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69화 (6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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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5 - (3)

나는 그녀의 이름을 언제인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였는지 명확하게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릿속을 더듬고 있는 도중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래, 기억해. 래번클로였지. 셀윈 가에서 나온 첫 래번클로라 사람들이 말이 많았잖아.”

“그녀는 뭐 하고 지내나?”

“기억 안 나?”

키이라가 말했다.

“5학년 땐가 갑자기 자퇴하고 학교를 떠났었는데. 그때 제법 큰 화젯거리였어.”

“리들 교수님과 친한 사람이었나요?”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

“오, 물론. 두 사람 처음에는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4학년 때쯤부터 급격히 친해졌어. 사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지.”

“사귄다구요?”

리들 교수가 어떤 여자와 연인 사이가 되는 것은 쉽사리 떠올리기 힘든 그림이었다. 내가 조금 놀란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응. 항상 어울려 다니곤 했었으니까. 아마 같은 선택과목 수업을 들었던가, 그랬는데 같은 학년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

“리들 교수님이 실제로 사귄 여자도 있었나요?”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일단 리들 교수가 여자와 밀애를 속삭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과 만날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꽤 매력적인 외양을 가졌다 하더라도, 매번 만날 때마다 공포에 질려 있어야 한다면 그게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인 관계라는 것이 서로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의 검은 속내를 알고 있으면서도 만나는 게 가능한가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집적대는 여자는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누군가와 사귀는 걸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주변 여자가 너무 많아서 질리지 않았을까?”

“…리들 교수님의 학창시절을 상상할 수 없어요.”

“지금과 비슷할 거야.”

그녀가 말했다.

“친절하지만, 어느 정도 선을 그을 줄 알고, 철두철미하고, 능력 있고, 매력이 넘치지. 마법사로서의 자질도 뛰어나고 말야.”

“뭔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네요……”

내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더니, 그녀가 재밌는 것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글쎄, 나에게는 쭉 선배였으니까. 아무래도 동경하는 감정 때문에 보정된 부분도 있지 않을까? 리들 선배를 후배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본다면 조금 더 달라질 수 있겠지.”

나는 힐끔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오리온 블랙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이제 백금발의 젊은 남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그는 나시사 블랙과 함께 서 있었는데, 그녀와 매우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키이라는 그 후에도 한참을 리들 교수의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묘사로 형상화된 학창 시절의 리들 교수는 아이작과 비슷한 이미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완벽하고 철두철미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원래부터 어른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만약 리들 교수와 내가 같이 학교에 다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여전히 동경하거나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곧 퍼지 부장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다.

“오, 키이라! 너도 민달팽이 클럽 출신이었는지 몰랐네.”

가까이서 본 퍼지 부장은 제법 호쾌한 인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키이라가 묘사한 개념 없는 상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이라는 언제 그를 욕했느냐는 듯 예의를 갖춰 응대했다.

“퍼지 부장님, 여기서 뵙게 되다니 정말 반가워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서 있던 앤디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퍼지 부장이 다음 주까지 처리해야 할 사건들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라니. 첫인상과 다른 그의 태도를 보며 키이라가 왜 그를 욕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퍼지 부장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 아예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 듯싶었다. 이미 호그와트의 이름 없는 학생이라 낙인찍은 것처럼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키이라에게 무엇인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법부에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사이므로, 나 같은 학생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 아는 체조차 하지 않는 그의 야박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상했다.

“로웨나!”

멀리서 아이작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저보다 체격이 조금 작은 남자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에드가 본즈임을 알아차렸다. 아이작의 머리카락 색깔보다 색조가 조금 어두운 금발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는 아이작과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퍼지 부장의 잔소리 비슷한 연설을 듣고 있는 키이라와 앤디에게 눈짓으로 살짝 인사하고, 아이작의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좋겠지. 나는 아이작의 옆에 서 있는 에드가 본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가 블루로즈구나.”

