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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6)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교실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둘밖에 남지 않은 이 공간에 무거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나는 시리우스의 망토를 쥔 손을 아직 놓지 않은 채였다. 호기롭게 말해놓고 나는 치밀어 올라오는 불안을 삭혔다. 납빛이 도는 그의 눈동자가 나에게 와 닿았다. 내려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시리우스가 천천히 물었다.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예요. 정말 괜찮아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조금 두려워졌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망토를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어, 괜찮아.”
“거짓말하지 말아요. 누가 봐도 시리우스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나는 그에게 단언하듯 말했다.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소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리우스의 표정에 피로함이 일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이해했다. 시리우스가 나에게 집요하게 굴었을 때에도, 나는 그가 정말 싫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때의 시리우스는, 내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 보일수록, 더 가까이 다가왔었다.
“왜 이렇게 캐묻는 거지?”
“신경 쓰이니까요.”
그의 눈길이 내가 쥔 망토 끝자락으로 향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져 손에서 힘을 약간 뺐다. 그래도 왜인지 시리우스가 도망가버릴 것만 같아, 망토를 쥔 손을 놓지는 않았다. 시리우스는 한참을 내 손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침묵이 다소 불편해질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마.”
“어떻게 그러죠?”
관심을 가지지 말라니. 그와 이어져 있는 감정적인 부분들을 제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나름 친한 사이였다. 나와의 관계를 부정하려고 하는 그의 진의가 느껴져서인지 내 목소리가 약간 격양되었다.
“어떻게 관심을 버릴 수 있어요? 시리우스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 것처럼 보여요. 모르는 척할 수 없다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너랑은 무관한 일일 텐데.”
그의 어투는 싸하고 단조로웠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든,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듯이. 시리우스의 대답이 나와 그의 사이에 장벽처럼 세워져 내 일방적인 접근을 굳건하게 막았다. 일순 나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하지 않을 것 같은 뼛속 깊은 경계심을 느꼈다. 시리우스의 태도가 너무 단호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망토를 쥔 손을 놓았다.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하자.”
내가 손을 놓자마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리우스는 이제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매정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순간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거부당했다는 것에서 속으로부터 격한 설움이 일었다. 회오리바람처럼 복받쳐 올라오는 그 감정을 애써 갈무리하며 나는 그의 망토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시선을 두었다.
이게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시리우스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모르는 척하기에 그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시리우스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들어가기만 해도 몸이 꽁꽁 어는 겨울의 검은 호수 속으로 침잠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달려나가 그를 앞지른 나는, 교실 문 앞에 서서 그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시리우스의 표정이 티 나게 굳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그만 좀 해.”
“싫어요. 시리우스가 힘들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나에게 털어놓기라도 해요.”
나도 내 태도가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항상 이성적인 결단을 취해왔고, 그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지금의 나는 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날이 선 쇠줄을 당기는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이 우리 둘 사이에 돌았다.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바짝 정신을 차렸다. 시리우스의 눈동자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저것이 어떤 감정일까. 내가 귀찮아진 걸까, 싫어진 걸까, 혹은 분노하고 있는 걸까.
시리우스가 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럼 네 비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순식간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필리다가 뭐라고 했더라?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밝혀야 할 비밀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리들 교수에 대한 공포심이 서서히 일었다. 나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걸던 리들 교수가 그에게도 같은 짓을 반복할 것만 같았다. 시리우스가 무엇인가 알게 되면 그 또한 위험하게 되리라는 경고등의 붉은 빛이 머릿속을 메웠다. 나는 더듬더듬 변명의 말을 꺼내려고 시도했다.
“그, 그건…….”
“넌 대체 뭐지.”
그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물었다.
“뭘 숨기고 있는 걸까. 항상 궁금했었어.”
나는 알았다. 그가 속에 묻어놓았던 어떤 것을 다시 꺼냈다는 사실을. 교실은 조용했고, 그의 낮은 숨소리가 허공을 진동했다. 나는 혹여 시리우스가 나에게 레질리먼시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이길래 나에게 언급조차 않고, 절대 말해주지 않으려 하는지.”
잠깐이나마, 그의 눈에서 짙은 분기가 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드러난 그 감정은 다시금 그의 은회안 깊은 곳에 숨었다.
