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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6)
크리스마스 파티 다음 날, 마루더즈를 호출한 맥고나걸 교수는 파티 칵테일에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2주간 징계를 내렸다. 그들은 연휴 기간 내내 각자의 구역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를 해야 했다.
“징계받을 것 정도는 예상했어야 했는데.”
제임스가 한쪽 팔에 머리를 얹고 테이블 위에 엎드려서 중얼거렸다.
“호그와트 지도는 무슨…… 얼룩 고양이 교수 얼굴만 보다가 연휴를 다 보내겠네.”
투덜대던 제임스는 한 손으로 테이블 위에 지팡이를 세우려고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청소나 하며 보낸다는 사실에 적이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저녁에도 시간이 있으니까, 돌아다니면서 호그와트를 탐방할 시간 정도는 충분할 거야.”
느긋하게 진행하자. 마법으로 제임스 대신 그의 지팡이를 테이블 위에 세운 리무스가 자리에 앉으며 그들을 독려했다. 애초에 그는 지도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금방 완성될 것이라면 지금껏 호그와트 지도가 존재하지 않을 리 없었다. 리무스는 그들의 목적이 졸업 전에 달성되기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시리우스도 어느 정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호그와트의 숨겨진 장소들은 웬만큼 다 꿰고 있었기 때문에, 호그와트 탐방에 그렇게 치중하지 않아도 지도를 만드는 것에는 그렇게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든, 시리우스는 저를 뒤흔든 새로운 감정에 대해 골몰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는 어제 이후로 줄곧 로웨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인정한 열망은 마치 터진 둑처럼 쏟아져 나와 시리우스를 덮쳤다. 나는 걔의 얼굴에 반한 건가? 아니면 성격?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거지? 끊임없이 의문이 일었지만, 그 이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가끔 그런 저의 상태가 한심해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으나, 또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그녀의 생각이 파도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오는 것이다.
시리우스의 다사다난한 머릿속과는 무관하게, 마루더즈들은 호그와트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 되면 O.W.L 공부 한다고 바쁘지 않을까? 호그와트 지도를 만들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어.”
피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으, 그래. O.W.L……. 아빠가 적어도 기본 과목들은 통과하랬는데.”
“네가 뭐 통과가 그리 대수겠어. 지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우리가 잘 모르는 호그와트의 구석진 장소 정도만 살피면 될 테니까.”
리무스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시리우스는 별 말 없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리무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계속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친구들의 대화가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흘끔 연회장 입구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시리우스는 순간 현관 홀 쪽에서 로웨나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래번클로 6학년 반장 올리비아 애컬리와 함께였다. 그녀를 본 순간부터 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제 통제를 떠난 반사적인 반응에 시리우스는 이제 거의 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로웨나는 어제의 화장기를 완전히 지운, 평소의 얼굴과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녀가 예뻐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가 느끼는 이 감정은 단순히 하루 잠깐 일었던 충동은 아닌 것 같았다.
로웨나를 발견한 순간부터, 시리우스에게 친구들의 대화는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그들의 물음에 대충 대답하면서 그는 혹여 그녀가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 불분명한 마음을 계속 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얼굴을 보았을 때 잡아놓지 않으면 다시 보기 위해 또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다. 로웨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이 유일했다.
이윽고 식사를 끝낸 마루더즈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리우스만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먼저 기숙사 들어가 있어.”
시리우스가 말했다.
“나 좀 있다가 들어갈게.”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시리우스는 로웨나 쪽을 힐끔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했다.
