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60화 (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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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3)

“어둠의 마법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공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숨죽이고 수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휘 둘러보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인간은 어찌나 이렇게 시각적인 자극에 쉽게 휘둘리는가. 그는 깃펜을 턱에 괴고 리들 교수를 살폈다. 어떤 사람이든 그의 외모에 시선이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시리우스도 인정했다. 조각같이 섬세한 얼굴과 그에 어우러지는 낮은 목소리, 균형 잡힌 몸매, 우아한 태도까지. 그뿐만 아니라 리들 교수는 호그와트 교수직에 걸맞은 방대한 지식과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만한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다정하고 친절하기 했다. 학생들이 리들 교수를 동경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블랙 가에서 나고 자라며 배워왔던 것이 무엇이던가. 화려한 껍질 안에는 무자비한 광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 나가서 흠 잡힐 만한 짓은 절대 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런 빳빳해 보이는 외양 안에는 보통 사람들이 쉽사리 정체를 알아차리기 힘든 시커먼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시리우스는 알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완벽함을 불신했다. 포장이 화려할수록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실체는 지독한 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공격 마법을 위주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위험할 수 있으므로 실습 중에는 반드시 공방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리들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달랐다. 그는 학생 모두에게, 심지어 머글 출신에게도 아낌없이 친절했다. 물론 리들 교수가 모든 것을 허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친해지려고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항상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 또한 특정 학생들에 대한 편애를 막기 위한 일종의 사려 깊은 태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오히려 교수로서의 신뢰를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리들 교수는 지나치게 모든 것이 잘 짜인 듯한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자연스러웠지만 시리우스에게는 그게 더 수상해 보였다. 가끔 자신을 향하는 그의 짙고 선명한 흑안과 마주할 때면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저자에겐 무엇인가 있다.

그게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일까. 시리우스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 *

시리우스는 포크로 키드니 파이를 대충 집어 베어 물었다. 으, 내 취향은 아냐. 입안에 소 내장 특유의 비린내가 풍겼다. 그는 파이를 대충 씹어 삼키며 리무스가 완성한 천문학 별자리 과제를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과제 제출일이 내일까지라 시리우스는 저녁을 마음 놓고 먹을 시간도 없었다.

“큰개자리 별을 덜 그렸어. 그렇게 그리면 앞 다리가 둘 없잖아.”

이미 과제를 다 끝낸 리무스가 느긋하게 칼질을 하며 그의 별자리 전도를 지적했다.

“오, 여기서 다리처럼 보이는 거라도 발견하다니 대단해, 무니.”

대체 이게 왜 개의 형상이라는지 모르겠네. 시리우스는 대충 점 두 개를 더 찍어 큰개자리의 별자리를 완성했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하나 끝냈을 뿐이었다. 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가 밤새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그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알겠어, 세브. 있다 봐.”

릴리가 스네이프와 인사를 하며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았다. 시리우스는 흘끔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 과제에 몰두했다.

사실 릴리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는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 제임스 포터를 제외하고는. 입을 꾹 다문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던 제임스가 먼저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다.

“넌 왜 어둠의 마법이나 사용하는 스니벨루스랑 어울려 다니는 거야?”

그의 말투에는 상당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릴리는 관심 없다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세브는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단지 공부하는 것뿐이야.”

“그게 그거지 뭐.”

제임스가 시큰둥하게 반론했다. 시리우스는 속으로 제임스의 말에 공감했다. 스니벨루스가 어둠의 마법에 심취해 있다는 것은 호그와트 내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는 애버리나 뮬시버같이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치들과 어울렸다. 솔직히 시리우스의 입장에서는 릴리같이 정상적인 마녀가 왜 스니벨루스와 친하게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제임스의 말이 릴리의 기분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시원시원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기색이 섞였다.

“학문적인 관심과 직접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거든. 그리고 세브를 그렇게 부르지 마.”

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세브는 내 친구야. 네가 함부로 모욕할 사람이 아니라구.”

“친구를 선택하는 데에는 심사숙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심사숙고의 결과가 걔들이니?”