그가 차분하되,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솔직해지길 원한다면, 본인부터 솔직해져.”
나는 더 이상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나를 스쳐 교실 문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도, 그가 지나친 곳에서 블랙의 체취가 흘렀다.
나는 멍하게 그가 나간 문가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가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와의 관계는 어디서 틀어진 것일까. 그냥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를 향하는 감정은 더욱이 극심해져서, 이제 나는 시리우스를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듯 아파왔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블랙이 보고 싶어졌다. 그를 안으면 위안이 될 것만 같았다.
* * *
다음 날, 나는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바쁘게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갔다. 특히나 오늘은 자정에 천문학 수업이 있었다. 나는 천문학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마법 과제를 가지고 끙끙대다가 결국 아이작과 함께 천문탑으로 향했다.
오늘 천문학 수업에서는 토성을 그렸다. 토성 고리의 크기와 색깔까지 섬세하게 맞춰야 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더 많은 집중력을 요했다. 피곤했으나 졸리지는 않았다. 이번 시험에서도 분명 수석을 해야만 했고, 나는 항상 이를 잊지 않았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든, 그것은 공부와는 분리되는 무관한 문제였다.
“로웨나, 나 잠깐 교수님께 질문 좀 하고 올게.”
수업이 마치자마자 아이작이 교수님께 다가갔다. 토성의 위성에 대해 질의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교수님의 옆에서 답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천문학은 대부분이 외우는 것 위주였고, 나는 여기에 어떠한 학문적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다.
학생들은 금방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천문탑 옥상에는 나와 아이작, 교수님 세 사람만이 남았다. 나는 괜히 뻥 뚫린 하늘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눈으로 직접 보는 하늘은, 망원경을 통해 보았던 하늘과는 달랐다. 새까만 물감으로 칠한 것 같은 짙은 밤하늘에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것처럼 희고 촘촘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봄의 별자리가 중 북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마……. 나는 하늘에서 큰개자리를 발견했다. 그 중간에, 가장 빛나는 별 시리우스가 있었다. 어쩐지 시리우스의 얼굴이 떠올라 애써 다른 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그의 기억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이작은 금방 교수님과의 질의응답을 끝냈다. 그와 함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천문탑을 내려왔다. 금방 1층에 도착한 우리는 말없이 호그와트 성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초승달이 뜬 날이라 그런지 달빛이 평소보다 옅게 느껴졌다. 아이작이 옆에서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아이작은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티가 났니?”
내가 다소 쓸쓸한 미소를 짓자, 아이작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나에게 답변을 재촉했다. 짧게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시리우스와 싸웠거든.”
“블랙?”
“화해하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네.”
갑자기 튀어나온 시리우스의 이름이 그에게는 의외였던 모양이었다. 그가 언급되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지 아이작이 양 눈썹 사이를 약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작에게 그에 관해서 말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필리다에게도 이미 다 털어놓은 이야기를 아이작에게 숨기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사실 시리우스가 나에게 고백했어.”
“뭐?”
아이작이 놀라서 되물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격한 반응이라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거절했고.”
조금 지친 표정을 짓는 나를 아이작이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걸음을 멈추었다. 가볍게 꺼내려고 했던 얘기가 예상보다 무거워지는 기분이라 나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서 이제 시리우스는 나와 거리를 두고 싶은가 봐. 나랑 말도 안 하려고 해. 그게 굉장히 신경 쓰이네.”
“…다시 친해지고 싶은 거야?”
아이작이 조금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다시 친해지고 싶은 거냐고. 사실 나는 시리우스와 친해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나는 그와 친해지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리우스가 더는 힘들어하지 않고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설령 그와 다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느끼는 이 죄책감이 조금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속에 이는 것들을 감추며 나는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네.”
시리우스가 너를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참 좋았을 거야. 나는 흘러가듯 말했다. 아이작과 싸운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어쩐지 아이작을 닮은 시리우스를 상상할 수 없어서 속으로 웃었다. 그는 타고난 그리핀도르였다. 어쩌면 나와 너무 달라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흙길을 자박거리는 우리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이제 봄이 올 법도 한데 곤충들이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찬바람이 심하게 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목도리를 한 번 더 동여매었다.
“대체 네가 시리우스 블랙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아이작에게 조용히 대답했다.
