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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11)
나는 애써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으나, 선명하게 떠오른 감정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언젠가는 저 실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흐려진 리들 교수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그가 이름 그대로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친 듯하자, 리들 교수는 자연스레 나를 제 품에서 놔주었다. 찬 기운에 도는 복도에 서서 나는 눈가에 범벅된 눈물을 훔쳐냈다. 눈물을 닦아낸 덕에 더 선명해진 시야에 리들 교수의 셔츠와 외투의 카라가 들어왔다. 먼지 하나 없이 단정한 평소와는 달리 내 눈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한참을 울고 나니, 쌓아둔 것을 폭발이라도 시킨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부정할 수 없게도 나는 리들 교수의 앞이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울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 고통의 근원에게만 오직 솔직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스스로의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좀 진정됐나.”
리들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와는 다른 어조라서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선이 뚜렷한 입술과 부드럽게 이어진 콧대를 따라 속내조차 짐작할 수 없는 차분한 눈동자에 내 시선이 닿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낮게 한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리들 교수의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져 아래로 쏟아졌다. 거기에 어떠한 감정적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가 무엇인가를 절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처럼 굴지 마라, 블루로즈.”
분명 비난이 담겨 있었지만, 이전보다는 다소 유한 목소리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우는 동안 리들 교수가 제 품속에 있는 나를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확실히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태도였다.
그건 일종의 위로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나를 위로하려 들었던 거지? 나는 내 앞에서 망토를 추스르고 있는 리들 교수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그에게 어떠한 배려를 받아본 적도 없었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불필요한 것에 기력을 소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는 어떤 필요와 목적에 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의 귓가에 속삭였던 나에 대한 평가가 머리에 스쳤다. 리들 교수는 내가 쓸모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진실과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다.
“너는 너무 유약해.”
그는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뇨?”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네가 이를 감당해낼 힘이 없다면.”
리들 교수의 목소리는 심지어 어조의 높낮이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간결했다. 그의 말에서 나의 상처에 대한 어떤 존중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함이 절로 묻어나왔다. 자기 일이 아니라 이거지. 그게 더 기분 나빠 나는 다소 거친 어투로 그에게 대들 듯 말했다.
“그럼 제가 무능했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평소와는 달리 격한 반응이었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설령 일부분이라도 그 원인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그의 냉정한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들 교수가 위로라도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다 착각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인 척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종의 사고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불안한 나의 정신상태에도 적절했다. 거기에 내 책임의 소지는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 선에서 이루어진 자기합리화를 뒤흔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왜인지 리들 교수는 나의 반항적인 태도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참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냉랭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리들 교수가 느리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게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군요.”
내 어조는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내 태도가 우리 사이의 위계에 있어 도를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리들 교수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들은 명백한 악이었고 나는 피해자였다. 거기에서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찾아낸단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
리들 교수는 이미 내 내면의 생각들을 모조리 읽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절대 죽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나를 내버려둘 수 있나? 이제 나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평소에는 할 수 없던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해요.”
나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나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한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됐잖아.
참을성 있게 내 말을 들어주던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선이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해.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최선은 단지 허울뿐이지.”
그의 눈동자는 언제 감정이 담겼냐는 듯 다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항상 그래 왔듯 내 태도는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그에게 비난의 말을 던지려는 순간, 리들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앞으로 이보다 더한 것을 겪을 수도 있다.”
그는 다소 느리지만 분명하게 물었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할 건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이를 강조하는 것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출발선에 서 있었다. 적어도 마법사 세계에서 나는 일종의 소수자였다. 앞으로 나를 향할 핍박이 어떠한 종류의 것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겪은 것은 그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그의 말이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것이 그저 단면에 불과하다면 대체 나는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을 더 견뎌 내야 하는 건가.
“나는 준비되지 않은 자의 무능함은 용서할 수 없어.”
리들 교수의 목소리에 평소와 같은 서늘함이 섞였다.
