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75화 (7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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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9)

반쯤 웅크려 앉아 뒤집어진 속을 정리하고 있는데,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숨이 다시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언제 나를 따라온 것일까. 그는 조금 급하게 달려온 듯 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로웨나.”

시리우스가 나를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시리우스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도록 그와 멀어지고 싶었다.

“잠깐만, 얘기 좀 해.”

우스웠다. 내가 그렇게 대화를 청했을 때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으면서 내가 얼굴조차 마주 보기 싫을 때 매달리다니. 이쯤 되니 나는 그와 어떠한 형태로든 인연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우스와는 항상 이렇게 무엇인가 맞지 않았다.

짧지만 명확하게 나의 의사를 전했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 호그와트 성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시리우스가 다급하게 내 쪽으로 다가와 팔목을 잡았다.

“잠깐이면 돼. 내 말 들어줘.”

그가 나에게 닿자 마치 반사작용이라고 이는 것처럼 몸이 미약하게 떨렸다. 시리우스는 조금 놀란 듯 손을 뗐다. 나는 되도록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적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시리우스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두려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숨을 몇 번 몰아쉬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떤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나는 여전히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나에게 무엇인가 변명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어떤 말로 자신이 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거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세베루스에게 굴욕을 준 것이, 어떻게? 그의 말이 전혀 내게 닿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인지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쉬이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대처가 과해서 네가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해.”

나는 시리우스가 꺼낸 첫마디부터 기분이 나빠졌다. 마치 그럴만한 처신을 했는데, 단지 내 정신이 심약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뿐이라는 뉘앙스였다. 내가 이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겠지. 아니, 지금 그가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졌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시리우스를 한껏 비난하고 싶은 충동을 내리누르며,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세베루스가 어떤 잘못을 한 건가요.”

나는 정말로 그게 궁금했다. 솔직히 내가 세베루스와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했다. 비록 세베루스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서로를 본체만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러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그의 성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세베루스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건드릴만한 성격이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았다.

내 질문에 시리우스는 살짝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차분히 서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짧게 망설이던 그가 마침내 말을 내뱉었다.

“걘, 널 괴롭혔던 애들과 어울려 다녔었어.”

나 또한 세베루스가 뮬시버나 애버리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그러나 적어도 세베루스는 그들이 뿌려내는 추문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세베루스가 그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어둠의 마법이나 좋아하는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나는 스네이프 같은 애들을 내버려두면 또 너를 괴롭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알잖아. 걔가…….”

“알긴 뭘 알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세베루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그들과 어울려 다녔기 때문이라고? 시리우스의 논리가 어이가 없어서 나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연대책임이라도 져야 한다는 걸까. 마치 내 모든 잘못을 아이작에게 뒤집어씌워도 될만한 논리였다. 나는 아이작과 어울려 다니니까!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비난들을 그에게 내뱉어내며 책임을 지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그와 같은 혈통을 타고났으니, 시리우스도 또한 오리온 블랙처럼 변하게 될 것이고, 나를 모욕하며 괴롭히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면 시리우스는 어떤 대답을 할까.

세베루스의 잘못을 특정하라는 내 요구에 그는 딱히 어떤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뭔가 그럴듯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시리우스가 생각 없이 행동한 것 같아서 실망감만 쌓였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 시리우스에게 뭔가를 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설령 세베루스가 어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정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한 건가요?”

울컥 무엇인가 올라올 것 같아,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굴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것이?”

당신은 그냥 세베루스를 장난감 취급한 것에 불과해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정말로 나를 인간이 아니라 어떤 물건 취급하던 그들이 떠오를 것 같아 겨우 말을 삼켰다.

“그렇게 하면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이 될 거라 기대한 건 아니겠죠.”

나는 그게 전부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시리우스의 변명이 더 싫었다. 몇 마디 더 던지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나는 내가 그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조차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시리우스와 마주칠 수 없는 먼 곳에 가서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시리우스 멋대로 행동했으면서 내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미안, 내가 잘못한 것 같다.”

그는 본인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했지만, 나에게는 전혀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의 불편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입을 놀리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 화가 났다.

