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66화 (66/115)

0066 / 0115 ----------------------------------------------

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9)

멀리서도 시리우스는 단번에 로웨나를 알아볼 수 있었다.

복도 반대편 창가에 곧은 자세로 선 그녀는 하염없이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에 그녀의 밤색 머리카락이 천천히 흩날렸다. 창을 통해 흐른 달무리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갈색 눈동자에는 어떤 것에 대한 선연한 그리움이 어려 있었다. 저렇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조용히 제 열망을 지웠다.

바로 근처까지 다가갔으나, 로웨나는 자신의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한 것 같았다.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돌아다니다니. 그녀가 가끔 두려운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많이 무모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녀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시리우스는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시리우스?”

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로웨나의 은은한 갈빛 눈동자에 반가움의 기색이 돌았다. 마음 깊은 곳에 잔뜩 억제한 감정이 다시 비집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어쩐지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눈을 내리깔았다.

시리우스의 눈치라도 보는 듯 그를 빤히 살펴보던 로웨나가 천천히 대답했다.

“블랙을 찾고 있었어요.”

시리우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럼, 지금 자신을 찾아다니느라고 이렇게 밤늦게 기숙사를 나왔단 말인가.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무서울 것이 없나 보네, 이 시간에.”

시리우스는 화가 났다. 블랙을 찾는답시고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습격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이 그녀를 위험하게 한 것 같아서 그는 더욱이 분이 일었다. 그깟 개가 뭐라고. 화를 내고 싶으면서도, 로웨나가 저를 그리워하고 전전긍긍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그러고는 또, 그녀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시리우스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애니마구스라는 사실에 다시금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그간 애써 유지해왔던 감정이 다시금 폭풍처럼 이는 것을 느꼈다.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평정을 유지하며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혼자 돌아다니지 마.”

제 속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요즘 호그와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을 텐데.”

로웨나는 교칙을 잘 지킬 것 같이 생겨서는 뜻밖에 불량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이렇게 밤에 몰래 돌아다니기도 하고, 징계를 받기도 하고. 그녀는 자신의 속을 애태우는 것에 어떤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시리우스, 어. 저.”

로웨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몰라도 그렇게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무엇인가 내뱉어낼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였다. 시리우스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음…”

“말해.”

머뭇거리며 망설이던 로웨나가 고개를 들어 시리우스와 눈을 마주했다.

“……날 더 이상 보기 싫은 건가요?”

그 말에서 느껴지는 친밀감에, 시리우스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억지로 참았던 감정들이 폭발할 것 같아 시리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로웨나는 처연하고 애처로운 눈길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가 많이 났어요?”

자신의 감정을 신경 써 주기라도 할 듯 그녀가 시리우스의 얼굴을 살폈다. 닫아 놓았던 빗장이 풀리며 시리우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건넨 심려어린 한마디 말은 시리우스에게는 달콤한 덫과 같았다. 접근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홀린 듯 다가가게 되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겠죠.”

예전처럼, 이라. 그는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던 자기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곧 깨달았다. 충동적으로 했던 제 고백이 그녀에게 짐이 될 수 있겠구나. 내가 마음을 드러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겠지.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바람과 회한은 시리우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심장에 납덩이가 매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리우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싫고 부담스러웠던가.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시리우스를 바라보던 로웨나가 말을 이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해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이 사이가 불편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시리우스는 누군가 자신을 심해저의 바다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 희망이라도 줄 것처럼 말했으나 그녀의 결론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도와주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그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는 매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명료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어떠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는 로웨나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갑갑해지는 느낌에 시리우스는 한 손으로 교복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날 어떻게 도와줄 건데?”

그간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듯 그를 잠식했다. 시리우스의 눈이 서서히 깊어졌다. 이제 자신이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다. 이게, 화인지, 분노인지, 열망인지. 아니면 시리우스가 예전에 그렇게 치부했듯, 밤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그는 충동적으로 로웨나의 팔목을 움켜쥐고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당기듯 끌어안았다. 그간 그토록 갈망하던 그녀가 그의 품속에 있었다.

“왜 그래요, 시리우스?”

놀란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귓가에 울렸다.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품 안에 로웨나를 가둔 채 그가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를 받아주기라도 할 건가?”

제 맥박은 가만히 있어도 울림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자신이 무수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부드럽고 포근해서, 그는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제 가슴에 맞닿는 느낌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가까이 올 때마다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던 그녀의 살 내음이 더 짙어졌다.