“그것이 내 손 속에 있는 것이라면 더욱.”
순간적으로, 그의 눈길이 나를 단단하게 휘어 감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제 소유의 것에 표식이라도 남겨두는 것처럼. 짧은 찰나였지만 나는 리들 교수가 나를 옭아매고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모조리 잊어버려도 좋아.”
그러나, 그 느낌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그라들었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특유의 담담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내던지듯 뱉어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해라.”
리들 교수는 마치 내 머릿속에 이를 세기기라도 할 듯 강조했다.
“네가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일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 * *
나는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나나 데이지가 휴게실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기숙사 방에 혼자 있을 수 있었다. 창가 사이로 겨울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나는 괜히 찬 공기가 도는 창문 틈으로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벽난로의 온기로 따스했던 손가락 사이에 시린 바람이 불었다.
리들 교수는 원한다면 오블리비아테를 써주겠다고 말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모든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일까. 그는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가 왜 나에게 기억을 수정해준다는 친절까지 베풀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의 제의에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고통을 회피하겠다는 이유로 내가 처절하게 깨달았던 이 교훈을 잊어버린다면,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또 무력하게 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나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닫고 있었다.
리들 교수는 내 거절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내가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한마디 던졌을 뿐이다.
* * *
다음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 식사를 했다. 아이작은 나를 배려해 주려는 듯 평소처럼 나를 대했지만, 태도가 약간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척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었다는 듯 우리의 하루는 다시 평소처럼 흘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필리다에게 예상치도 못했던 소식을 들었다. 시리우스가 3일간의 감금 징계를 받았다는 소리였다.
“시리우스가?”
나는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 필리다에게 되물었다. 감금 징계는 웬만큼 심대하게 엇나간 일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내려지지 않았다.
“시리우스가, 왜 징계를 받은 거야?”
“슬리데린의 뮬시버랑 애버리랑 엄청 싸웠대.”
그녀의 말에 나는 표정이 굳었다. 그들과 그리핀도르인 마루더즈 무리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까지 그들이 징계를 받을 정도로 심하게 충돌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근데, 그게 싸운 정도가 아니라…… 블랙의 일방적인 폭행 쪽에 가까웠다는 거야.”
필리다가 비밀이라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뮬시버랑 애버리한테 저주마법을 심하게 퍼부었나 봐.”
걔들 며칠 병동에 입원해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야. 필리다는 티스푼으로 호박 쥬스를 휘휘 저었다. 나는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리핀도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리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리무스라도 찾아보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이상한 건, 대체 왜 그랬냐는 질문에 시리우스 블랙이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지.”
마루더즈는 연회장에 없었다. 순간, 나는 내 충동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으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에 관해 궁금해할 자격은 없다. 궁금하더라도, 알아야 할 자격도 없었고. 굳이 리무스에게 가서 시리우스에 관해 물어보는 것 또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임은 당연했다.
필리다는 심지어 시리우스가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왜 그랬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며 흥분했다. 그의 침묵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녀가 학생들 사이에 도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드디어 블랙가 특유의 괴팍하고 폭력적인 본성이 드러난 거라고 말이 많아…… 그리핀도르라 해도, 그도 블랙인 거라고.”
필리다는 그렇게 말하고 나의 눈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시리우스와 친했다는 걸 아니까. 그런 말을 옮기는 것이 나에게 눈치가 보일 것은 당연했다.
“근데, 로웨나.”
필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너 근데 시리우스랑 싸웠니?”
“음… 그런 것 같아.”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또?”
“또라니.”
“예전에도 한 번 둘이 싸했을 때 있었잖아.”
나는 대답 없이 딴청을 피우며 포크로 파운드 케잌을 조금 덜어냈다. 별로 식욕도 그렇게 돌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무엇인가를 입안에 집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단 말야.”
“뭐가?”
“너희가 싸울 게 뭐가 있다고 싸워?”
그녀는 포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조잘대듯이 말을 이어갔다.
