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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7)
시리우스는 그 후에도 짧지만 인상이 강렬했던 리들 교수와의 대화를 가끔 떠올리곤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로웨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뭔가 단서를 따라 추측해보려고 해도, 그를 생각하면 속을 알 수 없는 희뿌연 안개 같은 느낌만 들 뿐이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어떤 쪽이든 평범한 호그와트 교수는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새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전 중에 징계를 모두 끝낸 시리우스는 로웨나와 만나 래번클로 탑을 향했다. 그가 래번클로 기숙사를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숙사는 시리우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래번클로 탑 꼭대기에 있었다. 휴게실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는 전경이 꽤 괜찮긴 했지만, 그는 그래도 그리핀도르 기숙사가 호그와트에서는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녀는 시리우스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조금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로웨나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사실, 로웨나가 방문을 연 순간부터 시야에 뭔가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그마치 좋아하는 여자애의 방에 들어온 것이다. 반쯤 굳은 채 자신이 머물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내 그는 상아색 러그 위에 가만히 섰다. 그녀는 부산히 청소하고 있었지만, 사실 방은 청소할 만큼 그렇게 너저분하지는 않았다. 마루더즈 네 명이 쓰는 기숙사 방을 보게 된다면 로웨나는 네 사람에게 엿가락 다리 저주라도 걸어놓고 저 혼자 청소를 다 할지도 모르겠다고,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청소를 끝낸 그녀가 그 자리에서 망토와 스웨터를 벗었다. 로웨나가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 모습에 시리우스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한 방에 있다는 현실감이 와 닿았다. 로웨나는 안에 두꺼운 티를 하나 더 입고 있었는데도, 시리우스는 괜히 부끄러워져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벗은 옷을 정리한 로웨나가 천천히 시리우스에게 다가와 러그 앞쪽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자연스레 그와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너 리무스가 목욕은 제때 시키니?”
그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웬 목욕? 나에게 냄새라도 나나? 시리우스는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황급히 저의 몸의 체취를 확인했다. 별다른 이상한 냄새가 느껴지지는 않는데.
“같이 목욕할래?”
로웨나의 말에 시리우스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이 심심찮게 던졌던 어떤 유혹적인 말들보다도, 저렇게 순진하고 기대 가득한 눈망울로 물어보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자극적으로 들렸다. 만약 그가 시리우스의 모습이었다면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빨개졌으리라. 심지어 말도 더듬었을지도 모른다. 밀려 오르는 부끄러움에 그는 자신이 패드풋의 모습을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
시리우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녀를 외면했다. 모른 척 따라가고 싶은 욕구를 열심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그의 내면에서 일고 있는 무수한 폭풍을, 그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이 하자, 응?”
그는 아예 그 자리에서 엎드려버렸다. 이번에는 그렇게 호락호락 로웨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시리우스는, 그녀와 목욕을 하다가 저가 변신이라도 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자신의 충동을 자제했다. 그런데 그게 최악일까. 그는 제 속에 이는 망상조차 어떻게 할 수 없어 속으로만 끙끙댔다.
시리우스의 강력한 의사표명 덕분인지, 로웨나는 몇 번 조르다가 곧 관두었다. 조금 화난 듯 샤워실에 들어가 버렸지만, 시리우스는 이것만큼 다행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 참았다, 시리우스 블랙. 그는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바탕 폭풍우라도 지난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며, 시리우스는 러그 위에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제 조금 방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세 개의 침대 중 시리우스는 로웨나의 침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익숙한 외투가 걸려 있는 침대는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듯 장식 하나 없이 깔끔하고 단순했다. 마법사 밴드나 퀴디치 선수의 브로마이드가 걸려있는 다른 침대와는 달랐다. 재미없는 성격하고는. 그는 중얼거리며 괜히 로웨나의 침대를 한번 살폈다. 여기에서 항상 그녀가 잠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애완동물용 골든 스니치라니. 제가 생각해도 자신의 꼴이 우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 로웨나의 개라도 되는 것처럼 스니치를 잡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 계속 지쳐 보이던 그녀가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팔짝팔짝 뛰는 것을 보고서, 시리우스는 무심한 태도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 부메랑을 한 번 물어오면 그녀는 좋아 죽겠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곤 했는데, 시리우스는 누군가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그렇게 포근한 기분인지 처음 알았다.
자신과 있을 때도 이 만큼 즐거워하면 얼마나 좋을까. 시리우스는, 블랙과 있을 때 그녀의 행동이 시리우스로서의 자신과 있을 때와는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좋아하는 것에 그렇게 강한 기쁨을 드러낼 줄 아는 애다. 나와 있을 때에도, 나를 생각할 때에도 그렇게 행복해하면 좋을 텐데.
