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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9)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나는 한참을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그는 마치 기숙사 통금시간을 맞추기라도 하는 듯 래번클로 기숙사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려 했다. 블랙이 아무리 내 망토 자락을 물어 기숙사 방향으로 끌어대도, 돌아가기 싫은 나를 억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블랙은 나를 포기하고 혼자 래번클로 탑으로 걸어갔다.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나는 그와 멀어질 수 없었고, 혹여 블랙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나는 그를 졸졸 따라갔다. 래번클로 탑에 도착한 블랙은 마치 배웅이라도 하듯 기숙사 바로 앞에 서서 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블랙을 데리고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굳이 방에서 잠들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이대로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랑 휴게실에서 같이 있으면 안 돼?”
나는 괜히 블랙을 살짝 밀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인 내 손길을 거부했다. 평소와는 달리 애원조인 내 부탁을 블랙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나를 래번클로 기숙사에 들여보낸 그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블랙의 단호한 태도가 너무 서운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도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 *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아직 세 번째 희생자는 없었다. 나는 아이작과 아침을 먹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호그와트의 분위기는 다소 정적이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특이할 만한 일 없이 고요하게 흘러갔다. 정신없이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할 때쯤 대연회장에서 시리우스를 발견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연회장에서 보이는 시리우스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자제하려 애써 노력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작과 변신술 교실로 향했다. 내가 변신술 교과서를 기숙사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 후였다. 세상에. 수업을 들어오면서 교과서를 잊고 있었다니. 한심할 정도로 내가 얼이 빠져있었던 모양이었다.
변신술 수업은 특히 필기할 것이 많았으므로 교과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폐를 끼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챙겨온 책들을 교실 자리에 놓고 아이작에게 말했다.
“아이작, 나 기숙사 들러서 변신술 교과서 좀 가지고 올게.”
“그냥 내 교과서를 같이 봐도 괜찮은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나는 내 책에 직접 필기하면서 수업을 듣는 것이 좋아.”
아이작은 나를 혼자 보내는 것이 여간 심려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당연한 듯 나와 같이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지금까지 대낮에 습격이 감행된 경우는 없었다며 그를 자제시켰다.
“청동 독수리의 문제를 풀 수 있겠어?”
아이작은 평소에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청동 독수리까지 언급해가며 핑계를 댔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어떠한 이유로든 나를 따라올 기세였기 때문에 나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둘 다 갔다가 늦으면 말해줄 사람이 없잖아. 혹시 수업 시작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면 교수님께 말씀드려 줘.”
나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맥고나걸 교수님께 내 사정을 잘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아이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제 의지를 철회했다.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변신술 교실을 나와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제일 중요한 교과서를 들고 오지 않았다니. 내가 이렇게 단순한 것들을 잊어버릴 때마다 스스로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아이작처럼 완벽하게 준비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허술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속으로 몇 번이고 나 자신을 타박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복도는 한산했다. 이 시간에 학생들이 복도에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레귤러스 블랙이 계단 끝에서부터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레귤러스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거지. 잠깐 의문이 들었으나 나는 곧 이를 지워버렸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그는 굳이 대화할 만한 접점이 없었고,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는 사이였다. 최근 내가 시리우스와 거리를 두기 때문인지 그는 나를 건드리지조차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를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머글 출신들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멍청한지.”
그의 말은 사실상 대화의 서두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비난에 가까웠다. 중얼거리듯 내뱉은 레귤러스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명백히 공격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 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의 어조에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뭐?”
그의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복도에는 나와 레귤러스,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나를 쳐다보는 레귤러스의 눈동자에서 적대의 감정이 흘렀다. 나는 못들을 것이라도 들은 것마냥 그를 쏘아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어 선 그는 마치 저보다 저급한 족속이라도 보는 듯 거만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자꾸 형 근처에 얼쩡거리는 거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제 불쾌한 장면을 목격해서 말이야.”
저절로 내 얼굴이 굳었다. 그가 어제의 시리우스를 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마치 내 사적인 부분을 그가 훔쳐보기라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레귤러스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
“굳이 형을 만나려고 이런 시기에 밤에 나돌아다니다니, 대단해.”
