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 / 0115 ----------------------------------------------
Part 6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6 - (1)
“시리우스 블랙 미쳤냐?”
“네?”
도서관에 들어가려는데, 입구 앞에서 마주친 세베루스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대뜸 나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 조금 놀랐다. 세베루스와 함께 도서관에 있었던 듯, 릴리가 만면에 웃음기를 띄며 그의 뒤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네가 뭔 짓이라도 한 거지?”
“아, 아뇨.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되는 바는 있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세베루스는 내가 시치미를 떼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네가 아니면 쟤가 왜 저렇게 정신 나간 개처럼 쫓아다니면서 저러는 거겠어?”
정신 나간 개라고? 평소보다 격한 어휘를 사용하긴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를 세베루스가 저도 모르게 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불만을 표하는 세베루스 앞에서 크게 웃어버리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으로 꾹 참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다가온 릴리가 미소를 띠며 끼어들었다.
“세브. 블랙에 대한 애정을 너무 과하게 표현하는 거 아냐?”
애정이라니, 그 둘 사이에? 릴리가 입에 담은 ‘애정’이라는 단어와,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부조화 때문인지 나는 마침내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세베루스의 앞에서 웃는 것이 무례해 보일 것이라는 염려가 일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디멘터 사건이 있었던 이후, 시리우스와 한 번 더 만난 나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더 하고 싶다던 이야기는 세베루스를 괴롭혔던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시리우스는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당시 자신이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이 세베루스가 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어둠의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저 세베루스를 괴롭히기 위한 빌미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점도.
그리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스네이프에게 용서를 받아 오면 너도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나는 대답 없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지만, 시리우스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멋대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로, 시리우스는 세베루스만 보면 제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아달라고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시리우스에게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너도 한 번 당해보라며 저주 주문을 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세베루스의 대응 전략이 적절치 못했다는 점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의 반응이 냉담하면 냉담할수록, 시리우스는 세베루스에게 더욱 집착했다.
릴리가 특유의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난 시리우스를 다시 봤어. 걔, 꽤 괜찮은 것 같아.”
“릴리, 너 정신이…… 후.”
세베루스는 격하게 숨을 내쉬었다. 릴리를 향해 한마디 하려던 세베루스가 대신 짜증스러운 어투로 나에게 말했다.
“그만 좀 하라고 해. 그때 일, 이미 다 잊어버렸으니까.”
“네?”
나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그에게 되물었다. 왜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이. 세베루스는 평소와 같이 싸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쟤, 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냐? 시리우스 블랙이 저러는 꼴도 진짜…… 난 못 봐주겠다.”
차라리 나에게 똥폭탄을 던질 때가 나았어. 세베루스는 고개를 흔들면서 지나가 버렸다. 세베루스의 반응에도 릴리는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지 못했다.
“세브,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로웨나, 다음에 또 보자!”
그녀는 급하게 나에게 고갯짓을 하고 그의 뒤를 쫓았다. 나는 세베루스가 저렇게 릴리에게 관심이 없는 양 행동하는 것이 조금 웃겼다. 릴리가 따라오지 않으면 또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할 거면서. 제임스든 세베루스든, 자신의 애정을 온전히 표현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스쳐 지나가듯 했다.
나는 그대로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생각보다 사람이 얼마 없었다. 열람실으로 걸음을 옮기는 도중, 근처에서 시리우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도 도서관에 있었단 말야? 아무래도 세베루스가 얼굴이 붉어진 채 도서관을 나간 것은 시리우스의 탓이 컸던 듯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가 나른하게 웃으며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래번클로.”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음에도, 옆에 앉아 있던 슬리데린 7학년 여자 선배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의사를 읽어낸 나는 말없이 그를 사람들이 없는 서가 안쪽으로 그를 끌고 갔다. 시리우스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나를 따라왔다.
인적이 드문 서가 사이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세베루스에게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에요?”
“걔가 뭐라고 그래?”
“…시리우스 당신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던데요.”
그가 생글거리듯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내 마음이 담긴 서신을 읽고 복받치듯 감정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시리우스가 나에게 양피지 조각 몇 장을 건네주었다. 뭐지? 나는 의문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돌돌 말려 있는 조각 중 한 장을 펴고 조용히 읽어 내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너에게 저주 주문과 조롱을 일삼은 사실에 대해서 시리우스 블랙은 사과를 청한다. 용서해줘, 스니… 세베루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양피지에는 ‘스니’까지 썼다가 두 줄로 지은 흔적이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은 이걸 지속적으로 보내줬지.”
