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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10)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정신계 마법을 쓴 것이 무리가 된 것 같아요. 제가 그쪽 계열의 치료에는 전문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각성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요. 가끔 저런 학생이 있죠.”
“그렇군요.”
“앞으로 적어도 삼, 사 개월 정도는 정신계열 마법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얘기를 해두어야겠어요. 저 상태에서 더 마법적 충격이 가해지면 정말 정신이 망가져서 미쳐버릴 위험성도 있으니까요.”
폼프리 부인이 말했다.
“혹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도 정신계열 마법을 쓸 일이 있나요? 있다면 로웨나는 기존 커리큘럼에서 제외하는 게 좋겠어요.”
“5학년 때부터 사용하니 문제없을 겁니다.”
나는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혼미한 의식 사이에서 겨우 눈을 떴다.
“오, 로웨나? 정신이 드니?”
병동이구나. 희미한 시야 밖으로 폼프리 부인의 흰 앞치마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한 번 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만류했다.
“아직 회복이 덜 됐단다. 계속 누워 있으렴.”
나는 그녀의 말을 쉬이 듣고 넘길 수 없었다. 폼프리 부인의 뒤에 리들 교수가 서 있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나는 그가 엄살떨지 말고 지금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력이나 더 기르라며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폼프리 부인이 내 옆에 앉아서 걱정스러운 듯 내 두 손을 쥐었다.
“로웨나, 요즘 스트레스받는 게 많니?”
“네?”
“네가 학업에 열중하는 성실한 학생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단다…….”
그녀는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억지로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몸을 위해 그렇게 좋지 않을 거라는 일장 연설을 했다. 나는 폼프리 부인의 이야기를 건성건성 들었다. 그녀는 내가 약물이나 마법을 사용해 몸을 혹사시켜서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폼프리 부인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전한 정신계마법이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위험성에 대해 나에게 한참을 경고했다.
“…그건 그렇고, 리들 교수님이 복도에서 널 발견하지 않으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게 좋겠어. 폼프리 부인이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며 리들 교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가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라도 마련해주겠다는 듯이. 나는 조금 얼떨떨한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리들 교수는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희극적인 상황인지 몰라서 나는 속으로 쓴웃음만 났다.
“오늘은 병동에서 자도록 하렴.”
병동에서 자라고? 나는 괜찮았다. 이런 음침한 곳에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머물다간 없던 스트레스라도 더 생길 것 같았다.
“아니, 괜찮…….”
“그러는 게 좋겠군요, 블루로즈 양.”
리들 교수가 유연하게 우리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플리트윅 교수님께는 제가 말해두도록 하죠.”
어머, 친절하셔라. 폼프리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과장해 반응했다. 그럼 블루로즈 양을 잘 부탁드립니다. 리들 교수는 그렇게 정중하게 한마디를 하고 자리에서 떠났다.
결국, 나는 다시 병동 침대에 누웠다. 폼프리 부인은 개구리 초콜릿을 비롯해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음식을 주면서 각성 마법 같은 건 함부로 쓰지 말라고 몇 번을 당부했다. 나는 각성 마법의 주문조차 몰랐으나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누워 있긴 했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는 못했다. 몸을 몇 번 뒤척이자 폼프리 부인은 푹 자는 게 필요하다며 수면 유도 마법약을 건넸다. 그녀가 앞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이를 다 마셨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는 순간부터 몸이 나른해지더니 졸리기 시작했다. 눈을 살짝 감았다가,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긴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이제는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엄마는 사진 속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얼굴이라 눈물이 났다. 한참 울고 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안겨 있던 사람은 리들 교수였다. 그가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고 애썼다. 희미하게 무엇인가 보이려고 하는 순간, 나는 정신이 들었다.
오늘이 보름이었던가. 병동 창문 바깥에서 환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이 몇 시쯤 되는 걸까. 아주 깊은 새벽인 것 같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내 눈가에 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 어슴푸레한 시야 사이로 침대 근처에 서 있는 리들 교수의 인영이 보였다. 꿈속에서처럼 그는 내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 순간 내가 했던 생각은 항상 일찍 일어나는 그가 어떻게 이 시간까지 깨어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도 그는 필요의 방에서 밤을 새웠다. 그는 잠이 들 필요조차 없는 것일까.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그쳤다. 나는 혼미한 정신으로 눈을 반쯤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리들 교수의 깊게 가라앉은 시선이 나에게만 온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얼마 동안 여기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요한 정적 사이로 병동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손이 조금씩 내려와 내 볼에 닿았다. 차갑고 서늘하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따뜻했다. 마치 깨지기 쉬운 것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가 내 볼을 감싸 쥐었다.
“왜.”
희미하게 눈을 깜빡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대하는 거죠?”
아주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병동에 아무도 없어서인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그가 답하지 않는 질문을 해야 할까.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내가 한마디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제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기가 힘들었다. 마치 꿈결을 헤매듯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였다. 잠들기 전에 폼프리 부인이 수면유도와 안정제의 기능이 있는 마법약을 건네주어서일지도 몰랐다. 애써 의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내가 그에게 말했다.