“필리다는 내가 시리우스를 좋아하는 것 같대. 근데 네가 보기에도 그러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작이 단언하듯 말했다.
“전혀.”
“아무래도 그렇지. 근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나는 시리우스만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져.”
요즘은 그의 생각만 해도 속이 무겁고 아렸다. 특히나 레귤러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더욱이 그랬다. 시리우스는 나에게 차갑게 대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시리우스라면 어떤 사정이 있겠지. 내가 이유 없이 비밀을 간직한 것이 아니듯, 그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그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이건 동정심이야?”
그럼 결과적으로 내 감정은 대체 뭘까. 나는 아이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게 동정심인가? 그럼 나는 시리우스가 불쌍한 것일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웬일인지 아이작의 표정이 평소보다도 더 굳어져 있었다.
“그건.”
그가 입을 열었다.
“분명, 별거 아닌 감정이야, 로웨나.”
나는 어쩐지 아이작이 화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화날 말을 내가 했던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 가벼운 침묵이 떠돌았다. 아이작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그가 말을 꺼내도록 기다려주었다.
계속 머뭇거리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나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걸 알고 있어.”
나는 그의 어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지. 시리우스 블랙과 네가 이어지는 것을 보느니 오히려 내가 너와 사귀겠다고.”
아이작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난 가끔 너에게 친구로 남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 알아?”
“뭐?”
그게 무슨 의도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나도 모르게 그에게 되물었다. 아이작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꽂혀 있었다. 잔잔한 호수와 같다고 생각했던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달빛에 비쳐서인지 평소보다 더 어둡고 짙게 느껴졌다. 나는 더럭 겁이 났다.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우리가 이대로 영원히,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이 과연 나에게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어.”
“친구가 안 되면, 뭐 어쩌겠다는 거야.”
내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혼란함이 다시 되살아났다. 무엇인가 들으면 안 될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이작이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의 진심 어린 눈과 맞닿자 나는 순간 물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적어도 아이작만큼은 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 마지막 남은 내 방패막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난 절대 안 돼, 아이작.”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기분에 내가 천천히 그에게 대답했다.
“친구 이상의 관계를 나는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아.”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놓고도 아이작과 눈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로 돌아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더는 아이작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도망이라도 치듯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제 호그와트라는 어두운 감옥에 아무런 등불도 없이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겨우 억눌렀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극심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조금 더 나은 상태일 때 아이작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면 나는 한 번 더 고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거기에 아이작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나는 심지어 본인의 마음을 밝힌 그에게 화가 났다. 아이작이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졌다. 나와 그렇게 친한 친구인 양 굴었으면서 속으로 그런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갔다가는 아이작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기숙사에 가는 것은 최악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걸어 호그와트의 정문 쪽에 도착했다. 딱히 목적지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래번클로 기숙사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갑갑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곧, 정문의 동상 옆에서 달빛에 윤곽만 비친 흐린 인영을 발견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애썼다. 이 시간에 호그와트 정문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필치 씨라고 생각했는데, 체구가 달랐다. 나는 그의 윤곽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이 리들 교수임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그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도망가 봤자 금방 잡힐 것을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저음의 목소리로, 리들 교수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는 외출했다가 방금 호그와트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정문 뒤편으로 세스트랄이 이끄는 마차가 호그스미드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대체 이 시간에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순간 의문이 일었지만 내가 궁금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좀 걷고 싶었어요.”
“그냥 걷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딱히 대답을 기다렸던 것 같지는 않았다.
리들 교수는 자연스럽게 오른팔을 들고 회색의 코트를 살짝 걷었다. 그 안으로 검은 셔츠의 소매가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은색의 손목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천문학 수업이 있었겠군.”
“……네.”
“그런데 왜 천문탑이 아닌 여기에 있는 건지 궁금한데.”
확실히 호그와트 정문은 천문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무슨 일인지 탐색이라도 하듯 나를 향했지만, 여전히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별달리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방금 있었던 일들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말하기 싫다는 건가.”
낮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그의 음성에 나는 또다시 긴장했다. 리들 교수가 레질리먼시를 쓸까 봐 두려웠다. 그가 방금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느낌, 그에게 내 모든 것을 통제당하는 그 느낌을 두려워하는 것일 뿐이었다.
