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86화 (8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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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3)

그의 어둡고 고요한 눈동자와 마주하자,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무릎에 대었던 손을 떼고 바로 섰다. 아주 잠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그의 눈길이 나에게 닿았다. 그러나 곧 리들 교수는 나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필요의 방이 만들어지는 벽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그의 뒤에 서서 방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필요의 방은 지난번 교습 때와 비슷한 형태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지팡이를 휘둘러 무언 마법으로 환영을 만들어냈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 앞에 서서 환영의 동태를 파악했다. 하도 이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 복도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학생들의 무리만 봐도 어떻게 하면 그들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리들 교수와 공격 마법을 몇 번 연습하는 동안 나는 이제 적어도 ‘틀린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몰랐으나, 한 회의 공격이 끝나고 나면 이제 직감적으로 아, 내가 택했던 방식이 잘못되었구나, 하고 느낄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감각은 꽤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서, 나는 적어도 그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 어디가 틀렸는지 정도는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연속해서 나타나며 나를 교란시키던 환영 마법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아직 끝내려면 이른 시간인데?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멀리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리들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외투를 벗은 그는 평소와는 달리 어두운 색상의 셔츠와 넥타이만 입은 가벼운 차림이었다. 탁한 눈동자로 나와 눈을 마주한 리들 교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어 나는 긴장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두 걸음 떨어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선 리들 교수가, 느리게 말했다.

“공격해 봐.”

혹여 잘못 들은 건가 싶은 마음에 두 눈을 깜빡이다가 겨우 되물었다.

“네?”

리들 교수는 한 번 더 말하는 대신 서늘한 눈길로 나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지팡이를 꺼내지도 않았다. 리들 교수의 뜬금없는 명령에 당황스러운 나머지 주문이 채 떠오르지도 않았다. 뭘, 어떻게 공격하라는 거지? 어떤 마법을 써야 하나? 그가 더 이상 부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마법을 시전해야 할 것 같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그와의 거리를 가늠하다가, 결국 나는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엑스펠리아르무스!”

그러나 주문을 외웠음에도, 리들 교수의 지팡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마법 자체가 발현되지 못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주문을 잘못 말한 줄 알았다. 그가 방어 마법을 시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리들 교수는 지팡이를 들지도 않았다.

나는 어찌할 바 몰라서 멍하게 선 채로 지팡이를 꽉 쥐었다.

“끝인가?”

“아, 저…….”

딱히 생각나는 다른 마법은 없었다. 내가 리들 교수에게 엿가락 다리 저주를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떤 주문을 쓰든 막히게 되어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공격을 하란 말인가?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리들 교수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무장해제 마법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하지만 일대일 상황에서는…….”

분명 거리가 가깝고 일대일로 상대하는 상황에서 마법사들끼리 결투를 벌였을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공격마법은 무장해제라고 배웠다. 상대방이 지팡이를 뽑기도 전에 시도해야 한다고.

리들 교수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간에 끊었다.

“무장해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것을 시전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서 동시에 무장해제 마법이 통하리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을 때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넌 나에게 무장해제 마법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나?”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환영마법과는 다르게 리들 교수는 실존하는 인물이었고, 나는 현격한 수준의 차이가 드러나는 그에게 어떤 마법으로 공격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지 무장해제 마법이 생각났기 때문에 시전했을 뿐, 그것이 리들 교수에게 통할 것이라고는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지팡이에 미약한 흔들림조차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지만.

“무장해제 주문만큼 술자의 마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마법은 없다. 철저하게 마법적 효력이 있는 주문이지.”

리들 교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와 나 사이에는 압도적인 마력의 격차가 있다는 걸 모르나? 이런 상대에게 마력을 가지고 상대하는 주문을 써서 뭐 어쩌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군.”

나를 상대함에 있어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는 주문만큼이나 너에게 불리한 것은 없어. 그가 차갑게 덧붙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리들 교수가 지적했듯, 내가 본능적으로 무장해제 마법을 떠올린 것은 그와의 마법적 격차 때문이었다. 그를 마법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했으므로, 어떻게든 무장해제 주문을 통해 지팡이를 뺏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의 격차가 크다는 그 사실 때문에 오히려 철저히 ‘마법적’ 효력이 있는 무장해제로 그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경우에는 마력이 주가 되는 공격보다는 오히려 물리적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그가 말했다.

“내가 아무리 너보다 마력이 강하더라도, 타격이 큰 요소들에 대한 물리적 방어력은 비슷할 거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방어에 소요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프로테고’는 가벼운 물리적 공격을 막을 수는 있지만 강한 타격까지 방어할 수는 없으니까, 그보다 고난이도의 방어마법을 시전하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수도 있을 테고.”

