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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쫓는 밤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Side Story. “새벽을 쫓는 밤” - (2)
“로웨나 블루로즈.”
시리우스는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가,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로웨나를 래번클로 여자아이로 부르거나, 혹은 성으로 불러왔다. 그러므로 그가 낯설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대연회장의 현관홀 앞에서 마주친 로웨나는 저를 부르는 시리우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생각 없이 숲을 걸어가다가 사나운 사냥꾼과 마주친 토끼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간 한 번도 아는 척을 해본 적 없으므로 그런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다. 시리우스는 참을성 있게 로웨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본즈가 약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짧은 침묵 후 로웨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내일 저녁 시간 되나? 머글 연구 과제 내일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시리우스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직까지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로웨나는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어리벙벙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시리우스의 옆에 있던 제임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의 대치 아닌 대치를 관전했다.
시리우스는 그녀의 정신을 일깨워 주기라도 할 듯 되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뇨… 내일 괜찮아요.”
“그래. 그럼 머글 연구 수업 마치고 보자.”
할 말을 끝낸 시리우스가 무심하게 그녀를 스쳐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그를 졸졸 따라오며 제임스가 물었다.
“뭐야? 쟤 누구야?”
“같이 수업 듣는 애.”
시리우스가 로웨나와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제임스는 즐거워 보였다. 그는 일상의 어떤 것에든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에 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늘의 시리우스는 평소와는 약간 달랐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시크하고 멋있어서 반했어. 그렇게 한마디 던진 제임스가 언제나 그랬듯 장난기를 담은 표정으로 자신의 두 손을 맞잡았다.
“항상 여자들을 받아주기만 하다가, 드디어 말을 거는구나!”
“여자긴 무슨 여자야.”
시리우스는 로웨나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제 취향은 아니었다. 지나고 나면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인상인데 뭘. 그는 그녀가 조금 측은했고, 이 감정의 근간은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을 했다는 죄책감에 있었다. 그러면 간단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시정하면 되는 일이다. 같이 과제를 하자는 요청을 들어주고 나면 이런 걸쩍지근한 기분은 가라앉게 되겠지. 가볍게 결론을 내린 시리우스는 곧 그녀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의 자리에 앉은 제임스가 이번 할로윈 파티 때 천장에 달아 놓은 호박을 떨어뜨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에 꽂힌 시리우스는 깃펜을 들어 양피지 위에 제임스의 탁월한 발상을 구체화했다. 곧 마루더즈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찬찬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그날 머글 연구 수업을 마치고 시리우스는 로웨나와 합동과제를 함께 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로웨나가 그렇게 천성이 나쁜 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꽉 막힌 부분은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 치고.
그 후 시리우스는 머글 연구 과제를 진행하면서 그녀와 몇 번 더 만났다. 그는 로웨나의 과제 처리 능력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자기 혼자 다 정리해 놓고 시리우스에게 시킨다고 불만을 표하긴 했지만, 확실히 로웨나는 단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꿰고 있었다. 할 줄 아는 건 그냥 앉아서 달달 외우는 정도밖에 없을 것 같이 생겨서는. 시리우스는 그녀가 꽤 똑똑한 마녀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지정석이 된 도서관 구석 테이블에서 시리우스는 로웨나와 함께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별문제 없이 순차적으로 과제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하등 불만이 없었다. 깃펜만 끄적이면서 조용히 보고서 작성에 열중하고 있는데, 로웨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근데 시리우스,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왜 4학년 수업을 듣는 거예요?”
우리가 같이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게 거의 한 달 넘은 것 같은데 왜 이제야 묻는 거지. 시리우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참 빨리도 묻는다.”
“뭐… 우리가 그런 거 물어보고 그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시리우스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머글의 운동 수단 중 ‘지하철’의 특징에 대해 양피지 위에 자세하게 옮겨 적으며 그가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선택과목으로 점성술 들었는데 못 들어먹겠더라.”