목숨을 걸기라도 했나 보지? 그는 한심하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내 행동에 대한 그의 해석에 어이가 없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레귤러스는 마치 내가 시리우스를 유혹이라도 하려고 일부러 밤에 나왔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았고,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내가 그에게 일방적으로 구애라도 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지극히 편파적이고 일방향적인 사고방식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블랙가의 일족에게 빌붙기라도 하면 네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레귤러스가 시리우스를 빌미로 나를 제어하려 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와의 관계에 대해서 제멋대로 유추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
“착각하지 마. 이건 시리우스와 나 사이의 일이고, 그가 블랙이든 아니든 여기선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반쯤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저에게 이렇게 맹랑하게 구는 것은 처음 본다는 듯 레귤러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가 왜 당연한 것을 그에게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시리우스와 있었던 일을 그에게 구구절절하게 보고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이렇게 대놓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나도 참고 있지만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보기에 너 지금 나에게 질투라도 하는 것 같거든.”
내가 듣기로 레귤러스와 시리우스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연유인지는 몰랐지만, 지금까지 그의 태도로 보건대 레귤러스는 시리우스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내 존재가 형제간에 남아있던 마지막 끈마저 끊어버리는 절대 악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나와 같은 머글 출신과 어울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내가 저들보다 못한 부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추지 않고 싸늘한 기색을 드러내며 내가 레귤러스에게 한마디 던졌다.
“형에 대한 애정은 본인에게 가서 갈구해. 내 앞에서 이러지 말고.”
내가 도발이라도 할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 그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차분했던 그의 표정에 불길이 일 듯 분노가 타올랐다. 화를 참지 못한 듯, 레귤러스는 그 자리에서 지팡이를 들었다.
“스투페파이!”
“프로테고!”
나는 방어막을 형성하며 그의 공격을 막았다. 레귤러스가 교칙을 위반해가며 나를 공격하려 드는 것을 보면, 그를 화나게 하려던 내 의도는 어느 정도 통한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공격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그대로 그의 저주마법에 당했을 것이다. 레귤러스는 순수혈통에 마법사로서의 자질도 우수한 편이었다. 그와 이렇게 맞붙었을 때 내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가 무자비한 저주 마법을 나에게 쏟아 붓더라도 나는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멀리서 그리핀도르 학생들 몇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레귤러스는 상당히 흥분했지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 교칙을 위반할 정도로 절제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마치 으르렁거리기라도 하듯 나에게 말했다.
“잡종 따위와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던 내가 잘못이었군.”
그리핀도르 학생들 쪽을 흘끔 쳐다본 레귤러스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망토에 지팡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몸 사리고 있는 게 좋을 거다.”
그는 서늘하게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도 그 이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폭풍우라도 한 번 지나간 것처럼 멍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시리우스와의 관계는 엉망이 되었는데, 그의 동생은 시리우스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저주마법을 날리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이유조차 없이 레귤러스에게 당했다. 그는 내가 무엇인가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몸 사리고 있으라고? 나는 레귤러스의 경고가 이제는 조금 가소롭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저주마법을 날릴지도 몰랐다.
* * *
리들 교수가 나를 부른 것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이 필요할 때에는 으레 그랬듯 그는 7층으로 나를 불렀다. 늦은 밤이라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7층 계단 앞에서 만난 그는 말없이 항상 실습을 진행했던 그 방으로 향했다. 황량한 복도에 우리의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렸다.
이번에 리들 교수가 만들어낸 방은 이전보다 작았다. 어떤 실습이 진행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방 크기로 짐작해 보건대 프로테고 때처럼 공방이 오가는 종류의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저주에 대한 방어가 이번 수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먼저 방으로 들어간 리들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웬일인지 오늘 그는 망토를 두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두운 톤의 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맨 채 다소 긴 기장의 롱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검은 코트에 어우러져 흘러내리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그 아래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드리워진 흰 목덜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리들 교수가 정교하고 완전한, 예술품의 한 조각 같은 외양을 가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의 수려한 외모를 보고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기고 있을 뿐, 그의 눈동자는 뜨거운 체온을 가진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디찬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정서적 안온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리들 교수의 가장 치명적이고도 위험한 결점이라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학기 초에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길에서 무언가 다정함을 감지했다는 것조차 이상할 지경이었다.
“방어마법의 구현에는 정도(正道)가 따로 없다.”
다소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그가 내뱉었다.
“거듭되는 연습뿐이지.”
벽에 걸린 횃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천천히 리들 교수는 품속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그가 어떤 말을 꺼낼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 어떤 것을 가르칠지 힌트조차 주지 않았다.
리들 교수가 높낮이가 없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겠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그가 한 걸음 다가왔을 뿐인데도 리들 교수와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제대로 방어해보도록.”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준비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지팡이는 그대로 나를 겨누었다. 나는 멍하게 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임페리오. 리들 교수가 중얼거리듯 주문을 외웠다.