릴리가 마루더즈를 보며 비웃었다. 졸지에 제임스의 진지한 숙고의 결과물이 된 리무스는 두 손을 들고 으쓱했다. 시리우스의 생각에도 제임스가 무엇인가 신중한 사색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친구로 받아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와 제임스는 입학식 날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만나 친해졌으니까. 시리우스는 단지 그리핀도르가 최고의 기숙사라는 제임스라는 말에 동조해주었을 뿐이었다. 리무스의 경우도 글쎄,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라는 이유로 친해졌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피터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그녀의 말에 제임스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봐, 얘들이 얼마나 대담하고 용기가 넘치는데. 비열한 슬리데린과는 달라.”

농담을 걸면 그것을 호감의 표시로 알아먹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릴리는 제임스의 장난스러운 행동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슬픈 점은, 제임스는 장난을 치거나 괴롭히는 것 외에 자신의 친근감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장난치는 것을 거부당한 제임스는 그녀에게 수시 때때로 말싸움을 걸었다.

처음에는 제임스의 도발에 재밌어하던 마루더즈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게 무관심해졌다. 덕분에 보통은 릴리와 제임스 둘이서 서로 지루한 말다툼을 지속하곤 했다. 저렇게 한번 시작하면 두 사람은 끝을 내지 못하고 싸워댔다. 제임스가 반쯤 장난조로 툭툭 던지는 말에 릴리는 항상 머리끝까지 열 받아 그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그러나 제임스의 말에 논리가 있을 리 없었다. 제임스는 릴리가 어떤 얘기를 하든지 말도 안 되는 재반박을 하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항상 릴리가 대화 자체를 거부하며 그들의 다툼은 끝을 맺곤 했다.

“됐어, 제임스. 난 너랑 더는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으니 말 걸지 마.”

바로 저렇게. 결국 릴리는 그에게 소리를 빽 지르고는 그녀의 친구 앨리스와 테이블 멀리로 자리를 옮겼다.

시큰둥하게 두 사람의 논쟁을 듣고 있던 시리우스는 멀리 대연회장 입구 쪽에서 로웨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본즈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며 연회장을 들어오고 있었다. 넥타이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차림의 두 사람은 멀리서 봐도 호그와트 대표 우등생다웠다. 시리우스는 아닌 척하며 로웨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는 몸매가 꽤 괜찮았다. 키가 크고 제법 탄탄한 느낌의 본즈와 있으니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날 법도 했다. 꽤 잘 어울리네.

쟤가 내 옆에 서도 저런 느낌일까. 그는 혼자 피식 웃었다. 내가 본즈보다 반 뼘가량 크니 훨씬 더 잘 어울리겠지. 시리우스는 머릿속으로 괜히 자신과 로웨나를 나란히 한번 세워보았다가 머리를 휘저었다. 너무 멀리까지 나갔다.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자. 그는 잡념을 멈추고 깃펜을 들어 다시 천문학 과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

이제 어느 정도 변신술에 익숙해진 마루더즈들은 늑대 인간의 모습을 한 리무스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애니마구스를 성공하지 못한 피터를 제외하고 그들 셋은 매번 보름만 되면 거대한 버드나무에 모였다. 이제는 함께 투명망토를 쓰기엔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각자 몰래 침실에서 빠져나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에서 만나곤 했다.

그리고 그 날도 보름이었다. 애니마구스로 변신한 시리우스는 별로 급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거대한 버드나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걸음을 멈춘 것은 저를 애타게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블랙!”

호그와트 성 쪽에서 들리는 로웨나의 외침에 그는 조금 놀랐다. 통금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다. 시리우스로든 패드풋으로든, 이런 늦은 밤에 로웨나를 만난 적은 없었다. 시리우스의 은회안에 그의 쪽으로 다가오는 로웨나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혹여 시리우스가 도망갈까 봐 걱정되었는지 호그와트 성 내에서부터 달려온 것 같았다.

시리우스를 멈춰 세운 로웨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쥔 채 자리에서 한참을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숨이 찬 듯 목 끝까지 잠그고 있었던 교복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 셔츠 안쪽으로 평소에는 잘 보기 힘든 희고 매끄러운 목덜미가 시리우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거기에 눈길을 두었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야. 요즘 왜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던 거야?”

좀 더 가까이 다가온 로웨나가 시리우스와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었다.