“지금도 딱히 잘 듣는 것 같진 않은데…….”
뭐? 로웨나가 지나가듯 던지는 투에 시리우스는 손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말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는 리무스나 제임스가 저에게 하듯 가벼운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고작 한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시리우스는 이상하게도 로웨나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럼 그냥 5학년 머글 연구 들으면 되잖아요. 굳이 4학년 수업까지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시리우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그렇게 황급히 마무리해놓고 마치 별말 하지 않았다는 듯 시침을 뚝 떼며 눈치를 보았다. 시리우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들어, 5학년 머글 연구. 근데 빌헬름 교수가 4학년 수업을 안 들으면 안 받아준다고 하더군.”
몇 마디 주고받고 대화는 끊겼다. 로웨나는 더는 말을 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양피지에 몰두하고 있는 로웨나를 힐끔 살폈다. 그녀에 관한 소문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휴게실을 지나가면서 그리핀도르 4학년들이 그녀와 본즈가 사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로웨나는 마주칠때마다 항상 본즈와 함께 있었다. 두 사람 사이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친밀한 감정으로 이어져 있음이 분명했다. 시리우스는, 설령 둘이 아직 사귀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직전의 단계쯤은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본즈 정도면 나쁘진 않지. 시리우스는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순수혈통들의 파티에서 아이작 본즈를 봐왔다. 그와 본즈는 그렇게 친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시리우스는 본즈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레귤러스와는 자주 만나는 것 같았지만 유독 시리우스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래도 시리우스는 그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블랙이라는 이유로 다가오는 사람들보다는 낫지, 뭐. 적어도 본즈는 시리우스로서의 자신을 싫어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가문의 뜻과 엇나가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겠지. 아멜리아 본즈와 똑 닮아서 정도의 길만 추구하는 그에게는 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설령 속내가 그렇다 하더라도 본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할 정도의 성정은 되지 못했다. 애초에 부딪힐 일이 없었으므로 시리우스 또한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둘이 잘 어울리네. 깃펜으로 글을 옮기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딱 성격이 잘 맞을 것 같다. 은근히 집안을 따지는 본즈가의 특성상 결혼까지 가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잘 지내겠지.
“너 유명하더라.”
“예?”
“본즈랑 사귄다며?”
“누가 그래요?”
로웨나는 그 말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짜 사귀나? 시리우스가 흘러가듯 대답했다.
“그리핀도르에 그렇게 소문이 났던데.”
“아니에요. 그냥 친한 거지.”
시리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본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척하는 건가? 아리송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보면 본즈는 확실히 얘한테 뭔가 감정이 있는 것 같았는데. 시리우스는 제 감을 믿었다.
“소문엔 본즈가 널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마치 떠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물어놓고 시리우스는 뭔가 잘못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의 일인데, 내가 괜히 끼어든 건가.
“예? 본즈가 어쨌다구요?”
“아냐.”
다행히도, 로웨나는 시리우스가 던진 말을 제대로 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뭐,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이 더 좋겠지. 로웨나는 본즈를 순수한 친구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서로 간 편한 것이라면 굳이 내가 나서서 그 관계를 깰 필요는 없다. 시리우스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 * *
시리우스는 이제 로웨나와 어느 정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렇게 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나, 머글 연구 과제를 진행하면서 그녀에게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사그라졌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쳐다보기도 싫었던 여자애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간 열심히 진행한 덕에 대략적인 머글연구의 공통과제는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마지막 목차 정리를 위해 시리우스와 로웨나는 대연회장에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천문탑 무게의 비행기 같은 건 앞쪽에서 강조해야 발표에 흥미를 느끼지.”
로웨나에 의해 억지로 래번클로 테이블에 끌려와 앉은 시리우스는 그녀가 지어준 목차를 망설임 없이 수정했다. 래번클로 쪽에 앉아 있는 것이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연회장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너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뭐하냐?”
