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65화 (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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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8)

한참을 앓던 로웨나는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잠에 깼다. 그녀가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자, 시리우스는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왔다. 대체 얜 어딜 가려고 하는 거야. 더 쉬어야 한다는 듯 그녀의 옷깃을 잡고 놔주지 않는 시리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로웨나가 차분하게 말했다.

“징계, 받으러 가야 해.”

징계? 대체 로웨나 같은 애가 징계를 받을 일이 뭐가 있다고? 시리우스는 순간 궁금증이 일었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더없이 성실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시리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웨나는 그대로 방을 떠났다.

시리우스는 결코 방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만한 성격이 되지는 못했다. 그는 패드풋의 모습을 한 채 그녀의 뒤를 쫓았다. 폼프리 부인의 병동에 잠깐 들린 그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리들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톰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징계를 받는다고? 방으로 들어가는 로웨나의 뒷모습을 시선에 담으며 시리우스는 의문에 휩싸였다.

그는 어제 로웨나가 잠결에 했던 말을 기억했다. 밤새 그녀에게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잠깐 잊고 있었지만, 분명히 로웨나는 리들 교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 꿈이 이 징계와 관련된 것일까. 왜 로웨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굳이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 갔으며, 왜 그녀는 리들 교수를 두려워하는가. 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는 고요한 침묵만이 자리 잡은 리들 교수의 연구실 입구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판단했다. 보통의 청소 징계쯤은 금방 마치고 나왔을 시간보다도 더 오래. 그러나 굳건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로웨나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지난밤 내비쳤던 공포의 감정이 선연히 드러났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계속 주변을 돌다가, 결국 시리우스의 본모습으로 변신했다.

시리우스는 열리지 않는 문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결심한 듯,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 * *

방문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제임스가 문가에 서 있는 시리우스를 발견했다. 외박을 하겠다고 말했던 그가 기숙사에 돌아온 것은 근 하루만이었다. 제임스는 반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시리우스, 뭐 하고 온……”

“미안한 데.”

시리우스는 제임스의 말을 차갑게 끊었다. 한쪽 신발을 벗느라 고개를 숙인 그는 심지어 제임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 오늘 상태가 좀 안 좋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신발을 대충 치워두고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시리우스의 가시 돋친 말에 제임스는 입을 꾹 다물고 옆에 서 있던 피터의 눈치를 보았다. 왜 저런지 이유를 아느냐는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임스를 마주 보던 피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는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뿐더러, 밤새 로웨나를 간호한다고 잠도 자지 못한 상태였다.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벗고 샤워부스 안에 들어간 시리우스는 우선 물부터 틀었다. 욕실 샤워기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건조한 시리우스의 머리카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조금 냉기가 도는 욕실에 희뿌연 연기가 일었다. 그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했지만 저조해진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로웨나가 리들 교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리들 교수를 진심으로 마음에 둘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로웨나가 리들 교수에게 무엇인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했었다. 어제 그녀가 꿈을 꾸면서 내뱉은 목소리에는 그를 향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결코 동경하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제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었다. 지나치게 동경하는 마음이 강해, 리들 교수가 그녀를 괴롭히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시리우스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지금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를 표현하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엿 같은 기분이었지만 누군가를 욕할 수도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골든 스니치마냥 상공을 날아다니던 마음이, 오늘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그린고트의 금고에까지 처박힌 것 같았다.

톰 리들 교수가 로웨나를 연구실에 재우다니.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연구실에 누군가를 재울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해열효과가 있는 마법약을 먹이거나, 병동으로 보내거나, 혹은 플리트윅 교수에게 일임해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왜 저의 방에서 재웠을까. 적어도 로웨나는, 그에게 있어, 보통의 제자와는 다르게 취급될지도 모른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조금씩 더 거세지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톰 리들 교수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단지 분했던 감정이 점점 파악할 수 없는 질투와 화로 변질되었다. 시리우스는 연구실 앞에 찾아간 저를 마치 철부지라도 보는 것처럼 냉랭하게 응시하던 리들 교수의 시선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를 진짜 화나게 만드는 것은 리들 교수가 자신을 가소롭게 평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의 시선이 치졸하다면, 자신이 저보다 나은 사람임을 입증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리들 교수와의 압도적인 능력 차를 좁힐 수 없을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이, 시리우스를 화나게 했다.

