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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14)
“로웨나! 너 금지된 숲에 징계받으러 간다며?”
“어,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나는 이렇게 늦은 시각에도 휴게실에 앉아 있는 요한과 필리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열한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숙사 입구로 향하다 말고 나는 그들이 앉아있는 소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내가 필리다에게 빌려준 머글 체스를 하는 중이었다. 머글 체스말이 마법사의 체스말처럼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서 좋다며 필리다는 종종 이를 애용하곤 했다. 요한 뒤로 살짝 다가간 나는 체스판의 전세를 훑어보았다. 필리다 쪽이 약간 더 승세가 있는 것 같았다.
점심 즈음이었나, 플리트윅 교수님은 금지된 숲으로 가는 징계가 있을 거라 귀띔해주었다. 그러면서 오늘 밤 열한 시까지 호그와트 현관 홀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징계가 금지된 숲에서 이뤄진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뭣해야 화장실 청소 정도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평소보다 옷을 더 껴입고 나와야만 했다.
둘이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아이작이 생일 선물로 준 시계를 꺼냈다. 적어도 지금은 내려가야 정시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재밌게 놀라고 말하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대충 손을 흔들어주던 필리다가 갑자기 나에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보름이지?”
“어? 어.”
나는 기숙사 입구로 향하다 말고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저걸 물어보는 거지?
“혹시 금지된 숲에서 지나가다가 ‘보름달맞이 풀’을 발견하면 좀 뽑아와 줘.”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의 풀이었다. 금지된 숲에만 자생하는 종류인가? 나는 어딘가 약재에 사용할 일이 있는가 싶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캐로우가 괴롭히면 내던져도 좋아. 그 아이, 독소가 있거든. 피부에 닿으면 종기 저주를 받은 것처럼 얼굴이 울긋불긋해질걸.”
필리다가 조금 고민하더니 룩을 집어 들었다. 안돼, 나이트만은! 자신의 패가 읽힌 듯 요한이 머리를 쥐며 소리를 질렀다. 필리다가 무심하게 룩으로 나이트를 넘어뜨리며 덧붙였다.
“그 거 폼프리 부인한테 치료받아도 한 일주일 간다.”
“…‘보름달맞이 풀’이 어떻게 생겼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래?”
필리다는 내 말에 깔깔 웃었다. 그녀는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리다의 농담 비슷한 위로를 뒤로한 채 기숙사를 나섰다.
* * *
래번클로 탑의 7층에서부터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불현듯, 개인 교습을 끝내고 리들 교수와 함께 이 계단을 내려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삼 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을 만하면 리들 교수가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요즘 나는 리들 교수가 블러저라도 되는 것 마냥 항상 그를 피해 다녔다. 예전에도 교내에서 만나는 것이 그렇게 달가운 것은 아니었으나, 근래에는 더욱이 그랬다. 그러나 그는 대연회장이든 교실이든,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그저 나를 희롱한 것뿐인데, 나 혼자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더 나빠졌다. 심지어 리들 교수는 나에게 평소보다 더 싸늘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공격마법의 교습을 시키지도 않았다. 공격 마법을 가르쳐봤자 싸움질이나 하고 다닐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공격 마법을 배우는 것에 슬슬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솔직히 아쉽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리들 교수를 더는 보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나는 개인교습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마침내 연회장 앞의 현관 홀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알렉토 캐로우와 베스 파킨슨, 신디 크롬펠─나는 어제 나머지 두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이 다가왔다. 저 애들이랑 같이 징계를 받는 건가. 별로 반갑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나와 함께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에는 나를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흘렀다. 알렉토가 뭐라 한마디라도 던지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등불을 든 필치 씨였다.
“안녕하세요, 필치 씨.”
나는 그들을 모르는 척하고 먼저 필치 씨에게 인사했다. 학생들은 그가 괴팍하고 성격이 더럽다고 싫어하곤 하지만, 나는 필치 씨에게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말하는 것이 직설적이고 심술궂긴 했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얄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너 보기와는 다르게 사고를 많이 치는구나?”