너는 정작 머글식 사고가 필요할 때에는 마법사식 사고방식을 고수하는군. 그가 조금 한심하다는 듯 덧붙였다. 리들 교수의 한마디에 나는 무엇인가 깨달은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꽤 ‘직관적으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들 교수가 계속 지적하는 것은 그 점이었다. 그는 이전에 내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법사를 공격한 것을 적시했고,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무장해제 주문을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것이 실제 결투에 있어서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만들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그에게 공격 마법을 수련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내 직관적 판단이 생각보다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공격 마법을 단지 이론적으로 외우고 배워왔던 내 사고방식은 실제 공방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글자로 배우고 이해되었던 주문과는 달리, 그 마법이 발현되는 곳은 시간과 공간, 질감이 존재하는 현재의 물리적 장소였다.

그가 환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나를 가르치는 것은 잘못 인식된 직관 자체를 수정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다.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거나 심사숙고할만한 시간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그때 떠오르는 마법이나 주문을 사용할 뿐이다. 어쩌면 승부에서의 승패는 이 직관이 얼마나 잘 들어맞느냐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미리 말해주도록 하지.”

조금 뒤로 물러난 리들 교수가 허리 뒤쪽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네 공격이 끝나고 나면 무장해제 주문을 걸겠다.”

다시 한 번 나를 공격해 봐. 방어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채, 리들 교수가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명령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뭐가 있지? 그의 관심이 쏠릴만한 압도적인 물리 공격이? 자꾸 전에 썼었던 아쿠에 에룩토가 머리를 휘저었지만 몇 주 동안 배운 바로 그 주문은 ‘틀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에서 정답과 가까운 주문이 바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고민하던 나는 마침내 지팡이를 들었다.

“인센디오 막시마!”

지팡이 끝에서 거대한 불꽃이 나와 잡아먹기라도 할 듯 리들 교수를 덮쳤다. 순식간에 프로테고 막시마를 형성한 리들 교수는 무언 마법으로 물을 소환해냈다. 그의 지팡이에서 튀어나온 거센 물줄기가 그를 위협하는 불꽃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마치 내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듯한 대처라 나는 조금 놀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이 모든 것을 끝낸 리들 교수가 내 쪽으로 지팡이를 겨눴다.

“엑스펠리아르무스.”

내 손에 쥐어져 있었던 지팡이는 무엇인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리들 교수 쪽으로 날아갔다. 나는 채 방어마법을 형성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무력하게 지팡이를 뺏겼다.

“결투에 있어 공격이라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우연히 선공의 기회를 잡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너보다 얼마나 능력 있는 마법사인지, 그 후에 상대방이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어떤 마법을 쓸지까지 헤아려야 해.”

나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그에게 단 한 번 공격을 가하는 것도 머리 아픈 문제였는데, 그 이후까지 살피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공격은 상대에게 어떠한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에 그 목적이 있겠지만, 너와 나 사이에 있어서의 공격은 다르다.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을 향한 공격은 승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럴 때는 이기는 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허를 찔러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야 해.”

리들 교수가 자신의 손으로 들어온 내 지팡이를 까딱하며 말했다. 지팡이를 다시 되돌려 받기 위해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걸어갔다.

“나는 너에게 무장해제를 사용하겠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가까이 다가온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한마디 던졌다.

“네가 공격 마법을 쓸 때 이것까지 고려하진 않았던 것 같군.”

“그 상황에서 말씀하신 모든 걸 어떻게 파악하라는 건가요?”

그가 내민 지팡이를 받으며, 나는 분기 어린 어조로 대꾸했다.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고 리들 교수는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내가 말을 이었다.

“너무… 생각해야 할 게 많아요.”

어떻게 거기까지 고려하며 공방을 벌이란 말인가. 저 사람은 대체 내 수준을 파악하고 있기는 한 걸까. 아니, 애초에 내가 그가 정한 잣대에 도달할 수 있기라도 할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버겁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내 고민은 딱히 그에게 와 닿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곧 5학년이 되면 어둠의 마법 방어술도 본격적으로 대련 실습에 들어갈 거다. 바실리스크를 무찌른 네가, 또래 애들의 공격에 절절매는 모습을 보일 생각은 아니겠지.”

대충 교습이 끝난 듯, 리들 교수는 자신의 지팡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가 말하는 이유가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치듯 일었다.

“기억해 둬라. 너는 단지 남들보다 잘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아. 압도적인 능력 차를 보여야 하지.”

짙고 차분해 보이는 검은 동공이 나를 향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묻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내 머릿속은 단지 혼란감과 무력감으로 어지러울 뿐이었다.

