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74화 (7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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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8)

다음 머글 연구 시간에도 시리우스와 나 사이의 냉전은 풀릴 기미조차 없어 보였다. 시리우스는 이제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교실에 들어와 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수업이 마치자마자 교수님과 거의 동시에 교실을 나가곤 했는데, 나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시리우스의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나는 차마 말을 걸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솔직함이고 뭐고, 그는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나는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학교 곳곳에서 시리우스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마루더즈 무리 사이에서도 잘 보이지 않기 일쑤였다. 학기 초에 블랙을 찾아 헤맸던 것처럼 그의 흔적을 쫓았지만, 시리우스는 내가 자신을 찾아다니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항상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시리우스가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치 블랙이 그러했듯, 나는 그가 아무도 없는 어딘가에서 홀로 괴로움을 견디고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 * *

월요일 첫 수업인 마법 수업을 마친 후, 나는 아이작과 함께 변신술 교실로 향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복도를 걷기만 하던 아이작이 복도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구나.”

“그러게. 이제 목도리는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른 아침은 여전히 추운 감이 있었으나 그래도 이제 완연히 날씨가 풀렸다. 분명 이러다가도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 있겠지만, 그것도 잠깐일 것이다. 곧 봄이 오겠지. 그러나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만한 시험 기간이 왜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시험에는 반드시 수석을 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아이작은 여전히 성실했고, 덤스트랭에 다녀온 후로부터 그는 더 영민해진 것 같았다. 대체 정당한 방식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 방법이 있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내색하지는 않은 채, 나는 아이작과 다가올 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주말에 외출을 해도 좋을 만한 날씨였기 때문에 그는 함께 호그스미드에 가자고 제의했으나, 나는 에둘러 거절했다. 솔직히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이작이 호그스미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한 자라도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참 얘기를 하면서 변신술 교실로 향하고 있는데 복도 반대편에서 리들 교수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옆에 있는 슬리데린 학생을 보고 나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는 세베루스였다. 세베루스와 리들 교수가 친했던가? 나는 의문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그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온 리들 교수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는 마치 보통 학생들에게 대하듯 나와 아이작의 인사를 받고 무심히 우리를 지나쳤다. 이럴 때마다 나는 리들 교수가 낯설어졌다. 바로 며칠 전에 나와 리들 교수는 함께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톰 리들 교수’인 지금의 그는 나를 다른 학생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설명하지 못할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긍정적인 감정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변신술 교실에 도착한 우리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곧 들어온 맥고나걸 교수님은 오늘의 수업 주제인 애니마구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애니마구스에 관해서는 3학년 변신술 시간에 짧게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4학년 때 애니마구스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고, 5학년 때에는 실례 위주로 학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 한해서는 직접 개인 교습을 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깃펜을 들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애니마구스는 단순한 변신술과는 다릅니다. 일단 시동 주문 없이, 시전자의 의지만으로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지요.”

맥고나걸 교수님은 일반적인 변신술과 애니마구스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참을 자세히 설명했다. 어쩐지 이에 관한 시험 문제가 나올 것 같아 나는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었다.

“애니마구스는 고등변신술이자, 시전자의 본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정신마법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애니마구스의 형태는 시전자가 원하는 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법사의 정신과 영혼의 형태가 드러난다고 보는 쪽이 맞겠죠. 이러한 점에서는 패트로누스와 비슷합니다.”

나는 애니마구스 변신약을 통해 토끼로 변했던 그 날을 떠올렸다. 애니마구스의 형태가 마법사의 정신과 같다는 맥고나걸 교수님의 한마디는 어쩐지 나에게 심적 타격을 주었다. 내 내면의 모습이 한낱 토끼에 불과했단 말인가. 패트로누스가 큰 까마귀(Raven, 지능이 높은 새의 상징)인 아이작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는 내 정신이 조금 더 숭고하고 존엄한 형태이길 바랐다. 하다못해 부엉이라도 있지 않은가. 왜 토끼인 거지.

거기다가, 애니마구스와 패트로누스가 비슷하다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벌써부터 5학년 때 배울 패트로누스 마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마 몇 년 동안 공부하고 노력해서 변신한 것이 멧돼지쯤이라면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겠죠…….”