“싸움이란건 말야, 양 방향적인 행위라구. 한쪽이 싸움을 걸면 받아줘야 다투고도 하는 거야. 넌 누가 싸움을 걸어도 잘 응대하지 않는 타입이잖아. 그렇다고 해서 시리우스 블랙이 너에게 감정적으로 굴 것 같지도 않…….”
필리다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던 그녀가 말을 멈추고 대뜸 질문했다.
“시리우스랑 무슨 일 있었지?”
무슨 일 정도가 아니지. 나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필리다가 나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시리우스가 고백이라도 했어?”
“어?”
순간 나는 포크질을 잠깐 멈추었다. 예리한 그녀는 나의 단순한 동작 하나만으로도 속내를 그대로 짐작한 것 같았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말했다.
“했구나.”
이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내뱉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필리다가 꽤 눈치가 빠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이렇게 추측해낸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와 시리우스의 대화를 어디선가 엿들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뻔한 거 아냐?”
두 개의 디저트 중 한참을 고민하던 필리다가 마침내 초콜릿 타르트를 선택했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그녀가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시리우스 블랙, 항상 연회장에서 너만 쳐다보고 있어.”
◈ ◈ ◈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절망감에 깊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보라색 로브를 두른 덤블도어 교수님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대연회장에 모인 호그와트 학생들은 모두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같은 고통 속에서 우리는 쉽게 무너지고 말죠.”
질서 정연하게 앉은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다가 건너편의 교수 테이블에 눈길이 멈췄다.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연회장의 교수 테이블에는 항상 보이던 교수님들 외에도, 위즌가모트의 위원장인 아멜리아 본즈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이작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자주 듣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40대 초반 가량의 연령대로 보이는 그녀는 아이작의 백금발 보다는 약간 짙은 갈빛이 도는 금발을 단정하게 틀어 올리고, 위즌가모트의 위원장 복장 그대로의 공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아함 가운데 딱딱하면서도 엄격한 분위기가 풍겼다. 동공이 짙은 벽안의 눈동자에는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 특유의 엄밀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분, 이러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이며, 때로는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고,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고통스러운 겨울이 영원할 것 같더라도, 언젠가 다시 봄이 돌아옵니다.”
그의 말은 매끄럽고 부드러웠으며 설득력 있었다. 평소의 기교 넘치는 장난기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어조에는 청자로 하여금 어떻게든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분명 뛰어난 연자였다. 나도 예전에는 그의 연설에 항상 깊은 감동을 받았던 학생들 중 하나였다. 이미 반쯤 감명한 몇몇 학생들은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였다.
“그간 호그와트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시련을 극복해냈습니다.”
그가 반달모양의 안경을 살짝 들어 올렸다. 거의 팔꿈치까지 길게 그린 은빛 수염과 길게 구부러진 코 사이로 덤블도어 교수님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드디어 ‘비밀의 방’이 닫혔습니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덤블도어 교수님을 쳐다보았다. 학생들 사이에 낮은 술렁임이 일었으나, 다시 잦아들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암울한 시기, 모두를 불신에 몰아넣고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던 비밀의 방은 세 명의 습격자를 내고 그대로 닫혔다. 학생들을 습격했던 것은 900여 년의 세월 동안 비밀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던 바실리스크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원인이 무엇인지 드러나자, 기절한 학생들은 해독제로 다시 깨어났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숨죽었던 호그와트에 다시금 희망의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 학생의 용기와 지혜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순간입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로웨나 블루로즈 양.”
덤블도어 교수님의 부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작과 잠깐 눈을 마주친 후, 나는 담담한 자세로 대연회장의 교수용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각자의 기숙사 테이블에 앉은 모든 학생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용 테이블 쪽에서는 플리트윅 교수님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슬러그혼 교수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신뢰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씁쓸한 기분을 숨기며 나는 정면의 덤블도어 교수님 근처로 다가가 조용히 그의 앞에 멈추었다.
