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85화 (8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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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2)

나는 아이작과 완성한 어지럼증 마법약을 약병에 담고 슬러그혼 교수님께 제출했다. 항상 우리의 마법약은 슬러그혼 교수님께 좋은 평가를 받곤 했지만, 그래도 정작 한 번이라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히포그리프의 깃털이 덜 들어간 것 같은데.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수업이 거의 끝나간 시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이작과 책을 챙겨서 교실을 나서려는데 필리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자연스레 우리 옆에 함께 서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근데 그거 들었어, 너희들?”

나는 필리다가 무엇인가 신나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복도 쪽을 나서던 나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못 들은 것 같아. 뭔데?”

“시리우스 블랙이 이번에 블랙 가의 유산 물려받은 거.”

“뭐?”

웬 유산? 아이작도 처음 듣는 소리인 것 같았다. 필리다는 아이작의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언자 일보에도 실렸는데. 아직 못 읽었어?”

“아, 오늘 신문은 확인 못 했는데.”

어제 천문학 수업 끝나고 늦게 잠들어서 오늘은 일찍 일어나지 못했거든. 아이작이 짧게 변명했다. 필리다는 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 꽤 즐거운 듯 약간 고조된 어조로 말했다.

“블랙 가에 방계가 있었나 봐. 알파드 블랙이었나? 하여튼 얼마 전에 사망했는데, 그가 남긴 금괴를 누가 물려받느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대. 블랙 가 내부에서 세력 다툼도 많았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이작과 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필리다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그녀는 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근데 정작 알파드 블랙의 유언장을 열어보니, 모든 금괴는 시리우스 블랙에게 상속한다고 되어 있는 거지.”

그 순혈주의자들은 모조리 다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거야. 필리다의 말에는 통쾌하고 고소하다는 기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가 딱히 시리우스 블랙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수혈통이라고 뻐기는 블랙 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감이 있었던 거겠지.

아이작이 뭔가 생각난 듯 한마디 던졌다.

“아, 나 알파드 블랙을 한 번 본 적이 있어. 그 사람, 블랙 가와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가 흘러가듯 중얼거렸다.

“꽤 자산가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린 고트와 연계된 사업을 벌이고 있었거든. 아이작이 말을 덧붙였다.

그럼, 집까지 뛰쳐나왔으니 그건 다 자기 재산인 거야? 필리다가 반쯤 흥분된 어조로 소리치더니, 갑자기 나를 툭툭 건드렸다.

“팜므 파탈, 얼른 다시 친해지면 안 돼?”

필리다의 어조에는 농기가 담겨 있었으나, 나는 이를 쉽게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편치 않은 티를 낼 수는 없어서, 나는 태연한 듯 억지로 웃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게. 내일 당장 인사부터 해야겠다.”

내가 그녀의 농담에 응수하자, 필리다는 마치 지금이라도 시리우스와 내가 결혼할 기세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요즘 나와 시리우스 사이에 흐르는 냉한 기류를 단지 연인들의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필리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는 자신이 나중에 약재상을 물려받게 된다면 사업 자금의 투자를 부탁하겠노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장난에 소리 내 웃긴 했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회오리치듯 뒤섞이고 있었다.

필리다의 반응을 볼 때, 나와 시리우스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호그와트 학생들 사이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 뻔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타인의 시선에 초연해지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이런 종류의 소문일 경우에는. 게다가 지금의 나는 호그와트의 이름 모를 학생은 아니지 않던가. 나에 관한 소문은 예언자 일보에 실릴지도 몰랐고, 공론화되기도 쉬웠다.

분명 시리우스에게는 좋은 소식인데, 오히려 이는 내 판단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시리우스와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필리다나 아이작에게 꺼내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친구들과 함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로 향했다.