“보고 싶었어.”

시리우스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기가 아니라 검은 개의 모습을 한 패드풋에게 하는 말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밤이 늦어서 그런가. 시리우스는 자신의 감정적 동요를 평소와는 다른 시간의 탓으로 돌렸다. 원래 밤에는 사람이 쉽게 감상에 젖는 법이다.

“이렇게 밤에 보는 건 처음이구나. 왜 이 시간에 나온 거야?”

그녀는 목소리에서부터 무엇인가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로웨나는 평소와는 달랐다. 얼마 전에 손을 다쳐왔을 때부터 시리우스는 무엇인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수업 시간에 집중하던 그녀는 요즘 들어 정신을 놓은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다.

대체 그녀가 어디에 그렇게 정신이 쏠려 있는지 궁금해졌다. 시리우스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비추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사실 보통 때라면 모르는 척 그냥 버드나무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겠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늦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난 달이 좋아. 특히 저렇게 가득 찬 보름의 달이 정말 좋아. 너무 아름답거든.”

시리우스는 이제 익숙해진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이제 보름달이 일종의 상징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실 달을 보면서 감명을 느끼지는 않았다.

“넌 고민이 없어서 정말 좋겠다. 나는 요즘 목숨을 위협받고 있거든.”

시리우스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의 말에 놀랐다.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머글 출신이라고 살해 위협이라도 당하는 건가? 그건 그렇고, 호그와트 내에 그녀를 건드릴 사람이 있기나 한가? 뭔가 비유적인 표현인가 싶기도 했지만, 장난스럽게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말투는 너무 진지했다.

“마법사로 산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어. 내가 머글 학생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지?”

그는 유심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과 눈동자에서 아스라이 불안감이 비쳤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머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가 괴롭히기라도 하나. 얼마 전 예언자 일보에서 머글 출신 마법사 살해 사건을 기사로 읽었었다. 어쩐지 그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가 더 이야기해주길 바랐지만 로웨나는 거기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시리우스가 나서서 추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긴 침묵이 감돌았다.

그 후로 로웨나는 말없이 그의 곁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녀는 시리우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심적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시리우스는 이 낯선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곧 통금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시리우스에게는 결국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남았다. 다소 힘없이 걸어가는 로웨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심각한 거지?

* * *

그 후로 시리우스는 가끔 혼자 다니는 로웨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녀는 본즈가 떠난 이후로 더 외로워하는 것 같았다. 같은 학년의 래번클로 학생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도 뭔가 겉돌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가끔 패드풋일 때 로웨나가 저에게 했던 말들을 생각해보면 불안하기도 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시리우스는 물가에 아이를 둔 것처럼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몇 번 대화를 시도한 끝에, 그는 로웨나가 학생들이 많은 자리에서 시리우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특히 대연회장 같은 장소에서는 대화를 오래 지속하는 것을 꺼렸다. 그래도 가만히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시리우스는 괜히 지나가면서 로웨나에게 한마디씩은 말을 걸곤 했다.

그는 예전과는 달리 복도를 지날 때나, 연회장을 들어갈 때 주변을 둘러보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혹시 근처에 로웨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저도 모르게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싫어할 때는 매번 나타나 그를 괴롭히던 그녀는 요즘 교내에서 자주 보이지도 않았다. 이전에는 귀찮으리만치 표현했던 애니마구스 패드풋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덜했다. 시리우스는 대체 이것을 좋다고 해야 할지 싫다고 해야 할지 판별할 수 없었다.

* * *

그날 시리우스는 로웨나를 만날 것이라고 예상도 못 하고 있었다. 패드풋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인적이 드문 정원 구석을 혼자 천천히 돌아다니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가문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가문에서 배제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는 항상 엇나가는 행동을 해왔지만, 지금껏 블랙 가가 시리우스를 먼저 내친 적은 없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심한 일이었으나, 그래도 십몇 년간 제 이름에 붙어 있던 블랙이라는 성이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한참을 걷던 그의 시선 멀리에, 익숙한 느낌의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것이 들어왔다. 새까만 잉크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그녀는 그 위에 물까지 뒤집어써 조금 불쌍해 보였다. 그쪽으로 한 걸음 다가간 시리우스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로웨나 블루로즈였다.