그가 부드럽고 호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가 아이작의 아버지라는 점을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에드가는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아이작에게 풍기는 냉철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분위기는 분명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똑똑하고, 야무진 학생이라고. 아이작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데.”

아이작의 귀가 조금 빨개졌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를 못 본 척 겸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일 친한 친구니까, 아이작이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오신 줄 몰랐어요.”

그는 이런 식의 대화가 약간 불편한 것 같았다. 아이작이 대화 도중에 끼어들어 에드가 본즈에게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말씀이라도 미리 해주시지.”

에드가는 껄껄거리며 웃더니 대답했다.

“그럴 만하지. 너에게 비밀로 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둘은 정말 사이좋은 부자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그가 가끔 묘사하곤 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부합했기 때문에 나는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에드가는 자신이 재학 중에 가장 친했던 친구들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중 일부는 자신과 같은 오러 일을 하고 있으며, 일부는 마법부의 다른 부서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부러 흥미가 생긴다는 태도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가장하지 않아도 에드가의 이야기는 꽤 재밌었다. 호그와트 때 친했던 친구들과 아직도 어울리다니.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까지 아이작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가 흘러가듯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 블루로즈 양은 졸업하고 뭘 할 텐가?”

에드가 본즈가 던진 말은 사실 아버지가 제 아들의 친구에게 안부 차 건넨 질문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마치 중요한 인터뷰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리들 교수가 생각이 났다. 그는 이 모든 순간을 예상하고 있었겠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내가 에드가의 질문에 대답했다.

“……전 오러가 되고 싶어요.”

아이작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한 번도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가 당황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 성격상 오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작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제 속에 드는 의문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아이작의 표정에 잠깐 일었던 당혹스러움은 금방 지워졌다.

“오, 그래?”

에드가가 꽤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바실리스크를 처리할 정도의 수완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테지.”

“얼마 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프로테고’의 실습이 있었는데, 로웨나가 벌써 완전한 구의 형태로 방어막을 형성하더라고요. 시전 속도도 제법 빨랐고.”

아이작이 끼어들어 나를 칭찬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런 건 아니에요.”

나는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비밀의 방 건 때문에 나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 높은 곳까지 치솟아 있는데, 저렇게까지 하면 어쩐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를 처치해 오라는 임무라도 내게 내려질 것 같았다.

“오러가 되고 싶어서 혼자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내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자, 에드가는 편한 미소를 지었다.

“‘프로테고’는 기초 방어 마법이긴 하지만, 성인 마법사도 완전한 형태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단다. 이번에 신입 오러들을 받았는데, 걔들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워하더구나.”

그가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선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오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졸업하면 같이 일하기를 기대하마.”

뭔가 속에서 이는 죄책감에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나를 믿는다기보다는 자신의 아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제 아들의 친구라면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듯한 따스한 태도에, 마음속에 뭔가 결린 듯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분명 이 순간에는 당당하게 눈을 마주하며 소신에 찬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쉽사리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때 슬러그혼 교수님이 포크로 잔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밤입니다. 민달팽이 클럽 같은 진정한 사교의 장에서 여러분을 다시금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유독 ‘진정한’이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했다. 에드가는 나와 대화를 하다 말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굳은 표정을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잔을 바칩니다.”

모두의 시선이 슬러그혼 교수님에게 향했다. 그의 잔에서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 붉은 와인이 슬러그혼 교수님의 위로 폭죽 모양처럼 터졌다. 낮은 탄성과 함께 사람들이 길게 박수를 쳤다.

“역시 오늘과 같은 민달팽이 클럽의 선, 후배가 만나는 홈커밍의 행사에 빠질 수 없는 것 있죠!”

슬러그혼 교수님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와인잔을 들었다.

“민달팽이 멘토링입니다!”

그의 외침과 함께 그가 든 와인잔이 까만 모자로 변하며 그의 손에 얹어졌다.