“왜 금방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이 굴면서 또 다정한 척하는 거죠?”
어렴풋한 시야 속에서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다시금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 하나만큼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왜.”
반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죠?”
나는 힘겹게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희미하게 잔상처럼 그의 얼굴을 남기며,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 * *
리들 교수를 보았다.
그건 꿈이었을까. 나는 멍한 눈으로 병동 침대에 앉아 텅 빈 벽을 응시했다. 그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라도 할까. 리들 교수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희미한 기억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설령 꿈이든 꿈이 아니든, 리들 교수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몇 시쯤 된 거지?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병동 앞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로웨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병동의 침대 너머로 필리다의 잿빛 머리카락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이작도 함께인 것 같았다. 여자치고는 꽤 키가 큰 그녀는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와 내 이마부터 만졌다.
“열은 없구나.”
“감기라도 걸린 줄 알았어?”
“응.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필리다가 농담조로 말했다. 감기 걸려서 열이 나는 여자아이의 머리 위에 물수건을 얹어 보는 게 로망이란 말이야. 그녀의 진심 어린 말에 내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오빠만 세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집안 자체에 그렇게 여자가 많지 않아서, 여동생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이유가 진심으로 내 머리에 물수건이라도 얹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네 로망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 다음번에 감기 걸릴 기회 있으면 방으로 불러줘.”
필리다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아이작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근데 왜 갑자기 기절한 거야?”
누가 지나가다가 스투페파이라도 쏜 거니? 그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그냥… 복도에서 쓰러졌대.”
나도 상황을 잘 몰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 나는 모르는 일이지. 그러고 보니 내가 어떻게 병동에 있는 거지? 리들 교수가 나를 안고 여기까지 오기라도 했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곧 그 가설을 부정했다.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혼자 병동에 가서 나를 아씨오, 하고 소환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지금은 좀 괜찮아?”
아이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괜찮았다. 내가 왜 기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푹 쉬어서 그런가, 정신이 좀 맑아진 기분도 들었다. 내 대답에도 아이작은 그렇게 썩 안심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말없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을 쉽사리 숨길 수 없었다.
필리다가 중간에 끼어들어 나에게 질문했다.
“왜 쓰러진 거야? 너 밤새서 공부라도 했니?”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기절을 한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공부했기 때문이라 여기다니. 다른 이들에게 비치는 내 이미지가 이런 것이었을까. 별달리 변명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것 같아.”
이불을 걷어내서 침대 밖으로 나오며 내가 싱긋 웃었다.
“쟁쟁한 경쟁자를 이기는 게 쉽지가 않네.”
내 말에 아이작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순간 내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분명 아이작은 자기 때문에 내가 무리하게 공부를 하다가 쓰러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둘러댔다.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요즘 불면증이 있었거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복도를 걸어가다가 잠든 게 아닌가 싶어.”
“어떻게 하면 걷다가 쓰러질 정도로 잠이 오지?”
필리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 이야기를 지속할수록 거짓말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대 앞에 바로 서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 배고파.”
시계를 보니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지금이라도 얼른 대연회장에 가야 식사를 하고 오후 수업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말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오전 첫 수업이었던 약초학 시간에 다뤘던 식물에 관해 필리다에게 물었다. 다행히 그녀는 흥분해서 ‘비명을 지르는 산야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맨드레이크와 다를 바가 뭐야, 내가 조금 얼빠진 어조로 중얼거리자 차이점을 열 개는 댈 수 있다고 그녀가 단언했다─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약초학으로 넘어갔다.
“로웨나. 조심해서 걸어.”
아이작은 마치 갓 걷기 시작한 아기라도 보는 것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대연회장을 들어가는 내내 아이작이 과하게 나에게 붙어있었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의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난 괜찮아. 그래 보이지 않아, 필리다?”
“어.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여.”
필리다는 깔깔대며 나를 자신의 옆에 두고 팔짱을 꼈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이작은 그나마 필리다가 나를 잡아주는 것을 보고 안심을 한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하는 식사였지만, 그래서인지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작이 챙겨주는 모든 음식들을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거절하며─조금 성질까지 내었다─스튜 한 그릇을 겨우 비웠다. 오랫동안 속이 비어있어서 많이 먹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이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음식을 남기면 타박하기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엄마처럼 굴었다. 필리다는 그게 그렇게 재밌는 모양인지 실실 웃더니 그가 내 쪽으로 밀어놓은 음식을 대신 먹어주었다.
내가 오전에 병동에서 자는 사이 아이작은 나를 위해 약초학과 마법 수업의 필기를 다 해둔 모양이었다. 그가 건네준 필기는 얼마 전 손을 다쳤을 때 그랬듯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라 다시 한 번 감동했다. 그러나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고마움과는 달리 이것을 받는다는 것이 이제는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나는 아이작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알고 있다. 그가 나에게 베풀어주는 친절 어디까지를 친구로서의 것으로 마음 놓고 받아들여도 되는지 경계를 알 수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로 지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후 수업까지 듣고 저녁을 먹기 전, 나는 호그와트 성을 나왔다. 딱히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도서관에서 공부할 예정이었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검은 호수를 걷고 싶어졌다. 나는 하루 일과를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이미 계획되어 있는 것을 이유 없이 무시하고 호수를 향하는 충동을 따르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검은 호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오고 싶었는지 알았다.