필치 씨가 나를 보자마자 낄낄대며 한마디 던졌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 때 내가 리들 교수의 연구실 청소를 맡았다는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그를 향해 그저 한 번 웃어줄 뿐이었다. 뒤에서 파킨슨이 ‘보기에도 일 많이 치게 생기지 않았느냐’며 중얼거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나를 따라오도록 해.”
필치 씨는 현관 홀을 따라 천천히 걸어 입구를 통해 호그와트 성 밖으로 나갔다. 금지된 숲은 평소에 들어가기만 해도 징계감인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어떤 징계를 받는다는 거지? 그의 뒤를 쫓으며 내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필치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너희는 금지된 숲에 갈 거다.”
“네? 미쳤어요?”
알렉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슬러그혼 교수님께 못 들은 건가? 금지된 숲에 간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는 그녀의 반응이 조금 요란스럽다고 생각했다. 고작 학생 수준의 징계에 불과한데 위험하면 또 얼마나 위험하다고. 알렉토는 지금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 늦은 밤에 금지된 숲을 간다구요?”
“그게 무서웠다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던가.”
능글맞게 웃으며 필치 씨가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징계의 방식에 대해 호들갑스럽다 느껴질 정도로 과하게 비난하던 알렉토가 내 쪽으로 한번 노려보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나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질 수 없다는 듯 나도 같이 그녀를 째려보았다.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린 건 자기들이면서, 그녀는 마치 내가 마법을 써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자신이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필치 씨 몰래 지팡이를 드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일부러 얄밉게 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등불을 높게 치켜든 필치 씨는 정원과 뒤뜰을 지나 호그와트 성에서 조금 떨어진 사냥터 지기 오그 씨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슬리데린 여자애들 셋은 그에게 바짝 붙어 따르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꽉 찬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빛을 받아 흐리게 빛나는 돌길 위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멀리 오두막 앞에는 이미 오그 씨가 나와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갈색 털을 가진 큰 사냥개 한 마리가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그가 보통 학교 주변을 돌 때 동반하는 개였다.
필치 씨가 그의 앞에서 느리게 한마디 했다.
“오그,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네.”
“오늘 징계를 받을 학생들인가?”
나는 그가 이쪽을 쳐다보자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다른 슬리데린 여자애들은 본 척 만 척할 뿐이었다. 오그 씨는 우리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그가 내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알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작년에 그가 맡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듣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의 오두막 근처에 온 것도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은 입학식 때 학교를 향하는 보트를 탔을 때가 전부인 것 같았다.
우리를 인계한 필치 씨는 오그 씨에게 수고하라고 한마디를 남기고는 우리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조심해라.”
필치 씨가 킬킬거리며 덧붙였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필치 씨의 악담에 파킨슨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그러나 뭐라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기분만 나빠할 뿐이었다. 필치 씨는 심술궂은 웃음을 잔상처럼 남기며 호그와트 성으로 다시 돌아갔다.
“자, 이제 너희는 금지된 숲으로 출발하도록 하자.”
오그 씨가 등 뒤로 활을 매고, 지팡이를 챙겼다. 그는 따라오라는 듯 먼저 앞장서 걸었다.
오두막에서 금지된 숲으로 약간 더 걸어야 하는 것 같았다. 슬리데린 여자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조금 달려가 오그 씨의 옆에 섰다. 그는 느긋한 얼굴로 갈색의 거대한 개를 쫓아 걸어갔다. 괜히 흥미가 돌아 나는 개를 흘끔거렸다.
“금지된 숲으로 가서 뭘 하는 건가요?”
“페어리를 잡게 될 거야.”
“네?”
페어리라니. 내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요청하셨지. 페어리의 날개가 마법약 시간에 주재료로 사용되는 건 알고 있지 않니? 가끔 교수님께서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 이렇게 직접 가서 채취하곤 한단다.”
그는 마치 마법약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덧붙였다.
