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77화 (77/115)

0077 / 0115 ----------------------------------------------

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11)

검은 호수 변에 서서히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내가 블랙을 잡고 놔주지 않자, 그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조심스레 핥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마치 마지막 인사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블랙에게서 손을 떼어내며 내가 물었다.

“정말 나를 두고 갈 거야?”

나는 블랙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자꾸 떠나가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불안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그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노력했다. 블랙은 가만히 서서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눈과 마주하자, 나는 블랙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런 비슷한 느낌을 어디선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를 잡았던 손에 힘이 절로 풀렸다.

“우리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블랙은 조용히 뒤를 돌아 떠나갔다. 나는 그를 더는 잡지 않았다.

* * *

다음 날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마치자 리들 교수는 나에게 교실에 남아 있으라 지시 내렸다. 아이작을 먼저 대연회장으로 보낸 나는 교실 뒷자리에 서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곧 나와 리들 교수 단 둘이 교실에 남았다.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실습을 위해 준비한 비품들을 모두 다 서랍 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할 일을 끝냈는지 리들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나는, 그가 내 볼을 쓰다듬던 날의 기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아직도 나는 그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마음 한가운데에서도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으나, 그에게 먼저 이에 관해 이야기를 꺼낼 용기는 없었다.

“너에게 어떠한 종류의 정신계 마법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겠지.”

리들 교수가 말했다.

“정신계 마법은 알아서 자중하도록 해. 임페리우스 수련도 한동안 멈추는 게 좋겠군.”

“네.”

나는 그의 말에 순종하는 척했으나 속으로는 리들 교수의 의중을 헤아려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쓸모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긴, 만약 내가 정신이상자라도 된다면 어떤 사용가치가 있겠나. 나는 그가 내 육체적 안녕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이유를 내 선에서 어느 정도 납득했다.

리들 교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공격 마법의 개인 교습을 재개하도록 하지.”

당장 오늘이라는 사실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는 어떠한 수련이든 며칠 전에 먼저 고지를 해주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저녁 7시, 7층의 필요의 방에서 진행하겠다.”

“매일요?”

나도 모르게 그에게 소리높여 되물었다. 매일이라니, 그렇게까지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레질리먼시를 배웠던 기간에도 리들 교수와 매일 만나지는 않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 4학년 내내 방어마법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5학년쯤 되어서야 배우게 될 것이 뻔한 공격마법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러면 공부할 시간이……”

저녁 시간대는 유일하게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통금이 걸려 있는 9시 이후에는 도서관이 폐관되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하고 세 시간가량 도서관에서 공부할 시간이 확보되지 못하는 것은 꽤 타격이 컸다. 휴게실은 항상 사람이 많아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고, 안나나 데이지가 시종일관 떠드는 기숙사 방에서 집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에도 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공부보다는 공격 마법의 수련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군.”

“그럼 제가 수석을 못 할……”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는.”

그가 말을 끊었다.

“내가 결정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이라도 표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번 학기에 수석을 하지 못하면 가족들의 생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협박했던 건 리들교수였다. 이제 와서 이렇게 나를 방해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 놓고 아이작이 수석을 하게 된다면 또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할 거면서. 공부를 게을리하게 되어 파생되게 될 결과에 대해 책임져 줄 수 있나? 나는 쌓이는 불만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꾹 참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기분 나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이제부터는 11시 이전에 잠들도록.”

“네?”

그게 뭔 소리야? 뜬금없는 리들 교수의 명령에 나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매일 공격마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거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제 내가 잠자는 시간까지 제어하려 들겠다고? 나중에는 아침을 몇 시에 먹을지,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 먹을지도 간섭하겠구나.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면 오늘 밤 보도록 하지.”

질문이라도 있나? 그가 물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 뻔하면서 왜 얄밉게 던지고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리들 교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그가 혹여 대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복도에서 그의 뒤를 쫓아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의 뒷모습마저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리들 교수가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교실에서 나가지 않고 한참 머물렀다.