만약 로웨나가 리들 교수가 아니라 리무스나, 본즈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시리우스는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피식 한 번 웃고,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들 교수는 달랐다. 시리우스는 그가 속에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는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속 깊은 곳의 열등한 감정을 건드리는 자였다.

시리우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을 타고 내려간 더운 물줄기가 손바닥을 적셨다.

* * *

“변신술에는 항상 특출 나시다던 패드풋 씨.”

리무스가 맥고나걸 교수의 눈치를 보며 시리우스에게 속삭였다.

“수업에도 좀 특출나게 집중하면 안 될까?”

리무스는 슬슬 맥고나걸 교수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길이 거듭 시리우스를 향했다. 옆에 앉은 리무스는 곤욕스러울 지경이었다. 평소 시리우스의 수업태도가 그렇게 모범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맥고나걸 교수의 변신술 수업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들었다. 그러나 오늘 시리우스는 수업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리무스가 그에게 수업 태도를 지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왠지 가책이 일어 시리우스는 자세를 바로잡고 맥고나걸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애니마구스 마법에 관한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괜히 깃펜을 놀리면서 시리우스는 맥고나걸 교수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 척했다. 그러다가도 또, 제 애니마구스인 패드풋이 떠오르면서, 로웨나가 반사적으로 연상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녀의 얼굴이 어느 순간 다시 떠올랐다.

연휴가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아직도 제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웨나가 리들 교수를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로부터, 시리우스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그녀에 대한 마음은 접어야 하는 걸까.

시리우스는 지금껏 좋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끈질기게 자신에게 들러붙는 여자들을 여럿 겪어보았다. 그리고 상대방은 절대 받아줄 수 없는 그 일방적인 애정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느껴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로웨나에게 그녀들과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로웨나는 이미 자신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 상태에서 무작정 그의 마음을 들이미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라도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가도 대체 로웨나는 리들 교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의 조각같이 수려한 외모에 매료된 것일까. 일순, 그녀가 알렉토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날, 로웨나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시리우스의 얼굴이 제 취향이 아니라고 단언했었다. 그땐 생각 없이 흘러들었던 말들이 지금 와서 왜 이렇게 확실히 기억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들 잘생겼다고 칭찬을 하면 뭘 하나. 좋아하는 애가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데.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갈아엎고 싶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이 흘렀다. 로웨나가 리들 교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한때의 동경에 불과한 것 아닐까. 시리우스는 그녀의 마음을 어릴 때의 풋사랑 정도로 해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지금의 감정이 무엇보다 진심으로 느껴지겠지. 로웨나는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를 캐고 다니는 것에 뚜렷한 반감을 보이지 않았던가. 마치 그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가 숨겨 놓은 내면의 실상을 이미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럼 애니마구스의 잘못된 변신사례에 관해 양피지 5인치 분량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세요.”

새로운 과제와 함께 맥고나걸 교수의 변신술 수업이 끝났다. 시리우스는 맥고나걸 교수가 언급한 과제를 양피지 위에 대충 흘려 적었다. 책을 챙기며 시리우스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살피던 피터가 그의 눈치를 보았다. 제임스가 슬쩍 고갯짓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쟤 계속 저래?’ 제임스의 물음에 리무스는 천천히 고개를 휘저었다.

사실 연휴 동안 마루더즈들은 시리우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시리우스가 없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은, 로웨나와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쑥덕거렸었다. 제임스는 제법 호기롭게, 외박한 것과 로웨나가 뭔가 관련이 되어 있을 거라고 의견을 냈다. 사실 시리우스의 상태가 이상해졌던 것이 그날 이후였으므로 그의 말은 제법 일 리가 있었다. 외박이라는 표현에서 묘한 성적 긴장감이 흐르자, 피터는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어린 애랑? 피터는 그간 시리우스와 어울렸던 여자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세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시리우스는 저보다 어린 여자와 만난 적은 없었다.