“블루로즈양은 학교 내에 열린 ‘비밀의 방’ 사건을 무사 해결한 업적을 인정받아 호그와트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비밀의 방을 열었다는 죄로 애버리와 뮬시버는 퇴학당했다. 그들은 덜덜 떨면서 저들이 뱀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비밀의 방을 어떻게 열긴 했으나, 안에 있는 바실리스크는 길들일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정체를 용감하게 밝히고 바실리스크를 처치한 정의로운 학생이 되었다.
“역경에 부딪혀 고난을 극복해 본 사람만이, 자신의 참된 능력을 알게 되는 법입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푸른 눈이 나를 응시했다.
“바실리스크를 무찌른 블루로즈 양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리들 교수는 나에게 바실리스크를 죽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바실리스크가 어떠한 약점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비밀의 방에 내려가서 그가 가르쳐준 대로 수탉을 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바실리스크에게 공격 마법을 걸었다. 리들 교수는 그 과정 모든 것을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독했다.
나에게 그의 명령을 거부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리들 교수는 비밀의 방을 발견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고, 무엇보다 그는 내가 바실리스크를 처치하지 않을 경우 다음 희생자는 단순히 몸이 굳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나는 순순히 그의 명령에 따랐다.
이윽고 덤블도어 교수의 연설이 마치고, 아멜리아 본즈가 단상에 올랐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희생자가 될 수 있지만, 거기에서 지혜를 얻어 더 성숙한 모습을 갖출 수도 있습니다.”
아멜리아 본즈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가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른다. 리들 교수가 어떤 방식으로 뮬시버와 애버리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것인지, 그들이 어떻게 저들이 했다고 말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조작했을 수도 있고,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했던 행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대신 뒤집어써 퇴학을 당하는 것에는 불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게 괴로웠던 나에게는 어느 정도 바람직한 결과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순수하게 통쾌해 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퇴학당한 이유는 악행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그저 억울한 누명일 뿐이었다.
본즈 위원장이 연설을 하다 말고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한동안 마법 세계를 달구었던 큰 사건이, 한 학생이 가진 재기와 총명함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학생들은 모두 그녀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법부 내에서 승승장구해 마법사들 사이에서 차기 장관감으로 낙점 찍힌 그녀의 연설을 듣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들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연설이 계속되고, 학생들이 아멜리아 본즈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분명하게 느꼈다.
리들 교수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하더라도, 나는 그중에서 리들 교수의 강렬한 눈길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나의 실체를 뚫을 듯 짙고 어두운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잡혀먹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나는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동물이었고, 피식자의 입장일 뿐인 나는 본능적으로 맹수의 눈빛을 의식했다. 절로 긴장이 일었다. 리들 교수의 시선을 견제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마법 세계는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든, 본즈 위원장은 연설을 계속했다.
“저는 블루로즈 양과 같은 학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설령 절망스러운 순간들을 견뎌내야 할지라도,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연설이 끝나며, 길게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아멜리아 본즈의 연설 후 덤블도어 교수님은 커다란 트로피를 나에게 안겼다. 나는 정중한 태도로 그가 건네는 트로피를 받아 들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교수님의 신호와 함께 기숙사 테이블에는 연회음식이 차려졌다. 엄숙했던 분위기가 풀리고 다시 연회장이 왁자지껄해졌다. 그간 억압되었던 감정을 표출하듯 학생들은 즐거움을 드러냈다.
단상에서 내려온 본즈 위원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작을 닮은 그녀의 푸른 벽안이 꿰뚫을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혼자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다니.”
단상 쪽에서 내려온 그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놀라울 정도의 실력이로구나.”
“운이 좋았던 걸요.”
눈을 내리깔며 내가 대답했다.
“전 그냥…… 수업 시간에 들은 바실리스크의 약점을 기억했을 뿐이에요.”
“듣던 대로 겸손한 아이로군.”