“맙소사. 분류모자잖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흥미로워하며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쥐고 있던 분류모자를 뒤집어 쥐고는, 다른 한쪽 손으로 모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렸다. 그의 마법에 따라 공중에서 튀어나온 작은 쪽지들이 쏟아지듯 모자 안에 담겼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학생들은 물론 모든 마녀와 마법사들을 돌며 모자를 내밀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그 모자 안에서 쪽지를 하나씩 꺼냈다. 천천히 홀을 돌던 슬러그혼 교수님의 발길이 마침내 내 앞에 닿았다.

“오, 우리의 래번클로 영웅.”

슬러그혼 교수님이 눈을 한 번 찡긋하고 나를 지나갔다. 나는 분류모자에서 꺼낸 쪽지를 확인했다. ‘버터맥주’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뭐지?

이윽고 모든 사람들을 돈 슬러그혼 교수님이 말했다.

“저는 우연이라는 것에 의지를 거스르는 마법적인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텅 빈 분류모자를 옆에 있던 슬리데린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었던 분류모자는, 학생의 손에 쥐어지자 갑자기 입을 벌리고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슬리데린 학생이 그 자리에서 모자를 떨어뜨렸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이 터졌다.

“여러분의 멘토와 멘티들이 다 모자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분류모자가 오늘 여러분께 우연을 통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마법사 쪽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쪽지가 공중에 떠오르며 적혀 있는 글귀가 선명하게 홀에 띄워졌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글자를 읽었다.

“피투성이 바론!”

“바론 경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야.”

옆에 있던 마법사가 감회에 젖어 말했다.

“아직 슬리데린 기숙사에 살고 있나?”

“살고 있진 않을 거야. 죽은 지 한참 되었을 테니까…….”

옆에 있던 마법사가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는 사이 멀리 있는 곳에서 옅은 불꽃이 살짝 일었다. 멘토나 멘티가 뽑은 종이가 호명되면, 그의 짝이 되는 쪽지가 공중으로 올라가 불꽃이 되어 터지며 위치를 알리는 방식인 것 같았다. ‘피투성이 바론’을 뽑은 사람은 ‘슬리데린 기숙사’을 뽑은 학생의 멘토가 되었다. 바론을 뽑은 마법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슬리데린 기숙사를 뽑은 스네이프에게로 다가갔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꽤 재밌는 시도를 하셨군.”

에드가가 흥미롭다는 듯 한마디 했다. 그는 홈커밍 파티를 두어 번 온 적이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비밀의 방 때문에 모임이 조금 미뤄지긴 했으나, 교수님이 꽤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아이작이 설명했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슬러그혼 교수님보다 6학년 학생들이 고생했을 느낌이 들었지만.

그 후에도 호명은 계속되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와 ‘개구리 초콜릿’, ‘검은 호수’와 ‘대왕 오징어’가 차례로 불렸다. ‘호박 주스’를 뽑은 아이작에게는 ‘당밀 퍼지’를 뽑은 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에드가는 후플푸프의 6학년인 라이언의 멘토가 된 것 같았다.

“호그스미드!”

이를 듣는 순간 나는 저 짝이 나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와 함께 내 손에 있던 쪽지가 공중에 날아가 타오르듯 불꽃을 형성하며 터졌다.

“호그스미드의 멘티 버터맥주가 저기에 있나 보군요.”

슬러그혼 교수님이 덧붙였다.

‘호그스미드’를 뽑은 마법사는 20대 초반 가량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조금 마른 체구에, 볕에 익은 듯 단풍을 연상케 하는 적갈색의 굽실거리는 머리카락이 인상 깊었다. 테가 얇은 안경을 살짝 삐뚜름하게 걸치고, 거기에 어울리는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 마법사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반가워. 로웨나 블루로즈.”

“아, 저를 아시나요?”

“물론. 요즘 심심찮게 예언자 일보에 네 사진이 등장하잖아. 오늘도 너를 주시하고 있었는걸.”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난 엘드레드 워플이라고 해.”