* * *

리들 교수는 거의 통금시간이 될 때까지 나를 잡아두었다. 공격 마법을 배우는 것은 확실히 임페리우스나 레질리먼시 때처럼 급격한 정신적 소모가 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오히려 육체적 감각과 센스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나는 오늘 배웠던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방에 도착한 나는 씻고 약초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몰두한 채 책을 읽다가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가 있었다. 저녁 10시 45분. 리들 교수가 갑자기 공격 마법을 가르치는 개인 교습을 잡아버린 까닭에 나는 오늘치 분량으로 할당했던 변신술 공부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만큼을 마저 하고 잠들고 싶었지만, 열한 시가 되면 잠들라는 리들 교수의 지시가 생각났다. 내가 언제 잤는지 알게 뭐야, 하고 책을 펴려다가 어쩐지 그라면 전날 몇 시에 잤는지, 얼마만큼 잤는지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니플러를 하나씩 세며 잠이 들려고 노력했다.

* * *

잠을 푹 자서 그런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평소보다 몸이 개운한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연회장을 갔다가 처음 보는 부엉이로부터 편지를 건네받았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이게 뭐지? 기다란 실로 둘둘 말려있는 양피지 편지의 겉면을 뜯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와, 맙소사. 나는 곁에 있는 아이작에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편지가 누구한테서 왔는지 알아?”

“글쎄?”

“워플 작가님.”

오, 진짜? 아이작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편지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우울했던 기분도 잊고 말려있던 양피지를 펼쳤다. 그가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보낼 줄 몰랐다. 작가로부터의 편지는 어떤 것일까. 마치 작가님의 새 책을 산 것처럼 조금 설렌 기분이 들었다.

───────────────────────

Dear. Rowena Bluerose

안녕하세요, 로웨나 양. 엘드레드 워플입니다.

이렇게나마 편지로서 다시금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지난밤 즐겁고도 멋진 대화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웨나 양과의 환담을 통해 저는 제 호그와트에서의 추억에 관한 소설을 구상해 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금지된 숲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면 좋겠군요.

제가 편지를 쓰고 있는 창가 밖 먼 곳 강가에는 벌써 봄꽃의 색감이 오르고 있습니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는군요. 호그와트는 어떤가요? 제 기억으로 이맘때부터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온실의 창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진행하시곤 했죠.

당신이 머무르는 어디든지 푸른 장미의 매혹적인 향기가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Eldred Worple

───────────────────────

“내가 머무르는 어디든지 푸른 장미의 향이 가득하대.”

내가 꿈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써줄까! 지금껏 나를 장미로 비유한 많은 말을 들어왔지만, 그의 편지에서만큼 나에게 감동을 준 표현은 없었다.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가 절로 치유되는 기분에 나는 읽었던 부분을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읽었다.

“역시 작가답게 표현이 시적이구나.”

아이작이 내 옆에서 함께 편지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워플 작가의 편지에 별다른 감상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편지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아 다시 봉했다.

“역시 작가님이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어.”

여자의 감성을 알아. 내가 중얼거리자 아이작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너 그런 감정적이고 시적인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도 내가 받는 건 다르네.”

하여튼 여자들은 모르겠다며 아이작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러 들으며 생각했다. 잠깐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장문의 편지를 써주다니. 감동이 밀려오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답신해야 할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깃펜을 들고 내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뭔가 멋진 경구 같은 거 없어?”

대충 구어체로 하고 싶은 말만 두서없이 써내려가는 평소의 내 편지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워플 작가님과 격을 맞출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따라 해야 하지는 않을까. 나와 대화를 나눴을 때는 굉장히 편하게 굴었음에도 편지에는 이렇게 예의를 갖춘 어투로 보낸 것을 보면 워플 작가님은 격식을 차린 문장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작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베이컨을 하나 집었다.

“그냥 써도 괜찮아. 워플 작가님도 너한테 엄청난 기대는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 편지가 전기에 실릴지도 모르잖아!”

워플 작가님의 전기는 호그와트 도서관에 꽂힐 수도 있어. 그럼 이 편지가 영원히 호그와트에 남게 될 거라구! 내 말에 아이작은 민달팽이 클럽에서 했던 대화가 기억났는지 크게 웃었다. 나는 진지했다. 물론 워플 작가님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 편지가 후세에 길이 남을 중요한 것이 될지 어떻게 알겠어. 적어도 로웨나 블루로즈의 이름으로 남겨진 편지가 부끄럽지는 않기를 바랐다.

내가 혼자서 앉아 끙끙대고 있자 아이작이 옆에서 여러 가지 꾸밈말들을 조언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제법 시적인 문구를 만드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작이 깃펜으로 문장 하나를 완성해낼 때마다 내가 감탄사를 표했더니, 그는 어느새 심취해 여자들을 홀릴만한 문장을 수십 개씩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조금 과도하다 싶은 유치한 묘사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숲 속의 솔바람 아래 풀벌레들의 합창곡이 뭐 어쩌고저쩌고하는 거였다─ 나는 한참을 웃다가 고민하다가 하면서 아이작과 함께 워플 작가에게 보낼 편지를 완성했다.