리들 교수는 평소와 같은 무심한 눈동자로 나를 훑었다. 분명 그는 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번 낮게 한숨을 내쉰 그가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기숙사로 돌아가.”
내 모든 것을 알아내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별말 없이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경고했을 뿐이었다. 단조롭고 싸한 특유의 목소리로 리들 교수가 덧붙였다.
“래번클로 탑까지 데려다주도록 하지.”
“시, 싫어요.”
나는 순간 그의 말을 거부했다. 혹시 아이작이 래번클로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가 리들 교수와 함께 돌아온 내 모습을 보고 나와 리들 교수 사이의 어떤 관련성을 추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시리우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일이었다. 아이작에게까지 해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걷다가 들어갈게요.”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마 플리트윅 교수님이나, 맥고나걸 교수님이라면 이렇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기숙사로 돌아갔으리라. 리들 교수의 앞에서 왜 이렇게 평소와 다른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은 있는 건가?”
그도 내 태도가 적이 보통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네, 하지만 혼자 가고 싶어요.”
“네가 어디 다른 곳으로 새는지 내가 어떻게 알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럴 리 없잖아요. 저 혼자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어요.”
“난 지금 너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귀가를 강제할 수 있다. 그걸 원하나?”
그렇겠지. 그는 교수니까 충분히 징계를 내릴 만했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교수로서 그는 분명 이에 대한 합당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 의무였다. 그럼에도 그저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경고의 말 한마디만 주고 끝났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나를 향한 배려인지 아닌지 파악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리들 교수가 나를 강제한다는 그 말이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나는 시리우스와 아이작의 일로, 그리고 더욱이 리들 교수의 일로 모든 것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종종걸음만 치는 나 자신이 갑갑하기만 한 상황에서, 리들 교수의 말은 마치 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는 듯 나를 억압하는 태도에 어쩐지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내가 싸하게 대답했다.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리들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바로 제 존재목적이니까요.”
내 말이 조금 격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공격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저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거는 게 어때요? 그러면 이렇게 귀찮게 굴지 않을 텐데요.”
왜 그런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반쯤 비꼬듯 내뱉어놓고도 나는 그가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저주라도 사용할 것 같은 기분에 몸이 오싹해졌다. 내가 방금 정신이 나갔던가.
그의 서늘한 눈길이 나에게 꽂혔다. 시린 달빛이 그의 눈동자 끝에 어려 있었다. 나는 일순 내가 오늘 올려다보았던 밤하늘과 그의 눈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네?”
리들 교수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몰라 나는 바짝 긴장했다. 진짜 임페리우스 저주라도 걸리게 된다면 나는 그대로 그의 말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가 당장에라도 지팡이라도 꺼낼 것 같은 기분에 손이 저절로 허리춤에 향했다. 그러나 리들 교수는 단지 어둡고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대로 선택권을 주도록 하지.”
나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가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기숙사로 돌아가던가.”
그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면 날 따라와.”
나는 고작 그 두 가지에 과연 선택의 여지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반항하다가는 정말로 리들 교수에게 저주라도 맞을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떤 것을 택해야 할까. 그를 따라갈 바에는 이대로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지.
합리적이라는 게 뭔데?
나는 지금까지 나의 경험과 판단능력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것들을 선택해왔고, 무수한 실패를 겪었다. 이제 무엇이 내게 옳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혹시,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이 나에게 가장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 작품 후기 ============================
1.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는 어마무시한 설정실수를 했습니다. 머글은 디멘터를 못 봅니다. 해리포터 위키에서 보고 울 뻔... 두들리가 불사조의 기사단에서 해리와 디멘터에게 쫓겼던 부분 때문에 당연히 머글들도 디멘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지적해주신 마마더스님, 감사합니다.
디멘터가 언급되었던 71회차 부분은 전체 내용이 과하게 달라지지 않는 한에서 수정을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한 번 더 읽으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나면서 저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네 사람의 마음을 한 사람의 시점에서 표현하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특히나 이번 회차는 더욱이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흘러넘쳐서 괴로웠습니다. 저는 전혀 감정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그 중에서도 특히 로웨나는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난해한 인물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로웨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만 15세 가량의 감성과, 이성과, 경험을 가진 아이의 불완전한 판단력을 묘사하는 것은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 독자님중에 열 일곱 소녀분 계신가요? 저에게 조언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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