* * *
복도에서 기다린 끝에 시리우스는 결국 로웨나와 만났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파트너가 되어준 대가로, 그녀는 블랙을 기숙사에 재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생각만 해도 시리우스는 벌써부터 귓불까지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의도는 분명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시리우스는 2주간 기숙사에 함께 있어 달라고 한 그녀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시리우스는 슬슬 로웨나의 부탁을 수락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사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 다소 고문같이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저야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싫을 리 없었다. 조금 당황하긴 했어도 시리우스는 결국 자신이 로웨나의 부탁을 들어주고 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머리를 맞대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임스와 리무스, 피터는 기숙사에 모여서 마루더즈 맵이라고 이름 붙인, 호그와트 지도를 만드는 것에 골몰하고 있었다. 특히 리무스는 마법 깃펜을 이용하여 벌써 정교하게 구조도를 짠 모양이었다. 사실 아직은 지도라고 하기에도 뭣한 조잡한 정도의 낙서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1층부터 지도 제작에 착수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된 이후,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중에 징계를 마쳤다. 그리고 오후 내내 그들은 가보지 않은 호그와트 구석구석을 헤매며 지도의 구상에 몰두했다. 시리우스는 그들의 손에 거의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호그와트를 돌아다녔다. 그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밖에 없었는데, 로웨나는 심지어 식사시간에조차 쉽게 보기 어려웠다.
대체 그 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그는 한 번도 로웨나에게 왜 크리스마스 연휴 때 남은 것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지나가듯 래번클로 반장 올리비아에게 그녀의 안부를 캐물으면, 로웨나는 기숙사에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시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잡하게 그려지고 있는 마루더즈 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던 시리우스가 입을 열자,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지도에 위치 추적 기능까지 넣자.”
“어? 위치 추적?”
리무스가 그에게 되물었다. 테이블에 다가간 시리우스는 그의 깃펜을 받아 양피지 위에 움직이는 발자국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있는 위치에 이렇게 이름과 함께 발자국이 나타나게 하는 거지.”
마법 깃펜이라 그런지 자동적으로 이름이 반짝이며 발자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놀랍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그는 단번에 시리우스의 의견에 매료된 것 같았다.
“호문쿨루스(Homonculous) 마법을 걸어 놓자는 말이로군.”
리무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이것이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가 호들갑스럽게 대꾸했다.
“그거 좋은데?”
“교수님들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겠지!”
시리우스의 새로운 제안에 그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호문쿨루스 마법은 교과과정에 있지도 않은 어려운 마법이었다. 그러므로 설령 그들이 이에 도전한다고 해서 쉽게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더 호기심을 가지는 재기 넘치는 그리핀도르였다. 제임스는 마치 당장에라도 플리트윅 교수님께 달려가 호문쿨루스 마법을 직접 전수받을 기세였다. 교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위치를 알 수 있다니! 완성된 마루더즈 맵의 이용가치를 떠올리며 그들은 지도 제작에 더욱이 불타올랐다.
* * *
시리우스는 오늘 로웨나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언제 블랙과 만나겠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올해 마지막 날을 블랙과 함께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왠지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는 혹여 자신의 정체가 들킬 것을 대비해 변명이라도 준비해놔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괜히 로웨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머릿속으로 되감기 하며 시리우스는 자신이 대화 중에 한 말들을 곱씹었다. 혹시 사심 없이 내뱉은 장난기 어린 농담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그는 이미 한 번, 로웨나가 저를 밀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거 알아?”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피터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앨리스가 그러는데, 제인 아보트가 본즈를 좋아한대.”
“둘이 원래 정략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아니었어?”
다소 심드렁하게 리무스가 대꾸했다.
“그거랑 다르지. 정략결혼이야 계약관계 같은 거지만, 이건 그런 계약과 관계없이 본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잖아.”
본즈 정도면 뭐, 제인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애지. 리무스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는 명문가 출신에, 기숙사 내에서도 신망이 두터우며, 별다른 스캔들 없이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리무스는 아이작 본즈를 개인적으로 좋게 평가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제인이 본즈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드렁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리우스가 뜬금없이 물었다.
“좋아하면 어떤 감정이 들지?”
“좋아하면?”
피터가 되물었다. 리무스의 시선이 흥미롭다는 듯 시리우스에게 향했지만, 정작 시리우스 본인은 이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반쯤 딴생각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물어본 것이 분명했다.
“어.”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뭐 그런 거 아냐?”