* * *

언제인가부터 나는 해가 질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검은 호수를 혼자 거닐었다. 그러느라고 가끔 저녁을 거를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블랙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혹여 내가 떠난 후에라도 블랙이 올까 봐 해가 지고서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하지만 블랙은 계속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나는 블랙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의기소침해졌다.

이 주가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꾸준히 리들 교수에게 공격마법의 교습을 받았다. 심화된 과정이 진행될수록, 공격마법은 방어마법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리들 교수는 항상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며 그때마다 필요한 공격마법이 적절하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수련시켰다. 예를 들어 무장해제 주문은 리들 교수가 강조했던 가장 주요한 공격마법 중 하나로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완벽한 주문은 아니었다. 가령 원거리의 경우나, 상대방의 위치가 불분명한 경우, 다수를 상대하는 경우 등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격자가 다수일 경우와 소수일 경우, 나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마법사일 경우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응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다양했다. 처음에는 반쯤 억지로 그의 수련에 응했는데, 갖가지 경우에 관한 수련을 거듭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절로 공격 마법에 흥미가 생겼다.

리들 교수가 만들어내는 비밀의 방은 그날그날 배우는 것에 따라 내부에 생기는 것이 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너른 방이었으나, 점점 각종 장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장애물 또한 전투 상황에서 이용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오늘은 너와 비슷한 수준의 다수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연습해보도록 하지.”

지팡이를 들도록. 리들 교수가 명령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에게 공포심을 조성할만한 분위기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가르칠 때는 해야 할 말만 간결하게 전달했으며, 강압적인 태도도 조금 유연해졌다. 여전히 그의 자세에서 딱딱함과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한결 편해졌기 때문에 심리적 긴장감이 덜했다.

나는 허리춤에서 꺼낸 지팡이를 오른팔에 쥐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팡이를 든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조금 한심하다는 어조로 내뱉었다.

“항상 지적하는데도 고쳐지지 않는군.”

그가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지팡이를 제대로 쥐는 건 기본 중 기본일 텐데.”

리들 교수와의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몸이 살짝 굳는 것을 느꼈다. 리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바깥쪽으로 살짝 당겼다.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지팡이를 조금 더 유연하게 잡으려고 했으나, 리들 교수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가 원하는 대로 지팡이를 쥐려고 노력했다. 대체 지팡이를 제대로 쥔다는 게 어떤 거야. 확실히 그가 교정하면 마법이 나아지긴 했어도, 나는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었다.

한참을 집중하고 있는데 나를 향한 리들 교수의 시선을 느꼈다. 그것이 내 손 쪽은 아닌 것 같아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짙어 보이는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던 리들 교수는 내 자세를 교정하고 자연스레 그대로 멀어졌다. 뭐지.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잠깐 고민했지만, 그가 제대로 잡아준 자세의 감각을 제대로 익히느라 금방 잊어버렸다.

나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선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다수의 마법사를 상대할 때에는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는 일단 그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광역계 적용마법을 사용함으로써 마법을 시전할 타이밍 자체를 놓치게 만드는 거지. 가령 물이나, 불이나, 빛 등 시야를 가리거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

그가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사람에게만 강하게 적용되는 저주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한 사람을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무장해제 시키는 동안 다수의 상대에게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는 한 걸음 나아가 나와 그 사이의 빈 공간에 다수 마법사의 작은 환영을 띄우며 설명을 계속했다.

“일단 최대한 그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만든 다음, 그중에 가장 상황 판단력이 빠른 사람, 혹은 순발력이 높은 사람을 위주로 먼저 공격하도록 한다.”

의식을 잃게 할 정도로의 강한 타격을 주어야 나머지들을 상대할 때 위협이 없겠지. 그가 말을 덧붙였다.

리들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이작이 나에게 실전용 방어마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분명 그는 5학년이나 그 후에 배울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시간에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가르치는데 제법 능했지만, 수업 도중에 학과에서 배우는 이론적인 커리큘럼 외의 것에 대해서, 특히 이러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가 지금 나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스킬이었으며, 실제로 마법 공방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을법한 것들이었다. 그는 정말 내 수준을 마법 전투가 가능한 정도에까지 향상시키려는 계획인 것 같았다. 이 모든 과정들이 나를 오러로 만들려는 그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겠지.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그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마법사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세 마법사가 내 앞에 생겼다.