그 사람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거지. 왜인지 몰라도 불현듯 리무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로웨나는 샤워를 끝낸 것 같았다. 샤워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블랙! 뭐해?”
그를 호명하는 로웨나의 목소리에 시리우스는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제 눈을 의심했다. 갓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는 허벅지 위를 살짝 가리는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서 있었다. 심지어 물기조차 제대로 닦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곧은 종아리와 새하얀 허벅지가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탓에 가슴을 비롯한 몸매의 굴곡이 티셔츠 위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시리우스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자극적인 모습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 계속 반복되었다. 시리우스는 기어 올라오는 나약한 욕구와 그를 억누르는 책망 같은 죄악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는 알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로웨나를 잡고 자신의 품에 껴안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노골적인 욕망에 깜짝 놀라 스스로 내리눌렀다. 그녀를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괴롭히고 싶은, 그런 이상한 심리가 시리우스의 마음속에 공존했다. 로웨나의 여린 모습을 볼 때면 그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호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로웨나를 꽁꽁 묶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을 상상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시리우스는 제 속에서 극명하게 대립하는 두 감정의 긴장에 속으로 끙끙댔다.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놀아줄 테니까.”
금방 옷장 쪽으로 걸어 들어간 로웨나는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는 다가오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로웨나는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고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시선이 향할 때마다 방금 전 보았던 노골적인 몸의 굴곡이 자꾸 상상이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로웨나를 향한 부도덕한 갈망 때문에 그녀에게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다는 죄악감에 휩싸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웨나는 해맑게 웃으며 시리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방에 왔다고 부끄러워하는 거야?”
차라리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낫지. 자신이 조금 전까지 했던 망상을 로웨나가 알아챌 것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애니마구스가 그녀와 이렇게 친해지면 어떻게 될까. 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애는 그 애니마구스와 같이 목욕이라도 하며 즐거워할지 모르지…… 시리우스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경계심을 가지길 바랐다.
“오늘이 내 생일이야.”
뭐? 지나가다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녀는 생일 케이크와 함께 여러 가지 물건들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깜짝 놀랐다. 오늘이 생일이라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야속하기도 했다. 나에게 왜 말을 해주지 않은 거지. 장난스럽게라도 말해줬으면 분명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아니, 선물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을 모아 생일 파티도 해줄 수 있었다. 분명 그의 친구들이 준비한 것이라면 그렇게 호락호락한 파티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집에서는 머글 식으로 파티를 하거든.”
그녀는 머글 풍선을 불며 시리우스에게 자신의 매년 집에서 열렸던 소소한 생일 파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로웨나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는 마음이 조금 심란했다. 그럼 오늘 그녀는 혼자서 생일을 보냈단 말인가.
풍선을 다 분 로웨나는 시리우스의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달았다.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에 시리우스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막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머리에 리본을 매어놓고 로웨나는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서 계속 킥킥댔다. 그녀가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 것은 자신이었지만, 로웨나가 어쩐지 그를 바보 같은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이 싫어 시리우스는 괜히 컹, 하고 낮게 짖었다. 그녀는 퉁명스러운 시리우스의 반응에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웃음을 터뜨리던 로웨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 귀여워 죽겠어.”
마치 껴안기라도하듯 시리우스에게 다가온 로웨나가 볼을 부볐다. 시리우스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집요하게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너무 가까웠다. 장난스러운 로웨나의 태도와는 달리, 그녀의 몸에서는 유혹적인 살결의 내음이 났다.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시리우스는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로웨나는 자신을 피하는 그에게 엉겨 붙는 것을 꽤 재밌게 여기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그 모습이 제임스를 연상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에게 달라붙는 것은, 제임스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으면서, 또 한편 괴롭기도 했다.
꽤 오랫동안 시리우스에게 볼을 비비며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로웨나는 조금 추운지 옷장에서 담요를 챙겨왔다.
“너도 두를래?”
로웨나가 내민 담요를 보고 시리우스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맙소사, 저 병아리색 담요를 두르라고 주는 건가? 시리우스는 색상조차도 저와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모양의 담요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덮으면 더 추워질 것 같은데. 그러나 로웨나는 억지로 시리우스의 몸에 이를 덮고는, 또 귀엽다고 볼을 비벼댔다. 시리우스는 더 이상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말랑하고 매끈한 볼이 닿는 느낌이 좋았다.
한참을 시리우스에게 붙어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앞에 놓인 케잌을 그녀와 시리우스가 있는 쪽으로 조금 당겼다. 로웨나가 초를 케잌에 꽂자, 초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휘둘러 방 안의 등을 모두 꺼버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생일 축하라도 시작하는 건가. 시리우스는 고개를 들어 초의 불빛을 받아 어스름하게 빛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살폈다. 로웨나는 가만히 초에만 시선을 꽂고 있을 뿐이었다.