* * *

그 날 오후의 마지막 수업은 머글 연구 수업이었다. 함께 과제를 끝낼 요량으로,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와 시리우스는 도서관을 향했다. 학기 초 머글 연구 과제를 함께 했었던 그 테이블은 이제 우리의 과제 전용 좌석이 되었는데, 이 테이블의 근처에는 머글 연구에 관련된 주제로만 이루어진 서가가 있었던 탓이었다. 애초에 머글 연구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는 서가에까지 찾아 들어오지 않는 데다가, 테이블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떠들면서 과제를 끝내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시리우스는 우리가 서가에서 뽑아 온 머글의 도시에 관련된 책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갑갑하다는 듯 넥타이를 벗어 쌓아놓은 책 위에 얹은 그는, 지팡이를 살짝 휘둘러 영국의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우리가 머글 도시를 왜 외워야 할까.”

의자에 앉으며,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시리우스가 투덜댔다.

“갈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

나는 암기력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우수한 시리우스가 왜 저렇게 불만을 표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거의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수업을 들어왔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러한 이유로 시리우스는 공부한다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비록 책상에 앉아서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빌헬름 교수님은 기억을 잃고 머글 세계를 떠돌다가 마법 세계로 돌아온 이후 본인이 머글 세계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더 심해졌는데, 그러면서 과제나 커리큘럼도 기존의 책보다는 강의 위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과제는 영국에 있는 머글 도시에 관한 것으로, 도시 중 하나를 골라 그 지역적 특색과 머글들의 문화를 조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영국의 머글 도시가 이번 시험 범위가 될 것이라며, 주요한 도시명들은 다 외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충고했다.

물론 반쯤 머글로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익숙한 도시들이었다. 실제로 머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비슷한 과제를 하기도 했었고.

“그래도 큰 머글 도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심드렁하게 머글들의 행정구역을 읽어내리던 시리우스에게 내가 한마디 던졌다. 실제로 웬만한 머글의 큰 도시라 하더라도 마법사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는 도시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의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유명한 도시만 겨우 알 뿐이고, 머글 도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법사들의 도시는 너무 좁은 것 같아요. 영국만 봐도 대부분이 런던에만 몰려 있고…… 당장 호그와트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 호그스미드 밖에 없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

아무래도 마법사가 머글보다는 인구가 적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던 시리우스가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법사들의 인구가 어느 정도쯤 될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답했다.

“머글들의 인구는 40억 정도 된다고 머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1%는 될까요?”

“40억?”

시리우스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게 많단 말이야?”

내가 비행기의 무게를 말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인데. 그의 은회색 눈동자에 미심쩍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내가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마루더즈들과 서로 간 골려대는 것이 일상이니 불신이 몸에 밴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영국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당연하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영국에만 도시가 이렇게 많은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영국 전도에는 나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할 무수한 도시의 이름들이 있었다. 이를 한번 쭉 훑어본 시리우스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런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혀 머글 세상을 접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나에게는 솔직히 마법사들이 이렇게 머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머글들이야 마법사들의 세상에 오지 못할지라도, 마법사들은 머글들의 사회에 쉽게 들어갈 수 있지 않던가.

시리우스는 곧 납득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난 머글 도시에 제대로 가본 적 없으니까. 난 거의 그리몰드의 블랙 가에만 처박혀 있었거든.”

그가 말을 덧붙였다.

“가족 여행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니까.”

대체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길래 자식을 집에만 방치해두는 거지? 오리온 블랙을 떠올리니 또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환경에서 시리우스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물었다.

“넌 어디 사냐?”

“런던이요. 잘 모를걸요, 세인트 폴 대성당 근처에요.”

역시나 시리우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게 어디냐는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당이라는 것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를 그가 세인트 폴 대성당을 알 리가 없었다. 우리 같은 런던에 살고 있는 거 맞나? 나는 한참을 그에게 위치를 설명했으나, 곧 그것이 색깔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파란색의 푸름을 이해시키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일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애초에 머글 도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런던 시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관두었다.