그들은 호기심 넘치는 호그와트의 장난꾸러기이긴 했지만, 제 친구의 내밀한 방황을 모른 척하고 지나갈 만큼의 배려심은 갖추고 있었다. 지금껏 그의 여자관계가 그래 왔듯, 시리우스의 선에서 스스로 해결이 된다면 언젠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마루더즈는 시리우스의 그런 상태를 그저 내버려두었다. 대신 그들은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소모적인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작년에 애니마구스 연습하다가 내 머리에 사슴뿔만 났던 거 기억해? 그걸 잘못된 변신사례로 적으면 어떨까?”

“잘못된 변신사례가 맞는 거야? 너 솔직히 뿔이라도 있는 모습이 더 나았어.”

이윽고 기숙사에 거의 도착하자, 제임스가 시리우스의 팔을 치며 물었다.

“패드풋, 저기 네 동생 아냐?”

시리우스는 제임스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동생 레귤러스가 그리핀도르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홍색 넥타이 무리의 물결 속에서 초록색의 넥타이를 맨 그의 동생은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시리우스를 발견한 듯, 레귤러스는 천천히 걸어 그에게 다가왔다.

제 친구들을 먼저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시리우스가 레귤러스와 보폭을 맞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잘 보냈어?”

고작 2주 만인데 그 새 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시리우스는 괜히 레귤러스의 키를 가늠해보며 웃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는 레귤러스와 시리우스가 처음으로 따로 보낸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항상 크리스마스 연휴는 가족들과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언제나와 같았지. 새해에 크리쳐가 로스트 치킨을 또 푸짐하게 준비했다가 어머니한테 혼났어.”

“이번 해에도 흑설탕 푸딩이 식탁에 올랐고?”

시리우스의 말에 레귤러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가의 집요정인 크리쳐는 기념일이 되면 습관적으로 흑설탕 푸딩을 만들곤 했다. 시리우스의 어머니 발부르가 블랙은 단맛이 강한 그 흑설탕 푸딩을 싫어했는데, 크리쳐는 하지 말라고 미리 귀띔해 두지 않으면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어코 푸딩을 준비해 그녀의 성질을 돋우곤 했다. 모든 일에 지나치게 그들의 눈치를 보며 처리하는 크리쳐가 흑설탕 푸딩만큼은 마치 그것이 저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들어대는 것은 제법 희극적인 재미가 있었다. 시리우스는 식탁 위에서 흑설탕 푸딩을 발견할 때마다 블랙 여사가 보라는 듯이 크리쳐에게 크게 박수를 쳐주곤 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블랙가에 대한 집요정의 소소한 반항같이 느껴졌다.

“크리쳐도, 어머니도, 그대로야.”

레귤러스는 새해 첫날의 일상과도 같은 아침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버지는 학교생활에 관해 물었고, 어머니는 정략결혼에 대해 말을 꺼내셨지. 시리우스는 왜인지 모르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가문을 떠날 것이라 확고하게 마음먹었다 할지라도, 그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새해 이야기를 한참 하던 레귤러스는 무엇인가 다른 말을 꺼내려는 기색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는 쉽사리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어려운 듯 레귤러스가 입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았다. 시리우스는 그가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고 싶은 말을 해, 레그.”

시리우스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말해주지 않으면 자신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이.

둘은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얼마 있지 않아, 레귤러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엊그제 아버지가 순수혈통 파티에서 형이 블루로즈와 파트너로 호그와트 파티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셨어, 형.”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글 출신의 파트너가 되어주다니, 그건 정말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어.”

“현명?”

레귤러스의 단어 선택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레귤러스는 수습하듯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단 말이야. 당장에라도 호그와트에 달려오고 싶어 하셨어.”