시리우스는 로웨나를 감싼 자신의 팔을 꽉 잡고 절대 떨어지지 않을 듯 그녀에게 바짝 붙었다. 그녀를 껴안은 채로 입술을 거칠게 물고 싶었다. 내 것인 양 모두에게 천명하며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둬두고 혼자만 보고 싶었다. 그간 꾹 참고, 숨겨두고, 내리눌렀던 온갖 욕구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헤매었다.

순간, 자신의 품속에 안긴 로웨나에게서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몸이 굳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가지고 있는 저급한 욕망을, 로웨나에게 투영하겠다고? 과연 네가 그럴 수 있을까?

설령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제게 희망이 있을 것마냥 고문하고, 자신을 배신하고, 이용하고, 악담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 얘를 이용하지 못한다.

시리우스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로웨나를 옭아매던 팔을 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품에 안고 나를 받아달라고 빌기라도 하고 싶었다. 저에게 매달리던 여자들처럼, 그저 애정을 표현하는 것만이라도 받아 달라며 무릎을 꿇고 싶었다.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알았다. 아무리 제 욕심을 채우고 싶다 하더라도 그것은 로웨나에게 할 짓이 못 되었다. 이 여리고 착한 아이는 이해조차 하지 못할 그의 감정에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댈 것이 분명했다. 로웨나는 고작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했었다.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바로 앞에 그녀가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손조차 댈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로웨나의 애달픈 눈망울과 마주했다. 그녀에게 상처라도 준 듯한 죄책감이 절로 올라왔다. 그는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내면에 숨긴 것들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얼른 기숙사로 돌아가.”

그의 속에 이는 열기와 다르게, 시리우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개를 살짝 숙여 그에게 인사한 로웨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그에게서 멀어졌다. 시리우스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를 쫓아가 뒤에서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자신이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혼자 보내는 것이 어쩐지 불안해졌다. 그동안 습격이라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애니마구스로 변한 시리우스는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게 조용히 뒤를 쫓았다.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대신, 로웨나는 호그와트 밖으로 나갔다. 통금시간이 다가오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 시리우스는 곧 그녀가 호숫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슴이 아팠다. 호숫가 근처에서, 그녀는 저의 애니마구스인 블랙을 찾고 있었다.

절대 패드풋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가 제 마음을 접기로 마음먹은 이상, 로웨나 또한 이제 자신이 없는 생활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시리우스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가 애니마구스 블랙을 보고 행복해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은 이제 시리우스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는 이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로웨나가 온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정처 없이 그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시리우스는 자신의 다짐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저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때처럼 힘들어하겠지. 그녀가 그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 몇 번 망설인 끝에, 그는 로웨나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도 로웨나는 블랙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울음이라도 터뜨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웨나가 너무 슬퍼 보였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슬픈 건 자신이었다. 로웨나는 칼같이 자신을 거부했고, 시리우스는 혼자 그것을 감내해야 했다.

“이리 와, 블랙.”

로웨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시리우스는 가만히 서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두려웠던 까닭이었다. 고작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그간 굳건히 쌓아두었던 절제의 둑이 터지며 모든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더는 그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 좀 안아줄래?”

그녀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살짝 다가와 무릎을 꿇은 그녀는 시리우스의 목 주변을 손으로 두르고 그를 안았다. 오랫동안 바깥에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너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어.”

그녀가 시리우스의 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리우스는 그녀가 부연하지 않아도 그것이 저를 칭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비밀을 숨기고 있지.”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그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것 때문에 나는 그와 이대로 영영 멀어질지도 몰라.”

시리우스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로웨나는 더 이상 블랙을 바라보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듯, 그녀의 시선이 먼 호숫가에 닿았다.

“……나는 그게 너무 슬퍼.”

그녀에게 말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대체 자신에게 감추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된 후는? 설령 감추어 있던 것을 안다고 해서, 그녀가 시리우스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 * *

시리우스의 일상은 로웨나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왔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그는 친구들과 호그와트 지도를 만드는 일에 이전보다 더 열중했다. 밤중에 호그와트를 돌아다니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올해에는 O.W.L도 있었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함인지 교수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과제를 내주었다. 바쁘게 하루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로웨나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가끔 그는 대연회장에서 그녀를 살펴보곤 했다.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로 본즈는 로웨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가 성에 차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옆에서 로웨나의 안전을 확인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날도 정규 수업을 마친 시리우스는 마루더즈 맵의 제작을 위해 3층 근처를 돌고 있었다. 3층의 대략적인 도면 정도까지는 나왔지만, 아직 복도 구석진 부분까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서관 근처 북측 탑의 완성을 맡기로 했기 때문에 같은 곳을 몇 번씩 돌면서 정확한 위치와 거리를 측정했다.