“생일 축하해, 로웨나.”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지 않고 조용히 그녀가 중얼거렸다. 로웨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바람을 불어 촛불을 껐다. 불꽃이 터지며 공중에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새겨졌다. 사실 생일 파티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멋진 파티를 만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시리우스는 진심이었다.
불꽃이 꺼지고 어둠이 조용히 방 안을 잠식하자, 시리우스는 마음이 아파졌다. 생일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누구보다도 더 크게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듣지 못한 사람들의 축하인사만큼, 몇십 번이고 그는 축하 말을 건네줄 수 있었다.
“너라도 없었으면 오늘 정말 우울했을 거야.”
시리우스는 그녀의 가라앉은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로웨나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띄우고 싶었다. 우울해 하며 보내기에 그녀의 생일날이 너무 아깝지 않던가. 머리를 굴리던 시리우스의 시선에 생일 케이크의 하얀 크림이 들어왔다.
충동적으로, 그는 로웨나의 볼에 생크림을 묻혔다. 다리를 팔로 감싸고 멍하게 앉아 있던 그녀가 제 볼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라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두 눈을 깜빡이던 로웨나가 이윽고 상황을 판단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시리우스의 마음이 더 안정되는 것 같았다. 로웨나가 평소와는 다른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짓궂게 시리우스에게 되물었다.
“해보자는 거야?”
그녀는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시리우스의 코에 크림을 묻혔다. 이것 봐라? 그는 어쩐지 호승심이 생겨 생크림이 묻지 않은 그녀의 반대편 볼에 크림을 머금은 혀를 가져다 댔다. 로웨나는 잽싸게 그를 피했으나, 그러는 동안 뒤로 살짝 넘어졌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간 시리우스는 반쯤 누운 로웨나의 몸 위에 올라탔다.
“꺅, 하지 마!”
위에서 로웨나를 내려다보니, 순간이나마 평소보다도 더 그녀를 괴롭히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일었다. 그녀가 손을 들고 방어라도 하듯 얼굴을 가렸지만, 그가 더 빨랐다. 시리우스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로웨나의 볼에 크림을 묻혔다. 그게 그렇게 우스운지 그녀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 상태에서 팔을 뻗어 그의 털에 생크림을 끈적하게 묻혔다. 시리우스는 로웨나에게서 떨어지려고 바둥댔지만, 그녀는 시리우스를 껴안다시피 한 상태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온몸을 생크림으로 범벅한 채로, 그는 오랫동안 그녀와 놀아주었다. 로웨나의 기분을 풀기 위한 장난이었지만, 이제 그는 저가 로웨나와 놀아주는 것인지, 로웨나가 자신과 놀아주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알았다. 그녀와는 어떤 것을 하든 재밌고 좋았다.
자정 넘게까지 그와 뒹굴던 그녀는 결국 크림을 대충 씻어내고 피곤한 듯 침대에 일찍 누웠다.
“얼른 이리로 와.”
침대로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시리우스는 조금 당황했다. 그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침대 위에 개를 함께 재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으레 주인이 침대에서 잠이 들면, 충직한 개들은 그 아래에 엎드려 편안하게 자지 않던가.
“나 오늘 조금 피곤해. 얼른 와줘.”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를 부르는 로웨나의 목소리가 왜인지 낯설었다. 시리우스는 가끔 그녀가 저렇게 말할 때마다 패드풋이 아닌 시리우스로서의 자신을 부른다는 착각이 일곤 했다. 그는 애원조로 조르는 그녀의 요청을 무시하지 못했다. 천천히 침대로 다가간 시리우스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옆에 누웠다.
로웨나는 자연스럽게 시리우스를 제 품에 안았다. 다시금 그는 몸이 굳었다.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에서와는 또 달랐다. 지금은 그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상태였다. 좋아하는 여자와 한 침대에 누워있다. 이를 인지할 때마다 그는 몸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로웨나는 금방 잠들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그녀의 낮은 숨소리가 고요하게 흘렀다.
그는 로웨나가 풋내난다고 생각했었다. 로웨나와 무엇인가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시리우스가 지금껏 만나왔던 여자들과의 밀도 높은 감정이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그녀들에게 느꼈던 것이야말로, 지금 이것에 비하면 풋내 나는 정도에 불과했다. 제가 로웨나에게 끌린다는 것을 인정한 순간부터 그의 감정은, 마치 거친 급류에 휩쓸리듯, 빠르게 깊이를 더해갔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혹여 로웨나가 깰까 봐 그녀의 품속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처음에 저를 덮쳤던 긴장감은 이제 조금씩 편안한 감각이 되어갔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싫어요, 교수님.”
시리우스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그는 그렇게 깊게 잠들지는 않은 상태였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 옆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 리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로웨나를 살폈다. 그녀는 온 얼굴이 식은땀으로 젖어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로웨나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발 그러지 마요.”