뭐? 나는 그와 엉겁결에 악수하며 멍하게 대답했다.

“…그, ‘뱀파이어와 함께 한 나의 인생’의 저자, 엘드레드 워플이라고요?”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재작년 출판된 ‘뱀파이어와 함께한 나의 인생’은 출간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었다. 나는 심지어 작년에 저 책을 주제로 양피지 20인치 분량의 마법의 역사 과제를 한 적도 있었다.

“정말 그 작가님이란 말이에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작가를 태어나서 처음 봐요.”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작가라는 것은 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자 같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의 저서를 읽으며 이런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을 창조해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 적 있었는데, 그때 내가 생각했던 ‘엘드레드 워플’은 사실 나이가 중후한 할아버지 마법사였지, 이렇게 젊은 모습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지금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여기서 작가님을 만나 뵙게 될 줄이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워플 작가님은 내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트로피 보관실에서, 얼마 전에 본 적 있어요.”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5학년 후플푸프 반장!”

그가 크게 웃었다.

“오, 그게 아직 남아 있어?”

“네. 학년 수석이랑 반장의 기록은 남아있거든요.”

“감회가 새롭다.”

그가 마치 트로피 보관실을 상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1학년 때 거기서 트로피를 어찌나 열심히 닦았었는지…….”

“작가님이요?”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나는 조금 놀랐다.

“응. 매번 금지된 숲에 몰래 가다가 걸려서.”

조금 걸을까? 그가 말했다. 연회장 홀 옆에는 여러 가지 방들이 꾸며져 있었다. 워플 작가님은 그중에서도 금지된 숲을 완벽하게 재현한 방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보폭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금지된 숲에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라 그런지 어렸을 때의 경험담에 불구 한데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홀린 듯이 워플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비밀의 방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스트레스 덩어리였던 호그와트가 그의 입을 통해서 스릴 있고, 모험 넘치며, 신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느낌은 정말 묘했다.

“이야기를 진짜 재밌게 하시네요.”

내가 약간 얼빠져서 중얼거리자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걸로 먹고 사니까.”

“엘드레드 워플 작가님!”

마법사 한 명이 그를 발견한 듯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작가님도 민달팽이 클럽 출신이셨다니!”

그는 다소 호들갑스럽게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순식간에 밀려난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다가온 마법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해 워플 작가에게 뭔가를 떠들어댔다. 그의 최신작이 아주 마음에 든다니, 후원을 하고 싶다니 그런 이야기였다.

“로웨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

그는 자신의 안경을 조금 들어 올리며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워플 작가와 친분이 있는 마법사인 것 같았다. 조금 무례하긴 했지만, 작가가 별말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쉽게 대할 수 없는 인사인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인기 작가는 뭔가 다르긴 하구나. 둘은 따로 할 얘기가 있는 듯, 곧 나를 피해 홀 쪽으로 나갔다.

나는 조심스레 방 주변을 돌았다. 작은 호그와트 컨셉이라니. 높은 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테마의 방이 얽혀 있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나는 금지된 숲을 지나 그 옆의 후플푸프 기숙사의 방으로 걸어갔다.

순간, 누군가 나를 확 잡아채는 느낌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사람은 내 입을 틀어막고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진 벽에 나를 밀쳤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쓸데없는 인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톰 리들 교수였다.

그는 한쪽 손으로 내 입을 막은 채 나와 눈을 마주했다. 방 사이의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리들 교수가 나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이는 공기가 팽팽해지며,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에 나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목덜미 아래로, 그의 창백한 미색 피부와 조화되는 짙은 보랏빛의 넥타이가 보였다.

“고개 들어.”

그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리들 교수의 새까만 눈동자가 옭아매기라도 하듯 나를 가두었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내 몸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내 입을 틀어막은 손을 서서히 내렸다. 그러나 나를 구속하듯 잡아챈 팔목은 쉽사리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 침묵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우리 둘 사이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바깥에서 취한 슬러그혼 교수님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벽을 사이로 두고 한 걸음만 나가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그에게 먹힐 것 같은 강한 위협을 느꼈다. 온 신경이 그에게 닿은 팔에 쏠렸다.