맥고나걸 교수님의 한마디는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마저 저격했다. 심지어 나는 리들 교수에게 패트로누스를 배워야 했다. 패트로누스 마법은 5학년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교과과정이었으니까. 그는 내가 누구보다 먼저 성공하기를 압박할 것이고, 그렇게 나온 결과가 토끼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쩐지 비웃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연약한 정신력을 상징하느니 뭐니, 비꼬아대겠지. 내 패트로누스가 코뿔소나 강철 고슴도치쯤이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망상을 하는 사이, 맥고나걸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또한, 애니마구스인 사람들은 반드시 마법부의 마법 오/남용 관리과에 등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즈카반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애니마구스는 매우 복잡하며, 투자되는 시간이 길지만, 그에 반해서 사용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실제 애니마구스는 매우 드물 수밖에 없죠…….”

몇 년을 수련해 열심히 배웠는데 결국 마법부에 등록되어 그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감시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결론은 실제 애니마구스인 사람이 손으로 꼽힐 정도라는 말인데, 왜 이렇게 변신술 교과과정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시험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반쯤 맥고나걸 교수님의 말을 흘러들었다. 내가 재능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애니마구스는 정말로 별 효용이 없어 보였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느새 변신술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어수선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작년 애니마구스 수업을 들은 직후 그랬듯이, 제 애니마구스가 무엇일지에 대해 추측성 발언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요한이 필리다에게, 조잘대는 것을 보면 분명 그녀의 애니마구스가 참새일 것이 분명하다고 농을 걸자, 그녀는 요한의 툭 튀어나온 입을 고려할 때 그의 애니마구스는 두더지일 것이라고 악담을 했다.

“내 애니마구스는 뭘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이작이 혼자 중얼거렸다.

“당연히 큰 까마귀겠지.”

그게 네 패트로누스니까. 내 대답에 아이작은 고개를 저었다.

“애니마구스와 패트로누스가 항상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그는 등록된 합법적 애니마구스가 얼마 없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했다. 애니마구스와 패트로누스를 동시에 펼칠 수 있는 사례조차가 빈약하니, 그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작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둘 다 고등 정신계열 마법이잖아. 자아를 상징하는 거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은 당연할 거라 생각해.”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너에게만 말해주는데, 아이작.”

나는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내 애니마구스는 토끼였어.”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예전에 애니마구스 마법약을 써 본 적 있었거든.”

“애니마구스 마법약?”

그걸 사용했는데, 토끼로 변했다고? 그가 그렇게 한마디 하더니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토끼로 변한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작이 너무 크게 웃었기 때문인지 나는 이를 그에게 공개했다는 것이 조금 창피해졌다. 5학년 올라가서 패트로누스를 배울 때 그가 놀리지 않길 바라며 미리 언급한 것뿐인데. 내가 반쯤 울상을 짓자 그는 조금 웃음을 참으며 나에게 위로인지 무엇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왜. 토끼 괜찮은데. 너랑 무척 잘 어울려.”

“너 지금 나를 고도로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설마, 그럴 리가. 아이작이 고개를 휘저으며 답했으나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애써 이를 무시하고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내 패트로누스가 토끼로 튀어나올까 봐 조금 걱정이야.”

차라리 참새나 두더지가 더 나을 것 같았다. 토끼라니. 그건 정말 내 연약한 정신력의 상징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영혼이 그것보다는 훨씬 강력한 형태를 가지길 바랐다.

아이작은 울상인 내 얼굴을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토끼인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게 영 신경 쓰인다니까 말해주는 건데, 패트로누스는 성장하면서 바뀌기도 한대.”

그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우린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겪고 있으니, 우리의 정체성이 명확히 형성되면, 네 패트로누스는 유니콘이 될 수도 있겠지.”

“퍽이나 위로가 돼.”

패트로누스가 유니콘이라니. 덤블도어 교수님도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그래도 초식 동물에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교과서를 챙겼다. 아이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스쳐 지나가듯 물었다.