시리우스는 저 잉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와 마루더즈들이 자주 하는 장난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은 슬리데린 여자에게 마법사 잉크를 쏟아 부어 놓고 낄낄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분명 제가 할 때는 웃기기만 했는데, 그녀가 새까만 잉크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자신이 저질렀던 장난들이 악독하게만 느껴졌다. 심지어 그녀의 곁에는 보통은 옆에서 위로해주기 마련인 동년배의 친구조차 없었다. 로웨나는 잉크로 물든 망토를 벗어 혼자서 손으로 짜고 있었다.

“안녕, 블랙.”

불쌍해. 온통 까만 잉크를 묻힌 로웨나가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로웨나에게 가까이 다가간 시리우스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잉크를 닦아주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어떠한 복잡한 사고단계를 거치지 않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혀에 닿는 볼의 감촉을 느끼고서야 제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내가 정신이 나간 건가. 시리우스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멍해졌다.

잉크 맛이 나는 그녀의 볼은 생각보다도 더 보드랍고 따뜻했다. 그의 혀에서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로웨나가 살짝 멀어지며 고개를 휘저었다.

“마법사 잉크는 몸에 좋지 않아. 먹으면 안 돼.”

그는 로웨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도 생각 않고 시리우스 저를 걱정한다는 것에 어이가 없어졌다. 스스로의 상태나 좀 파악하지그래. 그는 지금이라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그녀를 꾸중하고 싶어졌다.

“나 오늘 너랑 많이 닮았지?”

로웨나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리고 그 표정만으로도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위로가 필요함을 알았다.

그녀의 손길이 시리우스의 등에 닿았다. 그저 손이 얹어졌을 뿐인데 시리우스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약간 망설이던 로웨나가 자신의 등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시리우스는 평소와는 다르게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애완동물 취급당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로웨나가 등을 만지려고 할 때마다 이를 거부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순간에까지 그녀를 내치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 이게 뭐 그리 별거라고.

게다가 부정할 수 없게도, 등에 닿는 그녀의 손길은 제법 기분 좋았다. 이런 느낌이라면 앞으로 그녀가 계속 저를 쓰다듬게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로웨나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녀가 쉽게 등을 만질 수 있도록 바짝 붙었다.

잉크를 잔뜩 뒤집어썼음에도, 가까이 앉은 그녀에게서는 갓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한 자연스러운 살결의 향기가 났다. 어쩐지 안아주고 싶은 포근한 느낌이었다. 시리우스는 의식도 할 새 없이 떠오른 충동에 저도 모르게 놀라 이를 떨쳐버렸다.

“난 말이야, 예언자 일보에 머글 마법사 살인 사건이 수없이 실리고, 반머글차별법이니 뭐니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호그와트에 있는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난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알고 있어. 이건 그냥 내가 받을 차별의 서두에 불과하다는 걸. 애들 장난 정도의 유치한 것에 지나지 않잖아. 적어도 머글 출신이라고 살해당하진 않았으니까.”

그녀와 그의 눈이 맞닿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 로웨나가 그를 향해 말했다.

“난 이런 유치한 장난에 쉽게 굴복하지 않아. 절대로.”

시리우스는 왜인지 그녀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불쌍해 죽겠네, 진짜. 애가 어떻게든 견뎌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데 주변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만 하냐. 그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 * *

시리우스는 그녀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로웨나를 억지로 호그와트 주방으로 데리고 가 밥을 먹였다. 도저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매 끼니마다 혼자 어디서 굶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서관 같은데 박혀있나 찾아보았으나 요즘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나마 본즈가 옆에 붙어서 많이 도와준 것 같은데 그마저 없으니 더욱 그랬다. 시리우스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그녀가 정말 혼자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문제는, 정말 로웨나를 보기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요즘 들어 그녀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휴게실의 소파에 몸을 파묻은 시리우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도 같은 게 없나.”

“지도?”

리무스가 되물었다.

“어. 호그와트 지도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러게.”

“모든 교실, 복도, 호그와트의 어떤 곳이든 샅샅이 뒤질 수 있도록 말야.”

시리우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로웨나가 대체 어디 꼭꼭 숨어있는지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눈앞에 없으니 불안감이 자꾸 일었다.