제시간 안에 읽지 않으면 저절로 폭발하는 쪽지라고, 요즘 5학년들 사이에서 유행이야. 그가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시리우스는 매일 색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용서를 비는 모양이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세베루스가 얼굴까지 붉혀가며 나에게 불만을 표하고 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세베루스는 뭐래요?”
물어보지 않아도 빤히 보였지만, 나는 괜히 그에게 떠보듯 질문했다.
“음… 내 진심을 점점 알아주는 것 같아.”
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시리우스가 세베루스에 관한 말을 처음 꺼냈던 날, 나는 그와 평소보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가 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왜 어둠의 마법을 싫어하고, 왜 슬리데린을 경멸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왔던 모양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리우스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 힘을 가진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방식이고 표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어둠의 마법과 관련이 있다는 것 자체에서 그 사람이 옳은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의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게, 네 의도가 아니었느냐고 시리우스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그가 했던 말이 꽤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 그는, 단지 자신이 감정적으로 싫다 싶은 것을 ‘정의롭지 못한 것’, ‘나쁜 것’, ‘타도해야 할 것’이라고 멋대로 규정하며 합리화해왔다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었으나, 지금까지 그것을 직면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그때의 진지했던 시리우스를 떠올리며 지나가듯 물었다.
“저게 제대로 된 사과라고 생각해요?”
“이 이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난 애초에 스니벨, ─이렇게 말하려던 시리우스는 내 눈치를 보더니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아니, 스네이프에게 완전히 찍혔어. 게다가 난 솔직히 말해서 걔가 어둠의 마법에 취미를 가진 것은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고. 시리우스가 고개를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말에 수긍했다. 내 주장에 시리우스가 납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했던 말이 그의 정의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리우스의 입장에서 옳지 못한 부분까지도 모두 포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내가 그의 근본적인 가치관까지 바꾸라고 강요할 자격은 없었다. 자존심이 높은 시리우스의 성격상, 저 정도도 충분히 지고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는 것을 금방 인정했다.
“시리우스의 말도 맞긴 하네요.”
내 한마디에 시리우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로웨나 너는,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에 심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전… 잘 모르겠어요.”
세베루스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둠의 마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세베루스가 이를 제대로 다룰 줄 알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어둠의 마법을 공부하거나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시리우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사고하는 방식이 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나 행동을 판단함에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였다.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어떠한 이유에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어떤 원인이 있는 건가?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가며 분석하고, 탐구하며, 결론을 냈다.
반면 시리우스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 것 같았다. 저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의미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자신에게 좋게 느껴지는가, 싫게 느껴지는가. 혹은 자신이 정한 정의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그리고 그것이 ‘그리핀도르’스러운 생각의 체계인 것 같았다.
나는 뜬금없게도 분류모자의 능력에 감탄했다. 정말로 시리우스와 나는 다른 기숙사로 분류될 만했다. 그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지 그리핀도르인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 래번클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시리우스에게 가장 배울만한 점은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판단하면 잘못에 대한 인정과 수정도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시리우스가 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이것이 옳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떤 것이 명백하게 나쁜 일이라면 분명 거부하겠지만, 나는 웬만한 개인의 생각들을, 비록 나 자신은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그들 각자의 가치관이라 인정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로웨나 래번클로의 이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하나를 ‘가장 옳은 것’이라고 규정짓게 된다면 그와는 다른 생각을 부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시리우스에게는 래번클로는 가질 수 없는 그리핀도르만의 ‘정의’가 있었다. 아마 그들이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정의가 옳다는 내면의 굳건한 의지와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각자의 개성을 인정할 뿐 ‘정의롭다’는 확정적인 개념이 없는 래번클로에서는 내 방식이 정의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래번클로에서는 결코 용기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열람실 구석의 조용한 자리에 앉았다. 시리우스는 마치 이전부터 친하게 지냈다는 것 마냥 태연하게 내 자리 옆에 앉았다.
“이제 공부할 거야?”
“네, 과제 하려구요.”
“이번 머글 연구 과제는 다 했냐?”