그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다. 차가웠던 눈동자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가 맺혔다.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개인 교습은 여기서 하도록 하지.”

개인 교습? 옅게 숨을 내쉬며 나는 그를 응시했다. 한 손에 지팡이를 꺼내 든 그가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임페리오.”

시야를 감싸는 초록빛 안개와 함께, 나는 순식간에 벽에 밀착된 채로 움직임을 속박당했다. 격렬한 긴장감이 속에서부터 일었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내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가 흐린 눈동자로 나직하게 물었다.

“그동안 연습은 많이 했나?”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임페리우스가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누군가 밧줄로 내 몸을 단단하게 동여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뭍가에 내던져진 물고기라도 되는 것처럼, 내 숨소리가 빨라졌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리들 교수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가 나에게 키스라도 하는 줄 알고 살짝 겁에 질렸다. 그러나 리들 교수는 고개를 조금 비틀어 내 얼굴 오른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숨결이 옅게 내 귓등에 닿았다. 그 상태에서 그가 조용하게 말했다.

“최선을 다해,”

귓가에 느껴지는 자극에 내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여기서 벗어나 봐.”

몸이 떨려왔지만,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설령 그가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저릿한 미열감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두려움 같기도 하고, 불안감 같기도 한, 무엇인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나를 꽉 죄듯 지배했다.

가까스로 숨을 내쉬며, 나는 그의 저주에 저항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임페리우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리들 교수는 이미 가르쳐준 바 있었다. 그러나 그가 했던 말들이 표류하듯 머릿속을 휘저을 뿐 무엇하나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너무 가까웠고, 알 수 없는 열기가 흘렀다. 모든 것이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만 잔뜩 흐트러졌다.

“이걸, 견뎌낼 수 없단 말이지.”

천천히 올라온 손이 내 목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들뜬 열감이 일었다. 분명 부드러운 손길이었음에도, 그가 나를 거칠고 집요하게 파고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어두웠던 그의 눈이 점점 더 혼탁해졌다. 언젠가 보았던 익숙한 눈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내리뜬 채로 잘게 몸을 떨었다. 목에서 올라오던 그의 손길이 그대로 내 볼에 닿았다. 감싸듯 내 볼을 쥔 그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작 이 정도라면.”

거의 키스라도 할 거리에서, 리들 교수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넌 절대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다가온 그에게서 뜨거운 숨결이 흘렀다. 머릿속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나에게 닿을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tnals2590님, @chococake님, 두분 질문이 같아서 함께 답변 드립니다. 맞추셨습니다! 에밀리 셀윈은 8회차인가에서 등장했던 리들의 수석행진을 막아낸 그 분이 맞습니닼ㅋㅋㅋㅋ 하지만 이 마녀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소설 내용에 드러난 이상으로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듯 싶네용:)

@한유주님, 쪽지로 답변 드렸습니다 :-)

+ 내일 업로드를 할 수 있을지 확실을 드릴 수 없네여. 아마 내일 안 되면 월요일 쯤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튼 내일까지는 왠만하면 업로드 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코멘트를 통해 다시 재공지드리도록 할게여!

>>로웨나는 모르는 숨은 설정<<

1. 리들은 와인을 좋아하면서 싫어합니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즐겁지만, 그가 유일하게 약한 것이 알콜이거든요. 술을 마신다고 해서 만취상태로 헤롱헤롱 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감정적으로 절제가 안 됩니다.

2. 에밀리 셀윈, 키이라 벨, 엘드레드 워플은 제 소설에서 이전에 한 번씩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엘드레드 워플은 실제로 원작에서도 슬러그혼 클럽의 회원입니다:)

3. 김아흔이(가) 임페리우스 저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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