거실로 나갔다. 만화영화가 할 시간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나중에 동화책이라도 읽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엌에 앉아 아버지와 마저 대화를 나누었다.
“꽤 마음에 드는 교수님이 새로 부임했다고 하지 않았어? 요즘은 편지에 그런 얘기가 없더구나.”
아빠가 갑자기 리들 교수의 이야기를 꺼내 깜짝 놀랐다. 하긴, 나는 학기 초에는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리들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 많이 했었다.
“그 교수님의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어요. 어둠의 마법 방어술 담당이신데, 제 실력도 꽤 많이 늘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장래에 오러가 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오러? 아빠의 물음에 내가 마법사 세계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더니 아빠는 다소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아빠는 내가 경찰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계시니까.
“네가 하고 싶다고 한다면 뭐, 네 선택이 옳겠지.”
다소 얼떨떨하게 대답하셨지만, 나는 거기에서 서운한 기색을 읽어냈다. 아빠는 자신이 마법 세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마법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나로부터 전해 듣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다음번 다이애건 앨리에 갈 때 마법 세계에 관련된 책을 사서 아빠에게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떠들던 동생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집중해서 만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아빠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엄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빠에게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지. 혹시 상처를 받지는 않으실까,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빠,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아빠는 식사를 끝낸 그릇을 치우며 부드럽게 물었다. 어차피 상속 이야기가 나오면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마녀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동생들이 들을까 봐 나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내 말에 놀란 듯 아빠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니?”
“엄마와 같이… 호그와트를 다녔던 사람에게서요.”
나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아빠는 잠깐 침묵하더니, 나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것 같았다.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아빠가 가볍게 말을 이었다.
“호그와트 입학 허가서를 받고 나서부터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단다.”
아빠는 그전부터 엄마가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계셨을지도 몰랐다. 하긴, 엄마가 머글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리 없었다.
“너희 엄마는 처음부터 자기가 먼 곳에서 왔다고만 말했을 뿐, 그 이상으로 얘기해 준 적이 없었어. 옛날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했거든.”
리들 교수는 엄마가 머글 세계로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게 온종일 마음에 걸렸다. 망설이던 내가 겨우 아빠에게 질문했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신 게 맞죠……?”
“오.”
아빠가 눈을 한번 깜빡이더니 놀란 듯 대답했다.
“물론이지, 로웨나.”
아빠가 조심스레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니?”
“그냥요…….”
나는 괜히 말끝을 흐렸다.
============================ 작품 후기 ============================
1. 선인장 마오님, 황찬성님 오타지적 감사드립니다. @달아서 질의하신 분들 모두 쪽지 보내드렸어요. 쪽지함 확인해주세요.
2. 오늘이 89회. 지금까지 총 연재분 1988KB.. 새해 첫날 90회 찍고 2000KB 넘기면 완벽하겠네요. 내일 열두시 땡 새해 기념 연재갑니다. 그때 봐요^_^ 이만 悤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