“상대해 봐.”

그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에게 명령했다. 뭐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지? 나는 지팡이를 쥐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광역, 광역계마법…….

“아쿠아 에룩토!”

나는 그들에게 먼저 물을 뿌린 다음, 그중에 나와 가장 가까운 가운데 마법사에게 미끄러지기 주문을 쏘았다. 그 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차례대로 기절주문을 걸었다. 리들 교수가 만들어낸 것은 단지 환영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마법사들은 내 공격에 그렇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의 잔상 뒤로 내가 건 마법들의 빛줄기가 쏘아져 나갔을 뿐이었다.

리들 교수는 말없이 내가 하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네 잘못을 지적해주도록 하지.”

그가 또렷한 어조로 단언했다.

“일단, 아쿠아 에룩토를 쓰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나는 리들 교수의 첫마디를 들은 순간부터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적용할 수 있게 일깨워줄 뿐이었다.

“아쿠아 에룩토가 적용되는 범위는 반경 10피트밖에 되지 않아. 너는 마법의 발현범위와 상대와의 거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런 주문을 사용한 건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주문이나 내던지지 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너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할 뿐이지.”

그가 서늘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중간에 있는 사람을 먼저 공격했지?”

“……누가 어느 정도의 마법 실력을 갖췄는지 가늠할 수 없어서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가까운 사람이라. 넌 머글스러운 시각을 가지고 있군.”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머글들에게는 저 정도가 물리적 위해 거리로서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마법사들에게 저 정도는 가깝다, 멀다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지팡이를 사용하고, 저 둘 간의 거리는 마법의 발현속도를 고려했을 때 아주 미미한 차이에 불과해.”

나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환영들의 거리를 확인했다. 확실히 주문이 닿는 범위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든 뒷사람이든 그렇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큰 위협을 느꼈다. 그건 아무래도 그가 금방이라도 달려와서 나를 한 대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머글이라면 모를까, 마법사라면 지팡이를 두고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면 양 가에 있는 마법사 중 하나를 먼저 공격했을 거다.”

“…왜죠?”

“가운데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면 양쪽에 있는 두 사람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네 시야가 양방 120도가량이라고 가정할 때, 넌 오른쪽 사람을 상대하는 순간 왼쪽 사람에게는 무방비하게 노출되게 되지.”

그가 환영 쪽으로 고개를 까닥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히려 왼쪽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가운데와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네 시야에 모두 두게 된다면, 한 마법사와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도 다른 하나로부터 들어오는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

리들 교수가 하는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환해낸 마법사의 환영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리들 교수의 말을 상기시키며 그들의 거리와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마법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좋아.”

그는 기존의 마법사를 없애고, 새로운 형태로의 마법사를 만들어냈다. 이전과는 다르게 바짝 긴장한 상태로 나는 그들을 한번 훑었다. 조금 어려 보이는 몸집이 작은 마녀 하나에 성인으로 보이는 마법사 둘. 나와의 거리를 가늠하고, 빠른 시간 내에 그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한다.

나는 우선 오른쪽을 향해 폭파 주문을 외었다.

“붐바르다!”

굉음을 울리며 바닥이 폭파했다. 자욱하게 먼지가 일면서 한쪽 사람의 시야를 가렸다.

“글리세오.”

나는 나머지 두 사람이 있는 바닥을 미끄럽게 만들어 그들이 미끄러지도록 유도했다. 환영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미끄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엑스펠리아르무스!”

한 사람에게 무장해제 마법을 가하고, 나머지 두 환영에 기절주문을 쏨으로써 마무리하고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왜 폭파주문을 쓴 거지?”

“저 상황에서 세 사람을 동시에 교란할만한 광역계 주문을 알고 있는 게 없어서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또한 내가 모르는 마법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리들 교수의 교육 특징은 많고 다양한 마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가 언급하는 공격마법들은 대부분 학과 과정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상황에 맞도록 적절한 주문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가깝고 한 사람은 너무 멀죠.”

내가 말했다.

“일단 붐바르다같은 경우 아래를 향해 쏘게 되면 바닥을 통해 진동이 전달되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배운 적이 있어요.”