안 했으면 같이 해. 그는 당당하게 나에게 요구했다. 심지어 세베루스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다시 친해지자는 말조차 없었다. 그의 반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와 냉랭한 사이였다는 것이 믿겨 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긴, 시리우스는 원래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었지.
나는 들고 왔던 양피지 몇 장을 꺼내며 그에게 말했다.
“저 천문학 과제부터 해야 해요. 다음 주에 같이 하실래요?”
시리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열람실에 앉아 각자 과제를 끝냈다.
* * *
“호그와트의 영웅, 또 다시 악을 해치우다.”
로웨나, 너 신문에 실렸다. 아이작이 예언자 일보의 타이틀을 한 번 읽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약간 부끄러워졌던 나는 아이작에게 황급히 예언자 일보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신문을 들고 내가 언급된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로웨나 블루로즈라고 적혀있는데 내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이 기사 속에서 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우며,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무사히 헤쳐나가는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심지어 기사에는 내가 그날 금지된 숲으로 가게 된 경위가 교내 징계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디멘터가 학교에 출현할 것을 미리 알고 학교를 지키기 위해 금지된 숲으로 간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징계 사실이 언급된다면 또 5학년과 3대 1로 붙어서 끝장을 냈느니 뭐 그런 식으로 미화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로웨나, 너 패트로누스도 사용할 수 있었어?”
요한이 의아한 듯 물었다. 기사 속에서 나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내 디멘터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고개를 저으며 내가 대답했다.
“이 기사가 사실과 달라…… 대체 왜 이런 식으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알고 보면 반쯤 기절한 상태에서 시리우스에게 발견되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한마디 하려다 나는 겨우 말을 삼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녁 통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리우스뿐만 아니라 마루더즈 전체가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나를 구출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되었는지 평소에 비해 그렇게 과한 정도는 아니었다. 트로피실 청소였나? 그들이 받은 징계가 하도 많아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우리 엄마도 얼마 전에 편지로 널 아느냐고 묻더라.”
예언자 일보를 힐끔거리며 요한이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아무래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마법사 세계에서 유명인사가 된 모양이었다. 나를 언급할 때에는 항상 꼬리표처럼 ‘머글 출신’이라는 것이 함께 회자되곤 했다. 이것이 유달리 강조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지 머글 출신─마법사 세계에서 사회적 약자 계층인─이라는 것만으로 내가 정의로운 마녀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 같았다. 마치 머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듯이.
“기사가 너무 설득력 있게 쓰여서, 정말로 네가 능력이 넘치는 전도유망한 마녀같이 느껴져.”
아이작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실제로도 그렇노라고 괜히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식의 반응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인터뷰도 하지 않은 것들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는 기사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는 이에 관해 더는 얘기하기가 싫어 나는 얼른 아침 식사를 끝냈다. 오늘 첫 수업은 약초학이었다. 연회장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기숙사에서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한 필리다를 깨운다는 명목으로, 나는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 * *
플리트윅 교수님께서는 부활절 휴가 직전에 웬 외출 신청이냐고 의아해하셨지만,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지 못했던 것을 언급하며 아버지와 볼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외출에 그 이유까지 물어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약간 당황했다. 하긴, 호그스미드를 잠깐 다녀오는 것과는 달리, 꼬박 하루 동안의 외출신청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리들 교수가 만들어 준 가짜로 된 보호자의 서명을 플리트윅 교수님께 제출하고 교수님으로부터 외출 승인을 받아냈다.
정작 외출을 신청하라고 명령한 리들 교수는 여전히 어디를 가는 것인지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심지어 나는 가족들에게 미리 유서라도 남겨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게서 더는 ‘쓸모’를 찾지 못한다면, 그가 언제 어디에서 불시에 나를 살해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의 공격 마법 수업은 예전만큼 밀도 있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리들 교수는 요즘 평소보다도 더 바빠 보였다. 그는 공격 마법의 교습을 주 2회가량으로 줄였음은 물론, 시간이 되어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외출한 차림 그대로 필요의 방으로 오곤 했다.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가 나에게 이전보다 관심을 덜 가져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오늘도 필요의 방을 연 리들 교수는 구석진 곳에 있는 소파를 가장 먼저 자신의 방향으로 당겼다.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코트를 대충 벗은 그는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그대로 지팡이를 든 리들 교수가 내 앞쪽에 환영 마법으로 마법사의 형태를 여럿 만들어 냈다. 그의 마법사들은 시간이 갈수록 구체적인 형상을 띄었기 때문에 판단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지팡이를 쥐며 자동적으로 공격 태세를 취하는 나에게, 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무심한 어조로 명령했다.