“그럼 만들면 되지.”

제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뭐?”

“너희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에 가야 해?”

“아니.”

시리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리무스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피터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럼 연휴 동안 우리 호그와트 탐방을 하자.”

우리에게는 투명망토가 있으니까. 제임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들을 모조리 뒤져보는 거야. …그리고 호그와트 지도를 만드는 거지!”

시리우스를 포함한 마루더즈 네 사람은 이것이 호그와트를 졸업하기 전까지 그들이 끝내야 할 숙명임을 느꼈다. 호그와트 지도라니! 어느 그 누가 이런 혁신적인 발상을 실행에 옮길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을까.

순간적인 충동에서 시작했으나, 네 사람은 제임스가 흥분해 제안한 이 과제가 몇 년이고 지속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난 거리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장에 그들은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호그와트에 남을 사람의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렸다.

* * *

호그와트 주방에서 식사를 한 날 이후로 로웨나는 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눈치챘다. 요즘 로웨나는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녀는 머글 수업을 마치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황급히 교실을 나가버렸다. 시리우스가 채 말을 걸 여유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복도에서 한참 멀어지고 난 후인 것이었다.

저거,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는 거지?

그는 오늘도 쌩하고 먼저 나가버린 로웨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그녀가 왜 자신을 멀리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로웨나의 태도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시리우스는 한참을 자리에 앉아 갑작스레 변한 그녀의 태도에 관해 여러 가지 추리를 해보았다. 갑자기 내가 싫어지기라도 한 건가? 밥 한번 먹였다고 정이 떨어지기라도 했나?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그 날 하루종일 자신의 지난 행동을 반추해가며 이를 추측하려고 애썼다.

“웬 파란 장미야?”

리무스의 말에 시리우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핀도르 휴게실 테이블 위에는 책과 양피지 대신 파란색 장미가 더미째 쌓여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제가 만들어놓은 광경에 시리우스는 오히려 본인이 당황했다.

지팡이를 툭툭 치면서 물건을 변신시키는 것은 시리우스의 습관이었다. 변신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사색에 빠질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물건을 하나씩 바꾸곤 했다. 가끔은 깃펜을 잉크로, 잉크를 깃펜으로 변신시켜놓고 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이렇게 모든 물건을 장미 하나로 다 바꾼 것은 처음이었다.

제임스는 복구 주문과 함께 지팡이를 한번 가볍게 휘둘러 산만하게 흩어진 파란 장미들을 원 상태로 되돌렸다. 테이블 위에는 다시 교과서, 책, 깃펜과 양피지가 나타났다.

“대체 장미 가지고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리무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시리우스는 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것 같은 느낌에 부끄러워졌다. 애써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뭐긴 뭐야, 이번 맥고나걸 교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지.”

시리우스는 능수능란하게 파란 장미를 안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의 잔상을 허공에 그려냈다. 파란 장미는 순식간에 쥐의 모양으로 변했고,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장미를 품은 손을 떼니 쥐가 우르르 바닥으로 흩어진다.

제임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시리우스의 발상을 평가했다.

“좋은데? 그런데 쥐는 어떻게 구하지?”

“식당에 한번 물어볼까. 집요정들은 쥐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친구들의 대화에 건성 대답하며 여전히 로웨나를 생각했다. 그래,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다음 머글 연구 시간에는 왜 자신을 피하느냐고 꼭 물어봐야겠다.

* * *

기숙사 방의 의자에 앉은 채 시리우스는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부풀어 올랐던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자신이 느끼는 동요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 더 혼란스러웠다. 그는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머글 연구 수업을 마치고 그는 교실을 나가려는 로웨나를 붙잡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시리우스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리를 둔다고 해서 그에 맞춰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천성 그리핀도르답게 그는 저돌적이고 용기가 넘쳤다. 시리우스는, 적어도 이번만큼은 자신의 행동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은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일었다.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요.