그때, 복도 구석 쪽에서 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시리우스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싸움 났나 보네. 주문을 외치는 목소리에 강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려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목소리가 뭔가 익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버테 스타툼!”

무심하게 조금 걸어 들어간 시리우스는 아이작 본즈를 발견했다. 아, 본즈의 목소리로군. 복도에서 공격마법을 쓰다니, 웬일이래? 시리우스는 그가 마법을 시전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마법을 맞아 공중으로 튀어 나가는 애버리와 뮬시버를 보았다.

그리고, 교복 셔츠가 반쯤 벗겨진 채로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로웨나의 모습도.

“좋은 말 할 때 꺼져, 개새끼들아.”

시리우스는 누군가에게 쇠망치라도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에 눈만 깜빡였다. 로웨나가 왜, 저런 상태인 거지? 마치 모든 사고 능력이 휘발된 것처럼 그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본즈가 지팡이를 부러뜨려 버리자, 로웨나 근처에서 튕겨 나간 애버리와 뮬시버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그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차갑게 몸이 식으며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시리우스는 당장에라도 지팡이를 들어 그들에게 저주마법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튀어나오려는 지팡이를 거두고, 대신 그는 주먹만을 꽉 쥐었다.

지금 내가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로웨나에게 좋은 기억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그녀에게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가 나서서 저 치들에게 저주를 쏟아 부으며 응징한다 하더라도, 시리우스에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켰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 절망하게 할뿐이었다. 시리우스는 벌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본즈가 로웨나를 달래주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몸을 가늘게 떨면서도 울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시리우스는 심장 어딘가가 턱 막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타까움, 미안함, 분함, 후회, 여러 가지 감정이 휩쓸려 나와 그를 삼켰다. 마음이 아팠다. 당장에라도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안아주며, 그녀는 절대 그럴 만한 대접을 받을 만한 여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훨씬 가치 있고, 훨씬 소중히 대해주어야 할 사람이었다.

본즈의 위로 속에서 그녀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그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복도 가 쪽으로 걸어가며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개새끼들이, 로웨나를 저렇게 만들었다…….

시리우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안타까움에 가려져 있던 격렬한 분개감이 다시금 끓어올랐다. 씨발 새끼들.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지팡이를 든 채로 그들이 도망친 복도를 걸었다. 시리우스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은회안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만난다면 당한 것의 몇 배로 복수해주겠다는 싸한 분노가 타올랐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리우스는 뛰다시피 제 걸음의 속력을 높였다. 곧 멀리서 시리우스는, 절뚝거리며 걷는 애버리와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중얼대는 뮬시버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아, 본즈가 조금만 더 늦게 왔었으면…….”

애버리는 아쉽다는 듯 혀를 할짝댔다. 뮬시버가 낄낄대며 위안하듯 말했다.

“끝까지 갔으면 더 큰 일 났을 수도 있어.”

“어차피 걔 말 못해. 소문나서 좋을 게 뭐 있겠냐.”

그들의 대화를 듣자 시리우스는 들끓어 오르는 격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두 사람의 뒤에서 겨누었다.

“시스템 아페리오.”

지팡이에서 솟아오른 흰 빛이 그들의 등에 닿자마자 타격음을 내며 터졌다. 뒤에서 뭔가 받은 것처럼 그들은 앞으로 급하게 밀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두 사람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그들에게 시리우스는 연이어 연쇄 주문을 날렸다.

“인카서러스.”

무엇인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지팡이 끝에서 튀어나온 밧줄이 바닥을 구르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묶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그의 앞에 다가갔다.

“개새끼들아. 왜 그랬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애버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게슴츠레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젠장…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블랙?”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매우 기초적인 마법이었지만, 묶인 채로 허공에 뜬 그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지팡이를 조금 휘둘러 그는 그들의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 상태로 시리우스는 복도 바닥을 향해 변형 마법을 걸었다. 동굴 속의 석순처럼 뾰족한 기둥이 튀어 올라왔다. 바닥에 칼을 박아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기둥이 그들을 위협하듯 빛났다. 두 사람 모두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 실수로 시리우스가 부양마법을 해제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저 날 선 기둥에 얼굴을 처박히게 될 것이다.

