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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8)
이제 시리우스와는 인사조차 잘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복도에서 만나도 모르는 척 서로를 피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그래도 가끔 그리핀도르 쪽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종종 그와 시선을 마주치기도 했다. 아주 잠깐 눈길이 맞닿는다 하더라도, 시리우스의 눈빛에는 예전의 장난기나 친밀함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우리 둘 사이에 주고받던 실속 없는 농담 따먹기나, 장난스러운 대화가 그리워졌다. 이대로 영영 그와 멀어질까 봐 조금 두려웠다. 설령 우리가 어떤 발전 가능성이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와의 친분은 유지하고 싶었다. 그는 가장 힘들 때 내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이었다. 가끔 시리우스가 위로해 주었던 순간이 떠오르면, 급속히 불안이 일다가도 차분해지곤 했다. 더는 그런 위안조차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슬펐다.
나는 시리우스의 생각을 하며 연회장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곧 아이작이 도착하면 아침 식사를 하고 또 수업에 들어가야겠지. 비밀의 방이 열렸니 뭐니 소문은 무성했지만, 평소처럼 수업은 진행되었다. 교수님들은 오히려 학생들이 동요되는 것을 자제시키기 위함인지 더욱 열의 있는 태도로 강의에 집중했다. 다음 수업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올리비아와 이든 선배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걔가 그럼 비밀의 방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거야?”
“응. 지금 그리핀도르에서는 난리도 아닌가 봐.”
희생자? 정신이 확 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황급히 이든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요?”
“오, 로웨나.”
올리비아가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습격이 있었어.”
“습격이요?”
내 목소리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아침에 그리핀도르의 아니스 테일러가 2층 복도에서 발견됐데.”
“바, 발견됐다뇨?”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비밀의 방 때문에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평생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급격한 두려움이 나를 잠식했다.
“노리스 부인 때처럼 온몸이 굳어 있는 상태라던데.”
“죽지는 않은 건가요?”
반쯤 겁에 질린 내 모습이 이든 선배에게는 습격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으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위로라도 하는 어투로 대답했다.
“응, 그냥 그때처럼. 똑같아.”
“근데 왜 아니스 테일러였던 거지?”
“몰랐어? 테일러는 머글 출신이잖아.”
이든 선배가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가 나를 바라보고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창백해진 표정이 안쓰러웠는지 올리비아는 나를 토닥여주었다. ‘별일 없을 거야, 로웨나. 걱정 마.’ 그녀가 친절한 어투로 달래주었으나 내 불안과 죄책이 그 정도로 쉬이 가실 리 없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등장한 이후로, 비밀의 방이 열렸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몇몇 용기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이제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와 대화하는 것을 꺼렸다. 아이작은 호그와트 어디를 가든 나와 동행하려 들었다. 이미 머글 출신 학생에 대한 상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의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나에게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비밀의 방을 연 리들 교수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나를 살해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첫 번째 희생자가 생기자 예언자 일보에 비밀의 방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예언자 일보는 우선적으로 무능한 덤블도어 교장님을 비난했다. 그가 습격을 대비한 아무런 예방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밀의 방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더 큰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는 호그와트를 폐교하고 학생들을 귀가 조처 시켜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는 기사를 찬찬히 훑었다. 기사에 리들 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신문 기사라고 해서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구나. 내가 알고 있는 진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간 내가 읽어왔던 많은 기사들도 무수한 거짓이 내포되어 있겠지.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예언자 일보를 대충 접었다.
* * *
곧, 두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이번엔 래번클로 2학년 머글 출신 학생 세드릭 밀런이 습격을 받았다. 몸이 굳은 증상은 똑같았지만, 아직 그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나는 아이작과 함께 병동에 병문안을 갔다. 굳어있는 세드릭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폼프리 부인은 원인만 확실하게 밝혀지면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학생들을 위로했다. 혹시 이 아이가 영원히 이렇게 굳은 채로 남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너무 불안하고 신경이 쓰였다. 내가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영원히 망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누워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호그와트에 흐르는 불안감은 좀 더 고조되었다. 괴담처럼 떠돌고 있었던 공포가 실재가 되자, 학생들은 비밀의 방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학내에서는 서로 간에 불신이 떠돌았다. 학생들은 저의 옆에 앉은 친구가 혹여나 슬리데린의 후계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희생자가 될까 두려워 어떤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리 지어 다녔고, 혼자 복도를 다니는 것도 금지되었다. 기사에 난 것처럼 진짜 호그와트가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작은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나를 더 챙겨주었다. 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두려움에 시달렸다. 아이작은 친구로서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지만 내 마음까지 알아주지는 못했다. 내가 안고 있는 비밀을 생각한다면 사실 그것은 당연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죄악감의 무게로 항상 괴로웠다.