“그건 그렇고, 애니마구스 마법약, 그 할로윈 기념으로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팔던 거 말하는 거야?”

“어, 알아?”

“그거 예언자 일보에서 말도 아니었잖아. 불량률이 너무 높아서. 그래서 전량 회수되었다고 들었는데.”

“뭐?”

나는 그의 말에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대부분은 잘 듣지 않았고, 몸의 일부분만 변신해서 돌아오지 않았던 케이스도 몇몇 있대.”

사용한 사람이 성 뭉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읽은 적 있어. 아이작이 그렇게 말하며 내가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판다고 해서 모든 제품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새삼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 * *

나는 보통 수업이 없는 월요일 오후를 변신술 연습을 하면서 보내곤 했다. 변신술 같은 경우는, 오전에 배웠던 것들을 오후에 연습을 좀 해둬야 마법을 사용할 때의 감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주로 탁 트인 공간에서 연습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잘못 주문을 외우기라도 했다가 지팡이에서 엉뚱한 것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느긋한 걸음으로 검은 호수 쪽으로 걷는데, 나무 근처에 평소와는 달리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5, 6학년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빙 둘러싸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살짝 호기심이 인 나는 무리 근처로 조용히 다가갔다.

사람들의 중심에는 지팡이를 든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있었다. 순간 나는 반가움이 일었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시리우스를 여기에서 만나게 되다니.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는데, 분위기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제임스와는 달리 시리우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차고 서늘해 보였다.

“오, 스니벨루스.”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는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사람이 세베루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금 저주 마법을 맞은 듯 반대편에서는 세베루스가 목을 부여잡고 캑캑대고 있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에 보았던 콧물 폭탄이 생각났다. 또 세베루스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그때보다 더 심각한 저주를 날린 것 같기도 해 나는 다소 불안해졌다.

제임스는 세베루스의 앞에서 지팡이를 불량스레 돌리며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마법 시험은 잘 쳤나?”

세베루스가 기침을 하면서도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듯 제임스가 낄낄대며 농기를 담아 말했다.

“우리 스니벨루스, 머리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져서 시험지에 답을 제대로 쓰기나 했을까!”

제임스의 한마디에 그리핀도르 학생 태반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많이 심했다. 내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마치 세베루스의 약점을 건드리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임스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제임스가 저렇게 상대를 폄하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인 줄 몰랐다. 심지어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리무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제임스를 제재하지는 않았다.

세베루스는 아직도 잔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전후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난장판 같은 싸움에 끼어드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리핀도르 여럿이서 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았다. 세베루스와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한마디쯤 해야 할 것 같아 나서려는 순간, 세베루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 너희들은 혼자서는 절대 덤벼들지 못하지.”

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마루더즈를 한심해 하는 기색이 잔뜩 어려있었다.

“그렇게 여럿이서 나 한사람 가지고 노는 게 재밌나?”

“가지고 논다고?”

시리우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계속 침묵하고 있던 그가 입을 열자,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의 싸늘한 표정만큼이나 목소리 또한 평소보다도 더 차갑고 시리게 느껴졌다.

“뮬시버나 애버리 같은 놈팡이들과 어울리며 어둠의 마법을 써대는 네가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시리우스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네 가장 친한 친구들과 상대한 전력이 있어서 말야. 나는 네 그 지저분한 머릿속에 어떤 더러운 생각이 있는지 다 보이는 것 같아.”

그가 표정 하나 변함없이 덧붙였다.

“어울리는 사람만 봐도 어떤지 알 수 있는 법이지.”

“그래. 확실히 널 보니 그런 것 같네.”

세베루스가 마루더즈를 훑어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임스가 뭔가 한마디 던지려는 순간, 시리우스가 먼저 지팡이를 들었다.

“플리펜도.”

시리우스가 겨눈 지팡이의 움직임에 따라 세베루스의 몸이 절로 뒤집어졌다. 마치 시리우스의 손아래 지배당하는 꼭두각시라도 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세베루스에게는 지팡이조차 없었다. 그가 이렇게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격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조금 더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레비코푸스.”