게다가 연기가 생기니까 시야를 가릴 수 있다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죠. 나는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 두 사람은 가까이 있는 데다가, 한 사람은 몸집까지 작아 보여요. 그래서 바닥을 미끄럽게 만들 경우 서로 부딪혀서 넘어지기가 더 쉬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글리세오를 썼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눈을 한번 가늘게 뜬 리들 교수가 조금 느리게 말했다.

“나쁘지 않군.”

“…왜 나쁘지 않은 거죠?”

그의 평가가 그다지 긍정적인 것 같지 않아 내가 되물었다.

“세 사람을 동시에 공격할만한 광역계 주문을 아는 게 없다는 상황에서 붐바르다를 사용한 것도 좋은 선택이긴 하지. 하지만 너무 위험성이 커. 붐바르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진동 효과는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네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가 건물 안인지, 밖인지, 흙더미 위인지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많아. 그것까지 가늠하여 내린 판단이라면 탁월하다고 볼 수 있지만.”

넌 여기가 실내인 것까지는 계산에 넣지 않은 것 같군. 그가 짧게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저런 환경적인 조건까지도 헤아려가며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인가? 리들 교수에게는 상황을 보면 전투를 위한 적절한 마법이 머릿속에 바로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지? 만약 실제 존재하는 마법사나 마녀들을 상대한다면, 그들의 마법적 성향까지 모두 복합적으로 참작하여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인데.

오러가 된다는 것은 리들 교수와 같은 사람들과 상대해야 한다는 걸까. 실전에서는 저 정도의 실력을 갖춘 마법사들과 맞닥뜨리게 되겠지. 나는 그를 보며 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작품 후기 ============================

워플 작가님의 편지를 읽고 느낀 로웨나의 심경은 제가 독자님들의 코멘트를 읽을 때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된 것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는 진담.

업로드 당일날만 3천 분 정도가 꾸준히 글을 읽어주시고 계십니다. 코멘트를 한번이라도 달아주셨던 약 5백 여 분 가량이 저에게 시리같은 분들이라면, 나머지 2천 5백여 분들은 제게 리들같은 분이세요. 왜 제 소설을 읽으실까여..? 어떤 생각으로 로웨나 블루로즈를 지켜보고 있는거져...?? 이런 느낌.

아 이건 코멘트를 남기라는 강요가 아닙니당 ㅠㅠㅠㅠ! 저도 사실 다른 소설에서는 리들같은 독자에여 *-_-*

@오막살이님 질문이 참 재밌네요. 글쓴이 입장에서 저는 모든 등장인물에 다 애정을 느껴서 어느 하나 택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친밀도를 쓰기 쉽냐 아니냐의 순으로 본다면 이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쉽다>어렵다

필리다>>>>>>>>>>>>리무스>시리우스>>아이작>>>>>>>리들=블랙>>>>>>>>>>>>로웨나

필리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쉬운 아이 1위에요. 가장 제가 많이 투영되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쓰거든요. 그래서 아마 미화되는 부분도 있는듯ㅋㅋㅋㅋ 리무스는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남자의 성격이라 상대적으로 쓰기가 쉽구요. 시리우스는 처음에는 로웨나와 동급에 이를만큼 극악 난의도의 인물이었으나 외전 한번 쓰니까 절로 심적 이입이.... 아이작은 뭐 처음부터 표현하기가 그렇게 굴곡진 아이는 아닙니다. 꾸준히 편하게 써지죠.

리들과 블랙은 비슷하게 어려워요. 리들을 블랙과 동급으로 취급한 것은 리들 교순님이 개객끼라서 그런건 아니.. ㅋㅋㅋㅋㅋ 구여, 일단 리들 교수님은 너무 복잡하고 무서워요. 함부로 묘사했다간 저한테 크루시오 쏠 거 같슴당. 게다가..(흡흡! 스포생략) 블랙은 동물이라 어려워요. 저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개가 대체 어떤 식으로 의사표현을 하는지 잘 몰라요. 블랙은 심지어 말을 못하기 때문에 몸으로 얘의 심경을 표현해야 해여. 전 블랙을 쓸때마다 행위예술을 하는 것 같슴당...

로웨나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수차례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초반부에 비해서는 많이 많이 친밀감이 느껴요. 원래대로라면 아마 >>이걸 스무개는 더 넣었어야 했을거에여...

사실 이 질문 답변으로 22KB 한회 차 분량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 다음 회차는 내일 00시에 업로드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