“정말로 잘못한 것 같다면 지금 사과의 대상을 잘못 생각하신 것 같네요.”

나는 싸늘한 기색으로 덧붙였다.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조차 믿을 수 없지만.”

내 목소리에 서린 냉기에 시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시리우스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할 건데? 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에야, 한 번 깨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가졌던 신뢰와 믿음을 단번에 깨뜨렸다. 깨진 조각들은 손으로 주워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나를.”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싫어하지는 말아줘.”

“싫진 않았어요. 분명.”

나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회빛이 도는 그의 불안한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순 일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은 정당했고, 시리우스는 더없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던가. 나는 스스로가 왜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와 눈을 마주한 채 그대로 말했다.

“근데 이제는 정말로 싫어질 것 같네요.”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내가 덧붙였다.

“앞으로 말도 걸지 마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그를 떠났다. 시리우스가 떠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이대로 변신술 연습을 했다간 지팡이에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변신술 연습을 하겠다던 원래의 계획을 철회하고 나는 그대로 호그와트 성으로 향했다. 지금의 나에게 무엇인가 위안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블랙이 정말 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그러했듯, 나는 이제 그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억지로 도서관으로 걸음을 향했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모든 것을 다 팽개쳐두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관의 내 자리에 앉았다. 집중이 될 리 없었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여기가 나았다. 펼친 양피지 위로 싫어하지 말아 달라는 시리우스의 은회색 눈동자가 자꾸 아른거렸다. 그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비집어 올라왔다. 그저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것뿐일지도.

하지만 실수치고 그가 한 행동은 너무 잔인했다. 아무리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난 들, 나라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감을 주는 그런 방식으로 보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상대방이 마음 깊은 곳까지 상처받기를 바라는 악의였다. 게다가 심지어, 세베루스가 시리우스에게 뭔가 해를 끼친 것 같지도 않았다.

절대. 절대 나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든 시리우스를 변호하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온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었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였는데 그 상태에서 공부에까지 손을 대지 못하니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에게는 지금 하루 한 시간도 아까웠다. 도서관의 폐관시간이 되어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나는 쉽사리 침대에 눕지 못했다. 잠도 오지 않았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결국 나는 약초학 공부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 * *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니 정신이 조금 몽롱했지만 참을 만했다. 이렇게 밤을 새워본 것은 처음이었다. 새벽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았다. 대연회장에서 시리우스를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워 아침도 걸렀다. 첫 수업시간은 마법약이었다. 이상했다. 딱히 졸린 것은 아니었지만, 나사 하나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시종일관 멍했다.

오늘 마법약 시간에는 인내력을 기르는 마법약을 만들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습관적으로 아르마딜로의 담즙을 짜고─아이작은 내가 거부감 없이 담즙을 짜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독시의 알을 넣은 다음 약이 푸른 빛이 돌 때까지 열심히 휘저었다. 그래도 슬러그혼 교수님은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만들든 대충 만들든 별 차이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마법약을 유리병에 담으면서도, 혹여 내가 필요한 것은 인내력은 아니었나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지금껏 열심히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감내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마법약 직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 있었다. 이번 시간에도 변함없이 방어마법을 실습했다. 오늘은 어쩐지 다른 사람과 짝이 되면 불편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아이작과 파트너가 되었다. 몇 번 겪어보았지만 아이작의 방어마법은 거의 손 볼 것 없이 완벽했다. 굳이 뽑자면 순발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약간 아쉬울 뿐이었다. 아마도 실전 경험이 없어서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며 아이작이 더 빠르게 방어마법을 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이작의 방어 마법을 집중해서 관찰하고 있는데, 나를 향하는 시선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리들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별로 놀라지 않은 척했으나, 나는 리들 교수가 나의 모든 것을 읽고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유독 감이 좋았다. 마치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 후에도 리들 교수 쪽은 되도록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방어마법 실습을 지속했다. 리들 교수가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로웨나.”

아이작이 방어막을 거두면서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었다.

“너 오늘따라 얼굴이 더 창백해 보여.”