누군가 다리를 잡아챈 것처럼 세베루스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의 바지가 바닥으로 쓸려 내려가며 속옷이 드러났다. 나는 시리우스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잔혹한 악의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들은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쳤다. 세베루스가 느낄 수치심을 생각하니 나는 속에서부터 무엇인가 울컥 올라왔다. 저게 정말 재밌나? 아무리 봐도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지팡이를 든 채로 시리우스가 세베루스를 올려다보며 비꼬듯 말을 내뱉었다.

“팬티는 좀 빨아 입고 다니지그래, 스니벨루스?”

그의 표정에는 세베루스를 향한 차가운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시리우스의 표정을 본 순간 나는 묻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잊고 있었던 애버리와 뮬시버의 생각이 다시금 일었다. 그들 또한 저런 방식으로, 저런 표정으로 나를 희롱했다. 절대 들여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때의 끔찍한 기억들이 머리를 채웠다. 그들의 잔인함과 시리우스가 겹쳐지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났다. 나는 겨우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었다간 정말로 목구멍에서 무엇인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입가에 댄 손을 거두지 못하고 몸만 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시리우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발견했는지, 그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너무 무서웠다. 그의 모습에서 뮬시버를 보았고, 애버리를 보았으며, 레귤러스와 오리온 블랙을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를 돌았다. 더는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시리우스와 멀어지기 위해 나는 그대로 걸음의 속력을 높였다.

나는 그간 어떻게든 기대해왔다.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시리우스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고. 장난을 조금 좋아하긴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가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은 용기와 영혼을 가지고, 타인을 위할 줄 아는 따뜻한 성정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학교 외곽쯤 도달하자, 나는 걸음을 조금 늦추다가, 마침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나는, 시리우스가 정말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내 머릿속에서 쓸데없이 그를 과장하고, 그가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덕분에, 이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나자 어찌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그의 모든 행동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집안에서 빠져나가려고 일부러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영악한 사람이었다. 내가 믿었던 것은 전부 틀렸다. 이제 진실이 뭐고, 거짓이 뭔지도 혼란스러웠다. 이제 나는 내 안목조차 믿을 수 없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반쯤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이 세상에 진실은 없다던 리들 교수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작품 후기 ============================

1. 이 모지랭이야..... 흐잉..흐엥..T_T..

2. 아이작의 애니마구스인 레이븐은 국내에서 갈까마귀 정도로 번역되긴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 큰 까마귀의 한 종입니다. 레이븐이 지능적인 새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Ravenclaw라는 명칭도 아마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기숙사 상징이 뜬금없이 독수리인건 함정.

+3. 플리펜도는 소설이 아닌 해리포터 게임에서 나오는 마법 주문으로서, 상대방을 뒤로 날리는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로웨나 블루로즈는 거기에 제 설정이 조금 더 덧붙여졌습니다.

@은신설야님, 제 소설을 정독하고 네이버에서 소년들은 왜 신경쓰지 않느냐고 검색까지 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T_T 제 이해력이 딸리나 봅니다.

@삼팔상만님.. 음, 리들 교수님이 타준 밀크티는 나이대를 고려했는지 우유향이 강했지만 투썸 밀크티는 홍차향이 강합니닼ㅋㅋㅋㅋ 그래도 평타는 치는 것 같아요. 홍차를 즐기신다면 추천드립니다!

@한유주님, 저 딸기 요거 케잌 오늘 도전했습니다. *-_-* 이러다가 리들 겨슨님이 로웨나에게 딸기케이크라도 만들어줄 기세..

@그산우울님, 아... young and beautiful 제 취향이에요. 진심. 정말로. 좋아 죽을 것 같아요.. 듣자마자 위대한 개츠비 예고편에서 나왔던 음악인 걸 알아차렸어요. 그때 예고편의 이 음악에 꽂혀서 위대한 개츠비를 극장에서 봤거든요. 근데 로웨나를 쓰면서 이 걸 들으면 점점 더 비극으로 치달을 것 같아요. 개츠비처럼.... 그래도 계속 들으면서 퇴고했어욬ㅋㅋㅋ 그래서 오늘 내용은 비극으로... 은 농담 ^.^ coming up roses 다음으로 제 집필전용 음악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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