호울러라도 보내시려는 걸 겨우 말렸다고. 레귤러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시리우스는 그가 호울러를 보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레귤러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시리우스가 그의 어깨를 몇 번 쳐주었다.

“형, 정말 마지막이야…… 그냥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아버지랑 관계 회복해.”

“난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 레그.”

시리우스가 차분하게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 중요한 건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 아냐.”

“그럼 뭔데?”

“나는 내 신념을 유지할 거고, 거기에 번복은 없다는 거지.”

시리우스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레귤러스. 아버지에게 똑똑히 전해. 아버지와 나는 다른 생각을 가졌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한 가문을 이루며 공존할 수는 없어. 나는 바뀌지 않을 거고,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버지가 바뀌는 거야.”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시리우스는 단호하게 레귤러스를 타일렀다.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문제를 소모적으로 다투었다. 그는 동생과 이 문제로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았다.

* * *

“이건 그저 나를 타겟으로 한 거 같은데.”

“오, 아니야. 스니벨루스. 단지 시험용 폭탄을 던지려 하는데, 스니벨루스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했을 뿐이야.”

시리우스는 무심하게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신난 것처럼 스네이프를 괴롭히고 있었다. 예전에야 그를 따라 스네이프를 골려주는 것에 동참하곤 했으나, 요즘 와서는 그런 식의 장난에 꽤 시들해진 참이었다. 스네이프는 장난을 친다고 해서 강하게 반응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제임스와 어울려 다니며 몇 번 그에게 저주마법을 날려대었으나, 그럴 때마다 무덤덤하게 그들을 한 번 노려보고 마는 그의 태도에 조금 질린 상태였다.

“그만 좀 해, 포터. 유치하게 굴지 좀 마.”

짜증 섞인 릴리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녀는 스네이프 앞으로 나서 그를 향한 제임스의 조롱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두 사람 사이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파트너로 참석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적대의 감정이 흘렀다.

파티 때만 해도 꽤 친근하게 굴었던 릴리는 연휴 후, 제임스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깔끔하게 그를 무시했다. 그녀를 아무리 괴롭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제임스는 그 타겟을 그녀와 가장 친한 스네이프로 바꾸었다.

“오, 실례했군요. 미세스 스네이프.”

제임스가 연극조로 말했다.

“아드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시느라 고생하십니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맞춰 시리우스도 피식 웃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다가, 그는 조금 먼 곳에 본즈와 서 있는 로웨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마치 흑백 사진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새파란 장미꽃 같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많은 사람 중에서도 로웨나에게만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를 시리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스스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는 아직 로웨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최근 그녀는, 여전히 뭔가를 찾는 것처럼 학교를 헤매고 다녔다. 시리우스는 대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호그와트 지도를 만든다는 이유로 교내를 돌던 시리우스는 가끔 멀리서 로웨나를 발견하곤 했는데, 그녀는 호그와트 벽의 재질이라도 조사할 기세로 하나하나 엄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가끔 벽면 근처에서 잠금 해제마법을 걸어보기도 했다.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떠난 후에 확인해 보면, 보통 기호나 문양이 새겨진 곳이 태반이었다.

뭔가 연구라도 하는 걸까. 래번클로인 그녀가 가진 탐구욕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로웨나의 태도가 다소 의무적이었다. 벽을 훑다가도 가끔 그녀는 하기 싫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 로웨나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흥미와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얼마 전 패드풋의 모습으로 로웨나와 마주쳤던 순간을 기억했다.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던 그녀는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 숨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학교를 헤매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었고, 리들 교수와 연관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짙게 서리가 낀 유리창처럼, 그 속의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윤곽으로만 희미하게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으로 정확한 그림을 맞춰 보려고 시도했으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진실과는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자, 세브.”