시리우스가 그들을 응시하며 물었다.

“이래도 모르는 척할 생각인가 보지.”

그들은 잠시 눈치를 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시리우스가 이렇게 화난 이유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여전히 두 사람에게서 대답이 없자,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조금 휘둘렀다. 공중에 떠 있던 그들이 아래에 있던 받침대가 사라진 것처럼 급격하게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시리우스는 부양 마법을 제어해 가장 날카로운 기둥 바로 위에서 하강을 멈추었다. 뮬시버의 표정이 더 창백해졌다.

“레, 레귤러스가.”

뮬시버가 황급하게 말했다.

“레귤러스가 시킨 거야.”

“거짓말하지 마.”

시리우스는 진심으로 공중 부양마법을 해제하고 싶어졌다. 이 미친 새끼들이 팔 게 없어서 내 동생을 파는 건가.

“진짜야. 레귤러스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애버리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블랙 가에서 다 책임져 준다고 했어!”

시리우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레귤러스가 그렇게 말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줏대가 없고 가끔 유약해 보기긴 해도 제 동생은 그렇게 나쁜 성정을 가지진 않았다. 그가 순수혈통주의자로서 머글 출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시리우스는 그렇다고 해서 레귤러스가 그런 몰지각한 일을 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책임져 준다고 하는 말에 대뜸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이해해줘야 한단 말인가. 이해?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애초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제 죄를 인정하고 뉘우침의 말이라도 하길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애버리를 족제비로 변신시켰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변신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시리우스는 거침이 없었다. 그가 지팡이를 조금 휘두르자, 마치 누군가가 쥐고 흔드는 것처럼 족제비로 변한 애버리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천장과 바닥에 번갈아 가며 부딪혔다. 그가 공포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족제비의 모습이라 그런지 목구멍에서는 새된 목소리가 겨우 기어 나올 뿐이었다.

이를 보던 뮬시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시리우스 블랙은 미쳤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그는 진짜 자신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흐릿한 시리우스의 은회색 눈동자가 저에게 닿았다. 본능적으로 뮬시버가 뒤로 물러섰다. 그는 순간 시리우스의 눈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급격하게 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레라시오.”

그의 지팡이에서 튀어나온 불꽃이 뮬시버를 향했다. 뜨거운 것이 몸에 닿는 고통을 느끼며 그가 비명을 질렀다. 시리우스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가 고통을 느끼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꽃이 사그라지자, 뮬시버가 시리우스 앞에서 덜덜 떨면서 쉰 목소리로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 했어……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 용서해줘…….”

그는 뮬시버의 애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어떤 마법을 쓸까. 어떤 저주를 사용해야 저들을 제대로 응징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들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알고 있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시리우스의 지팡이가 공중을 날았다. 날아온 그의 지팡이를 쥔 그리핀도르 7학년 반장 아네스 폴리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그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옆에 있던 그리핀도르 6학년 알렌 반필드는 얼빠진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리우스 블랙 너… 미쳤어?”

그는 그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지팡이를 빼앗겼다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아직 대가를 다 치르지 않았다. 겁에 질린 채 그를 바라보는 뮬시버에게 달려든 시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야, 야, 얘 왜 이래?”

옆에 서 있던 알렌이 깜짝 놀라 시리우스를 뜯어말렸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그에게 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안경을 한 번 들어 올린 아네스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며 외쳤다.

“인카서러스!”

그녀의 지팡이에서 튀어나온 매듭이 단번에 시리우스의 몸을 포박했다.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자, 그가 힘으로 밧줄을 풀어버리기라도 할 듯 몸을 비틀었다. 경고라도 하듯, 시리우스가 으르렁대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것 풀어, 아네스.”

시리우스가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풀지 않으면 호그와트 전체를 폭파시키기라도 할 듯 형형한 기운이 그에게서 흘렀다. 흥분한 그의 주변에 의지 마법으로 형성된 불꽃이 일었다.

“절대 안 돼.”

아네스는 조금 놀랐다. 그리핀도르 5학년 시리우스 블랙이 실전 마법에 꽤 능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그가 의지 마법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시리우스 블랙은 지금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그의 주변에 떠오르는 불꽃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녀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척 봐도 애버리나 뮬시버에게 그가 구사한 마법이 장난으로라도 학생들이 시전할 수 없는 강력한 저주마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기절한 애버리와 놀란 나머지 덜덜 떨고 있는 뮬시버에게 방어마법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블랙이라면 진짜 둘을 죽여 버릴지 몰랐다.