* * *

금요일 오전에 있었던 머글 연구 시간에도, 나와 시리우스는 서로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던 것이 없었던 일이었다는 듯 그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기로 약속했던 것이지만, 문득 이대로 시리우스와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될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시리우스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나가버렸는데, 혼자 남은 나는 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마법의 역사 수업 하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긴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계속 미뤄두고 있었으나, 마법약 과제에 필요한 책들을 찾아봐야 했다. 이번 주말에 리들 교수와의 외출이 있었고, 그 후에는 부활절 휴가였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어디를 가는지는 몰라도 그가 그동안 하지 못한 과제를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복도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아까워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누가 있나? 눈을 깜빡이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공중에서 갑자기 손이 튀어나와 내 팔목을 쥐었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로웨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시리우스의 얼굴만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킥킥대며 웃던 시리우스가 걸치고 있던 것을 걷어내자, 자연스럽게 교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몸이 나타났다. 마법이라도 사용한 건가 싶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살펴보았다.

“많이 놀랐어?”

“뭐, 뭐에요?”

시리우스는 복잡한 문양이 수놓아진 망토를 손에 쥐고 있었다. 놀란 나를 보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비추던 시리우스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가지고 있는 망토를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덮었다. 뭐지? 하는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올려다보는데, 그가 고갯짓하면서 망토 사이로 보이는 거울을 가리켰다.

“저쪽을 봐.”

거울을 봤다가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망토를 쓴 부분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투명했다. 대신 가려지지 않은 하체만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그건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시야에 나와 시리우스의 다리만 보이다니!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손을 들어 내 머리 위로 덮여있는 망토를 만지작거렸다.

“이게 뭐죠?”

“투명 망토야.”

내 것은 아니지만. 시리우스가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유심히 투명망토를 살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구나. 시리우스가 이걸 가지고 얼마나 많은 장난을 치고 다녔을지 생각해보니 웃음만 나왔다.

“이걸 몰래 쓰고 다니는 거에요, 호그와트에서?”

“호그와트 탐방을 위한 필수품이지.”

시리우스와 투명망토라. 실로 최악의 조합이 아닌가. 그가 지금까지 했던 장난들이 쉽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망토를 걷어내려고 하는데,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서 살짝 놀랐다. 복도 끝쪽으로부터 여학생 몇이 다가오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우리는 다리만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순간, 시리우스가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숙여, 빨리!”

시리우스가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굽혔기 때문에, 나는 엉겁결에 그와 함께 쪼그려 앉아야 했다. 망토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으므로, 망토 안으로 몸을 숨기기 위에 나는 시리우스에게 바짝 붙었다.

망토 바깥으로 여학생들이 조잘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여 들킬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마주 보고 앉은 시리우스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들었다. 빛이 희미하게 들어와 어두운 망토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곧 내 무릎이 그와 닿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앉은 자세 때문인지 허벅지까지 들려 올라간 치마가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의 옅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끄러워 눈꺼풀을 살며시 내리깔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약간 고개를 숙인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너.”

그가 귓가에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시리우스의 옅은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그 상태에서, 시리우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참을 수 없이 예쁘다.”

“네?”

나는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빨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들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을 제한다면,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무엇인가 재치 있는 농담으로 무마하고 싶었지만, 그냥 창피하다는 생각만 들 뿐 딱히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시리우스는 정말로 즐거운 듯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믿냐?”

시리우스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놀리듯이 말했다.

“스스로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해?”

나는 그제야 시리우스가 나에게 장난을 친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또. 매번 나는 이런 식으로 놀림에 맥없이 당하는구나. 그는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정말 얄밉네요.”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떠들던 학생들은 금방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이제 다시 망토 밖으로 나가도 되겠지.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시리우스가 내 손목을 잡더니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릎을 펴고 바로 서려던 나는 휘청거리며 시리우스의 방향으로 당겨졌다. 순식간에 나는 그의 앞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했다.

“근데.”

여전히 손목을 놓지 않은 채로,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계속 이 속에서 이렇게 같이 있으면 안 될까?”

============================ 작품 후기 ============================

1. 인센디오는 원작에서 불을 붙이는 주문이지만 ‘인센디오 막시마’는 없어여. fire streem 계열 마법을 쭉 찾아봤는데 로웨나 수준의 마법이 없어서 그냥 인센디오가 좀 큰 정도의 마법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로웨나가 덤비가 볼디 잡을 때 사용한 마법을 쓸 수는 없으니까여ㅜㅜ

2. 닭덕후님, 르벨님, 쥬느비에님 쿠폰 감사합니다 :-)

+ 다음 업데이트는 27일이 되는 00시입니다. 열분 해피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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