“다이애건 앨리보다는 금지된 숲에서 채취하는 페어리의 날개가 더 효과가 좋으니까.”
가끔 슬러그혼 교수님이 직접 오셔서 페어리들을 잡기도 해. 오그 씨가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을 덧붙였다. 알렉토와 파킨슨은 금지된 숲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 눈에 띄게 불안해하며 서로 간에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붙어서 걸었다.
오그 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페어리는 깊은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이렇게 밤중에만 잡을 수 있어.”
금지된 숲은 옅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었다. 나는 금지된 숲이 처음이었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대낮에 탐방을 가기도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오그 씨는 일정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페어리들을 어떻게 잡는지에 대해 차근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슬리데린들은 제대로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왜 금지된 숲을 징계장소로 결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들에 비해 덜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탓도 있을 거다. 징계를 내린답시고 당장 금지된 숲으로 끌려왔다면 나도 저렇게 무서웠겠지.
그때, 오그 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고요했던 숲의 먼 곳에서 낮은 인기척이 들렸다. 오그 씨는 미약하게나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들렸다.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갯속으로, 반가운 듯한 어조로 오그 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오, 마르스.”
나무 뒤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형체에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알렉토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서 그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켄타로우스였다.
“반갑네.”
“오그. 오랜만이구나.”
실제로 보는 켄타로우스는 책에 있는 삽화에서보다 훨씬 더 경이로웠다. 탄탄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의 상체는 마치 운동을 자주 한 젊은 인간의 것처럼 보였으나, 굳건한 앞다리부터 힘이 느껴지는 뒷다리와 길게 늘어진 꼬리까지, 배꼽 아래의 하체는 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곱슬기가 도는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채 ‘마르스’라고 불렸던 켄타로우스가 목을 한번 쭉 뻗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그가 다가와 나를 짓밟을 것 같은 위압감에 뒤로 살짝 물러났다. 오그 씨와 인사를 나눈 그는 우리를 하나, 둘씩 훑어보았다. 모두를 쳐다보던 그의 시선이 나에게서 멈추었다.
“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마르스가 말했다.
“수성의 기운을 타고났구나.”
“네?”
나는 그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아닌 생물체가 말하는 것을 보는 것은 집요정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약간 놀란 눈빛을 숨기지 않고 내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수성이 어떤 의미인 거죠?”
“…다른 별자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
“다른 별자리요?”
내 질문에 그는 달리 대답하지 않았다. 먼 곳을 응시하며 그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오늘은 금성이 유난히 밝군.”
뭐? 뜬금없이 웬 금성?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의미인가?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줘야 할지 몰라 조금 당황했다.
오그 씨가 중간에 끼어들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페어리 떼를 본 적은 없나, 마르스?”
“오늘은 금성이 유난히 밝아.”
그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오그 씨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페어리들을 보면 나에게 알려주게나.”
“그러도록 하지.”
곧 오그 씨는 마르스와 헤어졌다. 오그 씨와 인사를 나눈 그는 천천히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등장했을 때 그랬듯 그는 안개에 묻히는 것처럼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그 씨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의미인 거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켄타로우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래를 점치는 종족이야.”
그가 말했다.
“땅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얼핏 그런 이야기를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켄타로우스가 집요정, 인어, 벨라와 같이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들은 사고체계 자체가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가진 그들은 일생 대부분을 하늘을 바라보고 점을 치며 보낸다고도 읽었다. 켄타로우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예언이 될 수 있으므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기억났다.
마르스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닌지, 오그 씨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얼마만큼 깊게 들어갔을까, 갈림길이 나왔을 즈음 오그 씨가 우리에게 지시했다.
“이쯤에서 팀을 나누어서 찾는 것이 좋겠어.”
그는 파킨슨과 크롬웰을 가리키며 자신에게 손짓했다.
“너, 두 사람은 나를 따라와라. 그리고 너 둘은 팽과 함께 가도록 해.”