거기에는 블랙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앞에 서서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라 환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나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그에게 물었다.
“블랙 맞아?”
그는 말없이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블랙에게 다가간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 손을 들어 블랙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보았다. 익숙한 느낌에 현실감이 확 들었다.
“너, 맞구나.”
정말로 반가워서 눈물이라도 왈칵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블랙을 껴안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가 나타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뭐했었어?”
팔을 빼면 블랙이 멀리 가버릴 것만 같아 나는 껴안은 그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익숙하고 친근한 그의 체취가 다시금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안고만 있었다. 그저 품 안에 블랙을 두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언제나와 같이 블랙은 내가 그를 안도록 내버려두었다.
“리무스에게 들었어. 너 그간 겨울이라도 타고 있었던 거니? 왜 기숙사에서만 있었던 거야?”
블랙을 옆에 앉혀두고 그의 털을 쓰다듬으며 내가 조근조근 물었다. 오랜만에 만지는 새까만 털은 여전히 부드럽고 폭신폭신했다. 결을 따라 블랙의 등을 쓸어내리다 무심코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블랙의 은회안이 조용히 호수를 향해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고독하고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분명 처음 보았을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의 눈은 언제부터인가 떠나버린 주인을 혼자 기다리는 것처럼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너, 뭔가 힘들구나. 그렇지.”
나도 그런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어쩐지 시리우스의 생각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그 사람 말야. 너와 눈동자가 똑 닮은 그 사람.”
누군가가 건드리기라도 한 듯, 나는 블랙의 앞에서 시리우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호수를 바라보던 블랙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당황스러웠던 시리우스의 고백부터 시작해 그의 징계와 민달팽이 클럽,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세베루스의 일까지. 나는 그 순간순간 느껴왔던 것들에 대해 블랙에게 솔직하게 다 말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리우스도 별다를 거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가끔 그와 리들 교수를 비교해보기도 해. 그래도 시리우스는 그보다는 나은 사람이겠지…….”
무의식적으로 리들 교수의 이름을 내뱉었다가 후회했다. 설령 개에게라도 그의 이름을 함부로 올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순간 블랙이 내 눈을 빤히 응시했다. 마치 리들 교수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은 느낌이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냐. 나는 진정하려고 애썼다. 설마 블랙이 리들 교수를 알 리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우리 둘 사이에 엷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괜히 그의 귓바퀴를 한 번 만지며 중얼거렸다.
“난 정말 모르겠어, 블랙.”
공부하느라고 기절했던 것이냐는 필리다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현실에서 도피라도 하듯 책에 몰두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남들보다 성실하고, 지적인 흥미와 욕심이 강했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진취적인 태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이대로 열심히 호그와트에 다니다가 졸업하면 마법부의 말단 직원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따라야 하는 것은 마법부가 아니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였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오러가 되고, 불사조 기사단이 되어, 죽음을 먹는 자들과 내통하게 될 거라고? 애니마구스가 토끼인, 내가?
나는 조용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해 질 녘의 노을이 수면에 반사되어 호수 전체가 붉은빛을 띠었다. 길게 햇빛을 품어내던 호수는 결국 오롯이 해를 삼켰다. 나는 그와 함께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었다.
호수 근처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블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이제 나와 있는 것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나는 그가 떠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떠나지 마.”
나는 블랙을 안고 놔주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그가 내 손에서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은회색 눈동자와 마주하며 내가 애원하듯 말했다.
“…나를 혼자 두지 마, 제발.”
============================ 작품 후기 ============================
@한유주님, 걱정마세요!! 갑자기 토순이가 불치병에 걸리는 엉뚱한 전개는 없습니다. 겨슨님이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로웨나는 건강한 아이랍니다.
>>로웨나가 모르는 설정<<
레질리먼시 가지고 어케 기절이?_? 라는 질문이 많으셔서 답변 드립니다.
넘 오래되어서 다들 잊고 계시겠지만, 로웨나는 17회차에서 오클러먼시 교습을 받다가 이미 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18회차는 아이작이 오클러먼시 자체가 정신적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하루 일정 시간 이상으로는 수련할 수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구요. 3회차에서는 리들 교수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정신계 고문으로 미쳐버린 마법사의 사례를 설명하기도 했었습니다.
로웨나는 지금 정신적인 외상후 장애 트라우마, 가치관 혼란, 밤샘, 육체적 피로 상태에서 리들 교수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과도한 압박 하에 레질리먼시를 받아 이를 방어하려다가 기절한겁니다.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몸이 사소한 바이러스를 방어할 수 없어 큰 병에 걸릴 수 있듯, 정신적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잘못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여 압박을 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폼프리부인이 경고한 것은 이 내용이구요. ...는 무슨 톰레기 너 이제 주거써 넌 이제 로웨나 맘대로 못읽어^^^^^^^*
+다음 연재는 10일이 되는 00시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