저도 잘 모르겠다는 듯 피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여자들은 몇 있었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피터에게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것은 조금 낯선 감정이었다.
“그래?”
시리우스는 피터의 말을 들으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물론,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 그녀라는 것도 유일했다.
“어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길 바라잖아.”
리무스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리무스의 말에 시리우스의 내면에서 의문이 일었다. 그래서 로웨나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거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시리우스는 로웨나가 저에게 좋은 감정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가진 마음 정도로만 그를 좋아해 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저릿했다. 시리우스가 무의식적으로 리무스에게 물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터.”
어? 리무스의 부름에 피터가 그를 쳐다보았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리무스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 그리핀도르에 S.L.C(Sirius Lover's Club)까지 만들게 한 시리우스 블랙이 나한테 저렇게 물어본 의도가 뭐라고 생각해?”
피터는 배를 잡아가며 웃어댔다. 리무스가 설령 상냥하고 호의적인 태도와 호감 가는 외양 때문에 그리핀도르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호그와트 사상 가장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곤 하는 시리우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피터는 분명 이것이 리무스를 향한 고도의 기만임이 분명하다며 놀려댔다. 시리우스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고, 리무스는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
리무스가 흘러가듯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누군데? 그렇게 널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
시리우스는 딴청을 피우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마루더즈들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흔들어놓는 이 감정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간 통째로 휘둘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의 급류가 걷히고 조금 안정이 되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리우스는 리무스의 말을 못 들은 척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 * *
요즘 시리우스의 관심은 로웨나의 동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로웨나가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는 간간이 2층 복도에서 보이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2층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로웨나가 무엇인가 찾는 것처럼 호그와트를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제임스의 투명망토를 쓰고 있던 시리우스는 우연히 그녀가 2층 복도를 따라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톰 마볼로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왜? 로웨나가 왜 저기서 나오는 거지? 지금은 심지어 학기 중도 아니었다. 불현듯, 시리우스의 기억 속에서 로웨나 본인이 리들러(Riddler)라고 인정했던 대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에게 딱히 그 과목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예전에 지나가듯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과 같은 실전 마법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쟤가 리들 교수에게 관심이 있어서 저렇게 연구실에 찾아가나? 연구실을 방문할 정도로 서로 친한가?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시리우스는 저의 생각이 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가 슬러그혼 교수나 플리트윅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과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은 달랐다. 시리우스는 그저 로웨나가 그의 연구실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리들 교수에게 그녀를 빼앗길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저 호그와트 교수에 불과한 이에게 이토록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시리우스는 그때부터 리들 교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학생들을 대할 때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하던 사람이, 혼자 서 있을 때면 무엇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고독해 보이는 모습도 그렇게 멋있어 보인다며 난리였지만, 시리우스는 그에게서 주변 이들을 배척하는 냉랭함을 느꼈다. 아주 가끔 리들 교수의 시선이 시리우스를 향할 때는 마치 저의 아랫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냉담해졌는데, 자신을 어리디어린 유약한 마법사로 생각하는 것 같아 때때로 분기가 일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강한 적의를 느끼는 것은.
연휴 주말, 대연회장에서 시리우스는 교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리들 교수를 발견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대연회장에는 학생들 자체가 얼마 없었고, 마지막 남은 두어 명의 학생조차도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언젠가 그에게 말을 걸어 보리라 생각했던 시리우스는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했다.
시리우스는 교수용 테이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교수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리들 교수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학생용 테이블에서 대충 의자를 끌어와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리들 교수의 시선이 잠깐 시리우스에 닿았다. 다소 무례한 시리우스의 태도에도 그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리들 교수는 쥐고 있는 나이프를 놓지 않은 채 천천히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겉과 속이 달라 보이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는데.”
시리우스는 다소 불량한 자세로 팔짱을 꼈다.
“그 사람의 속을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궁금합니다.”