피곤한 게 티가 나는 건가. 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방어마법을 시전했다. 푸른빛의 방어막이 내 주변으로 한번 둘러졌다 사라졌다. 나는 평소와 같은 어조로 가볍게 둘러댔다.

“아, 어제 잠을 좀 못 잤어.”

“무슨 일 있었어?”

“과제 하느라고…….”

아이작이 조금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과제? 요즘 급하게 제출해야 할 건 없지 않아?”

“음, 미리 다 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제출기일이 아직 많이 남은 마법의 역사나 마법약 과제를 언급하며 이미 다 끝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휘저었다. 당연했다. 아직 마감기간이 한 달은 넘게 남았으므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퀴디치 시즌이었으므로 근래 교수님들은 그렇게 과제를 많이 내주지는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해야 할 양이 많다며 괜히 한마디 하고는 아이작과 방어마법의 수련에 집중했다.

그날 오후에는 머글 연구 수업이 있었다. 시리우스와 나는 이제 서로 인사조차 나누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시리우스 또한 내 앞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럴수록 더 화가 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그의 무덤덤한 태도에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서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속에서부터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 머글 연구 수업 시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아렸던 감정이 미묘하게 변질되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게 그가 단지 싫어서 그런 건지, 무서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실망감의 잔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시리우스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세차게 뛰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 * *

그날 밤, 리들 교수는 나를 7층으로 불렀다.

새로 만들어진 필요의 방은 너른 공간의 형태였다. 그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항상 목적이 뚜렷하게 느껴지곤 했다. 아무런 가구도 놓이지 않은 텅 빈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그가 어떤 격렬한 공방이 예상되는 수련을 시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 리들 교수가 나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뒤를 돌았다. 그는 오후 수업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오늘 수업 도중에 필리다가 요한에게 리들 교수는 심지어 짙은 헤이즐넛 톤의 색상까지도 잘 어울린다고 말을 건네는 것을 들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리들 교수 쪽으로는 아예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는 밝은 톤의 체크무늬 셔츠 위에 갈색의 블레이저 차림이었다.

“임페리우스 연습은 제대로 하고 있나?”

그가 임페리우스 저주를 언급하자마자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슬러그혼 파티의 그 날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나는 혼자서 임페리우스 연습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당장에라도 그때처럼 나에게 임페리우스를 걸어 압박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페리우스에 대항하는 건 어둠의 마법 방어술 N.E.W.T에서 가장 반영률이 높을 거다. 지금부터라도 지속해서 연습해 두도록.”

“네, 알겠어요.”

나는 순종적인 어투로 얌전히 대답했다. 무엇인가 제 맘에 차지 않는다는 듯 그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별말 없이 외투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며 말했다.

“수업 시간에 보니 방어마법은 꽤 하더군.”

그의 적갈색 넥타이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부터는 공격 마법을 연습하도록 하지.”

지팡이를 들어. 그의 명령에 나는 망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지팡이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마법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의지이고, 특히나 공격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해하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배웠을 거다.”

나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의식적으로 리들 교수의 검은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가 나는, 다시 시리우스의 생각을 했다. 그도 리들 교수도, 나로서는 둘 다 나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시리우스라면 나를 이렇게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을 비교조차 할 수 있던가.

다시금 시리우스를 떠올리자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꽉 잡고 놔주지 않는 것처럼 또다시 속이 갑갑해졌다.

“그래서, 공격 마법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게 뭐지?”

그때, 그가 내던진 질문에 나는 조금 놀랐다. 개인 교습을 할 때 리들 교수가 이렇게 기습적으로 뭔가를 물어본 적은 없었다. 썰물이 지나가 모든 것을 쓸고 내려간 것처럼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뭐가 있었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간단한 것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왜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어, 저…….”

얼른, 생각나.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더듬거리고 있자 무심했던 리들 교수의 시선에 깊은 무게가 실렸다.

“너. 집중을 제대로 못 하고 있군.”

나직한 어조로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조금 당황했지만, 평소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다시 긴장되었다. 마치 저녁 식사는 했는지 안부를 묻는 것처럼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그것이 리들 교수의 입에서 나오면 그 의미가 달랐다.