한참을 집중하고 있는 도중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시리우스는 고개를 들었다. 제임스가 생글거리며 그의 옆에 앉았다. 시리우스는 뭔가 불안했다. 제임스는 재밌는 것을 발견한 표정으로 로웨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너 로웨나 래번클로지?”
제임스가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로웨나 블루로즈에요.”
그녀는 눈도 돌리지 않고 당돌하게 대답했다. 제임스는 분명 래번클로 여학생과 어울리는 그를 놀리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위해 일부러 제임스로부터 시선을 돌렸으나, 그는 집요하게 시리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프린스 블랙, 프린세스 래번클로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저리 꺼져. 공부하는 거 안보이냐.”
으르렁거리듯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제임스가 또 어떤 장난을 칠지 몰랐다. 애초에 싹을 잘라 놓아야지. 그는 제임스의 말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않고 목차를 적는 것에 몰두했다.
“어젯밤에도 저와 한방을 쓰셨으면서, 이런 식으로 저를 홀대하는 법이 있으십니까?”
시리우스의 시큰둥한 태도에 제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마치 정혼자에 대한 수절을 지키는 중세의 귀족가 여식이라도 되는 듯 시리우스의 앞에서 여자 목소리를 내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관심을 던질수록 더 신이 나서 장난을 쳐대는 제임스의 습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시리우스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쳐다보지도 않고 양피지에 시선을 두었다.
그때, 깜짝 놀란 듯 로웨나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로웨나의 비명에 시리우스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브, 블랙 선배! 포, 폼프리 부인을…”
시리우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배에 칼을 꽂고 죽은 사람 마냥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 진짜 무슨 일인가 했잖아. 분명 쓰러진 척하는 모양이 제법 그럴 싸 하긴 했다. 그래도 저게 장난감이라는 것 정도는 알지 않나. 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제임스의 저런 장난에 쉽게 속아 넘어가다니, 역시 애가 좀 순진하네.
“폼프리 부인은 무슨.”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임스의 배에 꽂혀 있던 장난감 칼을 빼냈다. 제임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번쩍 뜨고는 애절함을 호소하며 시리우스에게 엉겨 붙기 시작했다.
“소녀, 왕자님께서 절 구해주실 줄 알았사옵니다! 역시 왕자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관심이 없소.”
시리우스는 이를 악물며 제임스를 떼어냈다.
“그러니 이제 좀 정신 차리고 꺼져주지 않겠나?”
제임스는 낄낄대며 시리우스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로웨나를 흘끔 바라보고는 마치 그녀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래번클로양 진짜 귀엽다. 아까 벌떡 일어나는 거 봤어? 흰 토끼가 팔짝 뛰는 것 같더라.”
“아, 아 전… 진짜 칼인 줄 알고…”
로웨나의 흰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제임스의 장난에 속아 넘어간 것이 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제임스가 그녀에게 로웨나 레빗이라고 놀려대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은 터질 것 같이 달아올랐다. 웬일인지 시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며 기분이 나빴다. 제임스는 어떤 여자에게든 저렇게 실없이 장난을 치는 부류이지 않던가. 자신의 앞에서는 딱딱한 말투로 응대하던 로웨나가 제임스의 장난기 섞인 말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 널 닮은 토끼, 선물.”
제임스는 능숙하게 변신술 마법을 써서 생크림 케이크를 흰 토끼 인형으로 바꾸었다. 제임스가 의식적이든 아니든 여자를 홀릴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시리우스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저도 모르게 제임스에게서 토끼 인형을 빼앗은 시리우스는 이를 제임스 쪽으로 던지려고 했다. 눈치 빠른 제임스는 시리우스가 다음에 할 행동을 예측이라도 한 듯,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바로 도망쳤다. 그는 떠나면서도 로웨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레빗양, 다음에 봐!”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눈 사이면서 뭐 저렇게 친한 척이래. 시리우스는 속으로 불만을 토해내며 토끼 인형을 도망가는 제임스 쪽으로 던졌다. 상공을 선회하는 인형에게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이는 다시 원래 생크림 케이크로 변해 포물선을 그리며 제임스 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제임스는 이를 능숙하게 피해버렸고, 바닥으로 떨어진 케이크는 형태를 잃은 채 처참하게 늘어졌다. 아, 맞출 수 있었는데. 시리우스는 어쩐지 그가 너무 얄미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리우스, 잠깐만요!”