릴리가 제임스를 표독스럽게 한번 노려보고는, 스네이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던 로웨나의 눈길이 시리우스를 향했다. 엉겁결에 인사하는 그녀에게 시리우스는 태연하게 손을 한 번 흔들어주었다. 마치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적 기류도 흐르지 않는다는 듯이.

* * *

그가 지금까지 로웨나에 대해 생각한 것만 모두 기록한다면 양피지 100인치도 모자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 고민하는 것은 시리우스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당장에 자리에서 일어나 로웨나에게 달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이 더 어울렸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그녀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연회장이나 복도 같은 곳에서 로웨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면, 그만큼 마음이 더 깊어진 것 같아 어쩔 줄 몰랐다. 시리우스는 이제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 가끔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쓰고 그녀의 뒤를 쫓은 적도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 곧 그만두었지만.

투명망토를 걸치고 복도를 헤매던 시리우스가 멀리 2층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로웨나와 리들 교수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면서도 필연적이었다. 만약 그녀가 금방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시리우스는 여자 화장실이든 아니든 따라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에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대체 리들 교수와 무엇을 했느냐고 따져 물을 뻔했다. 대체 왜 그를 데리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었느냐고.

하지만 그렇게 캐물으면 로웨나는 리들 교수에 관해 궁금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낼지도 몰랐다. 혹은 마치 제가 항상 그녀를 감시하고만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고 생각하니 절로 숨이 막혔다. 그럼에도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캐물어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모조리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로웨나에게 제 마음을 꺼낸 것은 충동적이었다. 그는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제 감정이 그렇게 튀어나올 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지도.

시리우스는 제 상태가 꽤 담담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로웨나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거절하려면 오히려 그녀가 여지도 없이 뚝 잘라 말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리들 교수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 흐르던 애잔한 어조를 애써 기억에 새겨두었다. 로웨나는 리들 교수에게 마음을 주었고, 거기에 내가 비집어 들어갈 공간은 없다. 세뇌라도 하듯, 그는 하루 종일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에 앉아있던 시리우스는 교실 단상 앞의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유려한 태도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일반적인 방어마법에 대해 4학년 때 이미 다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주주문에는 이에 대항하는 반저주 주문이 따르고, 어떤 경우에는 반저주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방어마법을 시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죠.”

그는 리들 교수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로웨나는 이 목소리에 반한 것일까. 자신도 이런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면 쳐다봐줄까.

“그러므로 저주를 무효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저주에 대항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없느냐는 시리우스의 질문에, 로웨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리들 교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변하지 않는다고. 시리우스의 은회안이 점점 더 깊게 가라앉았다.

“반저주에 관해 간단하게 시범을 보이도록 하죠. 저에게, 저주 마법을 걸어볼 학생이 혹시 있습니까?”

리들 교수는 자원자를 뽑기라도 하듯 학생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던 시리우스는 손을 들었다.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리들 교수의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리우스는 제 눈에 이는 굳이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연구실에서 그랬듯이, 시리우스는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리들 교수를 빤히 응시했다. 천히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린 리들 교수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를 지목했다.

“좋습니다, 블랙 군. 앞으로 나오세요.”

시리우스의 공격적인 저의를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리들 교수는 수업에 적극 참여한 학생을 독려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친절하게 시리우스를 단상에 불렀다. 시리우스는 다소 거추장스러운 망토를 벗고, 쥐고 있던 넥타이를 책상 위에 던져둔 채 지팡이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기에 옆에 앉아 있던 리무스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시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단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블랙 군이 저에게 저주를 사용할 겁니다.”

시리우스가 단상 앞에 서자, 리들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저주에 맞는 반저주를 시전해보도록 하죠. 알고 있는 저주 아무것이나 저에게 사용해보세요.”

그는 학생들에게서 몸을 돌려 시리우스와 마주했다. 리들 교수는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게 지팡이를 꺼냈다. 눈살을 찌푸린 채 시리우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저주마법의 강도와 범위까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마치 제가 어떤 마법을 쓰든 시리우스 정도의 풋내기 마법사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듯이.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바로 쥔 채 가만히 생각했다. 리들 교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특히나 공격 마법은 시리우스도 꽤 자신이 있었다. 주문이 길지 않아 시전 속도가 빠르면서도, 강력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마법이 몇 가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빠르게 외쳤다.