본즈 위원장은 지나가듯 말을 던졌다. 이미 그녀는 아이작으로부터 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레질리먼시를 사용해 내 머리를 침투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이를 감지하지 못한 척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이미 덤블도어 교수님으로부터의 레질리먼시에 대응했었던 전력이 있었다. 애초에, 나 같은 머글 여자애가 오클러먼시를 할 줄 알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은 아주 옅은 정도의 탐색만 하고 끝내곤 했다. 리들 교수가 나를 잡아먹을 듯 가르쳤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서로가 죽일 듯이 공방을 펼쳤던 그와의 레질리먼시에 비하면 사실상 본즈 위원장이나 덤블도어 교장님의 레질리먼시를 방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 그녀의 레질리먼시가 거두어졌다. 아멜리아 본즈는 나에 대한 의혹을 어느 정도 지운 것 같았다. 불신이 사라진 그녀의 눈빛에서 재능 있는 인재에 대한 욕심 같은 것이 비추어졌다. 교수님들이 가끔 나에게 가감 없이 드러내곤 하는 익숙한 눈길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앞으로 기대하마.”
특유의 차갑고도 단정한 미소를 한 번 보이고, 그녀는 곧 다시 교수 테이블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쥐고 있던 트로피에 시선을 돌렸다. 황금빛으로 도금된 트로피에는 마법으로 새겨진 짧은 글귀가 빛나고 있었다. 로웨나 블루로즈, 호그와트 특별 공로상, 1976.
나는 오늘따라 낯설어 보이는 내 이름을 말없이 응시했다. 나는 알았다. 이 상은, 호그와트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리들 교수와 마주했던 그 트로피 보관실에서.
* * *
“로웨나, 예언자 일보에 실린 네 기사 봤어?”
요한이 예언자 일보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얼마 전에 기자가 인터뷰했지만, 그것이 1면이 실리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에게 신문을 받아들고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어두운 시대, 비밀의 방을 닫은 머글 출신 소녀가 마치 세기의 영웅이자 희망이라도 된다는 듯한 내용이었다. 내가 타의 모범이 되는 우수한 학생이며,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과한 묘사가 나열되었다. 나는 필요 없는 부분들을 적당히 생략하며 빠르게 기사를 읽어 내렸다. 기자는 결국 덤블도어가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냈다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만으로 나는 예언자 일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조금 과장이 심한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신문을 요한에게 돌려주었다. 호그와트의 영웅이 하는 소리치고는 너무 얌전한 대답 아니냐고 요한이 낄낄댔다. 나는 별말 없이 그저 싱긋 웃어주었을 뿐이었다.
교내에는 퇴학당한 뮬시버와 애버리가 실종되었다는 뜬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 소문의 실체를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그런 소문과 전혀 관련이 없는 척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호그와트의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한 나는 래번클로 내에서 순식간에 아이작과 비등한 입지를 차지했다. 어둑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그간의 호그와트에서 악을 퇴치하고 정의를 바로 잡았다는 이유로 내가 얻었던 명예는 지금껏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학생들은 기숙사를 불문하고 모두 나를 흘끔거리며 선망의 눈빛을 보내고, 이전보다 훨씬 더 친근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후배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러 왔고, 선배들은 지나가면서 괜히 저와 친한 사이인 양 말을 걸었다. 점심시간에도 짜기라도 한 듯 내 주변에는 학생들이 모였다. 조금 피곤했지만 나는 그들을 일일이 상대해주었다.
한참 동안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그들과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나는 무심코 교수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회색이 도는 깔끔한 정복 차림의 리들 교수가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살짝 내리깐 그는 흠 잡을 것 없는 차분한 태도로 손에 든 커피잔을 입가에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리들 교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전히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애초부터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Part 4 The End.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본편 외전입니다. 누굴까여. 맞춰보세여. 맞추시는 분께 딱히 드릴 수 있는 건 없고.. 외전 타이틀을 정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당ㅋㅋㅋ
+ 내일은 쉬고 다음 연재일은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자정입니다. 그때 봐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