당장에라도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으로 달려가려는 그의 옷깃을 로웨나가 붙잡았다.
“이거 다 하고 가셔야죠.”
시리우스는 저의 망토 끝을 잡아당기는 로웨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토끼 같은 눈망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제임스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말투와 표정에서 철저하게 사무적인 어조가 묻어났다. 그는 어쩐지 기분이 상해 그녀에게 투덜거렸다.
“아까 제임스한텐 얼굴까지 붉히면서 상냥하게 대하더니.”
그렇게 속내를 내던져 놓고도 시리우스는 제가 한 말이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상냥하게 대하든 말든 사실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죠.”
로웨나는 시리우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마지막으로 목차를 정리했다.
“프린세스 래번클로? 나도 그렇게 마음에 없는 말 해줘?”
“됐고, 끝났으니 얼른 가세요.”
그녀는 깃펜을 놓고 그에게 완성된 목차를 내밀었으나, 시리우스는 이를 받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로웨나는 그를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보내려는 듯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시리우스는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종류의 칭찬이라도 해주면 나에게도 친절히 대해주겠다, 이건가? 괜히 장난기가 돌았다. 이럴 땐, 직접 해봐야 하는 거지.
로웨나의 대찬 요구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시리우스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에 놀란 로웨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시리우스는 로웨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로웨나 공주님, 오늘 진짜 예쁘네.”
이 정도면 반응이 좀 오려나. 시리우스는 한 마디 던져놓고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평온해 보이던 로웨나의 갈빛 눈동자에 살짝 흔들림이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순식간에 로웨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시리우스는 알았다. 지금 그녀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장난 한번 쳐본 것뿐인데 로웨나의 반응이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 시리우스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
“너, 얼굴이…….”
시리우스는 단번에 폭소를 터뜨렸다. 그가 웃으면 웃을수록 그녀는 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귓불까지 새빨개진 채 창피함을 감추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반응이 무척 재밌었다. 시리우스는 오랜만에 이렇게 크게 웃어보는 것 같았다.
“얼른 가라구요!”
로웨나가 시리우스를 등 뒤에서 밀기 시작했지만, 그는 그녀가 본인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서 뒤에 숨은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리핀도르 테이블 방향으로 밀어 그를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애쓴다, 진짜. 시리우스는 낄낄거리며 일부러 밀려주었다.
“푸핫, 웃겨 미치겠다… 너 진짜 놀려먹는 재미가 있네.”
시리우스는 끝까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돌아갔다. 그는 로웨나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일부러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로웨나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조금 전의 일이 상기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제 시선을 피하려고 바둥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시리우스는 한참을 혼자 피식거렸다.
로웨나는 결국 테이블 반대쪽에 앉아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리우스는 나른하게 미소 지었다. 얼굴이 붉어진 주제에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그녀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제임스가 옆에서 정신 나갔느냐고, 왜 이렇게 혼자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 대냐고 뭐라 하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뭐, 가끔 이런 날도 있지 않겠어.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시리우스는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 *
마침내 제임스도 애니마구스에 성공했다. 그는 제법 늠름해 보이는 수사슴으로 변했다. 그의 뿔은 보통의 사슴의 것들보다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시리우스는 그에게 프롱스(Prong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수사슴으로 변한 제임스는 그 별명이 꽤나 마음에 든다며 방방 뛰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함이 넘치는 사슴이 뒷다리를 흔들며 방정맞게 몸을 흔드는 모습은 제법 볼만했다.