그나마도 낮에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밤만 되면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또 무고한 학생 중 하나가 오늘 밤 제물이 될지 몰랐다. 내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안하게 잠들 동안, 누군가는 습격을 당해 인생을 망쳐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내가 기댈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블랙이 필요했다. 나는 밤마다 호그와트를 떠돌며 그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블랙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이 침잠되었다.
혼자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나는 교칙도 무시하고 몰래 기숙사를 나왔다. 블랙을 만나지 못해 허탕을 칠 때가 더 많았지만, 적어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가 더 나았다. 래번클로 기숙사 입구를 지나와 교내를 한참 걷던 나는 정원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호그와트 성 3층 복도의 창가에 기대어 섰다. 혹시 블랙이 여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정원을 한 번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블랙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블랙을 찾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복도 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갑작스레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저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시리우스?”
창밖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건너편에 서 있는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셔츠의 목덜미 쪽의 두어 개의 단추를 풀고 그리핀도르 넥타이를 삐뚜름하게 맨 채 계단 근처에 서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단정하지 못한 차림이었다. 겉으로는 전혀 변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나를 향한 표정만큼은 예전과 달랐다. 미간을 찌푸리고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어떠한 장난기도 비쳐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가 원래 어떤 표정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부드럽고 단정했던 눈매가 오늘따라 더 무정하고 쌀쌀맞게 느껴졌다.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그에게 대꾸했다.
“블랙을 찾고 있었어요.”
“무서울 것이 없나 보네, 이 시간에.”
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나에게 한소리 했다. 나는 그의 대답에 입을 꾹 다물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말이라곤 나를 비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관계가 애초에 어떤 것을 기대할 만큼 좋았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는 못했다.
“혼자 돌아다니지 마.”
그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단호했다.
“요즘 호그와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을 텐데.”
시리우스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제물이 되기 가장 쉬운 머글 출신인 내가 밤중에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나를 꾸중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겼다. 말투는 싸했으나, 그가 나를 걱정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순간 나는 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시리우스가 나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지금 정도면 원래대로 돌아갈 만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그와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 이런 시기를 놓치면 영영 더 가까워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의 최소한의 관계는 회복하고 싶었다.
“시리우스, 어. 저.”
나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중얼거리듯 뱉어냈다. 그에게 말해도 될까. 싫어하지는 않을까. 조금 주저되는 마음에 말이 쉬이 나오지는 않았다.
“음…….”
“말해.”
그는 조용히 서서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려주었다. 마치 이전의 시리우스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를 배려해주는 그의 태도에 나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날 더는 보기 싫은 건가요?”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조금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무슨 얘길 하는 거지. 내뱉어놓은 말을 어떻게 주워담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정말 보기 싫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나를 걱정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겠다는 내 말에 이미 만 정이 다 떨어진 상태일지도 몰랐다.
“화가 많이 났어요?”
나는 괜히 그의 눈치를 보며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그는 내가 한심한 것임이 분명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이미 고백하고, 단호하게 거절까지 한 주제에, 마음을 다 정리하고 모르는 척하고 있었더니 슬금슬금 와서 화가 났느냐고 묻는다니. 사실 그에게는 이제 나를 향한 어떠한 감정도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두 정리해버리고 일말의 호감마저도 지워버린 상태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자신을 거절했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싫어졌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일 것 같았다.
그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머뭇거리던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겠죠.”
그가 낮게 숨을 내뱉으며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변함없이 무심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그의 따뜻한 눈동자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너무 슬펐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의 고통을 공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시리우스는 아예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겨우 내뱉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해요.”
나는 진심이었다. 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요즘 들어 항상 위태로워 보였으므로,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는 매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갑갑한 듯 자신의 넥타이를 목에서 살짝 끌어내렸다.
“날 어떻게 도와줄 건데?”