“학업과 관련된 질문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리들 교수가 고개를 숙이며 무심히 말했다. 그는 시리우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학생들을 대할 때의 진지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으나 시리우스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질문을 하는 그의 태도부터 정중하다기보다는 오만하고 건방져 보일 것이 당연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교과과정에 있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시리우스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리들 교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죠?”
“저는 그런 사람들 안에서 자라났으니까요.”
리들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리우스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내심의 악을 잘 감추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의 새까만 흑안을 응시하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그는 톰 리들 교수가 저에게 레질리먼시를 사용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자기기억통제에 관한 규제 법령을 구체적으로 알았고, 교수가 허락 없이 제자의 마음을 읽었을 경우 이뤄지는 강력한 처벌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는 리들 교수 앞에 보이지 않는 덫을 놓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들으면서 시리우스는 그가 정신계 마법에 꽤 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정도의 정신계 마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레질리먼시를 사용하지 못할 리 없었다. 시리우스는 모르긴 몰라도 리들 교수가 강력한 레질리먼서라는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질리먼서들이 가끔 저보다 정신적 방어가 약한 타인을 읽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도.
그를 더 파내고 싶었다. 시리우스는 도발이라도 하듯 리들 교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심히 그와 시선을 맞추던 리들교수가 천천히 입을 뗐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부분은 있는 법이지요.”
리들 교수는 그의 마음을 읽는 대신 그저 학생들에게 자주 보이는 미소를 한 번 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시리우스는 그것이 어쩐지 서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을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숨기고 있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겉과 속이 다른 비열함이 옳다는 말씀이십니까?”
“비열하다, 라.”
리들 교수가 눈을 내리깔며 쥐고 있는 나이프를 놓았다. 둘 사이에 이는 짧은 침묵 사이에 나이프가 테이블에 닿는 차가운 마찰음이 깔렸다.
“제가 보기에는 블랙 군이 싫어하는 것은 슬리데린의 것처럼 보이는 성정인 것 같군요.”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가 그에 대한 자신의 노골적인 반감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시리우스의 의도이기도 했다. 그는 리들 교수가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를 바랐다.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하죠.”
그러나 시리우스의 기대와는 달리 리들 교수의 어조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시리우스의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블랙 군은 당신의 적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겁니까?”
“적이요?”
갑작스러운 그의 역질문에 시리우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장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죠.”
“저는.”
리들 교수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이상하게도 그 잠깐의 미묘한 간극 속에서 시리우스는 본능적인 긴장감을 느꼈다.
“적 앞에서도 증오를 드러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감정변화 하나 없는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척 웃어주겠지요. 필요하다면 대화와 타협도 할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슬리데린다운 태도군.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의 마음가짐이 졸렬하고 위선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핀도르라면,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평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리들 교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등 뒤에서 지팡이를 휘두를 겁니다.”
짧게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 목적과 가장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잠깐이나마 침묵을 유지하던 리들 교수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그는 시종일관 나직하고 느린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에는 어딘가 사람을 위압하는 미묘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시리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 자는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시험하려고 들었던 것은 저인데, 오히려 시험에 당하는 기분이었다.
“자, 그럼 한 가지만 묻죠.”
리들 교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깍지를 낀 손을 턱에 괴었다. 어둡다 못해 검푸르게 보이는 그의 서늘한 흑안이 시리우스를 직시했다.
“나는 당신을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시리우스에게는, 그의 말 자체가 굉장히 위협적으로 들렸다. 목소리 하나 변함없는 차분한 태도였지만 시리우스는 순간 바짝 이는 긴장감에 지팡이라도 뽑을 뻔했다. 제가 느끼는 강한 압박은 이를 채 인지하기도 전에 조용히 사그라졌다.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내가 무엇인가 착각을 한 것인가?
“하지만 당신을 친우와 다름없이 대하고 있지요. 저를 어떻게 할 겁니까?”
“…겉과 속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서 이 사람이 내 적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어야겠죠.”
시리우스는 저의 속내를 숨기며 당연한 걸 질문한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적이라고 판단한다면 단번에 공격할 겁니다.”