가는 목소리로 로웨나가 애원했다. 그녀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잠을 깨울 요량으로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패드풋의 모습을 한 그가 아무리 그녀를 밀어내어도 로웨나는 쉽사리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리들 교수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제발…….”
리들? 톰 리들 교수? 그는 그녀에게서 나오는 의외의 이름에 놀랐다. 꿈을 꾸는 듯 조금 울먹이며 애처롭게 사정하던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단지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는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시리우스는 그녀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로웨나, 일어나.”
시리우스가 그녀의 몸을 흔들며 귓가에 속삭였다. 로웨나. 그는 그녀의 의식을 각성시킬 요량으로 몇 번이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꿈이야. 괜찮아.”
게슴츠레 그녀가 눈을 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웨나가 자신의 팔목을 잡았다. 뜨겁다. 그는, 그녀가 열이 끓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서워.”
로웨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어 줘…….”
그 모습이 평소보다도 더 약하고 안타까워서 시리우스는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를 도닥이며 나쁜 꿈이었노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그 대신, 침대 끝에 앉은 시리우스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며 그녀에게 단언하듯 말했다.
“아무 일 없어. 괜찮아.”
그는 그녀에게 세뇌라도 할 듯 꿈이라고 거듭 말해주었다. 비몽사몽 간에 눈물을 쏟아내던 그녀는 다시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
로웨나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서는 어떻게 했더라. 자리에서 일어난 시리우스는, 혹여 방에 해열의 기능을 하는 마법약이라도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병동에 가면 폼프리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호그와트에서 방에 상비약을 준비해둘 리 없었다. 그는 곧 약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로웨나의 상태를 호전시킬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체온을 낮추려면 걸치고 있는 두꺼운 옷을 벗겨야겠지. 그는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걷어내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로웨나를 일으켰다. 눈을 반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힘들다며 중얼거렸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치고, 시리우스는 그녀의 웃옷을 억지로 벗겨냈다. 시리우스는 그녀의 속옷을 보지 않으려 곤욕을 치렀다. 그녀는 안에 끈나시 하나만 입고 있었다. 얘는 환자야.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또 어떻게 하더라. 그는 화장실에서 얇은 수건을 가져와 로웨나의 지팡이로 찬물을 묻혔다. 어찌 되었든 열을 식히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로웨나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은 그는 그녀의 온몸에서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건을 하나 더 꺼내온 시리우스는 일단 얼굴부터 시작해 목덜미, 어깨, 팔까지 열이 올라 땀을 흘리고 있는 모든 부위를 닦아냈다. 안 그래도 하얀 그녀는 백지장마냥 창백해 보였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시리우스는 그녀가 힘든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아프면 이렇게까지 안타깝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보다 작고 조그마한 여자애가,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녀가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 * *
로웨나가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작게 신음하던 로웨나는 그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제 머리에 닿는 손길이 불편한지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이마 쪽으로 손을 더듬더니, 게슴츠레 눈을 떴다. 깼나? 시리우스는 자신이 그녀를 깨운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미안해졌다.
불분명한 시야 탓에 눈을 몇 번 깜빡이던 로웨나가 중얼거렸다.
“왜 시리우스가 여기 있지?”
시리우스는 자기가 패드풋이 아니라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놀랐던 것도 잠시, 그가 곧 여유롭게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건 네 꿈이거든,”
“아, 그렇구나.”
로웨나는 제대로 정신이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바로 수긍해버리는 그녀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로웨나는 그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내 손을 잡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시리우스는 마치 놓칠세라 로웨나의 손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방이 어두워서인지 갈색 보다는 검은빛이 도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갓 짜낸 얇은 실타래처럼 부드러웠다.
“다정하네요, 시리우스.”
잠긴 목소리로 로웨나가 중얼거렸다.
“평소에도 이러면 좀 좋아.”
“평소에도 항상 그러거든? 네가 몰라줄 뿐이지.”
로웨나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웃음조차도 뭔가 씁쓸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생일을 혼자 보낸 애가 몸까지 아프다니. 시리우스는 식은땀으로 머리카락이 엉겨 붙은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며 계속 해주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로웨나가 이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다시 낮고 고요해졌다. 그녀의 손을 꼭 쥔 채로 시리우스는 잠든 로웨나를 내려다보았다. 계속 이렇게 눈을 감은 모습만 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더 예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로웨나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그는 쥐고 있는 손을 살짝 들어,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 작품 후기 ============================
리들 쓰고 피폐해졌다가 시리 쓰고 힐링되네여. 하..
독자 합작 소설 로웨나 블루로즈ㅋㅋㅋㅋ 혹시 오타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코멘트로 남겨주세요! 아마 수정은 열두시 넘어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수정) 다음 회차 업데이트는 23일 일요일 아침 07:0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