제임스의 성공을 축하하며 그 날 주말은 호그스미드를 방문했다. 나온 김에 시리우스는 머글 물품을 파는 상점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이번 머글 연구 과제를 위한 모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진으로만 보던 비행기 모형을 한 번 들어 올리며 유심히 살폈다. 이 정도 크기면 발표 때 사용하기에는 적당할 것 같은데. 시리우스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할 발표를 한 번 시연해보았다.
“이게 뭐야?”
리무스가 흥미로운 듯 그가 쥐고 있는 모형을 바라보았다.
“비행기.”
“아, 이게 비행기야?”
그는 시리우스가 들고 있는 비행기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살폈다.
“이게 어떻게 마법도 없이 뜬다는 거지? 참 신기하네.”
시리우스는 발표를 준비한답시고 줄줄 외워두었던 비행기의 작동원리에 대해 그에게 쏟아낼까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어쩐지 그런 모습이 로웨나를 연상시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리무스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시리우스는 비행기 옆에 있던 자동차 모형을 들어 올렸다. 로웨나를 생각하니, 며칠 전 패드풋의 모습으로 로웨나와 나누었던 대화, 아니 로웨나의 일방적인 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녀는 검은 개의 모습을 한 그에게 슬러그혼 교수의 민달팽이 클럽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신나게 자랑하고 갔다. 그 과정에서 머글 출신으로서 제가 받는 핍박에 대해서 한참을 칭얼거렸었다.
그녀의 출신으로 인한 차별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 내에서도 순수혈통과 아닌 사람들 간의 미묘한 계급적 인식이 있는 것을 보면 뭐, 내가 무관심해 왔던 것 같기도 하고. 시리우스는 자신이 정의를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진짜 머글 출신이 아닌 이상 그들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밖에 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는 것인가. 시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시리우스는 문득 그녀가 언급했던 케플러 경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학년 수석에게만 대화를 허락한다는 그 초상화. 시리우스는 그 얘기를 꺼내며 로웨나가 미묘하게 불편해했다는 것을 감지했었다. 차석인 그녀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시리우스는 케플러 경 초상화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교육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로웨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프롱스.”
시리우스가 제임스를 불렀다. 그는 머글들이 사용하는 타자기를 유심히 구경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제임스가 고개를 들어 명랑한 어조로 대답했다.
“왜 부르나, 패드풋.”
“래번클로에 굉장히 재밌는 초상화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시리우스는 이것이 충분히 제임스의 흥미를 돋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장난 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리우스는 저들이 꿈꾸던 도안이 어긋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했다.
* * *
어느새 퀴디치 시즌이 돌아왔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이 맞붙었던 이번 학기 첫 퀴디치 경기에서 결국 슬리데린이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도 그리핀도르 응원석에는 슬리데린 몰이꾼의 블러징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그 속에서도 미묘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그리핀도르가 져서 성질이 나긴 하는데, 반면 레귤러스가 그리핀도르 몰이꾼을 완벽히 수비하며 골든 스니치를 잡았던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친구들을 먼저 보낸 시리우스는 슬리데린 퀴디치 선수 대기실 앞에서 레귤러스를 기다렸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레귤러스가 슬리데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곧 그는 멀리서 자신의 형을 발견한 것 같았다.
시리우스를 본 레귤러스는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기숙사에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다. 시리우스는 먼발치에서 조용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금방 다른 슬리데린 학생들과 헤어진 레귤러스가 시리우스의 근처로 다가왔다.
시리우스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걸어오는 레귤러스를 바라보았다.
“잘했어, 레그.”
시리우스는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바로 앞에 선 레귤러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귀여운 동생이 온전히 노력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거두고 교내에서 신망을 얻으려는 모습이 항상 기특했다.
하지만 레귤러스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형.”
레귤러스가 말했다.
“아버지랑 화해 안 할 거야?”