“디스투르바티오!”

“옵스탄티아.”

시리우스의 지팡이 끝에서 일순 튀어나올 듯 번쩍이던 빛이 채 터져 오르기도 전에 사그라졌다. 시리우스는 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순간 시리우스는 자신이 주문을 끝까지 외우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곧 알아차렸다. 마법은, 제대로 발현되었다.

단지 리들 교수에 의해 단숨에 무효화 되었을 뿐.

리들 교수는 마법 주문을 듣기도 전에 시리우스가 어떤 공격 마법을 사용할지 예측하고 방어했다. 놀라우리만치 빠른 반사작용이었고, 강력한 반저주 마법이었다.

시리우스는 마법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감이 좋았고, 제법 영민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한 번 맞대는 것만으로도 알았다. 리들 교수는 저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제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을 덤벼들더라도 절대 리들 교수에게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믐달 밤의 호수와 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리들 교수의 어두운 눈이 잠깐 시리우스에게 닿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시리우스는, 그가 저에게 일종의 경고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경고를.

서서히 자신의 지팡이를 내리며,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지팡이의 휘두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생들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령 지팡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보통 폭발하거나 터지는 종류의 마법에 사용되는 공격 주문이지요. 또한, 오른쪽 위에서 지팡이를 올리는 경우는 몸에 이상을 주는 마법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능숙한 오러들은 이러한 자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직접 체현하며 설명을 하던 리들 교수가 자신의 지팡이를 품에 갈무리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 가지 저주 마법도 미리 공부해야 하며, 미리 시전해봐야,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지 방향성을 예측하게 될 수 있는 겁니다.”

리들이 그를 바라보며 평소와 같은 어조로 차분하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블랙 군. 내려가 봐도 좋습니다.”

* * *

그녀가 리들 교수와 함께 향했던 2층 여자 화장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둘이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양한 가능성과 상상이 엉겨 돌았다. 시리우스는 아예 추측하는 것을 관두었다. 이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그는 벽을 발로 차고, 저주를 쏟아 붓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폭력적인 충동만 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보름이 아니면 패드풋으로 변신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또다시 블랙으로 변했을 때 로웨나와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그녀가 패드풋으로서의 자신에게 환하게 웃어주면 이 감정이 더 무거워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매 보름마다, 리무스와 함께 하기 위해 변신을 해야 하는 날이면, 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로웨나가 떠오르곤 했다.

시리우스는 다시 마루더즈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놀기 시작했다. 그런 래번클로 여자애 따위. 그는 이제 로웨나를 마주치면 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지나갈 수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감정에만 푹 빠져있었고, 이제 조금 지친 상태였다. 이 정도면 그만해도 좋을 것 같았다.

로웨나를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리들 교수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가끔 수업 중에 그와 눈이 마주칠 때에는 다시금 분기가 타오르곤 했으나, 그는 모르는 척 자제했다. 리들 교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관두었다. 그가 나의 적이든 아니든,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 * *

얼마 후, 굳은 채로 발견된 노리스 부인과 함께 비밀의 방이 열렸다는 소문이 호그와트에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은 로웨나였다.

호그와트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간의 갈등은 더 깊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핀도르 학생들 전체가 머글 출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머글 출신을 회피하는 그리핀도르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도 감정적 골이 생겼다.

제임스는 어느 때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슬리데린을 향한 그의 공격은 더 짓궂어졌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슬리데린에 강한 적의를 보이는 제임스의 태도는 눈에 띌 만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그가 그러는 동안에도 굳이 제임스를 옹호하며 나서지는 않았다. 친머글주의적 사상을 수호할수록, 로웨나를 향한 제 감정을 더 키워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되도록 그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릇 깨끗한 환경이 중요한 법이야.” 식사를 하는 시리우스의 귀에 슬리데린 테이블에 앉은 에반 로시에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더 이상 호그와트에서 잡종들이 기어 다니는 일은 없겠지. 정화된 환경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하군.”