“시작해.”
그는 여러 가지 경우의 환영 마법을 보이며 그에 대한 적절한 공격을 해보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예전만큼 그렇게 모든 것을 자잘하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내 대응방식을 한 번 훑은 그는 왜 그렇게 했는지 간략하게 물었다. 내 대답을 듣는 리들 교수에게서는 표정변화 하나 드러나지 않았다.
내 설명을 들은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환영을 띄웠다. 그것이 방금 전과 다른 새로운 종류의 것이라면 내 대응 방식은 통과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똑같은 환영이라면 이는 내 방법의 어딘가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나는 내가 사용했던 주문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판단한 후, 방식을 바꾸어가며 다양한 공격 마법을 시전해야 했다. 내가 정말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간다 싶으면, 리들 교수는 같은 환영을 한 시간 내내 변함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어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련의 과정은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의 교습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지만, 내 속에서는 치열한 판단이 오갔다. 나는 혼자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리들 교수가 하는 것이라곤 그저 ‘네가 틀렸다’라고 말없이 지적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어디가 틀렸는지 알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한 케이스가 끝날 때마다 나는 이번에는 맞았나, 하는 마음에 리들 교수의 표정을 살폈으나 여전히 그의 생각은 읽을 수 없었다. 다리를 반쯤 꼬고 소파에 기대앉은 그는, 기울인 머리를 손으로 받친 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눈길으로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교습 시간 동안 자세만 조금 변했을 뿐 리들 교수의 눈동자는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가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심리적 위화감 때문인지 나는 더욱 바짝 긴장해 마법을 시전하곤 했다.
한 시간하고도 삼십 분이 훨씬 지났을까, 그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리들 교수는 그대로 환영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자마자 소파는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뒤로 돌아 문가 쪽으로 향하는 망토 끝자락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리들 교수님.”
그는 그 자리에서 서서 그대로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짙은 흑안으로 나를 응시하는 리들 교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 부활절 휴가에는 집에 돌아가도 되나요?”
5월 초에는 부활절 휴가가 있었다. 적어도 돌아오는 휴가 정도는 가족들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조그마한 희망을 품으며 그에게 말을 꺼냈다.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적어도 물어볼 수는 있는 거니까. 리들 교수라면, 잔말 말고 공부나 하라고 싸하게 쳐낼 같긴 했다. 그는 모든 학생들이 돌아가는 여름 방학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나를 호그와트에 남겨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해.”
나는 못 들을 것을 들은 사람처럼 조금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으나, 리들 교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필요의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리들 교수가 저렇게 위협적이지 않은 태도로 나오면 나올수록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더욱이 두려워졌다.
============================ 작품 후기 ============================
1. 저는 원작에서 마루더즈들이 스네이프를 괴롭힌 사건이 스네이프에게 ‘생애 최악의 기억’이었던 이유는, 그 자체로도 굴욕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릴리와의 사이를 완전하게 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웨나 블루로즈’ 속에서는 가해 당사자인 시리우스가 중간에 로웨나를 쫓아가면서 스네이프를 향한 저주를 그만두었고, 스네이프에 대한 괴롭힘은 릴리가 나타나기도 전에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스네이프가 잡종 발언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그와 릴리는 아직 친구사이이고, 그 사건이 스네이프에게 있어 ‘최악의 기억’까지는 아니게 되었지요. 패러디의 특성상 등장인물의 행동 변화가 생기면서 원작의 주요 스토리가 대거 바뀌게 된 점에 대해서는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2. 유령플롯, 조각설정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유 있을 때 뜰을 통해 간간히 공개할 예정입니다. 본편에 더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종종 뜰에 방문해주세요. 이전회차에 고지드렸다시피, @가 달린 코멘트에 대해서는 앞으로 쪽지로만 답변 드리니 양해 부탁드릴게요.^^
+ 다음 업데이트 날짜는 낼모래인 22일이 되는 00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