시리우스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 이야기가 당연히 언급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형제간의 우애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바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레귤러스는 애초에 자신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레그.”
“왜 답장조차 하지 않는 거야.”
레귤러스가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물었다.
“정말 가문과 연을 끊을 생각인 거야?”
“난, 확실히 아버지께 말씀드렸어.”
시리우스가 최대한 온화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난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 호울러를 보내시든 뭐든.”
시리우스는 오리온 블랙이 죽음을 먹는 자 중 하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그는, 당연히 자신의 길을 따라와야 한다고 믿었던 아들에게 이를 철저하게 숨길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겉으로는 순수혈통의 긍지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는 자신의 아버지가 부정한 결단을 내리는 보고 시리우스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시리우스가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실임을 가르쳐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절대 제 아버지의 비도덕적인 결정을 용서하고 묵인할 수 없었다.
“형…….”
레귤러스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지 마. 아버지는 절대 물러서시지 않을 거야.”
어찌 됐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확고하고 굳은 태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시리우스는 제 신념 상 아버지의 행동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리우스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길 바랐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뉘우쳤으면 했다. 타고난 슬리데린인 그가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명백히 부정의해 보이는 것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악랄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시리우스가 그에게 가지는 최소한의 기대였다.
“그냥 형이 이해해주면 안 될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족 어떤 사람에게도 미안한 감정을 가져본 적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 레귤러스만큼은 예외였다. 그를 생각하면 시리우스는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모든 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바탕을 둔 판단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저의 동생은 어쩐지 마음의 가책처럼 남아 있었다.
시리우스는 그를 향해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형의 단호한 태도에 레귤러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미 그는 몇 번 시리우스에게 애원한 적이 있었다. 애원뿐만 아니라 설득도 해보고, 투정도 부려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형은 일관적으로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형은 이기적이야.”
살짝 화가 난 듯 레귤러스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줄 순 없어?”
그의 동생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말을 한결같이 따랐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판박이라도 되는 것처럼 흠 없이 완벽하게 굴려고 노력해오지 않았던가.
시리우스는 자신의 동생을 사랑했지만, 자신과 동생의 가치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불화와 혼란은,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접점을 조율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레귤러스가 가지는 기준과 잣대는 가문이었다. 그것이 그의 뿌리였고, 그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에게는 그 역할이 자신이 가진 정의였다.
대부분의 그 나잇대 어린 소년들에게 있어 성장의 토대는 부모님이나, 가족이나, 자신의 꿈이기 마련이었다. 이를 모두 부정한 시리우스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판단과 가치관밖에 없었다. 일종의 제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레귤러스는 시리우스의 기초와 토대를 굽히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아직 어렸고, 이를 받아들일 만큼 탄탄하게 자라지도 못했다. 애초에 레귤러스의 요구는 그로서는 절대 수긍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대화는 어떤 결론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화가 난 레귤러스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를 떠났다. 둘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갈등만 더 깊어졌을 뿐이었다. 어찌 답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시리우스는 씁쓸한 기분만 들었다.
* * *
며칠 후 머글연구의 수업에서 준비한 과제의 발표가 있었다. 당연히 시리우스는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빌헬름 교수는 어떤 발표자에게도 하지 않았던 극찬을 보였고, 학생들은 이전보다 더 선망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는 물론 자신이 문제없이 완벽하게 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저를 향한 로웨나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는 한량이라도 보듯 무심했던 그녀의 눈길에서 그에 대한 신뢰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시리우스는 괜히 뿌듯해졌다.
머글 연구 수업을 마치자 시리우스는 손을 다친 로웨나를 위해 자연스럽게 교과서를 들어주었다. 몇 번 거부하던 그녀는 아예 포기해버렸다.
“발표 하나 끝내니까 진짜 성취감이 드네요.”
“넌 뭐 발표 한 마디라도 했냐.”
“수업 질문에 대신 대답했잖아요.”