그의 무심한 목소리에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갈망을 감지해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시리우스가 내 팔목을 움켜잡더니, 자신의 쪽으로 나를 당겼다. 그대로 나는 그의 품에 안겼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올려다보며 황급히 말했다.
“왜 그래요, 시리우스?”
이렇게까지 푹 안겨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리우스의 단단한 품속에서 나는 그의 심장박동을 느꼈다.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장이 급하게 뛰고 있었다.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바짝 붙은 그에게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피하고 싶었으나 그가 벽에 기대어 마치 나를 가두듯 제 품에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뒷걸음질 칠 수도 없었다.
“나를 받아주기라도 할 건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그가 한마디 내뱉었다. 그의 숨결을 느끼며 나는 순간 블랙을 떠올렸다. 나는 그의 익숙한 체취가 블랙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속에 담겨있는 보드라운 포근함이 나를 감쌌다. 이상하게도, 그로부터 편안함과 불안함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리우스의 강압적인 태도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 그럼에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이러한 행동이 그의 진심은 아닐 거라는 무의식적 믿음 때문이었다. 시리우스는 마치 주인에게 상처 입은 동물처럼 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그를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나를 안고 있던 시리우스가, 내 몸의 떨림을 느꼈던 듯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그가 천천히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에게서 느껴지던 열기가 가시고, 복도의 한기가 다시 덮치듯 다가왔다.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깨달았다. 시리우스는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맞았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도 못하면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자는 것은 내 욕심에 불과했다. 나는, 그가 나에 대한 감정을 벌써 다 정리한 줄 알았다. 시리우스는 저를 받아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고, 친구라도 좋으니 친하게 지내자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이 그저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시리우스를 올려다보았다.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깊게 숨을 한 번 내쉬고 입을 열었다.
“얼른 기숙사로 돌아가.”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알았다. 이제 나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그를 받아주거나, 그를 내치거나.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도,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예전처럼 지내자는 말은 더더욱. 주먹을 꽉 쥔 채로,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래번클로 기숙사 쪽으로 걸었다. 내가 복도 끝에 닿을 때까지 시리우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그의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을지도 모른다.
나는 호그와트 밖으로 나왔다. 블랙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오늘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기숙사에 맘 편히 들어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에 찾아가서 리무스에게 블랙을 보여 달라고 애원하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정신을 놓은 것처럼 호숫가 근처를 헤매며 블랙을 찾았다. 여기에라도 그가 있어야 했다. 추위에 온몸이 떨릴 때까지 나는 블랙을 찾아 헤매었다.
한참을 근처를 돌아다닌 끝에, 내 앞에 마치 누군가가 소환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블랙이 나타났을 때, 하마터면 나는 그의 앞에서 펑펑 울 뻔했다.
“이리 와, 블랙.”
감정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내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내 말에도 블랙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치 학기 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처럼 낯설게 굴고 있었다. 블랙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싫었다. 나는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나 좀 안아줄래?”
나는 블랙의 은회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항상 무덤덤했던 그의 눈빛이 오늘따라 우울해 보였다. 내 기분 탓인 걸까. 오히려 안아주어야 할 것은 블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를 품에 안았다. 블랙은 거부하지 않고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에게서 방금 시리우스의 품에서 느꼈던 체취가 흘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블랙을 안았음에도 시리우스에게 안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품처럼 안온하고 편안했다.
“너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어.”
나는 그의 털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비밀을 숨기고 있지.”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블랙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겨울 날씨는 추웠고, 주변은 고요했다. 나는 그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더욱 바짝 붙었다. 오랜만에 만난 블랙이었다. 밤새도록 블랙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이것 때문에 나는 그와 이대로 영영 멀어질지도 몰라.”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블랙의 귀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두었다. 호숫가 위로 달빛이 어렸고, 내 옆에는 블랙이 앉아 있었다. 격해졌던 마음이 가라앉고 다시 익숙한 평온함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게 너무 슬퍼.”
============================ 작품 후기 ============================
ㅉㅉ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겪고 있는 시리우스네요. 이제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팟4의 컨셉중 하나는 시리우스의 ‘삐뚤어질테다’입니다. 얼른 돌아와, 시리우스! 원래 모습이 보구싶어ㅜㅠㅠㅠ
내일은 쉬고 다음 회차는 8일 언젠가 올라갈 듯 싶습니당 :)