로웨나가 자신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자꾸 귓가에 남았다. 무슨 정신으로 그다음 수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수업 도중에도 시리우스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말이 몇 번이고 강제로 재생되었다. 왜 자신을 피하냐는 말에 로웨나는 크게 화를 냈다. 싫다고 눈치를 주면 알아서 좀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리우스는 다소간 의기소침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로웨나의 마음이 부정적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자신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친한 척했단 말인가. 내가 그 정도로 정떨어지게 행동했단 말이야? 그는 조금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시리우스는 그간 로웨나를 상대하면서 보여주었던 여러 장난스러운 태도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반성했다. 싫다고 하면 거리를 둬 줘야 하는 게 예의겠지. 그런 사람에게 자꾸 들이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민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의문이 이는 것이었다. 그래, 까놓고 얘기해서 그녀가 저를 이성으로서 좋아한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해도, 적어도 그녀는 그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고? 내 감이 틀렸나? 본인이 싫다는데 난 지금 제멋대로 합리화하는 건가? 그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디가, 패드풋?”

“바람 좀 쐬고 올게.”

제임스의 물음에 대답하며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챙겼다. 이럴 때는 차라리 단순해지는 것이 좋다. 금방 그리핀도르 기숙사에서 빠져나온 그는 애니마구스로 변신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 그는 사실 래번클로 기숙사라도 들여다보고 싶었다. 대체 로웨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대신 시리우스는 호숫가로 향했다. 가끔 대왕오징어가 튀어나온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호그와트 근처의 호수는 꽤 고즈넉하고 조용했기 때문에 기분 전환하기에는 좋았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그가 굳이 호수를 향한 것은, 로웨나가 올 것이라는 내심의 기대 때문이라는 것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산책로의 끝에는 목도리로 얼굴을 거의 파묻은 로웨나가 서 있었다.

“반가워, 블랙.”

희미하게 웃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시리우스는 물끄러미 로웨나를 바라보았다. 비록 저를 거부한 여자애지만,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면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싫었다. 로웨나는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거나, 자신의 도발에 흥분해 달려들거나, 그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터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가장 어울렸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세상만사의 무거운 짐을 혼자 다 짊어진 마냥 어두워 보였다.

“널 보면 다른 블랙이 떠올라. 이상하지, 둘이 분위기가 닮았어.”

잔디 위에 앉아 로웨나가 말했다.

“난 그가 싫어."

로웨나의 말은 그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다. 마치 좋아하던 주인에게 한 대 얻어맞은 애완동물이라고 된 것처럼 시리우스는 더 시무룩해졌다. 하루 꼬박 고민했던 것이 그녀의 말 한마디로 결론이 났다. 아무리 혼자서 고민해봤자,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 나의 상황 따위 이해하지 못하겠지. 키득키득 웃고 다니면서 장난치는 것도 싫어. 머글 연구 시간에 수업도 듣지 않는 주제에 대답 잘하는 거 보면 얄미워. 내가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생각해야 할 문제를 한 번에 풀어내는 걸 보면 얼마나 화가 나는 줄 알아? 집안이 좋아서 아무 행동이나 해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도 싫어. 그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다 갖췄어.

그냥 총체적으로 내 모든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말이로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리우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가 주눅이 든 표정으로 로웨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을 멈춘 덕분에 호숫가 근처는 차분한 고요가 채워졌다.

잠시 후, 길게 한숨을 내쉰 로웨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맞아.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말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야. 그에게 말할 순 없지만 가끔 따뜻함을 느껴. 그런 것도 사실 너랑 비슷하다?”

시리우스는 로웨나의 손길이 자신의 머리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건 뭐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괜히 투덜거렸지만, 시리우스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저건 칭찬이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나를 싫어하진 않는다 이거군. 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 실제 로웨나의 진심임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땅으로 꺼질 것 같던 기분이 다시 나아졌다. 천천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지나치게 안도한 나머지 그는 제 기분이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본인의 상태보다도 로웨나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로웨나가 저를 진심으로 거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유로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다. 로웨나는 매우 힘들어 보였고, 무엇인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알아, 내가 비겁한 거.”

무엇인진 몰라도 로웨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시리우스가 보았던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최근 대연회장이든 어디서든 얼굴을 볼 수 없는 것과도. 그는 그녀와의 기억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조각난 부분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관계를 망쳐버렸어.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거야. 자초한 일인걸.”

씁쓸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로웨나가 자신과 있는 것이 불편하다면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데. 결코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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