속에서부터 무엇인가 끓어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간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시리우스가 주먹을 사용한 것은 충동적이었다.

* * *

혼란스러운 호그와트의 상황과는 별개로, 그의 집안은 더욱이 그를 조여 오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입을 꾹 다물고 제 동생이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로시에르 씨가 그리몰드까지 난입해서 난리 쳤대. 형이 에반에게 머글식 폭력을 가한 것에 대한 소문이 파다해.”

반쯤 분노를 담은 레귤러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블루로즈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

“…걔 때문이 아냐, 레그.”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녀의 이름에 시리우스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형, 왜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 거야? 형이 원하는 길이 어떤 건진 알고 있어.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입을 다물고 하라는 대로 따르다가 형이 가문을 물려받고 나서 바꾸면 되잖아.”

시리우스는 레귤러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리들 교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 큰 대의를 위해서는 본심을 숨기라고. 그렇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그 과정에서 아무리 부도덕한 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레귤러스.”

그는 이제 조금 피곤했다. 그의 동생이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것도.

“형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되는 게 싫어.”

레귤러스는 이제 반쯤 화를 내고 있었다. 그의 어조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그에게 단호하게 대할 의지조차 없었다.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고, 시리우스는 지쳐갔다.

“이대로 떠나면, 정말 우리는 영영 모른 척하고 지낼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은 거야?”

“나는, 진심이 아님에도, 가문의 신념이 옳은 것처럼 그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시리우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가문을 떠난다는 말은 너와 연을 끊겠다는 것이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시리우스의 말에 레귤러스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흥분을 가라앉히듯 그가 숨을 크게 쉬었다. 입술을 깨물며, 레귤러스가 말했다.

“난, 아버지를 따르게 될 거니까.”

시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제 아버지인 오리온 블랙이, 이제 레귤러스에게도 저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인가. 동생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레귤러스는 이미 그의 아버지가 죽음을 먹는 자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레귤러스는 이를 받아들인 걸까.

긴 침묵이 흘렀다. 시리우스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정신병원 같은 집에서 어서 나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왜인지 리들 교수의 말이 제 머릿속에 울렸다. 너의 정의를 증명할 수 있나?

시리우스는 무엇인가 말할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 작품 후기 ============================

1. 지금까지 리들 교수가 수업 중에 언급한 기교적 부분들은 다 원작에는 없는 설정들입니다. 인물 특성상 가르치는 부분들이 많은데 포터모어나 위키에는 DADA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나오는 것이 없네여..

2. 시리 외전은 월요일 내에 끝납니다. 예정했던 8회차보다 초과되어 9회 혹은 10회로 완성될 것 같아요. 외전 타이틀의 경우 마지막 회차 업로드 후 24시간 내에 올라오는 코멘트까지 받도록 할게요 :)

3. 리들 외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말씀드리는 것이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말을 아꼈습니다. 리들 외전은 있습니다. 제가 항상 후기에 말씀드린다는것을 당일 업로드 할때쯤 되면 퇴고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었어요. 혹시 궁금한 사항 중 꼭 답변이 듣고 싶으신 질문들은 @달고 물어봐주시면 다음 회차에 즉답드립니다 ㅎㅎ

4. 그리고 이제야 인정하는 것인지만 로웨나 생일은 리들과 같은 날 맞습니다 :-) 본편 진행 당시에도 코멘트로 말이 많았지만 김리들은 모른 척 했긔.. 사실 지금도 모른 척 하고 싶지만 여러분들이 하도 궁금해하셔서ㅋ_ㅋ..

+ 다음 업데이트는.. 저도 예상 못합니다! 늦어도 월요일이 되는 00시 전에는 업데이트 될 것 같지만, 변동 있을시 코멘트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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