오그 씨는 나와 알렉토에게 손짓하며 그렇게 명했다. 그녀와 단둘이 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토가 다소 놀라 자신이 오그 씨와 함께 가면 안 되느냐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고작 사냥개 한 마리와 금지된 숲을 들어간다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금지된 숲에서는 나보다는 팽과 있는 것이 더 안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알렉토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그 씨의 설명에도 그녀는 그렇게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이 양 갈림길이 페어리들이 주로 서식하는 장소란다. 그들은 서식 장소를 자주 바꾸곤 하지.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잎이 넓은 식물들의 잎사귀를 뒤집어보도록 해라. 아마 페어리떼들이 하나, 둘 발견된다면 그 주변에 잔뜩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만약 페어리를 하나라도 보게 되면 하늘을 향해 파란 불빛을 쏘도록 해. 그럼 내가 이쪽으로 올 테니.”
그는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빨간 불빛을 쏘고.”
그는 나에게 시범 삼아 불빛을 쏴 보라고 시켰다. 나는 우선 지팡이 끝에서 파란 불빛을 만들어 냈다. 푸른색 불꽃은 길게 궤적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가더니 나무보다 훨씬 더 높은 허공에서 소리를 내며 터졌다. 오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도의 불빛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 네가 팽을 잡고 있으렴.”
그는 팽의 목줄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가 건네준 줄을 잡았다.
“팽이 길을 안내할 거다. 천천히 따라가면서 잎사귀를 확인하면 된단다.”
나는 ‘루모스’를 사용해 지팡이 끝에 불빛을 만들어 냈다. 지팡이에서 나오는 빛을 등불 삼아 우리는 오른쪽 길로 조금씩 걸어 들어갔다. 금지된 숲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가 두려운 듯 알렉토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앞지르자, 알렉토가 내 팔을 잡으며 제 쪽으로 당겼다.
“너, 이쪽으로 조금 더 붙어. 얼른.”
“순수혈통도 무서운 게 있으신가 봐요?”
내가 그녀를 향해 비꼬듯 물었지만 알렉토는 여전히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로 대꾸도 채 하지 못했다. 나도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니 어쩐지 측은감이 일어 나는 알렉토가 원하는 대로 그녀의 옆에 서서 걸음의 속도를 맞추었다. 가만히 놔두면 팔짱이라도 낄 기세였다.
어쨌든 페어리를 찾아야 이 징계도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두려워하든 말든 풀잎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페어리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배웠던 그들의 특징이 뭐였더라. 2학년땐가 배웠던 거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렉토의 불안감이 옮았는지, 날개에서 나는 불빛을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에 사용한다는 그런 쓸데없는 것이 자꾸 떠올랐다. 보통 밤에 활동하는 페어리는 불빛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지팡이 끝에 켜놓은 루모스를 해제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숲 멀리서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 없이 페어리의 흔적을 찾는 것에 열중했다. 한 오십 번째 풀잎을 뒤집었을까, 내 옆에서 페어리를 찾는 둥 마는 둥 하던 알렉토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 그녀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뭐, 뭐가 오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시야를 확인했다. 숲 깊은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무리 지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뭐지? 갑자기 긴장감이 일었다. 수풀을 지나치는 듯한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팽이 위협적으로 짖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급격히 고조되었다. 오그 씨가, 빨간 불빛을 쏘라고 했지. 나는 황급히 지팡이를 꺼내 하늘을 향해 불을 쏘았다.
불빛이 채 터지기도 전에 거대한 몸집의 동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나워 보이는 회색 늑대였다.
늑대와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는 마치 그의 눈에 속박당한 것처럼 전신이 굳었다. 본능적인 공포감에 머릿속 모든 것들이 진공상태가 되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왜 여기에 늑대가 있느냐는 의문조차 일지 않았다. 흘러가던 일련의 사고과정이 멈추고, 생각하던 것들이 순식간에 얼어버린 느낌이었다.
“컹─!”
그때, 검은 인영의 동물이 뒤에서 나타나 늑대의 몸을 물었다.