“그렇다면 군이 생각하는 적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제 정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의라.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기준이군요.”
리들 교수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당신의 정의에 반합니까?”
시리우스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리들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시리우스 그 자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모든 슬리데린이 나쁘다는 식의 일반화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일부 슬리데린을 폄하한다고 해서 모든 슬리데린 출신들을 부정의한 존재라고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리들 교수는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둘 사이에 인 정적을 깨며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군도 알다시피 저는 슬리데린 출신입니다. 그리고 저는 블랙 군의 불분명한 정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말할 수 있죠?”
그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냈다. 깍지 쥔 손을 펴며 리들 교수가 말했다.
“그것을 확실히 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군 혼자만의 좋고 싫다는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이건 아무것도 판별할 수 없는 미성숙한 기준이고, 아무도 이해시킬 수 없는 아집일 뿐입니다.”
시리우스에게는 자신이 좋은 것이 정의였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부정의였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 합리화해왔다. 그래서 그는 어떤 슬리데린이 싫으면 그가 부정의 하다며 괴롭혔고, 어떤 그리핀도르가 불쌍하면 그가 정의롭다며 옹호했다.
그러나 지금껏, 자신에게 이를 지적해 준 사람은 없었다.
리들 교수의 말은 그의 본질적인 부분부터 뒤흔들고 있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자신의 가치관 깊숙한 곳까지. 리들 교수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정의라고 여기고 반항해왔던 것은 사실 자기 자신만의 편협한 선호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옹호하고 싫어하는 것을 비난한 것에 불과했다.
“마법세계에서는 기숙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은 앞으로 사자 같은 슬리데린과 만나야 할거고, 독수리의 탈을 쓴 후플푸프와 일을 함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기숙사를 이유로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피할 겁니까?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주라도 쏠 건가요? 본인의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증명할 겁니까?”
증명해 보라고? 시리우스는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의 어투는 공격적이었지만 설득력 있었다. 리들 교수는 정확히 그의 신념이 가지는 허점과 가장 나약한 부분을 꿰뚫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죠.”
리들 교수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 같으면 그 사람의 속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을 겁니다.”
시리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리들 교수를 응시했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는, 어쩐지 리들 교수가 자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느린 어조로 경고하듯, 그가 천천히 내뱉었다.
“절대로 등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 * *
결국,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인가? 사실 그렇게 결론짓기에는 많은 것이 꺼림칙했다. 그러나 설령 그가 내면에 어떤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 하더라도 리들 교수가 가지는 강건한 영향력은 시리우스를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였다. 시리우스는, 일순 자신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리들 교수를 향한 강한 동경의 감정을 느꼈다. 슬리데린의 어떤 사람에게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기분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시리우스는 자신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듯한 리들 교수에게 묘한 열등감과 질투를 숨길 수 없었다.
만약 로웨나가 그를 따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심지어 시리우스의 통제 불가능한 호기조차도 잠재우는 차가운 힘이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중적인 면모는 어쩌면 시리우스의 착각일 수 있었다. 감이 빗나가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시리우스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이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괜히 한번, 로웨나가 자주 앉곤 했던 래번클로 테이블에 시선을 두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리들 교수를 쓰니 기가 절로 빨립니다.. 무서워 ㅜㅜㅜㅜㅠㅜㅠㅠㅡㅜㅜㅜㅜㅜ
저는 소설을 쓸때 Begin again OST를 틀어놓습니다. 그래서 요즘 길가다가 비긴 어게인 오에스티만 나오면 갑자기 로웨나 블루로즈가 생각난다는... 특히 제가 좋아하는 건 coming up roses입니다. 이 곡 부를 때 키이라 나이틀리 목소리가 제가 생각하는 로웨나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하기 때문입니당.
오늘 또 한편 더 올라갑니다. 아마도 당일 18:00시 이전에는 업로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이번 회차와 함께 한편 분량인 것을 용량과 스토리 흐름 상 자른 거라서 그렇게 용량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있다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