“시리우스 블랙. 네가 지금 한 짓을 알고 있긴 해?”

피투성이가 된 채 반쯤 늘어진 애버리와 소변을 지린 듯한 뮬시버를 바라보며 아네스가 중얼거렸다.

“이, 이건 진짜…… 징계 정도로 끝날 일이 아냐.”

* * *

복도 바깥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리우스는 그 걸음 소리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눈을 내리깔고 빈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문가를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자신의 동생 레귤러스 블랙이었다.

시리우스는 1층에 있는 작은 방에서 교수들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레귤러스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은 시리우스였다. 그가 벌인 사태는 꽤 심각했고, 교수들의 회의는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레귤러스는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인사말 한마디도 없이, 시리우스가 그에게 먼저 말했다.

“왜 그랬어.”

레귤러스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그러나 시리우스는 책망의 기색도 없이 무표정하게 동생과 눈을 마주했다.

처음에 레귤러스는, 발뺌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시린 눈길을 마주하자, 레귤러스는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참 머뭇거리던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정신을 못 차리는 잡종에게 제대로 된 주의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라고 한 건 아냐. 그냥, 그냥 겁을 주는 정도로만…….”

레귤러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난,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어.”

“네가 생각 없이 시킨 장난 때문에, 여자애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었어.”

시리우스가 느리게 말을 이었다.

“넌 거기에 어떤 책임을 질 건데?”

레귤러스는 그들에게 적당히 로웨나에게 위협을 주라고 말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겁을 주고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라고. 그녀를 희롱하거나, 그녀에게 저주마법을 사용할 것 정도는 예상했지만, 레귤러스가 원한 것은 결코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겁을 먹은 로웨나는 시리우스에게 알아서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고, 이는 저만 아는 비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지 마.”

레귤러스는 애원하듯 시리우스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잡…… 머글 여자애 때문에 형과 이렇게 싸우고 싶지 않아.”

“넌 아직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는구나.”

“형.”

시리우스는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레귤러스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잡종과 덜컥 결혼이라도 하면 절대 집안에 다시 들어오지 못해. 우리는 영영 헤어질 거고 더는 아는 척도 못 하게 될 거야.”

시리우스는 자신을 닮아 탁하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를 가만히 직시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은 제 동생을 아꼈다. 연년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자주 싸우지도 않았다. 제가 멋대로 군다 하더라도 착한 동생은 시리우스를 인정해주었다. 어디서든 삐뚜름하게 행동하는 그가 유일하게 동생에게만 친절했던 것은, 아마도, 제가 동생을 특별나게 좋아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제 동생이 동생답지 않은 의젓함과 다정한 태도로 그를 감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레귤러스는, 그때와 달랐다.

“그 집에 있을 때 항상 느껴왔던 기분이야.”

그는 레귤러스의 넥타이를 바라보았다. 초록색과 은색이 교차되어 있는 제 가치관의 상징을.

시리우스는 불현듯, 레귤러스와 자신이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워낙 자연스럽고 연속적이었던 것이라 그간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이제 성인에 버금갈 만큼 키가 컸고, 머리가 굳었다. 그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엇갈림을 낳았는지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어릴 때의 감성으로 대화를 나눠왔던 것이다.

“근본적인 사고 체계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너와 나는.”

제 동생과 자신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미 예전부터 그래 왔는데도 시리우스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이를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부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뭐든지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범주의 것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절대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넌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

어떤 길이 옳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 알게 된다는 장담조차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시리우스는 제 동생이 했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귤러스와 눈을 마주하며, 시리우스가 차갑게 내뱉었다.

“나는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영원히.”

* * *

시리우스가 독방에 혼자 갇혀 지내기 시작한 지도 이틀이 지났다.

돌벽으로 이루어진 방은 겨울의 기운을 받아 차갑고 서늘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던 시리우스는 시선을 둘 데가 없어서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치형의 천장에는 옅은 어둠이 감돌고 있었다. 천장 끝에 시선을 둔 채 그는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맥고나걸 교수의 거듭된 질문에도 시리우스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그는 제가 한 행동에 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뮬시버와 애버리가 무엇인가 입을 열려고 하면 그는 매서운 눈길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애초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도 좋을 리 없었다. 계속 묵비권만 행사하는 그에게, 교수진들은 근 몇 년간 호그와트에서 내려진 가장 강한 징계를 내렸다.