서 있는 상태에서 뒤로 넘어진 늑대가 크게 한번 짖고 검은 형체의 동물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두 동물은 바닥에 뒤집혀 몸싸움을 벌였다. 심장이 뛰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내 옆에 서 있던 팽이 둘의 접전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 뒤쪽에서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낸 사슴이 두 동물의 방향으로 달려갔다.
몸집이 훨씬 큰 늑대가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검은 형태의 동물을 옆으로 날려버리다시피 넘겨버린 늑대는 다시금 일어나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백색의 눈동자가 번뜩이듯 빛나자, 알렉토가 정신없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반쯤 공황상태에 빠진 그녀는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 늑대의 반대쪽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이 늑대의 시선을 끈 듯했다. 회색 늑대가 그대로 알렉토의 방향으로 뒤쫓아 달려갔다. 그 뒤를 거대한 사슴이 바짝 붙어 쫓았다.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던 팽은 크게 한 번 짖고는 알렉토가 도망간 쪽으로 향했다. 팽이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나는 팽의 목에 걸려있던 목줄을 놓쳤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불안이 멈출 줄 모르고 피어올랐다. 왜, 왜 불빛을 쏘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거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알렉토를 쫓은 늑대의 형형한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그녀는 괜찮을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한 번 더 붉은 불빛을 쏘아 올렸다.
조금 멀찍이서 늑대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던 검은 동물이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달빛 아래 드러난 그의 은회색 눈동자를 보고서야 나는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블랙이었다. 너무 어둡고 정신이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았다. 역시 블랙이 나를 지켜준 것이었구나. 이 상황에서 그를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반가웠다.
“브, 블랙…….”
아직도 서려 있는 긴장감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겨우 더듬거리며 그를 불렀다. 블랙은 천천히 걸어와 내 곁에 섰다.
“어떻게 해, 아, 아무도 안…….”
그가 나에게 조금 더 다가왔다.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블랙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품 안에 안았다. 부드럽고 폭신한 그의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급격하게 뛰고 있었던 가슴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도저히 바로 설 수가 없어 몸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나는 그에게 의지했다.
조금 내가 진정된 것처럼 보이자, 그가 입으로 내 옷깃을 잡고 잡아당겼다.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도 여기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는 혼자서라도 금지된 숲을 나가 구조를 요청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블랙은 나를 안내하려는 듯 앞장서서 먼저 걸었다. 나는 블랙이 이끄는 대로 그에게 바짝 붙은 채 발을 내디뎠다.
“길을 알고 있니, 블랙?”
숲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어쩐지 두렵게 느껴져 나는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었다. 블랙은 나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여유롭게 꼬리를 흔들었다. 옅은 안개가 허공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쩐지 추워서 나는 망토를 조금 더 여몄다. 그래도 블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에게 온갖 이야기를 두서없이 꺼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래번클로 기숙사에서 만난 필리다와 요한 이야기까지 했다. 그녀가 언급했던 ‘보름달맞이 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나는 혹시 ‘보름달맞이 풀’을 발견하게 되면 나에게도 꼭 말해달라고 괜히 당부했다. 그러지 않은 척하면서 블랙은 내 모든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멀고 험하게 느껴지는 그 길에, 나를 보호해주는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하늘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형체의 무리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달빛이 전부인 밤의 어둠 속에서 그들은 마치 죽은 자를 안내하는 유령같이 보였다. 내가 뭔가를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눈을 깜빡이며 저것이 일종의 마법적인 생명체 중 하나일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마법 동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어서 쉽사리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금지된 숲에 어떤 것이 살더라. 나는 사실 금지된 숲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주변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지는 것 같아 나는 옷깃을 여몄다. 검은 망토를 두른 유령 같은 모습. 기억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이 튀어나오듯, 나는 일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책에서 보았던 디멘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동작 금지 주문을 왼 것처럼 온몸이 경직되었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행동으로 실행하기도 전에 그들은 고요한 몸짓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디멘터의 텅 빈 동공과 마주한 순간부터 힘이 쭉 빠졌다. 견딜 수 없이 몸이 떨렸다. 이성적 판단은 사라지고 온 감각이 약해졌다. 오직 우울하고, 슬프고, 상처받은 기억만이 나를 채웠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충격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던 사람이 나를 내버려두고 떠났다. 그와 함께 가족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스쳤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내 가족을 모두 살해해버릴 것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목을 조르기라도 한 듯 숨소리가 뚝 끊어졌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대로 내 인생을 종속당하고, 조종당하고, 억압당해야 한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지금, 내 손으로 끝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들의 차가운 숨결이 나에게 가까이 와 닿았다.