로웨나와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시리우스는 나른하게 웃었다. 그녀는 제법 재밌는 여자애였다. 건드리면 으앙, 하고 울어버릴 것 같이 유약하게 생겨서는 저의 농담에 이를 악물고 번번이 달려드는 것이 고깝고도 앙큼했다. 마치 닿지 않는 손으로 나무에 열린 열매를 한 번 따보겠다고 낑낑대는 다람쥐 같기도 했고, 그가 얄밉다는 듯 분을 참지 못해 씩씩댈 때는 성질난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려주고 싶은 애완동물처럼 굴다가도, 의외로 자기 할 말 다하면서 당돌하게 나올 때는, 시리우스 저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갭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시리우스는 그녀에게 별 의미 없는 장난을 치며 로웨나가 어떻게든 말로 이겨보려고 바동대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했다. 한참을 그와 투닥거리던 로웨나가 이를 악물었다.
“제가 열 받는 게 재밌죠, 지금?”
“응. 안 지려고 덤비는 게 꽤 재밌어. 볼만해.”
패드풋의 모습으로 로웨나의 속마음을 얼추 들은 그는 이제 그녀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온갖 걱정은 다 하고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시리우스는 괜히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흘끗 내려다보니 그녀가 또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리우스는 그것도 재밌었다. 스킨쉽에 익숙하지 않은지 로웨나는 이렇게 조금이라도 닿으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곤 했다. 별 사이도 아닌 주제에 그렇게 접촉하는 것이 혹여 불쾌할까 봐 자제하고 있었지만, 가끔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보고 싶어서 시리우스는 괜히 그녀를 툭툭 건드려보곤 했다.
연회장 입구에는 본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제법 빠르게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블랙 선배님.”
오호라? 시리우스는 로웨나를 자기 쪽으로 당기는 본즈를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로웨나는 저와 오늘 점심을 함께하기로 되어 있어서, 이만 래번클로 테이블로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본즈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로웨나의 마음이 어찌 됐든 본즈가 그녀에게 단순한 친구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는 이럴 때면 괜히 놀려주고 싶었다.
“여자 친구 안 뺏어가니까 걱정 마시죠, 본즈 후배님.”
그가 능글거리면서 말하자, 오히려 로웨나가 소리를 빽 지르며 덤벼들었다.
“여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엿가락다리 저주를 퍼부을 거예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러다가 너랑 마법사 결투라도 해야 할 기세인데?”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농담 한 번 던졌다고 과하게 반응하기는. 시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본즈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별 표정변화가 없었지만, 시리우스는 그의 기분이 매우 나빠졌음을 알아차렸다. 블루로즈, 너무 확고하게 본즈와의 사이를 부정하는구나. 본의 아니게 그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았지만 뭐, 어때. 애초에 적의를 먼저 보인 건 본즈였다.
그는 진정하라는 듯 로웨나의 어깨를 한 번 툭툭 치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1. 의견을 수렴해서 타이틀은 외전 마지막 편까지 받도록 하겠습니다. 전편을 통해 의견 주신 분들, 혹시 진행되는 도중에도 생각나시는 게 있으면 추가해주셔도 됩니다. 이미 생각해 주신 것들만으로도 다들 예뻐서 매 회차마다 다 다른 타이틀로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요!
2. 외전은 본편 진행 없이 8회 연속갑니다. 이렇게 긴 이유에 대해서는 시리우스 외전을 끝내고 썰을 풀도록 할게요. 본편 진행분 궁금하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네모네이드님, 제 필명 김90은, 10이 되기에는 모자란 9라는 숫자의 불완전함이 좋아서 지은거랍니다. 9와 10을 합해서 아흔이 되었어영!
+ 제가 업데이트 고지를 미리 하지 않으면 다음 날 00시에 올라온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음 회차는 아마도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00시에 올라갈 듯 싶습니다. 그때 뵙도록 할게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