감금 징계를 받기 직전, 레귤러스는 그가 가문에서 퇴출당했음을 알렸다. 폭력 사태를 계기로 그의 아버지는 완전히 부자의 연을 끊었다. 시리우스는 가계도에서 지워졌고, 그는 무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독방에 가둬졌다.

차가운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시리우스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의 높은 곳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바깥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창가를 통해 자욱하게 달빛이 쏟아졌다. 흐린 빛줄기를 바라보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레귤러스에게 로웨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좀 더 단호하게 말했다면 그는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 방에서 몇십 번이고 그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자신의 대처는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 제 탓인 것만 같았다. 당시에는 로웨나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쯤이야 혼자 힘으로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저는 아무것도 몰랐고, 로웨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시리우스는 가슴이 너무 아프고 손이 떨렸다. 마치 제가 그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엄밀하게 말해서 시리우스 자신의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던 로웨나가 결국 그렇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저에게 원인이 있었다. 나 자신도 책임지지 못할 감정으로 그녀를 제 영역에 끌어들였다. 그녀는 시리우스 자신 때문에 알렉토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애버리와 뮬시버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심지어 그녀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로웨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때문에 어떤 아픔을 겪어야 했는가.

그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무능하다고 느꼈다. 허울 좋은 블랙이라는 가문이 없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는가. 감금 징계나 받는 그리핀도르 꼴통에 불과했다…….

앞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시리우스는 흐린 눈빛으로 독방의 검은 돌벽을 응시했다. 어둠이 드리워진 벽에는 균일하지 않게 마모된 석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는 로웨나와 더 가까워졌을 때 발생할 일들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반쯤 연을 끊은 레귤러스가 그녀를 더 괴롭힐지도 몰랐다. 시리우스의 생각 없는 폭력에 분을 참지 못한 로시에르가 그녀에게 보복을 가할지도 모르지. 자신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블랙 가는 어떨까. 그들의 품위에 손상을 주었다는 이유로 로웨나의 앞길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나는 감히, 그 애를 좋아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제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왜 호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뭐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로웨나를 좋아하는 감정 자체가 옳지 않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그리고 이제 어떻게 끝내야 하나. 여전히 앞은 알 수 없었고, 그는 절망했다.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The End.

============================ 작품 후기 ============================

>> 읽어도 읽지 않아도 될 시리우스 외전에 관한 썰 <<

시리우스 외전이 길었던 이유는 이 아이의 감정이 변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외전 1화 시작할 때부터 독자님들이 이런 저의 의도를 캐치해주시는 코멘트를 남겨주셔서 너무 행복했답니다.

그리고 본편 상 보여주지 못한 사건 전개를 바탕으로 앞으로 팟5의 진행에 있어서의 개연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외전이 없다면 앞으로의 흐름이 조금 뜬금없이 느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시리우스 시점의 외전을 팟5 전에 배치했습니다.

외전을 자세히 읽어보신 분들이면 알겠지만 로웨나 블루로즈 속의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인물은 멋있는 남자 주인공처럼 마냥 순수하고 착한 애는 아닙니다. 나름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면모도 있고, 성적인 욕망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완전하지요.

저는 그래서 제 소설 속의 시리우스가 좋습니다. 코멘트들을 보면 대부분 리들의 성격을 분석하시곤 하고, 그리고 저는 리들이나 로웨나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저에게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표현에 애를 먹으면서도 관심이 가게 되는 아이는 시리우스인 것 같아요.

제가 시리우스라는 인물에 기대하는 것은 멋있는 남자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소 완전하지 못하고,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이지요. 그리고 이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이 불완전함을 극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얘가 소설 중에서 가장 성격 변화도 극심하고,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생각해보니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은 리들만큼은 아니겠군요!) 여기까지 따라오신 분들은 아마도 제 의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우스가 마냥 백마탄 왕자는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 나이대 스러운 청소년의 정서를 표현한답시고 이 인물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감을 와장창! 깨뜨렸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짜 독자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시리우스라는 인물이 사실 그냥 멋있는 애로 남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멋있는 남자주인공은 제 소설에 말고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로웨나 블루로즈에서는 우리 모지랭이 멍멍이를 귀엽게 봐주시고 아껴주세요!

내일까지 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 끝났네요.

이틀 쉬고 본편은 오는 수요일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

@체릿님, @백이현님, @한유주님 코멘창에서의 질문에 대해 답변 쪽지 드렸습니다. 확인해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