너무 추웠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시 숨 쉴 수조차 없었다. 언젠가 여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볼품없이 사그라졌다. 무거운 쇳덩이가 달린 굵은 쇠줄을 목에 두른 상태에서 차갑고 깊은 호수 바닥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대로 억압된 채 숨이 막혀 죽게 될 것이다. 빛조차 없는 무거운 어둠 속에서 잠식될 것이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먼 곳에서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기력했다. 몸 안에 돌고 있던 기운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야가 암전될 듯 불분명해지려는 순간, 환한 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둘러쌌던 디멘터들이 주변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어붙을 것 같았던 서늘한 기운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희미한 시야에 블랙의 형상을 한 패트로누스가 내 곁에 서 있었다. 나를 잠식하던 디멘터들은 어느새 떠난 상태였다. 차갑고 습하게 젖은 그늘 속에 한 줄기 햇빛이 드리우듯, 다시금 온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패트로누스의 모습을 한 블랙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모든 혼란이 사그라지고 다시금 따스함이 나를 물 들였다. 항상 블랙은 그랬다. 그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포근하고 안온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심했다.
“로웨나!”
지팡이를 던지며 달려온 누군가가, 내 옆에 주저앉아 급하게 나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익숙하고도 편안한 체취가 그에게서 흘렀다. 팔을 뻗어 그를 껴안고 싶었지만 내 의지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는 따뜻한데 내 몸은 너무 차갑고 무거웠다. 폐부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목에서 옅은 숨소리가 흘렀다.
“로웨나, 제발……”
나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대로 시리우스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가 등불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시리우스가 여기에 있지……?
“이대로 눈을 감으면 절대 안 돼, 로웨나. 제발… 정신 차려.”
그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나마 떨림이 느껴졌다. 애원하듯 나를 부르던 시리우스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다. 나는 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희미한 의식 속에 무엇인가 물방울 같은 것이 볼 위로 툭 떨어졌다. 내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안돼… 로웨나…….”
시야가 암전되듯 뚝 끊겼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로웨나는 모르는 설정<<
1. 시리우스와 로웨나 둘 다 디멘터를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2. 사냥터지기가 해그리드가 아닌 것은 리들이 재학시절 비밀의 방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애초에 해그리드와 같은 시기에 재학하지도 않았구요). 그러므로 제 소설속의 해그리드는 호그와트를 퇴학당하지 않았고, 사냥터지기를 맡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전임자인 오그씨가 사냥터지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1. 김뿌님, 효율적경계선님 후원 쿠폰 감사드립니다!^^
2. chococake님, 프라샤님 팬아트 감사합니다. 새로운 리들과 로웨나가 뜰에 올려져 있습니다. 너무 좋아여^^! 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Anark님, 고고가각님 쪽지로 답변 드렸습니다:-)
@그향님 아이작은 로웨나와 같은 래번클로니까 동질감이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로웨나, 아이작도 좀 봐줘T_T
@시키나님 정성 가득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저는 특히나 로웨나와 같은 청소년기에는, 무수한 경험을 겪으며 조금씩 제 색깔을 갖춰나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로웨나의 변화와 성장과 연애라인8-_-8(강조!)을 지켜봐주세요.
+다음 업데이트는 내일 00시!.. 를 할 수 있을까 ㅋㅋ 도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