“사실 런던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아요, 저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전 원래 브라이턴에서 태어났어요.”

나는 펼쳐져 있던 영국 전도에서 남부 해변에 위치한 내 고향을 손으로 짚었다. 흘끔 바라본 시리우스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촌구석 출신이었네.”

나는 어쩐지 발끈해서 대들 듯 말했다.

“머글 도시 중에서는 나름 큰 도시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브라이턴이 얼마나 살기 좋은 동네인지 하나하나 장점을 읊기 시작했다.

“일단, 호그와트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비해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데요. 심지어 여름에는 뼛속까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서 더위를 완전히 잊어버린다구요. 관람객이 많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 적당히 큰 도시라 있을 만한 것들은 다 있다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다를 볼 수 있어요!”

말하다 보니 어릴 적 고향이 생각나 나는 약간 들뜬 상태에서 자랑이라도 하듯 목소리가 살짝 고양되었다.

“결론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거죠.”

두서없이 이야기하다가, 시리우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말할 때는 몰랐는데 계속 나에게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당황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가 툭 던지듯 중얼거렸다.

“흥분해서 조잘조잘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무엇인가 말하려던 그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뭐지? 약간 머뭇거리던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퍼프스캔이 놀라서 뛰어다니는 것 같아.”

퍼프스캔이라니. 나는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저 사람은 진짜 나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나는 시리우스가 나를 싫어하지 말라고 말했던 게 꿈같이 느껴졌다. 원래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는 무조건 칭찬만 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나 욕한 거죠, 방금.”

시리우스가 나른하게 대답했다.

“왜, 퍼프스캔이 얼마나 귀여운데.”

나를 놀리는 거구나. 나는 새로 양피지를 한 장 꺼내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됐어요. 과제나 해요.”

나는 그의 앞에 책을 밀어주며, 얼른 도시를 하나 고르라고 재촉했다. 관심 없이 책장을 대충 넘기던 시리우스는 결국 사우샘프턴을 골랐다. 왜 사우샘프턴이냐는 내 말에 시리우스는 거기에 공항이 있다는 대답으로 일축했다. 조금 꿍한 기분이었던 나는 금방 웃음이 터졌다.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리버풀에 대해 쓰기로 결정했다. 빌헬름 교수님이 수업 도중 축구 이야기를 한 것을 고려해 볼 때 그것까지 섞어서 설명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깃펜으로 글자를 적어 내려가면서, 나는 지나가듯 그를 불렀다.

“시리우스.”

이 얘기를 꺼내도 될까? 잠깐 고민하던 내가 결국 그에게 물었다.

“블랙 가에서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게 진짜예요?”

“너도 예언자 일보 봤어?”

시리우스는 예언자 일보가 자신에게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것 같다고 투덜댔다.

“나도 몰랐는데, 그렇다고 하더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친했나 봐요, 그분이랑.”

“알파드 삼촌은…… 글쎄.”

나는 삼촌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걸. 알파드 삼촌은 블랙 가에 그렇게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시리우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언제 돌아가신 거에요?”

“한 달 전쯤. 난 장례식도 못 갔어.”

하긴, 그는 블랙 가에서 추방되었으니까. 시리우스는 알파드 블랙의 사후 처리를 하는 그의 개인 변호사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유산의 상속 여부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가 말하길 시리우스의 삼촌 알파드 블랙은 블랙 가에 별로 애착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알파드를 만난 것은 그리핀도르에 들어간 직후 있었던 순수혈통모임이었는데, 블랙 가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비난하거나 꾸중했었던 와중에 유일하게 시리우스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알파드 블랙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리우스의 어머니 발부르가와 크게 다툰 이후로는 거의 블랙 가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고 그가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소문이 진짜 빠르게 퍼지는구나.”

아직 상속이 개시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시리우스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양피지에 시선을 꽂은 채 그에게 대꾸했다.