레질리먼시를 쓰지 않아도 리들 교수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쉽게 알아차렸다. 무엇이든 꿰뚫어 보는듯한 그의 어두운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마치, 언제 사냥꾼에게 들킬지 모르는 채 떨고 있는 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직 이 깊은 밤이 제 기척을 가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점점 더 불안해지는 기분을 떨쳐내며 나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려 애썼다.

차가운 눈으로 나를 찬찬히 훑던 그가 짧게 한마디 했다.

“말해.”

복잡한 의미를 담지 않은 간결한 말이었으나 마치 칼바람이 바로 옆을 스친 것처럼 나는 긴장했다. 뭘 말한단 말인가? 시리우스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나는 리들 교수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또 한 번 나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시리우스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리들 교수의 표적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벼,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우리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굳었지만,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나는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가 강압적으로 나올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조금 반항적인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또 억지로 제 마음을 읽을 생각이신가요?”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너를 읽는데 허락을 받아야 하나?”

순식간에, 얼음장을 채워놓은 것처럼 방 전체에 찬 기운이 돌았다.

그의 서늘한 눈길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내가 정도를 넘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는 너른 공간에, 리들 교수와 나 단 두 사람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온전하게 나 하나에 쏠려 있었고, 나는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받아내는 것이 힘겨웠다.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을 꽉 쥐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라.”

그리고 나는 알아차렸다. 리들 교수는 명령에 대한 이유 없는 불복을 싫어했다. 그가 나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처분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만 머리를 채웠다. 새하얘진 머릿속 깊은 곳에서 잊고 있었던 공포감이 떠올랐다.

“능력을 채 기르지도 못한 주제에 어쭙잖게 반항이나 하려 들겠다고?”

“그, 그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리들 교수는 내 팔을 잡아 더는 내가 뒤로 물러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비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차가운 시선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그대로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레질리먼시.

그의 의식이 내 머릿속에 침입했다.

나는 순간 리들 교수가 저주주문이라도 쓴 줄 알았다. 그가 내 정신을 억지로 개방하자,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강한 충격과 고통을 느꼈다. 분명 그의 레질리먼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도, 마치 형태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던 비눗방울이 터지듯, 정신 어딘가에서 무엇이 터져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지러웠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헛발을 내디딘 것처럼 땅으로 쑥 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의식의 마디 하나조차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딱 끊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코에서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쏟아졌다. 막힌 숨을 억지로 내쉬며 나는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붉은 피가 손에 묻어나왔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쥐고 있던 지팡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방전된 듯,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 작품 후기 ============================

양질의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 안 읽는 척 하면서 꼼꼼히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코멘트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 회차에 저는 여러분께 ㄸ..아, 아니, 응아를 드렸군요...

팬아트가 잔뜩 들어왔습니다. 행복합니다...  모두 뜰이나 공지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

카펠라니아님께서 파티날의 로웨나를 그려주셨어요. 우아하고 고상하면서도 귀욤귀욤한 우리 로웨나. 문제의 흰 숄ㅋㅋㅋ 까지 섬세하게 묘사해주셨습니당..☆

chococake님께서 로웨나에게 딸기요거케잌을 만들어주는 리들 겨슨님을 그려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제 후기를 꼼꼼히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어떤 의미인지 아실 듯...

(炤朗)소랑님께서 로웨나를 그려주셨습니다★ 팜프파탈의 퇴폐미가 넘치는 성숙한 로웨나에요. 이런거 좋습니다..♡

꿀꽈배기00님께서 로웨나 가상캐스팅을 해주셨습니다. 처음 받는 가상캐스팅이네요.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정말 닮았어요. 시리우스 배우의 울것같은 눈망울 어떻게하죠? 잘생겼는데 아련돋아서 넘 짠내나T_T

+(추가) 엘레나Elena님, 지적 감사드립니다. 후기에 적는다는 것을 잊었네요. 임페리우스에 대한 저항은 원작에서는 O.W.L이 아니라 6학년 교과과정입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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