그의 지팡이에서 안개와 같이 초록빛이 품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쇠사슬처럼, 무엇인가가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기분에 순간 당황했다. 마치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제어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내 몸에 대한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온전히 지배당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숨만 내쉬는 정도였다.
나는 놀란 눈빛으로 리들 교수를 응시했다. 나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가지고도, 그는 변함없이 차갑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서히, 나는 상황을 직시했다. 지금의 나는 물건이나 다름없는 객체에 불과했다. 그가 원하는 도구로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니, 속에서부터 무력감과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리들 교수는 어떻게 다룰지 궁리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의 눈을 현혹하는 야생화라면 과감히 움켜쥐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마치 내가, 땅에 뿌리 깊게 박혀 도망칠 수 없는 식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 생멸의 권한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육상의 동물에 의해 그대로 박탈당한 것 같았다. 그가 원한다면 나는 뿌리째 뽑힐 수도, 짓이겨질 수도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나는 그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처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서 있었다.
리들 교수가 나직하고 느린 어조로 말했다.
“네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숨소리가 순식간에 거칠어졌다. 그의 눈길이 나를 훑어지나 갔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발이 묶여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에서 그가 나에게 어떤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저지하지 못할 것이다.
내 마음대로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것 같았지만, 내 마음대로 몸을 떨지도 못했다. 나는 확실히 알았다. 그가 원한다면 나는 스스로의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왜 용서받지 못할 저주인지 깨달았다.
그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내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른 생각 말고.”
리들 교수의 숨결이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리들 교수는 주변에서 떠도는 위압적인 기류마저도 본인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의 명령에 따르는 마리오네뜨가 된 느낌이었다.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러한 행동 하나만으로 나는 평소와는 다른 위험신호를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리들 교수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차갑고 냉기가 흐른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빛에서 나는, 이전에는 한 번도 비춘 적이 없었던 이질적인 감정을 읽어 내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집중해.”
그가 내 볼을 살짝 감싸 쥐며 낮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생각했다.
리들 교수가 나를 살려둔 것은,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나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완벽하게 나를 조종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다. 그게 더 나를 두렵게 했다. 이제 나는 그에게서 벗어난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무력감만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겁에 질린 내 모습이 비쳤다. 그 순간, 그에게서 흘러나오던 무엇인지 모를 짙은 감정이 사그라졌다. 리들 교수의 표정에 다시 원래의 차가움이 드리웠다.
“아직 정신력이 부족하군.”
그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임페리우스 저주를 해제했다. 꽁꽁 묶여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내 몸은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억지로 경직되어 있었던 까닭인지 근육이 아릴 정도였다. 나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었다.
“임페리우스에 대한 방어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리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내뱉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는 투였다.
“지속적인 연습으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자동적으로 형성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을 휘감는 혼란 속에서 나는 간신히 호흡만 가다듬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온전히 그의 손에 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은, 나 스스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그 기분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정신력과 의지력이다.”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내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나는 숨을 고르게 내쉬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지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서 벗어날 기력조차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나는 리들 교수의 새까만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빛이고, 의지고, 희망이고, 그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어두운 심연을.
============================ 작품 후기 ============================
1. 하, 이제 팟4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끝나면...!
2. 원작에서의 임페리우스는 정신세뇌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린다면 정신까지도 완전히 술자의 컨트롤 내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리들 교수가 건 임페리우스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입니다. 원작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시전자의 능숙도에 따라 그 마법의 강도나 범위 또한 조절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3. 심리학적으로 방어기제는 제가 표현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방어기제'라는 표현을 단순히 외부의 마법적 공격에 대한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방어 태도의 형성 정도의 정의로서 사용하였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4. 로웨나가 왜 시리우스가 멍멍이 블랙과 동일인인지 모르냐? 라는 부분에 대해 답변 드릴게용. 애니마구스는 원작에서도 굉장히 고위 마법이고, 원작상 20세기에 등록된 합법적 애니마구스 7명 정도 밖에 없습니다.(포터모어 참조) 게다가 머글 사회에서 살아온 로웨나는 평생 본 애니마구스라곤 맥고나걸 교수님 뿐이구여.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애니마구스 일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얘한테 애니마구스는 주변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과서나 책에 나오는 것임당. 시리우스가 애니마구스라고 해도 뭣 헛소리에여?ㅋㅋ 하고 넘길걸여.
+ 다음 화 업데이트는 내일입니다. 이번 주말 내에 팟4를 끝내고야 말리라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