“전 지금 시리우스와 친해지면 또 이상한 소문이 돌 걸요.”

“무슨 소문?”

“블루로즈가 블랙의 재산에 탐나 다시 시리우스와 접근하려고 한다.”

사각거리던 시리우스의 깃펜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 나는 리버풀의 위치와 유명한 관광지에 대해 적어 내려가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한 가십거리들을 늘어놓았다.

“시리우스 블랙은 또 한 번 로웨나 블루로즈의 뒷공작에 넘어갔다.”

“뭐,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부정을 못 하겠는데.”

시리우스가 능글맞게 웃었다.

“이미 그런 소문이 돌았던 거 몰라요?”

“뭐가?”

“저번에 제가 슬리데린 5학년들과 싸웠을 때요.”

양피지를 한 장 넘기며 내가 말을 이었다.

“그때 알렉토가 했던 말이 그거였어요. 내가 블랙 가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시리우스를 꼬셔 냈는데, 시리우스가 블랙 가에서 나오자 당신을 버리고 아이작에게 다시 붙었다는 거였죠.”

나는 팜므파탈이라 놀려대던 필리다의 반응을 생각하며 반쯤 농담삼아 꺼냈는데, 고개를 들어 시리우스를 바라보니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이 이야기를 괜히 해 준 건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곧바로 시리우스의 표정이 풀렸다. 그는 평소와 같은 가벼운 농담기를 담아 나에게 한마디 했다.

“네가 그런 마음이었다면 그냥 블랙 가에 버티고 있을걸.”

시리우스의 얼굴에는 서글서글하게 눈웃음이 떠올라 있었으나, 나는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알렉토가 나를 조롱한 사실에 대해 화가 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말을 돌릴 요량으로 황급하게 대꾸했다.

“그런 소문은 누구에게나 쉽게 생기니까요. 누가 저에게 전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죠.”

깃펜을 놓은 시리우스가 팔짱을 꼈다. 그는 무엇인가 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침묵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한동안은, 아는 척하지 말자.”

“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 사람들은 쉽게 말하니까. 행동을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는 시리우스를, 나는 빤히 바라보았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는 블랙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사람들이 쉽게 낸 소문 때문에 받아왔던 상처에 대해, 시리우스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걱정을 하고 어떤 불안감을 느끼는지도 다 꿰고 있지 않을까.

시리우스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내가 먼저 말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가 그렇게 제의한 것이 나를 향한 일종의 배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에게는 고민거리가 너무 많았고,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시리우스가 알아볼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동의를 표했다. 곧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과제를 계속했다.

* * *

나는 한쪽 팔을 걸친 채 책상에 엎드려 아이작에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너무 해야 할 게 많아…….”

시험이 다가오면서 과제들은 계속 쌓이고만 있었다. 기일에 겨우 맞춰 과제를 제출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나는 웬만하면 수업 직전과 직후에 예습과 복습을 다 마치려고 노력했고, 수업 시간에도 온전히 집중해 적어도 그 시간에 배운 것들은 시간 내에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제 아침에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났다. 리들 교수의 명령에 따라 나는 열한 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으므로, 아침 시간을 활용해야지 그나마 공부할 여유가 생겼다. 리들 교수는 일찍 잠드는 것이 오히려 내 정신에 해롭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책을 읽던 아이작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에 머리를 맞댄 채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는 한 번 피식 웃더니 내 머리를 살짝 흐트러뜨렸다.

“조금만 참아. 곧 휴가잖아.”

“그래야겠지?”

그렇지만 부활절 휴가가 끝나면 또 돌아와서 시험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의 끝이 어디일지 한숨만 나왔다. 수석은 또 어떻게 한담. 반사적으로 리들 교수가 떠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그가 생각나서 약간 화가 날 정도였다. 여전히 책에 시선을 꽂고 있는 아이작을 보니 앞이 막막했다. 쟤를 이기란 말이지. 걱정거리가 절로 쌓이는 것 같았다.

아냐, 그건 나중 일이야. 나는 애써 머릿속을 털어냈다. 1개월 후의 로웨나가 알아서 하겠지. 엎드려 있던 고개를 들고 일어나 머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당장에 급한 과제들이 얼만데. 나는 오늘 안에만 끝내야 할 과제가 두 개나 있었다. 나는 대충 서론만 적어 놓은 양피지 두 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이작 앞에서 중얼거렸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제를 먼저 할까, 아니면 마법약을 먼저 할까?”

“같이 마법약부터 하자.”

그가 자신의 책을 덮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이작은 내 마음을 읽고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대답 하나만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마법약의 과제는 함께 넣어서는 안 되는 재료의 조합과 이 조합의 부작용에 관해 양피지 20인치가량으로 서술하는 것이었다. 나는 쌓여있던 책들 중 마법의 약 교과서를 꺼내 일단 생각나는 것들만 몇 가지 대충 옮겨 적었다.

이걸 아무리 부풀려도 5인치는 모자랄 것 같은데. 머리를 쥐어짜며 잘못된 조합에 대해서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용의 심금과 맨드레이크를 함께 넣으면 어떻게 되었더라?

“작년에 ‘기절한 사람을 깨우는 마법약’ 만들 때였지, 아마?”

아이작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변하다가 폭발했던가?”

희미하게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제발, 생각나라.

아이작과 함께 한참을 고민했는데도 아직 2인치 정도가 부족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야 하나. 관련된 책을 살피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참을 과제에 몰두하다가, 내가 고개를 번쩍 들고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 몇 시야?”

아이작이 손목시계를 흘끔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이제 6시 45분쯤 됐는데.”

“벌써?”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시계를 확인했다. 정말 6시 45분이었다. 이러다가 리들 교수와의 교습에 늦을지도 몰랐다. 나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양피지를 쓸다시피 해서 내 쪽으로 모았다.

“나 잠깐 도서관 좀 가야겠어. 찾아야 할 책이 있어서.”

“뭐?”

“얼른 다녀올게.”

남은 과제는 나중에 하자고 아이작에게 덧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와서 그가 왜 그렇게 늦었느냐고 묻는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찾느라고 오래 걸렸다고 말하면 되겠지. 혹시 도서관에 찾으러 갔었다고 말한다면 금지된 서가에 있었다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래번클로 기숙사에서 나온 나는 급하게 호그와트 성 7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일곱 시 정각이 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필요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무릎에 손을 댄 채 혼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멀리서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리들 교수였다.

“후, 안녕…… 하세요.”

나는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리들 교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조금 늦었나? 달려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숨소리를 정리했다.

============================ 작품 후기 ============================

1. 원작에서는 시리우스가 알파드로부터 언제 금괴를 물려받은지에 대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롤링여사가 한 웹페이지 열일곱에 상속받는다고 인터뷰를 한 바 있어요. 시리우스가 만 17살이 되려면 ‘로웨나 블루로즈’의 시간상 지금 4개월 8일 가량이 모자라네여... ㅋ...ㅋㅋ... 시리우스도 저와 함께 블랙홀 근처의 행성에 다녀온걸로.... 아, 아님 시간을 달리는 헤르미온느 도와줭ㅠㅠㅜㅠㅠ

2. 세계 인구에 관해서는 유엔 통계연감을 참조했습니다. 1975년 통계당시 39억 6천 7백만명이었다는데, 대체 그 시대에 어떻게 세계 인구를 측정한거죠?

3. 시리우스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퍼프스캔 드립이었을까요?_?

soasella 님 오타지적 감사드립니다^^ 오막살이님, 하하호호하하하님 쪽지 확인해주세요!

+ 이번 달까지는 쭉 격일연재로 갈 것 같습니다. 다음 연재는 24일 00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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